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집 재밌는 곳] 제천 주말 카페 ‘파릴리’

충북 제천시 용두천로 81-2번지. 축복 미용실과 덕원상회를 거쳐 중앙 방앗간을 지나면 발걸음을 조금 늦춰야 한다. 10평도 채 안 되는 카페는 자칫하면 지나칠 만큼 아담하다. 다양한 가게들 틈바구니에 카페 파릴리가 있다. 파릴리가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면 번지수를 말해보자. 812, 팔일이, 파릴리. 혀끝에서 주소를 굴려보면 답이 나온다.

파릴리 전경. 작년까지 파릴리를 운영하던 전 사장이 남기고 간 커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 정호원
파릴리 전경. 작년까지 파릴리를 운영하던 전 사장이 남기고 간 커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 정호원

지난 달 27일 <단비뉴스>가 파릴리를 찾았다. 파릴리는 일주일에 토요일, 일요일 단 이틀만 연다. 네 명의 사장이 하루씩 도맡아 운영한다. 파릴리의 단골손님이었던 누나 석효림(34) 씨와 남동생 석정환(26) 씨, 효림 씨의 친구인 박순자(32) 씨와 세복(28) 씨가 올해 2월 다시 문을 연 파릴리 카페의 새로운 사장들이다. 순자 씨와 세복 씨는 직업상의 이유로 카페에서 쓰는 이름이다. 이전 사장이 2019년 12월에 파릴리의 카페 사업을 접으면서 화실과 전시 장소로 공간을 이용하다가, 지난해 서울로 올라가게 되면서 새로운 사장들에게 공간을 넘겼다. 이들이 다시 카페 파릴리를 부활시켰는데, 이전의 파릴리와 구분하기 위해 ‘파릴리 시즌 2’라고 부른다.

네 명의 사장이 주말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운영하는 만큼 카페 분위기는 날마다 새롭다. 카페에 나오는 음악 장르는 그날 사장이 누군지에 따라 달라진다. 탐 미쉬(Tom misch)나 낫띵 벗 띠브스(Nothing But Thieves)같은 해외 밴드 혹은 맥거핀 같은 국내 인디밴드 노래가 나오는 날이 있다. 가끔 폴킴 같은 대중 가수의 노래가 나오기도 한다. 어느 날은 박재범의 노래처럼 리듬감이 강한 노래를 듣게 될 수도 있다. 파릴리에는 4인분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 있다.

파릴리 재개장 기념 사진. 맨 왼쪽부터 석효림 씨, 석정환 씨, 세복 씨, 박순자 씨다. ⓒ 석효림
파릴리 재개장 기념 사진. 맨 왼쪽부터 석효림 씨, 석정환 씨, 세복 씨, 박순자 씨다. ⓒ 석효림

인도에서 제천으로

정환 씨를 제외한 사장 세 명의 인연은 인도에서부터 시작됐다. 2014년 효림 씨는 인도의 한 건축회사에서 반년 동안 일하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2년 후 그는 친구 A와 인도여행을 떠났다. 같은 시기 세복 씨와 순자 씨는 인도 여행자들의 인터넷 카페 ‘인도여행을 그리며’에서 동행자를 구하다가 만났다. 효림 씨와 친구 A는 델리 공항과 기차역에서 세복 씨와 순자 씨를 연속으로 우연히 마주쳤다. 타지에서 만난 한국인이라 반가웠던 마음에 남은 인도 여행을 함께 다녔다.

해외여행에서 만난 인연은 대부분 짧게 끝나기 마련이지만, 이들의 만남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이어졌다. 효림 씨의 동네 단골 사랑방이었던 파릴리에서 지난해 그림 전시회가 열려 세복 씨와 순자 씨가 서울에서 구경을 왔다. 파릴리라는 공간에 매료된 그들은 곧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된 파릴리 전 사장에게 공간을 넘겨받아 다시 카페를 운영하기로 했다. 인테리어는 기존의 것을 90% 가량 유지하고, 메뉴만 새로 개발했다. 네 명이 각자 자신 있는 하나의 음료를 담당했다. 효림 씨는 인도 밀크티 ‘마살라 짜이’를, 세복 씨는 과일과 향신료를 넣은 따듯한 와인 ‘뱅쇼’를 내보였다. 정환 씨는 과거 카페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드립커피를, 순자 씨는 핫초코를 선정했다.

파릴리 대표 메뉴 ‘마살라 짜이’. 일반 밀크티 맛에 계피향과 향신료 향이 더해졌다. ⓒ 정호원
파릴리 대표 메뉴 ‘마살라 짜이’. 일반 밀크티 맛에 계피향과 향신료 향이 더해졌다. ⓒ 정호원

이 가운데 대표 메뉴 ‘마살라 짜이’는 인도에서의 만남을 기리기 위해 선택했다. ‘짜이’는 인도의 국민차다. 효림 씨는 ‘짜이’를 먹던 아침의 분위기를 잊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새벽 하늘과 길거리 먼지, 출근길에 줄 서서 먹고 가는 바쁜 통근자들의 아침 풍경이 ‘짜이’의 맛을 더했다. 파릴리에서는 정향과 계피, 카다멈, 생강을 직접 빻아 아쌈홍차잎과 함께 한 달간 꿀에 절인다. 그것을 우유와 함께 끓여 손님에게 내놓는다. 이는 효림 씨가 인도 여행을 하던 2016년, 바라나시 공항에서 만나 사귀었던 인도인 남자친구에게 배워 온 레시피다. 인도인에게 배운 레시피라 현지의 맛이 살아있어 호불호가 갈린다. 효림 씨는 손님들의 ‘짜이’에 대한 반응 자체도 재밌다고 말한다.

