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음악영화인의 필수 코스가 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올해로 18회를 맞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JIMFF2022)는 아시아 유일의 음악영화제인 동시에 세계 최대 영화음악 축제로 성장했다. <단비뉴스>는 이번 영화제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스페셜 콘서트, 필름 콘서트를 비롯한 다양한 야외 행사와 한국경쟁 부문에 오른 작품을 살펴보았다.

‘라라랜드’의 저스틴 허위츠 음악감독이 들려준 음악 이야기

13일 저스틴 허위츠 스페셜 콘서트를 관람하기 위해 미리 줄을 선 관객들. 정호원 PD
13일 저스틴 허위츠 스페셜 콘서트를 관람하기 위해 미리 줄을 선 관객들. 정호원 PD

지난 13일 저녁 8시 저스틴 허위츠의 스페셜 콘서트를 앞두고 제천비행장에 마련된 무대 주변은 공연 시작 두 시간 전부터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로 붐볐다. 각종 행사 부스와 기념품샵, 푸드트럭이 늘어서 축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길게 늘어선 입장 대기 줄 옆에서는 영화제 자원활동가들이 영화제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스티커를 붙여 답변하면 ‘청풍영화감상동호회’에서 운영하는 부스에서는 삶은 옥수수를 나누어주었다. 네 명의 친구들과 함께 서울에서 온 백지연(29) 씨는 “이전에도 제천영화제에 온 적이 있었는데 마침 이번에 <라라랜드>와 <위플래쉬>의 음악 감독인 저스틴 허위츠가 콘서트를 연다고 해서 오게 되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또 “이전에는 청풍호에서 공연했는데 이번에는 비행장에서 공연을 한 점이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온 이재원(41) 씨는 “필름 콘서트같이 평상시에 보기 어려운 공연을 한다고 해 기대가 된다”라면서 “제천에 왔으니 주변 관광도 하고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저스틴 허위츠 감독이 연주를 선보이기 전 곡에 얽힌 이야기와 작곡을 하며 고려한 점을 청중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정호원 PD
저스틴 허위츠 감독이 연주를 선보이기 전 곡에 얽힌 이야기와 작곡을 하며 고려한 점을 청중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정호원 PD

올해 제천영화음악상을 수상한 저스틴 허위츠는 2017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라라랜드>로 주제가상⋅음악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세계적인 음악감독 반열에 올랐다. 이번 공연에서는 과거 자신이 참여했던 작품들인 <가인 앤 매들린 온 어 파크 벤치> <위플래쉬> <라라랜드> <퍼스트맨>의 영화음악을 가지고 세계 최초로 스페셜 콘서트를 선보였다. 서울시 지정 전문예술단체인 서울그랜드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재즈빅밴드가 라이브 연주를 맡았다.

공연은 저스틴 허위츠 감독이 먼저 곡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이어 연주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허위츠 감독은 <위플래쉬>(2014) <라라랜드>(2016) <퍼스트맨>(2018)의 데이미언 셔젤 감독을 하버드 대학 시절 기숙사 룸메이트로 만나 함께 영화 작업을 이어 나갔다. 이들의 오랜 인연은 인장처럼 영화 음악에 새겨져 있었다. 가령 <라라랜드> 마지막에 주인공이 방문한 재즈바에서 흘러나온 ‘신시내티’(Cincinnati)는 사실 첫 작품인 <가인 앤 매들린 온 어 파크 벤치>를 비롯해 <위플래쉬>, 그리고 올 크리스마스쯤에 상영할 <바빌론>에도 삽입되어 있다. 함께 작업한 작품에 마치 인장을 찍듯이 같은 곡을 변형해 계속해서 사용한 것이다.

또 <퍼스트맨>에 나온 ‘암스트롱’이라는 곡은 영화에서는 하프 연주로 들어갔지만 원래 피아노와 하프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다는 사연도 소개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피아노 연주를 선보이겠다며 피아노를 직접 연주했다. 아름다운 연주를 마친 이후에는 “14살 이후로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게 너무 오랜만인 것 같다”며 “곡을 연주하는 것 보다 쓰는 데 소질이 있는 것 같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2부에서는 <라라랜드> 영화 순서에 따라 공연이 이어졌다. 뮤지컬 배우 전나영, 이수정, 연지 리, 문은수가 라라랜드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빨강, 노랑, 초록, 파랑 원피스를 입고 ‘섬원 인 더 크라우드’를 불렀다. 공연을 마친 뒤 떠나지 못하는 관객들을 위해 허위츠 감독은 앙코르곡으로 ‘시티 오브 스타스’ 편곡 버전을 선보였다.

