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만리동과 회현동을 잇는 서울역 고가도로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표정 없는 도로는 잿빛이었고, 그 위를 바삐 오가는 차량에는 열흘 전 기억이 실려 있지 않았다. 지난 10일 오후 3시, 8m 높이의 고가도로 아래를 오가는 시민들은 두툼한 외투를 단단히 여미고 있었다. 영하 9도의 추운 날씨였다.지난해 12월31일 오후 5시27분, 고 이남종씨는 전라도 광주에서 몰고 온 은색 스타렉스 렌터카를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 세웠다. 1시 방향에 서울역이, 바로 밑 10차선 도로와 버스전용차로, 택시 승강장 등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먹으면서 얘기해도 되죠? 이게 오늘 첫 끼라..."지난달 17일 오후 6시, 서울의 한 사립대학 캠퍼스에서 만난 박영진(21‧가명)씨는 한 도시락체인점의 로고가 새겨진 봉투와 콜라를 들고 있었다. 종일 굶고 일하다 저녁 무렵에 첫 식사를 할 참이란다. 이 대학에서 정보통신학을 전공하는 그는 수업 7개를 들으며 아르바이트 2개를 병행하는 ‘투잡(two job) 대학생’이다. 평일 공강 시간, 즉 수업과 수업 사이에 남는 시간 대부분을 국가근로장학생으로 일하는 데 쓰기 때문에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잦다고 한다. “밥 먹을 시간도 못 챙
'언론사가 당장 일을 맡길 수 있는 인재를 키웁니다.' 올해 개원 6년째인 충북 제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은 언론인으로서 갖춰야 할 교양과 실무를 중심으로 교육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정규 저널리즘스쿨이다.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해도 사설 아카데미나 현직 기자가 진행하는 글쓰기교실을 수강하는 등 별도로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것은 우리나라 특유의 현상이다. 시간과 비용의 중복을 피하면서도, 균형 잡힌 시각과 실무능력을 갖춘 인재를 배출해 한국언론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이곳의 목표다.2008년 개교 이래 스쿨 이름이
“사회주의 차원에서 신자유주의 극복이 가능할까요?” 얼핏 들으면 경제체제의 오류를 묻는 것 같은 이 질문에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은 ‘유토피아’라는 정치공동체적 이상향을 들어 설명한다. ‘유토피아’는 영국의 인문주의자 토머스 모어(Thomas More)가 1516년에 발표한 책 <최선의 국가 형태와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관하여>가 세간에 <유토피아(Utopia)>로 알려지며 유명세를 탄 개념이다. ‘없다’라는 뜻과 ‘좋다’라는 뜻이 함께 들어 있는 ‘u’와 장소를 의미하는 ‘topia’의 합성어로, 이 세상에 ‘없는 곳(no-
“보통 성폭행 사건이 나고 6개월 정도 지나면 주위의 도움을 받아서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 모두 안정 상태로 접어들게 돼요. 그런데 나주사건은 가족 전체가 언론에 너무 많이 시달렸어요. 살던 집과 아빠의 직장은 물론이고 아이의 학교와 일기장까지 모두 노출됐죠. 아빠는 언론이 자기들을 매장시켰다는 분노에 아직도 술을 안마시면 잠을 못 잔대요.”포털사이트 네이버(naver)에서 '나주 성폭행사건'을 검색하면 관련 뉴스 2800여건이 뜬다. 이 중에는 피해자가 지난해 8월 성폭행 당하고 구조된 직후 온몸에 상처 입은 모습이 적나라하게 찍힌
‘암보다 무서운 병.’ 14년 째 치매로 고생하는 윤모(81)씨를 돌보고 있는 남편은 보호자 수기에 이렇게 썼다. 지체장애 2급이기도 한 윤씨는 혼자서 거동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인지기능도 잃어 갓난아기처럼 행동한다. 요양시설에 가기 싫어하는 아내를 종일 집에서 돌보는 남편은 운동맛사지, 기저귀갈기, 자세바꿔주기 등 온갖 뒤치다꺼리에서 밤 10시쯤에나 놓여난다.옛날부터 ‘노망’ 혹은 ‘망령’이라 불리던 치매는 환자 뿐 아니라 가족들의 삶까지 파괴하기 일쑤다. 자식들이 자신을 학대한다고 이웃에 거짓 소문을 내는가하면, 변이 묻은 속옷
“어르신들이 말씀도 없이 나가 길을 잃을까봐 늘 잠가 놓습니다.”지난 6월 26일 경기도의 한 중소도시 노인요양원에 자원봉사자로 간 첫날, 건물입구의 녹색 반투명 유리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밀어도 보고 두드려도 보다가 빨간 버튼을 발견하고 눌렀더니, 40대로 보이는 남자직원이 나와 문을 열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배회증상을 보이는 치매노인들은 요양보호사가 한 눈을 판 사이에 밖으로 나가버리곤 하는데, 얼마 전에도 이곳 60대 남성 환자가 2킬로미터(km) 떨어진 공단에서 헤매고 있는 것을 직원이 찾아낸 일이 있다고 한다. 모두가
봄날이 가는 걸 아쉬워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6월도 마지막. 봄의 꽃들이 화려했다면 6월의 꽃들은 청초하고 단아하다. 현충일과 6.25가 들어있는 6월에는 꽃들도 가신 님의 넋을 기리려는 걸까? 대개가 조화 같은 흰 꽃으로 피어난다. 무명용사들 숨진 이름없는 골짜기마다 찔레꽃이 피고 지더니 아카시아꽃에 이어 밤꽃이 온 산을 뒤덮었다.스스로 존재하는 게 ‘자연(自然)’이라지만 인간과 역사가 있어 더욱 그럴듯해 보이는 게 또한 자연이다. 꽃에 대해 한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
‘고운맘카드’의 ‘고운맘’은 ‘고운 엄마’라는 뜻일까? 아니면 저출산 시대에 임산부는 마음이 곱다는 뜻, 아니면 임신한 몸매가 아름답다는 뜻일까? 어쨌든 고운 작명과 달리 ‘고운맘카드’가 한방의료기관으로 확대된 지 열흘이 지났으나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인 듯하다. 임신 사실이 확인되면 출산 관련 진료비를 지원하는 ‘고운맘카드’는 2008년부터 시행돼 오다가 4월1일 한방의료기관으로 대상이 확대됐다. 그러나 충주한방병원의 경우 수많은 내원자 가운데 이 카드를 활용한 사람은 11일까지 한 명도 없었다. 이 제도를 활용하
김광진(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진행자): 연말연시를 맞아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자’는 움직임이 부쩍 많아진 가운데 우리나라 빈곤층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우선 빈곤층은 어떤 기준으로 정의하는 것인가요.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빈곤층을 정의하는 방식은 소득이 그 사회의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인구를 따지는 절대 빈곤층 개념과, 중위소득의 절반에 못 미치는 인구의 비율을 따지는 상대적 빈곤층 개념이 있습니다. 이 중 연도별, 국가별 비교에 주로 쓰이는 것이 상대적 빈곤층 개념입니다.
