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집 재밌는 곳] 제천시 백운면 '흰구름 목공카페'

카페, 도서관, 목공방.

카페와 도서관은 몰라도, 목공방은 어딘지 따로 노는 느낌이 들어 낯설다. 목공이라는 말이 친숙하지 않아서는 아니다. 나무로 된 가구는 주변에 흔하다. 그런데 카페 문을 열었을 때, 커피 향 대신 나무 향이 나면 어색하다. 천연 페인트만 발린 나무 테이블과 그마저도 칠하지 않은 책장이 내는 익숙하지 않은 향을 맡고 있자면, 이곳이 카페인지 숲속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충북 제천시 백운면에 자리 잡은 '흰구름 목공카페'는 그런 곳이다.

흰구름 목공카페 내부. 사진에 보이는 나무로 된 물건은 모두 사장인 동석표 씨가 직접 만든 물건들이다. 김창용 기자
흰구름 목공카페 내부. 사진에 보이는 나무로 된 물건은 모두 사장인 동석표 씨가 직접 만든 물건들이다. 김창용 기자

노는 공간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흰구름 목공카페’가 자리 잡은 터는 새마을문고 제천시지부가 설치한 '새마을작은도서관'이 있던 자리였다. 박달재전통시장 고객지원센터와 카페를 겸해 차려진 도서관은 일종의 공공도서관으로 개관 초기 주민들이 종종 이용하긴 했지만, 금방 이용객이 줄며 유명무실해졌다.

면 소재지 초입에 자리 잡은 이 공간이 놀고 있는 게 아쉬웠던 동석표 씨(53, 세례명 디모테오)는 상인회에 '고객지원센터와 카페, 도서관은 살려놓고 나머지는 개인 공방으로 쓰겠다'고 했다. 상인회는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그렇게 카페, 도서관, 목공방이 합쳐진 '흰구름 목공카페'가 탄생했다. 목공방 이름은 자신의 영어식 세례명을 따 ‘티모시’로 지었다.

동 씨 세례명의 모티브가 된 가톨릭 성인 디모테오의 이름은 주로 양치기를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디모테오가 살던 지역에서는 ‘목수’를 뜻했다고 한다. 동 씨는 “대부분은 본인이 좋아하는 성인으로 세례명을 짓는데, 저는 유아 세례를 받아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티모시가 됐다”며 “나중에 한 신부님으로부터 디모테오라는 이름이 목수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 소름이 돋았다”며 웃었다.

카운터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동 씨. 하루 매출 목표액이 5만 원이라는 그는 손님 5명의 주문을 받은 뒤 “아침 10시밖에 안 됐는데 벌써 목표를 반이나 채웠다”며 웃었다. 김창용 기자
카운터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동 씨. 하루 매출 목표액이 5만 원이라는 그는 손님 5명의 주문을 받은 뒤 “아침 10시밖에 안 됐는데 벌써 목표를 반이나 채웠다”며 웃었다. 김창용 기자

긍정적인 경험을 나누는 목공 수업

지금은 전문 목수지만, 그는 아동 행동·심리치료를 전공한 전문 심리치료사였다. 90년대 초에 대학을 졸업한 그는 전공을 살려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10여 년간 어린이들을 돌봤다. 그곳에서는 도구를 활용해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치료하는 일을 했다.

목공은 그 과정에서 처음 접했다. 고작 홈이 두 개 난 합판에 바퀴 네 개만 달아둔 어린이용 보드가 15만 원이라는 얘기를 듣고, 철물점에서 재료를 사 그냥 만들어 보기로 했다. 다 만들고 보니 꽤 그럴듯했다. 만드는 과정에서 재미도 느꼈다. 목공에 관심이 생긴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취미 삼아 공방에 나가 목공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스쿠터 보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동 씨. 동 씨는 “목수가 되는 데 이 보드가 큰 영향을 미쳤다”며 웃었다. 김창용 기자
‘스쿠터 보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동 씨. 동 씨는 “목수가 되는 데 이 보드가 큰 영향을 미쳤다”며 웃었다. 김창용 기자

목공을 배우면서 그는 자기만족, 자기 효능감을 느꼈다. 긍정적인 경험을 아픈 아이들에게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복지관을 그만두고 ‘놀이심리연구소’라는 개인 심리치료실을 열었다. 전문가의 도움을 조금 받긴 했지만, 인테리어도 직접 하고 놀이방을 꾸미거나 놀이 도구를 만드는 일은 스스로 했다.

