[단비현장] 충북 증평군 사례로 본 장기방치 공사장 문제

전국에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된 건축물은 지난해 9월 기준으로 강원도 46곳, 충청남도 44곳, 경기도 41곳, 충청북도 31곳 등 총 322곳이다. 이 가운데 중단된 지 10년이 넘은 장기방치 건축물은 229곳이다. 장기 방치된 공사장이나 건축물은 진행하던 공사를 마무리하거나 아예 새로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근 주민들이 보기에도 좋지 않고 범죄 같은 사건이 발생하는 등 안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공사장은 실마리가 풀려 문제를 해결했다. 2010년 11월 공사가 중단됐던 서울시 도봉구 창동민자역사는 기존 시행사가 회생 절차를 거쳐 12년 만인 지난해 공사를 재개했다. 또 시공사가 부도를 맞아 1997년 8월 공사를 멈춘 경기도 과천시 우정병원은 국토교통부의 지원을 받고 새 사업자를 찾아 지난 2021년부터 아파트로 재건축하고 있다. 

작년 3월부터 ‘공사중단 장기방치 건축물의 정비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개정되면서 10년 이상 된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된 공사장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할 주체가 광역단체장에서 기초자치단체장으로 바뀌었다. 건축 허가 등 관련 행정 권한이 시군구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법이 개정된 배경이었다. 하지만 개정안이 시행된 지 1년이 넘었지만 특별히 문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비 선도사업 성공사례, 증평 ‘개나리아파트’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한가운데엔 풀이 무성하게 자란 대지가 있다. 건설폐기물 하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오래 비어 있는 필지처럼 보인다. 접근을 막는 울타리나 가림막도 없었다.

충북 증평군 증평읍 개나리아파트가 있던 곳이다. 이곳에 들어설 공공임대주택과 돌봄시설은 설계를 마치고 착공을 기다리고 있다. 정승현 기자
충북 증평군 증평읍 개나리아파트가 있던 곳이다. 이곳에 들어설 공공임대주택과 돌봄시설은 설계를 마치고 착공을 기다리고 있다. 정승현 기자

하지만 이곳엔 약 2년 전만 해도 ‘개나리아파트’라고 불리며 방치된 건축물이 있었다. 8층 규모로 지어질 예정이었지만 1992년 8월 공사가 멈춘 뒤 창문 마감이 안 된 채 방치됐다. 주택가 한가운데 서 있어 보기 좋지 않은 데다가, 접근이 어렵지 않아 안전사고 위험에도 노출됐다. 주민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자본이 부족해 완공을 책임질 의지가 없는 건축 사업자가 지자체에 방치 공사장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증평군청에 요구했다.

증평군은 도시재생 사업을 계획해 2019년 국토교통부에 사업 예산을 신청했다. 개나리아파트는 국토부가 2015년부터 진행한 ‘장기방치 공사장 정비 선도사업’에 선정돼 40억 원가량 지원을 받았다. 나머지 56억여 원은 군 예산을 투입했다.

개나리아파트 터에는 돌봄 시설과 도서관, 공공임대주택을 짓는다. 증평군은 2020년 LH와 업무협약을 맺고 생활 기반시설을 계획했다. 군청 도시재생팀 조성민 팀장은 지난해 11월 7일 <단비뉴스>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주민 50여 명이 설계에 참여해 의견을 청취하고 최종 동의까지 얻었다”며 “건설경기 때문에 지연되고 있지만 곧 착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증평군의 개나리아파트는 장기방치 공사장 문제를 잘 풀어간 선도 사례로 꼽힌다.

장기방치 공사장에서 공포영화 촬영도…주민들 반발

하지만 증평군 도심에서 10여 분 차를 몰고 외곽으로 향하면 방치된 듯한 아파트를 하나 더 볼 수 있다. 정면 23가구에 유리창문이 달려있고 1층 베란다 앞에 개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2019년 충청북도 공사중단 건축물 정비계획안에 따르면, 증평군 도안읍에 있는 윤모아파트는 1996년부터 공사가 멈춘 상태다. 공정율은 90%로 나와 있다. 실제로 지저분한 모습을 정리하고 마무리 공사를 진행하면 완공이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준공 허가가 나지 않았다고 조 팀장은 말했다. 사용 허가가 나지 않은 것이다.

충북 증평군 도안읍에 공사가 중단된 채 서 있는 윤모아파트. 정승현 기자
충북 증평군 도안읍에 공사가 중단된 채 서 있는 윤모아파트. 정승현 기자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윤모아파트는 마주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다. 지난해 11월 3일 만난 도안읍 화성6리 이장 안영자 씨는 “2~3년 전 (외지에서) 젊은 사람 여럿이 윤모아파트를 찾아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낯선 젊은 사람이 윤모아파트 인근을 칮아오면 무슨 일을 벌이지 않을까 의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마을 주민들이 (마을 밖으로 나갈 때) 직선으로 뻗은 윤모아파트 앞길을 두고 옆길로 돌아 나간다”고 말했다.

