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집 재밌는 곳] 단양 독립서점 겸 기념품 가게 #단양노트

단양전통시장 입구에 있는 책방겸 기념품 가게 ‘단양노트’ 전경. ⓒ 현경아
단양전통시장 입구에 있는 책방겸 기념품 가게 ‘단양노트’ 전경. ⓒ 현경아

책방인 줄만 알았는데 기념품 가게이기도 했다. 단양전통시장 바로 앞에 있는 이 가게의 유리 너머에는 형형색색의 기념품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지난달 8일 ‘#단양노트’(이하 단양노트)를 찾아갔다. 출입문을 열자마자 온갖 엽서, 책갈피, 마스킹테이프, 컵, 노트 등 아기자기한 상품이 펼쳐졌다. 다양한 상품들의 공통점은 단양노트가 있는 ‘단양’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도담삼봉, 패러글라이딩, 고수동굴 같은 단양의 관광지가 그려진 엽서도 있고, 단양 지역 시멘트 회사 로고를 새긴 아파트 그림 엽서도 있다.

단양노트에서는 엽서와 책갈피 등 여러 가지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 ⓒ 현경아
단양노트에서는 엽서와 책갈피 등 여러 가지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 ⓒ 현경아

기념품만 파는 건 아니다. 이곳은 서점이기도 하다. 가장 안쪽 벽면에는 독립 출판도서와 일반 출판물 가운데 여행 관련 도서가 자리했다. 진열할 책을 고르는 기준은 사장 마음이다. 단양노트를 운영하는 이승준(38) 씨는 서울, 제천, 포항 등 전국각지 서점 탐방을 하면서 맘에 들었던 책들을 기억해놨다가 입고 신청을 한다.

가장 안쪽 벽면에는 독립출판물들이 진열되어 있다. ⓒ 현경아
가장 안쪽 벽면에는 독립출판물들이 진열되어 있다. ⓒ 현경아

사실 이 씨는 유명한 단양 지역 헌책방인 ‘새한서점’을 함께 운영한다. 헌책방은 영화 <내부자들>에서 검사 역할을 맡은 배우 조승우의 아버지 집으로 나오는 장소다. 영화에 등장한 뒤로 이 책방은 각종 드라마, 광고 촬영 등 미디어 노출이 잦았고, 최근에도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후기가 종종 올라온다. 그 ‘새한서점’ 주인인 이금석(71) 씨는 이 씨의 아버지다. 2016년부터 아버지 옆에서 새한서점 운영을 도왔던 그는 2019년 단양읍내에 단양노트를 열었다. 이미 유명해진 책방을 두고 새로운 공간을 만든 이유는 뭘까.

단양 콘텐츠를 상품화하는 ‘로컬 상점’

“단양 자체를 알리는 일에 가깝죠.”

단양노트는 콘텐츠 상점에 가깝다. 아버지를 도와 헌책방을 운영하던 이 씨는 괜찮은 여행지인 단양을 알리고 싶었다. 원래 운영하고 있던 서점의 연장선에서 책과 단양 관련 기념품을 함께 파는 가게를 꾸렸다. 가게 이름인 ‘단양노트’는 서점의 정체성도 살리면서 단양을 담겠다는 뜻이다. 손님들은 주로 책과 기념품을 산다. 단양읍에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토요일에 손님이 가장 많다.

가게에 있는 단양 관련 기념품과 설화집을 설명하는 사장 이승준 씨. ⓒ 현경아
가게에 있는 단양 관련 기념품과 설화집을 설명하는 사장 이승준 씨. ⓒ 현경아

매장을 가득 채운 엽서와 책갈피, 기념 책자는 전국에 있는 삽화작가 십여 명과 협업해서 만들었다. 개업 초기에는 단양의 유명한 관광지를 비슷하게 본뜬 그림이 많았다. 요즘엔 단양의 관광지를 그대로 묘사하기보다 단양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도록 조금씩 추상화한 그림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협업했던 한 디자이너는 흔히 ‘단양 8경’이라고 불리는 단양의 유명한 관광지들을 연상시키도록 숫자 ‘8’ 모양으로 된 무늬를 넣은 가방을 만들기도 했다.

새로 협업 중인 그림 작가는 ‘단양의 음식’을 주제로 단양과 관련된 빵이나 음료를 그림으로 그릴 예정이다. 이 씨는 음원으로도 단양을 전달하려고 한다. 단양을 알리려고 ‘단양여행’ ‘숲속의 서점’ 두 가지 노래를 제작했다. 유튜브로 검색하면 금방 들을 수 있다. 이 노래들에는 패러글라이딩이 유명한 단양에서의 활동적인 여행 분위기와 숲속에 있는 새한서점의 고요한 느낌이 모두 담겼다.