‘강마루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차칸남자다.’ KBS 드라마 ‘착한남자’ 제작진은 이 문장을 최종회에 집어넣어 ‘표준’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에 불만을 표했다. ‘차칸남자’ 제목 논란에 마지막으로 작은 저항을 한 것이다. 강마루 역 송중기는 지난달 16일 종영 기자회견에서 그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하다”고 말했다.애초 드라마 제목으로 ‘차칸남자’가 공개되자 한글학회와 일부 시민단체는 “한글파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시청자들은 조금 엉뚱한 제목이지만 ‘뜻이 있으려니’ 하며 방영을 기다렸다. 하지만 극이 시작되기도 전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만리장성 위에 서자 숨이 턱 막혔다. 능선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성벽을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원됐을지 도무지 상상이 안 된다. 2천여 년에 걸쳐 쌓은 성벽이건만 진시황의 업적으로 기억될 뿐, 실제 돌을 깎고 벽돌을 만들어 날랐던 그 숱한 ‘무명씨’의 노고는 기록조차 남지 않았다. ‘거대한 건축물은 억압의 상징’이라던 어느 철학자의 말이 실감났다.한국도 마찬가지다. 이제껏 우리가 배운 역사는 왕의 역사다. ‘태정태세문단세’만 외워댄 역사 교육에서 우리는 민중을 만날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곳곳에 널린 것은 모두 민중의 노
김광진(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18대 대통령 선거가 35일 가량 앞으로 다가왔는데요, 대선 후보들이 앞 다투어 강조하던 경제민주화 공약이 후퇴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다른 당보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 진영이 보이고 있는 갈등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지금까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앞세워 경제민주화 공약을 개발해 왔는데, 최근 김 위원장의 핵심 재벌개혁 구상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김 위
“그들은 지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기 때문에 15만 볼트 전기가 흐르는 송전탑에 올라 몸을 묶었습니다. 땅에 있는 노동자들은 스스로 곡기를 끊었습니다.”27일 오후 5시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촛불행진’에서 김영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은 비장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울산 현대자동차 앞에서 고공농성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 천의봉(31)·최병승(38)씨와 서울 대한문 앞에서 단식 중인 쌍용차 노조원들을 가리킨 것이다.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을 위해 고공농성
김광진(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본격적인 김장철이 다가오고 있는데요, 요즘 배추와 무, 대파 마늘 등 김장용 채소와 양념값이 크게 올라 주부들의 걱정이 크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인가요.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김장채소값은 지난 2010년에 폭등했다가 지난해에는 안정된 편이었는데, 최근 다시 급등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으로 품질이 좋은 배추, 즉 상품 배추의 소매가가 1포기당 3689원으로 1년 전에 비해 60% 가량 올랐습니다. 무도 한 개에 24
전라북도 익산에 있는 원광대학교(총장 정세현)는 60년 전통의 사립대학으로 의학계열과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까지 갖추고 있으며 14개 단과대학에 재학생이 1만 7천여 명이나 된다. 이 학교는 ‘인문학이 살아 숨 쉬는 도덕 대학’을 표방하면서 개교 이래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데 힘써왔다. 매 학기마다 개설하는 ‘글로벌특강’에서는 국내외 석학에게 강의를 들은 뒤 토론과 글쓰기 연습을 하고, 인문학연구소에서는 학생과 시민들을 위한 ‘시민인문강좌’를 무료 개설했으며, 교내 ‘후마니타스 장학금’을 통해 독서와 토론을 장려하기도 했다. 하지
취업전선에서 ‘지잡대(지방의 잡스러운 대학)’로 홀대받는 것도 서러운데, 취업률 낮다고 부실대학 취급을 받아야 하나. 지난 8월 31일 교육과학기술부가 43개 ‘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과 13개 ‘학자금대출제한 대학’을 발표한 후 이들 부실대학의 선정기준과 대학구조조정 작업의 타당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의 337개 일반대 및 전문대 중 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으로 지목된 학교는 정부가 지원하는 각종 사업을 신청할 기회가 제한되고, 학자금대출 제한대학은 소속 학생들이 학자금을 대출받기 어려워져 신입생 모집 등에 불리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