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현장]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지역공모 부문 ‘메이드 인 제천’ 상영회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개막작부터 경쟁부문까지 각종 부문에서 다양한 작품들이 영화제를 빛냈다. 이처럼 화려하게 빛나는 영화들 사이에서도 작지만 조금 특별한 영화들이 반짝였다. 지난 14일과 15일 제천CGV에서 상영된 지역공모 부문 ‘메이드 인 제천’ 출품작들이다. 

‘메인드 인 제천’은 지난 2020년 제16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때 신설된 후 지난해 제17회 때 지역 영화 공모로 전환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메이드 인 제천’에 출품할 지역 영화 선정 기준은 두 가지다. 첫째는 충북 지역 출신의 제작자가 참여한 영화, 두 번째는 충북 지역이 배경이 된 영화이다. 두 조건 중 하나라도 충족하면 출품 자격을 얻게 된다. 꼭 제천시에서 만들어진 영화만 선정하는 것은 아니다.

15일 제천 CGV에서 ‘메이드 인 제천’ 부문에 출품된 영화 감독들이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조성우 기자
15일 제천 CGV에서 ‘메이드 인 제천’ 부문에 출품된 영화 감독들이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조성우 기자

이번에 ‘메이드 인 제천’ 부문에 출품된 작품은 장편 1편과 단편 3편으로 네 작품이 모두 독립영화들이었다. 단편인 <귀타>와 <나를 찾아서>는 제천시를 배경으로 제작됐다. 유일한 장편 영화인 <오늘의 장내>와 단편 <새는 날아간다>는 감독이 각각 청주대학교 졸업생과 재학생으로 충북 출신 영화인이 제작한 영화다. <오늘의 장내>는 영화의 배경도 제천이어서 지역 영화라는 정체성이 가장 뚜렷한 작품이다.

의림지·고속버스터미널…영화의 배경이 된 제천의 공간들

의림지를 배경으로 촬영된 단편 독립영화 '귀타'. 출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의림지를 배경으로 촬영된 단편 독립영화 '귀타'. 출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단편 독립영화 <귀타>는 우연히 기타를 주운 주인공이 원래 주인의 지인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단편영화다. 주인공 원유는 의림지에서 거리 공연을 하던 사람의 기타를 줍게 되고,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기타 주인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이야기가 흘러간다.

<귀타>의 특이한 점은 영화의 유일한 공간적 배경이 의림지라는 것이다. 주인공 원유가 기타를 주운 장소, 원래 주인의 주변 사람을 만나는 장소, 마지막으로 기타의 주인을 만나는 장소 모두 의림지다. <귀타>의 주인공이자 각본을 맡은 원유 감독은 15일 제천 CGV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영화 전체를 의림지에서 찍었다. 원래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꼭 참석해보고 싶었는데, 우연히 ‘메이드 인 제천’ 부문을 알게 됐다”며 “마침 음악영화를 준비하고 있어서 ‘메이드 인 제천’의 지원을 목표로 영화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나를 찾아서> 역시 의림지가 배경 중 하나지만, 더욱 넓고 다양한 공간이 등장한다. 영화는 저승사자와 망자가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제천에서 동행하는 설정으로 도입부터 제천고속버스터미널이 배경으로 나온다. 

첫 장면을 제천고속버스터미널에서 촬영한 '나를 찾아서'는 제천시 곳곳을 배경으로 했다. 출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첫 장면을 제천고속버스터미널에서 촬영한 '나를 찾아서'는 제천시 곳곳을 배경으로 했다. 출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연출을 맡은 황동욱 감독은 같은 날 관객과의 대화에서 자세한 조사를 바탕으로 장소를 선정한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촬영하면서 처음으로 제천에 오게 됐다”며 “이야기의 구성만 정해놨었기 때문에 장소는 지도를 펼쳐 정한 후 다음날 한곳씩 들렀다”고 설명했다. <나를 찾아서>는 제천고속버스터미널을 시작으로 저승에 같이 가야 하는 여자를 찾아서 의림지와 제천중앙시장, 중앙동 일대를 보여준다.

지역 영화인들의 창작 공간이 된 영화제

‘메이드 인 제천’은 지역 출신의 제작자들에게는 자신의 영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지역 영화의 대부분은 독립영화인데, 그 특성상 영화를 알릴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새는 날아간다>를 연출한 김효경 감독은 15일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제작에 참여한 건) 이번이 네 번째”지만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관객과 소통할 기회는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효경 감독은 충북에서 활동하는 영화인의 자격으로 ‘메이드 인 제천’ 부문에 도전했다. 조성우 기자
김효경 감독은 충북에서 활동하는 영화인의 자격으로 ‘메이드 인 제천’ 부문에 도전했다. 조성우 기자

<새는 날아간다>는 청주대학교 연극영화학부 4학년에 재학 중인 김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제작 기간은 지난해 6월부터 지난 1월까지로 청주시가 공간적 배경이다. 딸의 독립을 앞둔 엄마의 상황과 심정을 표현한 영화로, 김 감독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가 제작의 계기가 된 영화다. 