단양의 유명한 관광지인 단양 8경을 상징하는 숫자 ‘8’을 활용한 무늬를 넣은 가방. ⓒ 현경아
단양의 유명한 관광지인 단양 8경을 상징하는 숫자 ‘8’을 활용한 무늬를 넣은 가방. ⓒ 현경아

엽서나 책갈피 같은 기념품 말고도 단양의 이야기를 길게 엮은 설화집도 제작했다. 이 씨는 이날 마침 배송된 단양 설화집을 펼쳐 보였다. 책에는 단양의 온달 관광지, 새한서점, 구인사를 배경으로 주인공이 단양의 설화를 수집해가는 과정이 담겼다. 새한서점 주인인 이금석 씨가 만화 캐릭터로 등장하기도 해, 단양의 이야기 주인공 중 하나로 나온다. 이 씨는 설화 모음집이 지자체 차원에서 단양을 알리고 교육하는 데 쓰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단양에 있는 온달 관광지를 배경으로 단양 관광지에 얽힌 설화를 만화로 만든 책. ⓒ 현경아
단양에 있는 온달 관광지를 배경으로 단양 관광지에 얽힌 설화를 만화로 만든 책. ⓒ 현경아

단양노트의 기념품 등 콘텐츠를 제작한 작가 16명은 이 씨와 독특한 협업 과정을 거친다. 보통은 작품 요구사항을 작가에게 보내면, 작가가 알아서 상품에 맞춰 그림을 그린다. 그런데 이 씨는 무조건 협업하는 작가들이 1년에 4번 단양에 직접 오는 조건을 걸었다.

분기별로 한 번씩 와서 4계절 동안 변화하는 단양의 관광지 풍경을 직접 느끼도록 했다. 교통비와 숙박비, 작품 활동비는 이 씨가 부담한다. 협업하는 작가들은 단양을 자유롭게 즐기고, 단양과 관련된 그림이나 음악을 이 씨에게 제출한다. 이런 협업 방식을 ‘아티스트 레지던시’(Artists In Residency)라고 한다. 덤으로 SNS 팔로어 수가 많은 협업작가들이 단양을 체험한 뒤 본인 SNS에 홍보하는 효과도 기대한다.

골프 마케터가 헌책방지기와 지역 청년 창업자로

처음부터 단양에 마음을 둔 건 아니었다. 이 씨는 2015년까지 5년 동안 골프 마케팅 회사에서 프로 골프 대회 행사를 조직했다. 그는 어느 정도 마케팅 업무가 익을 때쯤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회사 안에서는 주어진 프로젝트의 특정 업무만 진행해야 하는 게 아쉬웠다. 연차가 쌓일수록 ‘주어지는 일만’ 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편해지는 게 싫었다. 대신 자신의 마케팅 노하우를 가지고 자기 사업을 하고 싶었다. 2015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1년을 쉬었다. 경력이 끊기는 걸 감수하면서 큰맘 먹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단양 새한서점으로 내려왔다.

이승준 씨가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지와 함께 운영하는 단양 헌책방 ‘새한서점’. 이 씨는 지금도 주말마다 새한서점 운영을 돕고, 단양노트 운영도 병행하고 있다. ⓒ 최은솔
이승준 씨가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지와 함께 운영하는 단양 헌책방 ‘새한서점’. 이 씨는 지금도 주말마다 새한서점 운영을 돕고, 단양노트 운영도 병행하고 있다. ⓒ 최은솔

일단 주변에서 사업 아이템을 찾았다. 잠시 쉬면서 아버지를 돕는다는 생각으로 찾은 ‘새한서점’이 그의 눈에 들었다. 처음 내려왔던 때에도 새한서점은 미디어와 여행객들에게 알려진 편이었지만, 헌책을 판 돈만으로는 운영이 어려웠다. 1년을 쉬고 남은 돈 1000만 원으로 새한서점에 쌓여만 있던 책을 정리하고, 직접 페인트를 발라 인테리어를 다시 했다. 공간이 깔끔해지면서 찾는 손님이 더 많아졌다. 헌책 판매 말고도 서점 자체를 알리는 기념품을 만들어 팔았다. 새한서점 로고가 있는 나무 펜에서 시작해서 엽서, 책, 노트 등 여러 기념품은 서점의 주된 수입원이 됐다. 마케팅 기질이 있던 이 씨는 낡은 헌책방을 문화공간으로도 활용했다. 단양에 내려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이 씨는 새한서점에서 동네 주민들이 참여하는 벼룩시장과 버스킹 공연도 열었다.

