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전시로 전하는 다문화의 가치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조화롭게 지낼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들이 즐겨 먹는 음식과 생활 소품을 통해 접점을 넓히는 것도 다문화의 가치를 이해할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인천 원도심인 동구 배다리마을에 있는 ‘마리 데 키친’에서는 멕시코 음식과 함께 다양한 다문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멕시코 요리 전문점 ‘마리 데 키친’의 내부. 정예지 기자
멕시코 요리 전문점 ‘마리 데 키친’의 내부. 정예지 기자
멕시코 요리 전문점 ‘마리 데 키친’의 내부. 정예지 기자
멕시코 요리 전문점 ‘마리 데 키친’의 내부. 정예지 기자

멕시코 요리 전문점 ‘마리 데 키친’에 들어서자 해골 모양의 그림과 소품, ‘칼라베라’가 눈에 띈다. 멕시코에는 망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온다는 ‘망자의 날’이 있다. 이날, 멕시코인은 칼라베라라고 불리는 해골 분장을 하고선 축제에 참가하고, 칼라베라 모양의 초콜릿, 사탕을 서로 교환한다. 색색의 종이와 꽃으로 장식한 제단에도 칼라베라 모양의 소품을 올린다.  

이곳 ‘마리 데 키친’의 메인 쉐프는 멕시코인 ‘마리’다. 국내의 일반적인 멕시코 식당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전통 멕시코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옥수수나 밀가루 반죽을 얇게 구워낸 토르띠아(Tortilla) 사이에 고기와 야채를 올려 먹는 ‘알람브레’(Alambre), 튀긴 옥수수 반죽에 고기를 넣고, 위에 치즈와 사워소스 등을 올려내는 ‘몰로테스’(Molotes) 등 다양한 메뉴가 있다. 기자는 퀘사디아, 타코, 부리또 등 친근한 메뉴는 뒤로하고, 낯선 멕시코 음식 ‘포솔레’(Pozole)를 주문했다.

포솔레는 돼지고기와 옥수수로 만든 멕시코 전통 수프다. 정예지 기자
포솔레는 돼지고기와 옥수수로 만든 멕시코 전통 수프다. 정예지 기자

포솔레는 돼지고기와 옥수수로 만든 멕시코 전통 수프다. 한국 음식으로 치면 진득한 육개장이나 돼지갈비찜의 국물 맛과 비슷하다. 속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안정을 주는 멕시코인의 ‘힐링 푸드’이자 결혼식, 독립기념일, 크리스마스 등 각종 기념일에 즐기는 음식이다. 마리 데 키친의 포솔레는 재료들이 실하게 들어있어 묽은 국물 위주인 수프보다는 고기 스튜에 가까웠다. 부드러운 살코기, 오래 삶아 입안에서 으스러지는 옥수수가 한 그릇 가득하다. 재료가 푹 익도록 끓여낸 따뜻한 스튜 한 그릇이면 바람이 차가워진 요즘, 몸을 데우기 좋은 든든한 한 끼가 된다. 

마리 데 키친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다. 협동조합 ‘글로벌에듀’가 운영하는 공간의 일부다. 글로벌에듀는 인천 동구 배다리마을의 한 건물을 빌려 2층의 마리 데 키친에 이어 3층에서는 ‘카페 인 모자이크’라는 카페, 옥탑방에는 ‘세별스토리하우스’라는 다문화 박물관을 운영한다. 음식을 맛봤으면 이제 디저트를 즐길 차례. 한 층씩 올라가며 식사, 디저트, 문화 체험까지 가능하다. 

결혼 이주민 여성의 자긍심 고취를 위한 장소

글로벌에듀는 사회복지사 3명과 11개국 출신의 결혼이주민 여성이라는 독특한 조합으로 이루어졌다. 그들의 첫 만남은 2009년 다문화 강사 양성 과정으로 거슬러 간다. 강사 양성 과정 후 이들은 각자 다문화 프리랜서 강사로 일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했다. 그런데 다문화를 이해하자는 취지의 전시, 축제에 참여할 때마다 아쉬움이 들었다. 다문화 행사는 선주민과 이주민 간에 양질의 접촉점을 만들 기회인데 세계 각국의 물건을 전시만 해두고 끝이 났다. 마침 강사들의 가정엔 페루, 베트남, 일본 등 각국에서 가져온 소품이 많았다. 사회복지사와 결혼이주민 여성들은 새로운 유형의 다문화 전시와 축제를 열기로 뜻을 모으고 2016년에 협동조합 글로벌에듀를 꾸렸다. 

먼저 결혼이주민 여성들이 본국에서 가져온 소품으로 이들의 문화, 역사를 설명해주는 전시와 축제를 준비했다. 소품은 스토리텔링을 위한 전시에 활용했다. 소품을 통해 각국의 역사와 문화를 들려주는 것이다. 결혼이주민 여성들이 문화의 메신저가 되어, 본인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며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다.

구리시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페루 스토리텔링 전시를 하고 있다. 글로벌에듀 제공
구리시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페루 스토리텔링 전시를 하고 있다. 글로벌에듀 제공

이들은 협동조합을 세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왕성하게 축제와 전시 활동을 해나갔다. 그런데 이들의 활동에 위기가 왔다. 2020년 초, 코로나 19가 터진 것이다.