김 감독은 “저의 엄마로부터 영화가 시작됐다”며 “저도 졸업반이 되고 동생도 독립할 시기가 가까워지니 엄마가 많이 우울해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알던 엄마와 다른 모습이었다. 이제 또 다른 엄마의 인생이 있을 거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선물해주고 싶어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지역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은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중소도시가 배경이라는 설정이 있다”며 “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말 그대로 우리 근처에서 볼 수 있는 환경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청주가 거기에 잘 맞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의 영화 제작 현실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지역에서 영화를 찍을 때 한계를 많이 느낀다”며 “가장 기본적인 장비 대여부터 시작해 출연할 배우들도 모두 수도권에 몰려 있다”고 말했다. 또 “지역 영화만이 가지는 이야기와 문화가 있다”며 “지방 독립 영화관 등 지역 영화 산업이 활성화돼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지역들의 새로운 그림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유산을 두고 다투면서 여러 사건이 벌어지는 '오늘의 장내'. 출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유산을 두고 다투면서 여러 사건이 벌어지는 '오늘의 장내'. 출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유일한 장편 영화 <오늘의 장내> 

<오늘의 장내>는 ‘메이드 인 제천’ 부문에 출품된 유일한 장편 영화다. 이번 영화제뿐만 아니라 이 부문이 신설된 지난 2020년부터 따져봐도 처음이다. ‘메이드 인 제천’의 첫 장편 영화인 것이다.

첫 작품이라는 점은 연출과 각본을 맡은 이호현 감독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대학 졸업 후 영화의 길로 들어선 뒤 나이 마흔셋에 최초로 연출한 작품이 <오늘의 장내>다. 이 감독은 7년 전 조감독 시절 이미 시나리오를 완성했으며 영화는 지난해 9월 28일부터 30일까지 촬영했다. 사흘 만에 촬영을 마쳤던 건 배우들의 일정이 가장 큰 이유였다. 등장인물 모두가 장례식장이라는 한 공간에 나오기 때문에 동시에 일정을 맞춰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 감독은 15일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드라마 때문에 촬영 사흘 전까지도 출연이 불분명한 배우가 있었다”며 “그 배우가 ‘혹시 모르니 다른 배우를 알아봐라’고 했지만 그냥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오늘의 장내>는 주인공 상은이 할머니의 죽음으로 장례식장에서 친척들과 만나면서 겪는 일을 담은 영화다. 또 항암 치료 중인 상은은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친구 은규가 자신처럼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고 죽음에 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가족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인 영화다.

이호현 감독은 '오늘의 장내'를 단순한 가족 드라마가 아닌 블랙 코미디라고 표현했다. 조성우 기자
이호현 감독은 '오늘의 장내'를 단순한 가족 드라마가 아닌 블랙 코미디라고 표현했다. 조성우 기자

이 감독은 하루 만에 시나리오를 썼다고 밝혔다. 그는 “주인공 상은 역을 맡은 박지홍 배우와 ‘더 파이브’라는 영화를 통해 인연이 있었다”며 “그러던 중 그가 내게 사진을 하나 보여줬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신 화장터에서 40명이 넘는 식구들이 웃으면서 단체촬영한 사진이었다”고 말했다. 사진 한 장에 깊은 인상을 받고 영화로 만들 생각을 한 것이다. 실제로 영화 후반부에는 할머니의 장례식장에 모인 등장인물 모두가 모여 사진을 찍는 장면이 있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모두 제천이지만, 이 감독은 촬영 전까지만 해도 제천을 촬영지로 염두에 두진 않았다. 촬영 당시 코로나 사태 때문에 영화의 무대인 장례식장과 병원의 섭외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때 은규 삼촌 역으로 출연한 남대혁 배우가 제천을 촬영지로 추천했다. 남 배우는 제천시민이다. 이 감독은 “소개받은 세종장례식장과 병원이 (상상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 속의 장소는 기본적으로 연출자가 생각하고 쓰기 때문에 시나리오에 부합하는 지역이라면 사실 어디든 상관없다”고 덧붙였다. 이 감독이 구상한 시나리오 속 지역에 제천이 부합했던 것이다. 그는 “작은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과 대도시를 떠나서 오는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규모의 도시를 생각했는데, 제천이 잘 맞았다”고 말했다.

‘메이드 인 제천’의 정체성은 지역성이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어떤 부문도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국제’영화제에서 지역 영화가 주는 다양성의 힘을 고려하면 그 가치는 더욱 커진다. 이번 영화제에서도 크고 화려한 영화들 속에서 지역의 정서와 문화가 녹아든 영화의 차별성이 드러났다. 앞으로도 ‘메이드 인 제천’을 통해 다양한 지역 영화가 꾸준히 배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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