카페 내부. 혼자서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도록 1인석을 마련했다. ⓒ 정호원
카페 내부. 혼자서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도록 1인석을 마련했다. ⓒ 정호원

수익과는 먼, 재미와는 가까운

카페 파릴리는 토요일, 일요일에만 연다. 네 명의 사장 모두 다른 직업이 있기 때문이다. 효림 씨와 정환 씨는 제천에서 중·고등학생 입시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호주에서 어학원을 다녔던 효림 씨는 영어를 맡고, 대학에서 철학과 물리학을 전공하고 휴학 중인 정환 씨는 국어를 맡아 학생들을 가르친다. 서울에 거주하는 순자 씨와 세복 씨는 직장도 서울이기 때문에 주말에만 카페를 위해 제천으로 내려온다. 카페 정리 후 막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경우도 많다.

의자 네 개가 있는 니은(ㄴ)자 모양 바(bar) 테이블을 제외하면, 세 개의 단독 테이블이 있다. 테이블이 다 채워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루에 평균적으로 손님 네댓 팀이 온다. 카페 문 열어두는 시간 중 절반은 손님이 없는 셈이다. 그러나 손님이 없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다. 네 명의 사장에게 카페 운영은 수익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재미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는 커튼, 오방난로 위 주전자 안에는 ‘짜이’나 ‘뱅쇼’가 끓고 있다. ⓒ 파릴리 인스타그램 갈무리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는 커튼, 오방난로 위 주전자 안에는 ‘짜이’나 ‘뱅쇼’가 끓고 있다. ⓒ 파릴리 인스타그램 갈무리

효림 씨는 파릴리를 운영할 때 “평일의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는 카페를 방문하는 손님들에게도 같은 감정을 전달하고 싶다며 “시내 한복판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몽환적인 느낌을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말한다. 효림 씨와 정환 씨는 카페 출입문에 커튼을 항상 쳐 놓는 것으로 실외와 실내를 구분한다. 실내 조명도 조만간 더 어둡게 만들 계획이다. 카페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오방난로 위에는 항상 ‘짜이’나 ‘뱅쇼’를 끓이는 주전자가 놓여 있다. 들어서자마자 향이 진하게 난다. 오감을 자극해 외부와 완전히 다른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려는 파릴리만의 전략이다.

함께 하는 지역 카페의 맛

“문화생활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전시회나 공연은 동시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잖아요. 제천에는 그런 게 없어요. 내 또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직접 듣고 교류할 수 있는 장소조차 없는 게 항상 아쉬웠어요.”

제천 출신인 효림 씨와 정환 씨가 제천에 사는 젊은이로서 가장 열망하는 부분은 ‘함께 하는 공간’이다. 제천에 있는 청년들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에서다. 대학 때문에 서울에 있다가 제천으로 돌아왔을 때 문화적 소외감을 더 크게 느꼈다. 정환 씨는 공연이나 전시를 보기 위해 계속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지적했다. 효림 씨는 서로의 생각을 교류할 수 있는 장이 없음을 토로했다.

이러한 갈증을 느껴온 만큼 파릴리는 지역 사람들 사이의 새로운 문화의 공간을 자처한다. 지난 2월 개장한 이후로 백일장이나 엽서 쓰기 이벤트, 필사 등 지역민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열어왔다. 지난 2월 열린 백일장에서는 스무 작품 가량이 나왔다. 찰흙을 가져와 만드는 사람도 있었고, 2행시를 지은 사람도 있었다. 효림 씨는 “마음속에 다들 창작 욕구가 있구나 싶었다”며 생각보다 높은 참여율에 놀랐다고 전했다. 

백일장 출품작. 모든 작품이 상을 받은 가운데, 이 작품은 꾸러기 상 수상작이다. ⓒ 파릴리 인스타그램 갈무리
백일장 출품작. 모든 작품이 상을 받은 가운데, 이 작품은 꾸러기 상 수상작이다. ⓒ 파릴리 인스타그램 갈무리

사장이 네 명인 만큼 현재 구상 중인 이벤트도 다양하다. 정환 씨는 라이브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행사를 구상 중이다. 시멘트 벽이 울림이 좋은 덕에 작은 스피커 하나로도 공간이 가득 메워지기 때문이다. 정환 씨는 종종 유튜브에 본인이 작사, 작곡해 직접 부른 음악을 올린다. 서울에서 함께 음악을 좋아했던 친구들을 초대해 라이브로 공연을 하는 이벤트를 생각하고 있다. 

‘헌책 교환 모임’도 구상 중인 이벤트 가운데 하나다. 각자 더 이상 읽지 않는 책을 가져와 교환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식이다. 독서 모임과 여러 클래스를 비롯해 젊은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과 문화를 만드는 것이 파릴리의 큰 목표다. 그렇게 자리를 잡은 후에는 나이를 뛰어넘어 지역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밝혔다.


편집: 박시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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