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서점 4곳 중 1곳은 독립서점, 지역 문화공간 가치 존중해야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 전북대학병원 입구 정류장에서 10여 분 걸으면, ‘책’이라고 적힌 작은 간판이 보인다. 입구에는 ‘위로와 공감의 책방, 잘 익은 언어들’이라는 서점 이름이 적혀 있다. 1층에는 서점, 2층에는 창작 스튜디오가 있다는 안내글도 적혀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베스트셀러부터 독립출판물까지 다양한 책이 눈에 들어온다. 책장 곳곳에 책을 추천하는 이유가 적힌 메모가 놓여 있다. 평상시 이곳은 작은 서점이지만, 때로 전시장이나 행사장으로 변모한다. 책방지기인 이지선(47) 씨가 꾸미고 관리한다. 인후동에서 ‘잘 익은 언어들’은 지식과 문화의 작은 둥지 구실을 한다.

전주시 인후동에 위치한 독립서점 '잘 익은 언어들'의 서가. 전예나 기자
전주시 인후동에 위치한 독립서점 '잘 익은 언어들'의 서가. 전예나 기자

마을이나 동네를 지역적 기반으로 삼아, 지식과 문화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독립서점은 전주시에만 10곳이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을 제외하면, 전주의 서점은 모두 60곳인데, 그 가운데 10곳이 독립서점이니 적잖은 비중이다. 전주시는 수도권과 제주도를 제외한 기초 지방자치단체 중 독립서점이 가장 많이 증가한 지역이기도 하다.

독립서점은 전통적인 의미의 서점과 달리 학습지와 참고서를 판매하지 않고, 책 판매 외에 음료·문구 등을 판매하거나 큐레이팅·문화활동 등의 서비스를 병행하는 서점을 일컫는다. 이런 서점은 얼마나 많을까? 언제부터 늘어났을까? 어디에 있을까? <단비뉴스>가 처음으로 전국 독립서점의 현황을 분석했다.

전국 서점 4곳 중 1곳은 독립서점

한국서점조합연합회는 2004년 이후 격년으로 ‘한국서점편람’을 발행해 왔다. 이 편람에서 학습지와 참고서를 판매하지 않고 다른 업종을 병행하는 서점을 '기타 서점'으로 따로 분류하기 시작한 것은 2016년이었다. 이에 따라 취재팀은 2016년, 2018년, 2020년 발행한 편람에 나타난 기타 서점을 독립서점으로 간주했다. 최신판인 2022년 편람에는 기타 서점이 분류되어 있지 않아, 전국 2528개 서점 목록 전체를 일일이 분석했다. 우선, 과거 편람에서 기타 서점으로 분류된 서점을 골라냈고, 새로 개업한 서점은 해당 서점의 홈페이지, 소셜미디어, 방문자 리뷰 등을 살펴 독립서점 여부를 확인했다.

분석 결과, 2015년 전국의 2165개 서점 가운데 독립서점은 49곳으로 2.3%를 차지했는데, 그 숫자가 해마다 늘어 2021년에는 전국 서점 2528곳 가운데 23.5%인 594곳이 독립서점이었다. 이제 전체 서점 4곳 가운데 1곳이 독립서점인 셈이다. 6년 동안 증가율은 무려 1112%에 달했다. 짧은 시간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국내 전체 서점 수와 독립서점 수, 그리고 그 비중은 지난 6년 동안 급격하게 변화했다. 그래픽 전예나
국내 전체 서점 수와 독립서점 수, 그리고 그 비중은 지난 6년 동안 급격하게 변화했다. 그래픽 전예나

지역별 분포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2015년에는 독립서점 49곳 중 34곳(69.4%)이 서울에 모여있었다. 그런데 2021년에는 독립서점 594곳 가운데 287곳이 비수도권 지역에 위치하여, 그 비중이 48.3%에 이르렀다. 수도권보다 더 많은 독립서점이 전국 곳곳에 생겨난 것이다.

전국에 있는 독립서점의 위치를 점으로 표시하여 지난 6년간의 변화를 보면, 수도권에 집중됐던 독립서점이 전국 곳곳으로 번져간 것을 알 수 있다. 그래픽 전예나
전국에 있는 독립서점의 위치를 점으로 표시하여 지난 6년간의 변화를 보면, 수도권에 집중됐던 독립서점이 전국 곳곳으로 번져간 것을 알 수 있다. 그래픽 전예나

지난 6년간 변화를 기초자치단체 기준으로 보면, 2015년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1곳씩 있던 독립서점은 2021년 각각 39곳, 15곳으로 늘었다. 독립서점이 없었던 도시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2015년 독립서점이 한 곳도 없었던 전북 전주시에는 이제 10곳의 독립서점이 생겼다. 부산시 수영구와 경북 경주시의 독립서점도 0곳에서 9곳으로 늘었다. 대전시 유성구에선 0곳에서 8곳, 대구시 수성구에선 0곳에서 7곳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동안, 수도권의 독립서점도 증가했다. 서울의 경우, 마포구가 11곳에서 43곳, 종로구가 7곳에서 30곳으로 늘어 증가 폭이 컸다. 경기도 전체로 보면, 3곳에서 114곳으로 늘었고, 특히 수원시가 0곳에서 19곳, 용인시가 1곳에서 13곳으로 크게 늘었다.