결혼이주민 여성의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하고, 일자리 창출, 선주민과 이주민과의 접촉점 확대를 위해서도 다문화 소품 전시는 지속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협동조합을 만든 지 5년째인 지난 2021년, 이들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건물 하나의 2, 3층과 옥상을 임대해 마리 데 키친, 카페 인 모자이크, 세별스토리하우스를 만든 것이다. 사업체들을 만드는 것은 협동조합이 맡았고, 결혼이주민 여성들과 사회복지사가 함께 공동 운영하고 수익을 배분한다. 

3층 ‘카페 인 모자이크’의 실내 모습. 조합원들이 직접 페인트칠을 하고, 인테리어를 했다. 그림은 재능 기부로 받고, 가구는 나눔 받거나 중고 거래로 구했다. 정예지 기자
3층 ‘카페 인 모자이크’의 실내 모습. 조합원들이 직접 페인트칠을 하고, 인테리어를 했다. 그림은 재능 기부로 받고, 가구는 나눔 받거나 중고 거래로 구했다. 정예지 기자

결혼이주민 여성들이 꿈을 이루는 곳

글로벌에듀의 조합원인 일본인 미츠코(47세) 씨는 2006년 한국인 남편을 따라 한국에 정착했다. 지금은 두 자녀의 엄마이자 카페 인 모자이크의 바리스타다. 커피를 내리고, 머랭 쿠키와 각종 과자를 직접 굽는다. 한국어 실력이 출중한 그녀는 다문화 전시에서 일본의 의상, 악기, 놀이를 가르치는 일본 문화 강사로 일하기도 한다. 

미츠코 씨는 카페 인 모자이크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정예지 기자
미츠코 씨는 카페 인 모자이크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정예지 기자

한국으로 오기 전 수영코치로 일했던 그녀는 꿈이 많았다. 케이크 가게, 카페도 해보고 싶었고, 선생님도 되어보고 싶었다. 그 꿈을 카페 인 모자이크를 통해 이뤘다. 

“큰딸이 중학생인데 학교에 일본 동아리가 있어요. 동아리 친구들한테 우리 카페 사진을 보여주면서 친구들에게 자랑한대요.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될 수 있어서 뿌듯합니다. 그리고 타국에서 당당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도 자랑스럽습니다.”

다문화 박물관 ‘세별스토리하우스’

카페 인 모자이크를 통해 연결되는 계단을 따라 옥상으로 올라가면 일본, 베트남 등 세계 소품들이 있는 ‘세별스토리하우스’가 나온다. 다문화 강사 개개인이 가지고 있던 소품들을 전시하는 다문화 박물관이다. 소품 하나하나에 이들의 추억과 애정이 묻어 있다. 총 5개의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으며 베트남, 일본, 태국 전시관과 함께, 세계 액세서리 전시실, 기획전시실이 있다. 다문화 축제가 열리면 이곳의 소품을 활용해 스토리텔링 전시를 열고, 일정이 없을 때는 상시 전시해둔다. 일부 제품은 판매도 한다. 마리 데 키친이나 카페 인 모자이크 이용고객에게 개방하며, 별도의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세별스토리하우스의 일본 전시관이다. 어린이의 성장을 축하하는 일본의 전통축제 ‘히나마츠리’에서는 붉은 천을 깐 제단을 인형으로 장식하는 풍습이 있다. 정예지 기자
세별스토리하우스의 일본 전시관이다. 어린이의 성장을 축하하는 일본의 전통축제 ‘히나마츠리’에서는 붉은 천을 깐 제단을 인형으로 장식하는 풍습이 있다. 정예지 기자
베트남 호이안 포토존. 호이안에서는 매달 베트남 전통 등을 달아 밤을 밝히는 등불축제가 열린다. 정예지 기자
베트남 호이안 포토존. 호이안에서는 매달 베트남 전통 등을 달아 밤을 밝히는 등불축제가 열린다. 정예지 기자

결혼이주민 여성들이 ‘나답게’ 살 수 있게 

사회복지사이자 글로벌에듀의 조합원인 조세은(40) 씨는 다문화와 관련된 소품들이 그저 ‘값싼 기념품’으로 인식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다문화 전시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소품 속에 담긴 문화와 역사적 특징을 궁금해하기보다는 얼마나 저렴한지를 중요히 여기곤 했다. 그는 가격이 아닌 다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싶었다.  

사회복지사이자 글로벌에듀의 조합원인 조세은 씨. 평일 저녁이나 주말이면 글로벌에듀의 일을 돕는다. 정예지 기자
사회복지사이자 글로벌에듀의 조합원인 조세은 씨. 평일 저녁이나 주말이면 글로벌에듀의 일을 돕는다. 정예지 기자

“다문화 소품 안에는 한 나라의 역사가 있고, 이 역사를 아는 이들의 자긍심이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 대한 접촉점이 많아지면 다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높아질 거라 생각해요.”

글로벌에듀가 이 공간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마리’ 데 키친처럼 결혼이주민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 수 있는 주체가 되기를, 카페 인 ‘모자이크’처럼 개별의 존재가 모여 아름다운 하나가 되길, ‘세별스토리’하우스를 통해 세상의 별의별 이야기의 메신저가 되길 바란다. 결국 결혼이주민 여성이 복지 수혜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의 주체가 되는 것, 다문화의 가치를 인정받고, 또 알리는 것. 그것이 이 공간이 던지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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