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현장]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식

어젯밤(11일) 7시 무렵, 충북 제천 의림지에 만들어진 무대 앞에 흰색 우비를 입은 관객들이 자리를 잡았다. 무대 위 진행자를 제외한 진행 요원들도 우비를 쓰고 바쁘게 오갔다. 올해로 18회를 맞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속에 개막했다. 궂은 날씨에도 많은 관객이 모였다. 삼삼오오 우비를 쓰고 개막식에 참석한 일가족도 많았다.

제천시 하소동에 사는 김태연 씨는 “(자녀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 집에서 가까운 의림지에서 개막식을 한다고 하길래 나왔다”며 “영화 <ET> 속 곡으로 공연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부터 매년 이곳 영화제를 찾은 편석지(34) 씨는 “3년 전 기차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영화제를 알게 된 뒤로 매년 온다”며 “제천 영화제는 타 영화제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게 매력”이라고 말했다. 

11일 오후 7시에 충북 제천시 의림지 무대에서 열린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식 현장. 최은솔 기자
11일 오후 7시에 충북 제천시 의림지 무대에서 열린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식 현장. 최은솔 기자

개막식 직전인 오후 6시부터는 유지태, 권해효, 문근영, 정소민 등 유명 배우와 영화 <라라랜드>의 음악감독인 저스틴 허위츠(Justin Hurwitz) 등 특별손님이 레드카펫에 등장했다. 비가 꾸준히 내려 배우들과 감독들이 우산을 쓰고 입장했다. 빗속이라 레드카펫 주변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포토존 앞에서 참석자를 소개할 때마다 환호가 울렸다. 조직위원장인 김창규 제천시장이 입장하는 참석자를 일일이 맞았다.

개막식에서는 세계적인 영화음악가에게 수여하는 ‘제천영화음악상’ 시상이 진행됐다. 올해는 한국인에게 인지도가 높은 영화 <위플래쉬> <라라랜드> 음악감독인 저스틴 허위츠가 수상했다. 저스틴 허위츠 감독은 이날 무대에서 “한국의 관객은 음악을 듣는 자세, 감사하는 마음, 이해도나 지식 면에서 최고라고 생각한다”며 “토요일(13일)에 있는 재즈 밴드와의 공연에 꼭 참석해달라”고 당부했다. 시상 후에는 음악감독 이성준을 주축으로 모인 13명의 음악팀과 8명의 뮤지컬 배우가 저스틴 허위츠가 작곡한 <라라랜드> 오프닝 곡 ‘Another Day Of Sun’ 외 2곡을 연주하는 무대가 이어졌다. 

올해 영화제는 지난해 코로나19로 축소됐던 음악 프로그램인 ‘원 썸머 나잇’ 등 축제 분위기에 걸맞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꾸렸다. 영화제의 슬로건은 ‘아 템포(a tempo)’, ‘본래의 빠르기로’를 뜻하는 음악 용어다. 원래 일상의 속도로 돌아가 축제의 즐거움을 누리자는 의미를 담았다. 영화제 주 무대가 기존 청풍호반에서 시내에 가까운 제천 비행장과 의림지로 바뀌면서, 제천 주민은 물론 외부에서 오는 관객도 시내에서 접근하기 편해졌다. 역대 가장 많은 39개국 140편의 음악영화가 상영되고, 30팀이 음악공연을 연다. 

‘음악영화’ 말고도 ‘영화음악’ 강조

이번 영화제에서는 ‘영화음악’을 강조한다. 지난 17년 동안 제천음악영화제가 <원스> <서칭 포 슈가맨> 등 음악영화 발굴과 배급에 집중해왔는데, 이번에는 한국 영화 속 음악을 재조명한다. 음악영화는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나 작품 중심에 음악이 놓인 것을 말한다. 영화음악은 음악 자체를 더 중시하는 개념이다. 영화음악은 영화에 삽입되는 요소이면서 작품 밖에서도 독립된 음악으로서 가치를 지니는 창작물을 말한다. 