회사를 나와 개인 치료실을 운영하며 자유시간이 많아졌다. 그는 목공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심리치료실에 찾아오는 아이들은 주로 집중력 부족이나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겪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상당한 집중을 요하는 목공이 그 아이들의 부산함을 줄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원예 치료나 음악 치료처럼 ‘목공 치료’도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목공 치료’라는 개념이 구체적으로 정립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가르친 아이들은 대부분 수업에 관한 만족도도 높았고 실제로 증상이 개선된 경우도 많았다. 그는 이 경험을 살려 약 6년 전부터 여러 학교에 나가 직업 체험이나 특기 수업에 참여하며 아이들에게 목공을 가르치고 있다. 동 씨는 “선생님들이 직업 체험 가운데 이런 것도 있다는 걸 보고 아이들을 데리고 공방에 배우러 오곤 한다”고 덧붙였다.

목공 수업 수강생들이 수업을 듣는 공간이자 동 씨가 작은 가구를 만드는 공간. 동 씨는 “카페에서 일하다가도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면서 (작은 가구들을)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김창용 기자
목공 수업 수강생들이 수업을 듣는 공간이자 동 씨가 작은 가구를 만드는 공간. 동 씨는 “카페에서 일하다가도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면서 (작은 가구들을)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김창용 기자

그가 목공을 가르치는 대상은 아이들만은 아니다. 시에서 지원하는 ‘주민자치프로그램’에도 참여해 백운면 주민들에게도 재료비만 받고 목공을 가르치고 있다. 수강신청은 연초, 또는 연말에 한 번씩 받는다. 백운면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우선이고, 나머지 수강생은 추첨을 통해 선발된다. 수강생들은 나무를 직접 선택할 수 있지만, 재료에 따라 비용은 달라진다. 동 씨는 “전체 회원은 26명이고, 주 2회 진행되는 수업에 매일 참여하는 회원이 7~8명 정도”라며 “주 1회 참석하는 회원도 15명에서 16명 정도”라고 했다. 이들은 공구함부터 스툴(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작은 의자), 곁상(협탁) 등 다양한 목공 제품을 만드는 법을 배운다.

수강생이 만든 공구함. 동 씨는 “이건 조금만 배우면 금방 만들 수 있다”며 “커피 캐리어로 사용하는 분들도 있고, 책상 위에 두고 수납장으로 쓰는 등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어 (수강생이) 처음 오시면 많이 가르쳐 드리곤 한다”고 했다. 김창용 기자
수강생이 만든 공구함. 동 씨는 “이건 조금만 배우면 금방 만들 수 있다”며 “커피 캐리어로 사용하는 분들도 있고, 책상 위에 두고 수납장으로 쓰는 등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어 (수강생이) 처음 오시면 많이 가르쳐 드리곤 한다”고 했다. 김창용 기자

도움받은 만큼 돕고 싶은 마음

커피도 팔고 수업도 나가지만, 둘 다 동 씨의 주 수입원은 아니다. 동 씨의 수입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가구다. 주문이 많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지만, 다행히 많은 사람이 동 씨의 가구를 좋아해 일이 꾸준히 들어온다고 했다. 동 씨는 “지금도 평상 6개를 만들고 있다”며 “이거 만드는 데 시간이 좀 걸려서 다른 분들 주문이 밀려 있다. 빨리 만들고 다른 것도 만들어드려야 한다”고 했다.

동 씨가 만든 소도구들. 카페 내부에 진열되어 있다. 김창용 기자
동 씨가 만든 소도구들. 카페 내부에 진열되어 있다. 김창용 기자

이어 “지금 아들이 이쪽(목수) 일을 하도록 살살 꼬드기는 중”이라며 웃었다. 그의 아들은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동 씨는 본인이 의자나 책상, 침대 등 생활 가구를 전문으로 만드는 만큼, 아들이 고급 가구를 만들며 작가로 활동하길 원한다고 했다. 동 씨는 또 “아들도 모태신앙인 만큼, 함께 성당에 필요한 가구를 만드는 등 종교적으로 함께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주변 주민들한테도 도움을 많이 받은 만큼, 열심히 가르쳐 드리고 도울 수 있는 일들은 도우며 살고 싶다”고 했다.

동 씨는 이 공간을 통해 좋은 커피를 나누고, 목공을 배우며 자신이 느낀 긍정적 경험을 공유하길 바란다. 또 도움을 주는 주변인들에게 카페가 언제나 찾아올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길 원한다. 나무가 살아 숨 쉬는 곳, 커피 향과 나무 향이 뒤섞이며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오가는 곳, 백운면의 흰구름 목공카페는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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