특히 이 때문에 마을이 공포스러운 이미지로 비칠까 주민들은 걱정한다. 윤모아파트를 배경으로 공포영화를 촬영하려는 제작사가 있어 주민들이 항의했다. 안 이장은 “2차 (시리즈) 촬영까지는 마을의 모습이 안 나오는 조건으로 수용했지만, 3차는 (아예 촬영지 이용을) 막았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장기방치 공사장은 주변 지역에 악영향을 끼친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2013년에 낸 보고서는 공사중단 장기방치 건축물이 도시경관을 해치는 등 도시미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도시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범죄 장소로 이용되거나 방치돼 있던 건축 자재나 구조물이 떨어지는 것 같은 안전사고를 보행자가 겪을 수도 있다.(공사중단 장기방치건축물 정비를 위한 체계 및 제도 기반 연구, 유광흠 외 1명, 건축도시공간연구소, 2013)

복잡한 권리관계 해결 못하면 진전 어려워

한 도시에서 상반된 두 사례의 차이는 결국 권리관계였다. 재산권이 채권 등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거나 토지보상에 필요한 금액을 지자체가 감당할 수 없으면 문제 해결이 요원해진다.

윤모아파트도 이런 사례다. 아파트 토지대장을 보면 소유관계에 얽힌 개인 또는 법인이 7곳이다. 특히 준공허가가 나지 않았지만 입주자도 있다. 조 팀장은 “관련자들이 유치권 같은 권리를 계속 행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계를 설명했다. 공공 대신 민간 사업자가 토지와 건물을 사들여 완공하거나 재건축하는 길도 있지만, 도심과 다소 떨어져 있어 사업하겠다고 나서는 기업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철거 전 개나리아파트 모습. 국토교통부 제공
철거 전 개나리아파트 모습. 국토교통부 제공

반면 개나리아파트는 부동산 소유권 문제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철거 후 재건축 사업을 공공이 주관할 수 있었다. 조 팀장은 “(개나리아파트 사례는) 소유권 정리가 운이 좋게 잘 됐다”고 말했다. 사업 시행자였던 토지 소유주가 군청에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직접 민원을 넣었는데, 마침 이해관계자들에게 법적으로 보상할 필요가 없었다. 채권자와 유치권자 등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이해관계자들이 10년 넘게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민법은 채권을 10년 동안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한다고 규정한다. 소유한 재산에 저당이 잡히거나 압류돼 소유관계에 변화가 생겼을 때 10년 안에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권리를 잃는다는 것이다. 군청은 채무관계에서 비롯된 유치권 등 민법상 권리행사 부분에 대해 법적 보상을 하지 않아도 됐다. 토지와 건물을 사들여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한국주택도시공사(LH) 도시건축사업단이 마련한 방치건축물 정비 선도사업 선정 평가항목과 배점. 출처 김주진·류동주, “공사중단 장기방치 건축물 실태특성과 정책적 시사점”, 도시재생 4권 1호, 2018
한국주택도시공사(LH) 도시건축사업단이 마련한 방치건축물 정비 선도사업 선정 평가항목과 배점. 출처 김주진·류동주, “공사중단 장기방치 건축물 실태특성과 정책적 시사점”, 도시재생 4권 1호, 2018

지자체는 토지와 건물을 매입해 사업을 추진할 재정 능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1~3차 방치건축물 정비 선도사업 대상을 뽑는 평가 기준에서 소유관계와 채권 문제를 해결했는지를 따지는 사업 용이성과 이해관계자의 추진 의지는 100점 만점에 30점에서 25점을 차지했다. 조 팀장은 “2021년부터 장기방치 공사장 정비 선도사업의 심사 기준에서 토지와 건물의 소유권 문제가 까다로워졌다”고 덧붙였다.

채권 문제 해결할 기구 고려해볼 만해

지자체가 정비계획을 세워 중앙정부에서 예산을 확보하더라도 재산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사업이 답보되는 사례도 생긴다. 실제로 지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총 6차례에 걸쳐 정비 지원 선도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곳이 38곳인데,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작년 9월에 낸 자료를 보면 사업 방식과 내용을 정하지 못한 곳이 21곳이었다.

지금 공사중단 장기방치 건축물 정비를 지원하는 사업은 방치건축물정비법 시행령에 따라 한국부동산원이 맡고 있다. 부동산원은 재산권 문제에 관한 역할을 취득·수용 후 철거·신축·공사재개, 위탁사업, 대행사업이라고 소개했다. 또 정비계획 수립 절차에 건축주와 이해관계자 등을 상대로 사업설명회도 연다.

하지만 시행사나 시공사가 부도를 맞거나 복잡하게 얽힌 채권을 정리하는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다. 비슷한 문제를 겪어온 일본은 부실자산을 처리하는 ‘정리회수기구’(RCC, The Resolution and Collection Coporation)를 끌어들였다. 한국으로 치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비슷한 기구를 통해 부실한 부동산 자산을 회수하고 누군가 투자할 수 있도록 증권화한다. 장기방치 건축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권리관계를 둘러싼 문제를 풀 수 있는 해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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