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4년 전과 정반대 결과…지방선거 의미 퇴색 지적도

세 명의 후보가 출마했던 충북 제천시장 선거는 4.2% 포인트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김창규 국민의힘 후보는 50.8%의 득표율로 46.6%에 그친 이상천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앞섰다. 득표 수로는 김창규 당선인 3만 1200여 표, 현직 시장인 이상천 후보 2만8600여 표였다. 김달성 무소속 후보는 1500여 표를 받아 2.6%의 득표율에 그쳤다.

환호하는 국민의힘 김창규 제천시장 당선인. 김 당선인은 외무고시 출신으로 외무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다 2018년 퇴직했다. ⓒ 김창규 당선인 SNS
환호하는 국민의힘 김창규 제천시장 당선인. 김 당선인은 외무고시 출신으로 외무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다 2018년 퇴직했다. ⓒ 김창규 당선인 SNS

여론조사 뒤집은 이변…김 당선인 측 “당선될 줄 알았다”

사전투표 일주일 전인 지난달 20일부터 사흘 동안 KBS청주방송총국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선거 결과와 많이 달랐다. ‘어느 후보가 제천시장으로 적합한지’를 묻는 질문에 이상천 민주당 후보가 53.1%로 38.3%의 김창규 국민의힘 후보를 크게 앞질렀다. 당선 가능성이 큰 후보를 묻는 질문에서는 격차가 더 벌어졌다. 이상천 후보 53.8%, 김창규 후보 27.8%로 격차는 26% 포인트로 거의 두 배 차이가 났다. 

막상 개표가 시작되자 예상을 뒤엎고 초반부터 김창규 후보가 앞섰다. 개표율 4% 상황에서는 김창규 후보 득표율이 54.2%로 이상천 후보와 10% 포인트 차이가 났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격차가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한 번도 뒤집히지 않았다. 2일 새벽 2시쯤 개표율 81.6% 상황에서 김창규 후보 당선이 확정됐다. 지역별로 보더라도 김창규 후보가 승리한 곳이 훨씬 많았다. 제천시 17개 읍면동 지역 가운데 의림지동과 용두동 두 곳에서만 이상천 후보가 100여 표 차이로 앞섰고, 나머지 15개 지역에서 김창규 후보가 더 많은 표를 얻었다.

KBS청주방송총국이 실시한 두 차례 여론조사에서 지난달 내내 더불어민주당 이상천 후보 지지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KBS
KBS청주방송총국이 실시한 두 차례 여론조사에서 지난달 내내 이상천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KBS

김창규 당선인 캠프에서는 당선을 어느 정도 기대했다는 분위기다. 박헌영 총괄상황실장은 “공표하지는 못했지만 당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김창규 후보가 근소하게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며 “특히 50대 이상 세대에서 응답률이 높아 승산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지상파 방송 여론조사는 제천과 단양을 묶어 조사하는 바람에 제천시민 조사 표본크기가 502명에 불과해 정확도가 떨어졌다”며 “외교관 출신인 김 후보의 경력이나 국민의힘 정부에 힘을 실어주려는 바닥 민심 등 조건이 나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상천 후보는 5일 자신의 SNS를 통해 “성원에 부응하지 못한 죄송함에 목이 멘다”며 낙선의 변을 남겼다. 현직 시장인 이 후보는 “선장이 바뀐다고 멈출 수는 없다. 민선 8기 제천시정도 긍정과 자부심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며 “남은 임기를 충실히 마치고 새로운 도전의 의지를 다지겠다”고 밝혔다.

김달성 후보는 “득표율에 실망하긴 했지만 고작 석 달 활동한 점을 생각하면 긍정적인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지방선거 일정이 대선과 붙어 있어 무소속 후보가 인지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행보에 관해서는 “지역에서 시정을 견제하는 시민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상천, 김달성 두 후보가 페이스북에 올린 낙선 인사. ⓒ 후보별 SNS
이상천, 김달성 두 후보가 페이스북에 올린 낙선 인사. ⓒ 후보별 SNS

민주-국힘 4년 전과 정반대 결과

국민의힘은 충북지역 전체에서 압승했다. 도지사는 김영환 국민의힘 후보가 득표율 58.2%로 41.8%를 기록한 노영민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충북지사는 지난 12년 동안 더불어민주당 이시종 현 지사가 맡았다.

충북지역 11개 시군 가운데 국민의힘 기초단체장 당선자는 7명이었다.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옥천과 음성, 진천, 증평 4개 군에서만 당선됐다. 직전 선거인 제7회 지방선거 때와 정확히 정반대 결과였다. 4년 전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지사는 물론 기초단체장 7명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후보는 4명 당선됐다.

지방의회 선거에서도 국민의힘이 약진했다. 충북도의회 35석 가운데 국민의힘이 28석을 가져갔다. 지난 선거 당시 전체 32석 가운데 28석을 민주당이 휩쓴 것과 비교하면 정반대 결과다. 제천시의회도 국민의힘 후보가 8명, 민주당이 5명 당선됐다. 4년 전 5 대 8과 정확히 반대 결과다.

선거 다음 날인 2일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은 “도민의 선택을 존중하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제목으로 짤막한 논평을 냈다. 민주당은 “깊이 반성하고 성찰하겠다”며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민의힘도 논평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안정적인 국정운영과 충북 발전을 위해 앞장서겠다”며 이번 선거 결과는 “새로운 대한민국과 충북을 원하는 도민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충북지사 후보를 내지 못했던 정의당 충북도당은 청주시의회 비례대표로 출마한 이인선 충북도당 위원장을 비롯해 광역과 기초의원 후보 4명을 냈지만 아무도 당선시키지 못했다. 정의당은 직전 선거에서는 청주시의회 비례대표로 이현주 의원 한 명을 배출했다. 이 의원은 이번 선거에 지역구 후보로 나섰지만 득표율 4.3%로 낙선했다. 