2015년 이후 전국 모든 광역단체에서 독립서점이 크게 늘었다. 그래픽 전예나
2015년 이후 전국 모든 광역단체에서 독립서점이 크게 늘었다. 그래픽 전예나

독서인구 주는데 독립서점은 늘어나는 이유

독립서점의 급격한 증가는 다소 의외의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출판 시장이 전반적으로 하락세에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독서인구비율 조사’를 보면, 1년 동안 책을 한 권이라도 읽는 사람의 비율은 2013년 60%에서 2021년 45.6%까지 떨어졌다. 독서 인구 감소와 함께 전국에 있는 서점은 2003년 3589곳에서 2015년 2165곳으로 해마다 감소했다.

전국 곳곳의 서점이 폐업하는 추세가 변화한 것은 2015년 이후였다. 전국 서점 수는 2017년 2351곳으로 반등했고, 2021년엔 2528곳에 이르렀다. 갑자기 서점이 늘어난 배경에는 독립서점의 급증이 있다. 지난 6년 동안 독립서점은 49곳에서 594곳으로 늘어, 모두 545곳이 새로 생긴 셈인데, 같은 기간 전국 서점 수는 363곳이 더 늘었다. 독립서점의 증가가 전국 서점 증가를 이끈 것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독립서점이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2014년 도서정가제의 개정이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단비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도서정가제 개정 이전에는 50% 할인, 1+1 등의 방식으로 인터넷 서점이 할인 행사를 많이 하여, 오프라인 서점이 경쟁력을 갖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대량 유통량을 기반으로 책값을 후려치는 온라인 서점이 출판 시장을 잠식한 것이다. 그런데 2014년 11월 도서정가제 적용 대상이 모든 도서로 확대됐고, 가격 할인은 정가의 10% 이내로 제한됐다. 온라인 서점의 가격 경쟁력이 낮아진 것이다. 백원근 대표는 “그 이후부터 독립서점이 창업하고 생존하고 발전하는 바탕이 마련됐고, 실제로도 독립서점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독립서점이 늘어난 또 다른 배경에는 귀촌 문화와 지역 소멸의 이슈가 있다. 전국 서점 지도를 제작하면서 출판 트렌드를 분석하는 (주)동네서점 남창우 대표는 단비뉴스와 대면 인터뷰에서 귀촌하는 개인과 지역 커뮤니티가 만나는 접점에 독립서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남 대표는 “도시의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귀촌하여, 지역에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작은 서점을 운영하면서 실현하려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인구 감소와 함께 문화적 공간까지 감소하고 있는 소도시에선 독립서점이 지역 공동체에도 적잖이 기여한다. “서점을 유지할 정도의 소득만 올릴 수 있어도, 동네 사람들과 공간을 공유하고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면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도 지역사회를 위한 독립서점의 순기능을 높게 평가했다. 백 대표는 “전국 각지에 생겨난 독립서점 대부분이 지역 주민과 책을 연결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때문에, 그만큼 지역 문화 생태계의 다양성이 늘어나고, 지역민 간의 소통과 삶의 질 향상에 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에 위치한 서점 ‘소소당’의 서가에 책 모임을 홍보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심야책방 – 철학자와 철학하다’라고 적혀 있다. 전예나 기자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에 위치한 서점 ‘소소당’의 서가에 책 모임을 홍보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심야책방 – 철학자와 철학하다’라고 적혀 있다. 전예나 기자

늘어나는 독립서점, 줄어드는 서점 예산

정부도 이를 도왔다. 정부의 ‘지역서점 경쟁력 강화 사업’과 ‘문화 활동 지원 사업’은 독립서점이 문화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그 지원을 받아 전국 곳곳의 독립서점에서 작가 초청 북토크, 책 모임, 글쓰기 수업 등 많은 문화 활동이 진행됐다.

이처럼 지역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아가던 독립서점 업계에 문제가 생겼다. 지역 서점 활성화를 위한 예산이 삭감됐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8월 발표한 ‘2024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사업설명 자료’를 보면, 2023년 8억 3100만 원이었던 지역 서점 활성화 예산이 1억 6000만 원으로 대폭 삭감됐다. 그 예산조차 ‘지역서점 통합전산망 POS 지원’ 명목으로만 책정됐다. 이에 따라 ‘지역서점 문화 활동 지원’이나 ‘지역 서점 포럼 개최’ 등과 관련한 정부 지원은 사라지게 됐다.