어느 날 헌책방 운영에 대해 아버지와 이 씨의 철학 차이가 생겼다. 아버지는 새한서점이 책방의 역할만 하길 바랐다. 새한서점이 영화 <내부자들> 개봉 전후로 셀 수 없이 방송에 나왔고, 대관 문의가 이어졌지만, 서점 본연의 기능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아버지의 뜻을 존중했다. 이후론 새한서점에 문화 행사나 장소 대관 문의가 들어와도 가끔 필요할 때만 받았다. 대신 단양노트를 읍내에 새로 차렸다.

지역에서의 창업은 쉽지 않았다. 단양노트를 창업할 때는 정부와 지자체 지원을 받았다. 2019년 지자체 창업지원사업을 통해 1800만 원을 지원받아 인테리어를 하고 가게 월세를 내는 데 보탰다. 중앙정부가 공모한 지역 창작자로 선정돼 받은 돈은 음원 제작과 기념품 제작에 썼다. 이렇게 받은 돈이 창업을 지탱할 만큼 풍족한 건 아니었다. 이 씨는 인테리어 비용을 줄이고자 직접 가게 바닥을 고치고, 페인트칠도 했다.

시골로 내려와 헌책방을 바꾸고 단양노트를 창업한 과정을 설명하는 이 씨.ⓒ 현경아
시골로 내려와 헌책방을 바꾸고 단양노트를 창업한 과정을 설명하는 이 씨.ⓒ 현경아

단양노트를 창업했지만 이 씨는 새한서점 운영에도 참여한다.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새한서점에서 여전히 일을 돕는다. 단양노트를 운영하면서도 새한서점에 있는 희귀도서와 신간 도서를 팔아 수익을 낸다. 몸은 하나인데 차로 20분이나 떨어진 거리의 가게 두 곳을 운영하는 건 그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는 단양노트 운영을 돕는 직원을 뽑아서 조금 여유가 생겼다. 인건비가 부담스럽지만 이 씨는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자 사람을 뽑았다고 했다. 그는 “사람 안 쓰고 제가 가게에 더 붙어 있으면 돈은 더 벌겠지만 그것보다는 더 아이디어 창출을 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요즘엔 협동조합을 공부하거나 다른 지역 책방 답사를 다닌다”고 말했다.

작은 지역 가게끼리 협력체도 꿈꿔

요즘 이 씨는 지역 내 작은 가게끼리의 조직을 만들고 싶다. 청년 인구가 부족한 단양에서는 여느 지역에나 있을 법한 청년 협동조합이나 청년몰도 없기 때문이다. 신선한 아이디어도 결국 주위 사람 사이 모임에서 나온다. 그는 단양에서 작지만 새로운 시도를 하는 청년 가게 주인들을 만났다. 덜 유명하지만, 곳곳에 숨은 좋은 가게를 소개하는 게 그가 단양을 알리는 방식이다. 그가 만난 청년 업장은 빵집, 화실, 카페, 인쇄업 등 가지각색이었다. 그는 젊은 창업자와 창업을 준비 중인 사람들을 모아 채팅방을 만들어 정부 공모 사업 등 운영에 도움 되는 정보를 수시로 공유한다.

2030 청년이 열댓 명 모인 이 채팅방은 업주들끼리의 협업 기회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이 씨는 단양의 한 한옥 카페와 협업해서 카페 안에 단양 관련 기념품을 전시해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는 비슷하게 작은 협업을 동네 김밥집, 카페, 단양 기차역과 진행해 자신의 상품을 다른 가게와 나누는 시도를 이어갔다. 그는 ‘단양여권’도 만들어서 지역 내 가게 45곳 중 몇 군데를 방문하면 상품을 주는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관광객들에겐 추천할 만한 식당과 가게를 추천해주는 역할을 하면서, 지역 업주들에게도 수익이 돌아가는 기획이다. 앞으로 단양여권 사업은 단양군과의 협업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단양여권에는 가볼 만한 가게 이름과 관광지 정보 등 추천 코스가 들어있다. ⓒ 현경아
단양여권에는 가볼 만한 가게 이름과 관광지 정보 등 추천 코스가 들어있다. ⓒ 현경아

그는 내년까지 단양 내 청년을 모아 협동조합을 만들 계획이다. 뜻이 맞는 몇몇 지역 내 청년들과 조합을 만들어서 서로의 역량을 품앗이하는 모델을 그리고 있다. 출자금을 함께 투자해 수익을 함께 나누는 것보다 업종끼리의 협업에 강조점이 있다. 예를 들어, 작은 빵집에서 비싼 디자인을 하거나 제품 포장을 하는 건 부담스럽지만, 같은 조합 안에 있는 디자이너나 인쇄소가 해당 주문을 받아 낮은 단가로 일을 해주는 식의 협업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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