군소정당 가운데는 충북지역에서 진보당이 유일하게 의원을 배출했다. 송윤섭 후보가 득표율 28.2%로 옥천군의원에 당선했다. 진보당은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 당선인을 비롯해 서울과 전남, 광주 등에서 기초의원 21명을 당선시켰다.

연 120만 원 농민수당 지급을 공약한 진보당 송윤섭 옥천군의원 당선인은 충북도내에서 당선된 유일한 군소정당 후보다. ⓒ 송윤섭
연 120만 원 농민수당 지급을 공약한 진보당 송윤섭 옥천군의원 당선인은 충북도내에서 당선된 유일한 군소정당 후보다. ⓒ 송윤섭

지방선거도 ‘정권 따라 투표’ 경향

제천시 전체 유권자 수 11만 5000여 명 가운데 2만 8000여 명이 지난달 27일과 28일 이틀 사이 투표해 사전투표율은 24.4%를 기록했다. 전국평균 20.6%보다 조금 높았다. 선거일 당일에는 3만 4000여 명이 투표해 최종 투표율은 54.3%였다. 충북지역 평균인 50.6%, 전국평균 50.9%보다 조금 높았다. 

하지만 직전 지방선거의 제천지역 투표율 61.4%와 비교하면 크게 떨어진 수치다. 물론 투표율이 떨어진 것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7회 지방선거에서 충북지역 투표율은 59.3%, 전국평균도 60.2%였던 것을 감안하면 4년 만에 각각 10% 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오세제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사이 투표율이 10% 포인트 가까이 차이 나는 현상은 일반적”이라면서도 “2010년대부터 상승세가 유지돼 오던 지방선거 투표율이 이번 선거에서 급격히 꺾인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떨어진 투표율은 정치에 대한 실망이 반영된 결과”라며 “민주당에 실망해 국민의힘에 표를 준 대통령 선거 투표 경향이 그대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역대 지방선거 투표율. 투표율은 2002년 최저점을 찍은 뒤 꾸준히 상승하다가 이번 선거에서 급격히 떨어져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 박성동
역대 지방선거 투표율. 투표율은 2002년 최저점을 찍은 뒤 꾸준히 상승하다가 이번 선거에서 급격히 떨어져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 박성동

실제로 주민들은 이번 지방선거에 큰 관심이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어느 후보를 뽑을지를 정할 때 공약보다 소속 정당을 봤다는 의견이 많았다. 72살 박 모 씨는 “물론 지금 시장이 별문제 없이 잘했지만, 시장이 대통령과 같은 당이어야 정부 협조를 잘 받지 않을까 기대가 있다”며 김창규 후보에게 투표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70살이 넘은 우리 또래는 안정을 추구해 김 후보를 뽑았다”며 “괜히 다른 당을 뽑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상천 후보에게 표를 줬다는 주민도 공약을 참고하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65살인 한 남성은 “정쟁은 싫지만 상대 정당은 더 싫어서 예전부터 민주당을 찍었다. 이번에도 시의원부터 지사까지 죄다 1번으로 찍었다”면서도 “사실 정당별로 공약에 차이가 크지 않은 것 같다”며 “차라리 지방선거에서 정당 공천을 없앴으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제천으로 와서 3년 전부터 동문시장 근처에서 음식점을 영업하고 있는 59살 황희숙 씨는 “김창규 당선자가 지역에서 활동하지 않아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도 정권이 바뀌니까 다 따라갔다”며 “정권 몰아주기를 하니까 싫고 특별히 어느 편도 아니어서 아예 무소속 후보를 찍었다”고 말했다.

젊은 층은 정당에 얽매지는 않았지만 투표율도 낮았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이하 투표율은 남성 29.7%, 여성 35.8%였다. 올해 처음으로 유권자가 된 고등학교 3학년 김재영 씨는 “대선 때는 주변에 독려하는 사람이 많아 투표했다”면서 이번에는 투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다음 선거 때 투표한다면 정당은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며 “이 지역에서 계속 살 예정이고 자영업을 할 생각인데 청년 창업자에 대한 지원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교 4학년인 23살 김현주 씨도 “선거 당일에도 종일 아르바이트를 해야 해 투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주소지는 경남으로 돼 있지만 학교를 다녀야 해 제천에 살고 있다”며 “취업은 또 다른 지역에서 할 예정인데, 지역 이동이 잦은 청년에게 지방선거의 의미를 찾기는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젊은 층 외면에 ‘안정론·견제론’ 대결…지방선거 의미 퇴색

청년층의 외면 말고도 지방선거가 지방 고유의 이슈를 부각하는 계기를 만들지 못하고 전반적으로 집권 세력에 대한 견제론과 안정론의 대결로 흘러가는 바람에 지방선거의 의미 자체가 퇴색했다는 평가도 있다.

오세제 연구원은 “지방선거를 치를 때마다 밑에서부터의 정치,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본래 취지와 ‘정권 중간평가’처럼 정치 흐름을 반영하는 성격이 충돌해온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두 측면이 조화돼야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대선 뒤 22일 만에 이뤄진 탓에 ‘정치 흐름’에 치우친 성격이 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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