굵은 빗줄기 속 안타깝게 막을 내린 ‘E.T. 필름 콘서트’

14일 열린 필름 콘서트는 기상악화로 40분간 지연되었다. 어렵게 개막했지만,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결국 취소됐다. 정호원 PD
14일 열린 필름 콘서트는 기상악화로 40분간 지연되었다. 어렵게 개막했지만,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결국 취소됐다. 정호원 PD

14일 저녁 8시에도 비행장에서는 필름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기상악화로 결국 취소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E.T. 필름 콘서트’에서는 영화 <E.T.>의 40주년을 기념해 지휘자 제시카 게틴과 세계투어팀이 첫 내한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었다. 1982년 작인 <E.T.>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자 존 윌리엄스의 가장 유명한 영화 중 하나로, 엘리엇이라는 이름의 10살 소년과 친구가 된 외계인의 이야기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필름 콘서트는 영화 상영에 맞춰 오케스트라가 현장에서 연주하는 방식이었다. 전체 영화제에서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된 행사로 관람객의 기대도 컸다. 하지만 공연 시작 직전에 폭우가 쏟아지며 약 40분간 지연되었다. 공연장 내에서는 시야 확보를 위해 우산을 쓸 수 없어 관람객은 주최 측에서 나누어준 우비를 입고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거센 빗방울이 이어지자 곳곳에서 발걸음을 되돌리는 관객들이 늘었다. 비가 잦아든 8시 40분쯤 행사가 시작되었으나 이후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결국 이날 ‘E.T. 필름 콘서트’는 아쉬움 속에 취소되었다.

한국경쟁 부문엔 어떤 영화들이 올랐나?

공식 경쟁 부문 가운데 한국 영화를 대상으로 한 한국경쟁 부문에는 4편의 장편과 13편의 단편영화가 초대되었다. 그중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디바 야누스>와 단편 <언니를 기억해>는 제천 음악영화 프로젝트 지원작으로, 음악영화의 발굴과 배급, 음악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인에 대한 지원과 홍보라는 영화제의 취지를 담고 있다.

고 박성연(1943. 2. 20.~2020. 8. 23.). 조은성 감독의 ‘디바 야누스’는 한국 1세대 재즈뮤지션인 고 박성연의 발자취를 좇는 다큐멘터리이다. 한국 재즈의 역사 그 자체였던 박성연이 걸어온 길을 담았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공
고 박성연(1943. 2. 20.~2020. 8. 23.). 조은성 감독의 ‘디바 야누스’는 한국 1세대 재즈뮤지션인 고 박성연의 발자취를 좇는 다큐멘터리이다. 한국 재즈의 역사 그 자체였던 박성연이 걸어온 길을 담았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공

한국 재즈의 역사가 걸어온 길 <디바 야누스>

1954년 미군이 주둔하면서 영어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을 뽑았다. 박성연 씨는 미군 8군에 들어가서 처음 재즈를 접하게 된다. 미국 모던재즈 색소폰 연주자인 존 콜트레인의 곡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재즈를 향한 마음이 열렸다. 부대 밖에서도 여러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재즈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걸핏하면 다음날부터 나오지 말라는 말이 큰 스트레스였다. 내 마음대로 원 없이 노래 부르는 공간을 만들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1978년 신촌역 앞에 ‘클럽 야누스’를 열었다.

클럽 야누스는 한국 재즈 뮤지션들이 연주할 수 있던 최초의 공간이었다. 재즈 뮤지션들은 야누스를 마음의 고향이라 느꼈다. 한 달에 한 번씩 정기 공연이 열렸다. 박성연 씨는 11월 23일을 야누스의 생일로 삼아 챙겼다. 이른바 ‘야누스 데이’다.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몇십 명의 연주자들을 클럽에 초대했다. 그날은 연주자들이 무작위로 5~6인씩 섞여서 팀을 만들고 합주했다. 재즈 1세대와 3세대가 마구 섞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이날은 신인들의 등용문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야누스에서는 재즈 생태계가 연결되고 성장했다.