지난 8월 31일 한국서점조합연합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지역 서점 활성화, 그리고 기타 지원을 합해 총 11억 원에 이르는 예산을 문체부가 삭감했다. 매년 전국 서점에서 진행됐던 750여 개의 문화 활동 사업을 내년부터 볼 수 없게 됐다”고 비판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를 반박했다. 문체부는 지난 9월 1일 보도자료를 내고 “내년도 지역 서점 지원을 개별 서점 지원에서 도서 유통 인프라 구축 사업으로 재구조화한 것이고, 지원 예산은 (삭감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15억여 원으로 증액됐다”고 반박했다. 책 주문·배달을 도와주는 앱을 개발하고, 유통 체계를 현대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을 지원하여 지역 서점의 운영 기반을 더 강화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서점을 운영하는 당사자들의 생각은 정부와 달랐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문화사업정책팀의 권미선 팀장은 “지역 서점 활성화를 위해 디지털 물류 지원 사업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동안 좋은 결과를 내면서 순조롭게 진행되던 문화 활동 지원 사업 예산을 삭감하고, 이를 다른 곳에 지원하겠다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친 정책 방향”이라고 말했다.

2023년 지역서점 문화활동 지원 사업인 ‘우리동네 문화서점’ 홍보 포스터.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홈페이지 갈무리
2023년 지역서점 문화활동 지원 사업인 ‘우리동네 문화서점’ 홍보 포스터.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홈페이지 갈무리

전주시의 독립서점 ‘책방 토닥토닥’은 지난 2년간 ‘심야책방’ 등 지역 서점의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에 참여했다. 그 과정과 결과를 잘 알고 있는 문주현 책방 토닥토닥 대표는 “지역 서점 지원 사업에서 받은 예산은 작가 초청, 공간대여 등 행사 운영비에만 쓰인다. 허투루 쓰이는 돈이 없다는 뜻이다. 그 돈으로 작가를 섭외하여 초청하고 작은 행사를 연다. 그런 지원이 사라지면 독립서점이 행사를 기획할 역량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전주시의 독립서점 ‘서점 카프카’의 강성훈 대표는 “지원 사업을 통해 행사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서점에 수익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서점의 존재를 지역민에게 알리는 자리를 만들 수 있고, 이를 통해 여러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할 수 있다. 그 예산이 사라지면, 지역 독립서점에 큰 걸림돌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에 위치한 '서점 카프카'의 서가. 서점과 카페를 결합한 북카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전예나 기자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에 위치한 '서점 카프카'의 서가. 서점과 카페를 결합한 북카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전예나 기자

문화공간으로서 독립서점의 가치 존중해야

권미선 한국서점조합연합회 문화사업정책팀장은 “정부의 지원 사업을 통해 스스로 문화 행사를 열기 어려운 작은 책방들이 도움을 받는다. 서점은 이를 통해 1원도 직접 수익을 얻지 못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설계돼 있다. 대신 그 혜택은 문화 프로그램을 접하기 어려운 지역 주민에게 모두 돌아간다. (이번 예산 삭감으로 인해) 지역 주민과 문화 활동의 접점이 사라지는 건 정말 아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현행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을 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서점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하고 이에 필요한 지원을 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정부의 문화산업 진흥 계획에서도 이 필요성을 인정한다. 지난해 8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2022~2026)’에는 주요 추진 과제 중 하나로 ‘지역서점 경쟁력 강화’가 포함됐으며, “지역 내 독서문화 활동의 중심지로 인식될 수 있도록 북콘서트, 독서동아리 모임, 지역 내 저자와의 만남 등 문화 활동 개최를 지원”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번 예산 삭감은 현행법의 취지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주시에서 독립서점을 운영해 온 홍승현 살림책방 대표는 “관련 예산이 줄어들면 독립서점에서 문화를 즐기던 지역민들이 당장 위축감을 느끼게 된다. 지역민과 연계하여 생존을 모색했던 크고 작은 오프라인 서점들도 점점 사라지게 된다. 정부가 문화 생태계 전체를 보고 오프라인 서점을 지키기 위한 보호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는 지난 9월부터 ‘문학나눔 사업 예산 축소’, ‘지역서점 활성화 지원 예산 삭감’,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예산 삭감’ 등 정부의 책·서점 관련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해시태그 공유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인스타그램과 X(구 트위터)에는 260여 개의 해시태그 공유 글이 올라와 있다. 지난 11일은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2016년 제정해 7번째를 맞은 ‘서점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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