올해엔 영화음악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생겼다. 영화제 기간 매일 밤 영화음악을 연주하는 ‘필름콘서트’는 올해 가장 많은 신규 예산이 들어간 프로그램이다. 올해엔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 <봄날은 간다> 속 영화음악을 연주한다. ‘짐프 OST 마켓’은 신인 영화음악가를 발굴하는 프로그램이다. 영화계 각 분야 전문심사위원단을 구성해 1차, 2차 예심을 거쳐 현재 5명의 후보가 꾸려졌다. 조성우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개회사에서 “20회를 맞이하는 2024년에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전 세계 영화음악가끼리 교류하는 자리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올해 영화제에서는 영화음악에 관한 심층적인 대화를 하는 프로그램인 ‘마스터 클래스’도 진행된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는 매년 중대한 음악영화를 맡은 영화인을 자신의 대표작과 자신에게 영감을 준 인생 영화를 관객에게 소개하는 ‘큐레이터’로 선정한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작업하는 등 활약해 올해 큐레이터로 선정된 조영욱 음악감독은 자신의 인생 작품인 <겟 카터 1971> 상영 뒤 관객들과 영화음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이번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큐레이터인 조영욱 음악감독이 선정한 ‘무뢰한’ ‘헤어질 결심’ 등 6편의 작품. 조 감독은 자신이 영감을 받은 마이크 호지스 감독의 ‘겟 카터1971’ 상영 뒤에 관객들과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인 ‘마스터 클래스’도 진행할 예정이다. 사진제공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이번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큐레이터인 조영욱 음악감독이 선정한 ‘무뢰한’ ‘헤어질 결심’ 등 6편의 작품. 조 감독은 자신이 영감을 받은 마이크 호지스 감독의 ‘겟 카터1971’ 상영 뒤에 관객들과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인 ‘마스터 클래스’도 진행할 예정이다. 사진제공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의지가 있으면 방법이 있다”…희망을 담은 개막작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인 <소나타>는 청력을 잃은 주인공이 의학의 도움으로 점차 음악의 세계를 알아가고 피아니스트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폴란드인 음악가인 그제고시 푸온카(Grzegorz Płonka)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조산아로 태어나 자폐 진단을 받은 그제고시는 15살까지 고장 난 피아노를 두드리는 것 외에는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고 지냈다. 그는 15살 생일날에 자신이 자폐증이 아닌 청각 장애 때문에 고립됐다는 걸 알게 된다. 인공 보청기를 장착한 고제고시는 점차 말하기, 듣기 능력을 습득하면서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는 날을 꿈꾸며 성장해간다. 

영화 속 그제고시는 탁월한 재능으로 장애를 극복한 천재 음악가로 그려지지 않는다. 장애라는 장벽을 가진 그제고시는 피아노 실력을 키우는 과정에서 신체적, 관계적 한계를 매번 경험하고, 여러 번 실패하는 인물이다. 음악 학교에 진학하려 했지만, 박자를 못 맞춰 무산되길 반복한다. 영화 속 주인공의 실존 인물인 음악가 그제고시 푸온카는 11일 메가박스 제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실제로는 (영화에 나온 것보다) 무수한 개인적인 노력을 들여 문제를 해결해왔다”고 설명했다.

11일 메가박스 제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맹수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프로그래머가 개막작 선정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최은솔 기자. 
11일 메가박스 제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맹수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프로그래머가 개막작 선정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최은솔 기자.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맹수진 프로그래머는 기자회견에서 영화 속 주인공의 대사인 “의지가 있으면 방법이 있다”는 말을 강조하며 개막작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는 “영화 속 주인공이 본인의 의지로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전달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현재 코로나 상황에서 회복 중인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제는 오는 16일까지 6일간 메가박스 제천, CGV 제천과 의림지와 비행장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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