박 씨는 음반 ‘물안개’에서 한국어로 된 재즈 음악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 이후로도 재즈보컬리스트 말로가 한국어 재즈를 선보였다. 만약 야누스가 없었다면 재즈는 그냥 외국에서 건너온 직수입 음악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뮤지션 후배들은 전한다. 무엇보다도 박 씨는 한국에서도 재즈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비즈니스에 영 감각이 없던 탓에 클럽은 늘 재정난에 시달렸다. 다른 클럽들처럼 타협하지 않고 재즈만 고집했다. 재즈를 사랑한 후견인이 월세를 내줘서 간신히 클럽을 이어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부전증으로 매일같이 투석하며 투병 생활을 했다. 길어진 병원 생활에 요양병원 비용이 부족해 집을 정리해야만 했다.

하지만 끝까지 야누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야누스는 한국 재즈 보급의 중심지였다. 많은 한국 뮤지션들은 이곳에 와서 미국으로 유학을 갈지 한국에서 음악 활동을 이어 나갈지 결정했다. 음악 인생의 기준점을 만들어주고 출발하게 만들어준 곳이었다. 현재 클럽 야누스는 박성연 씨의 정신을 기려, 뜻을 합친 재즈 뮤지션들이 함께 운영해나가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박성연을 비롯해 한국 재즈 뮤지션들의 음악이 주를 이루어 전개되었다. 한국 재즈 역사를 돌아보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재즈의 선율을 감상했다. 엔딩크레딧과 함께 2019년 삼성 광고 촬영 현장에서 박효신과 박성연이 함께 ‘바람이 부네요’를 듀엣으로 선보인 공연은 세대를 아울러 음악 생태계를 만들고자 했던 박성연의 재즈 정신을 보여주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죽음이 있어 <언니를 기억해>

1980년도 주한미군 동두천 기지촌 내 집창촌을 배경으로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한 창작 작품 ‘언니를 기억해’의 한 장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공
1980년도 주한미군 동두천 기지촌 내 집창촌을 배경으로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한 창작 작품 ‘언니를 기억해’의 한 장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공

1960년~2010년 사이 기지촌 내에서 사망사건이 이어졌다. 2014년 조선일보에는 ‘공소시효 만료로 미제사건이 된 동두천 윤락녀 살인사건’ 소식이 실렸다. 1999년 1월 경기도 동두천시의 한 주택에서 당시 45살이던 여성이 살해됐다. 사건 당일 미군들이 집을 드나든 정황은 확인됐다. 하지만 DNA 검사는 용의자들이 동의하지 않아 진행되지 못했다. 압수수색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그러는 도중 몇몇 용의자들이 미국으로 출국해버렸고, 사건은 공소시효 만료로 영구미제가 됐다.

뮤지컬 영화 <언니를 기억해>는 이런 동두천 기지촌 내 집창촌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12살 동생 연홍의 시선과 21살 언니 연옥의 발버둥이 교차한다. 동생 연홍은 따뜻한 보금자리와 먹을 것을 주는 집창촌 ‘재스민’을 완벽한 공간이라 생각한다. 언니 연옥은 그런 동생과 생존하기 위해 집창촌을 떠나지 못한다. ‘재스민’의 양공주들이 계속해서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던 중 언니 연옥은 미군에게 살해당하고 뒷산에 묻힌다. 동생 연홍은 기지촌 양공주들과 함께 기지촌 앞에서 시위하며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언니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노래한다.

마지막에 죽은 언니들을 기억하며 울려 퍼지는 ‘공주들이 죽는 밤’은 그동안 사라진 언니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녀-창녀’ 프레임 속에서 무차별적인 위험에 노출된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101개 나라에서 1525편 신작 음악영화 출품돼

이번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역대 최다인 101개국에서 1525편의 신작 음악영화를 출품했다. 그중 39개국 139편의 음악영화를 상영했다. 올해는 ‘짐프(JIMFF) OST 마켓’을 신설하여 재능있는 신인 영화음악가를 발굴하여 영상 산업 진출을 도왔다. 또 제천영화음악아카데미를 여름 캠프 형식으로 동시에 운영하면서 상설 영화음악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국내 영화음악가들과 해외 영화 음악가들이 상호 교류하는 네트워크의 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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