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오보 피해자 돕는 언론인권센터 최성주 소장

“보통 성폭행 사건이 나고 6개월 정도 지나면 주위의 도움을 받아서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 모두 안정 상태로 접어들게 돼요. 그런데 나주사건은 가족 전체가 언론에 너무 많이 시달렸어요. 살던 집과 아빠의 직장은 물론이고 아이의 학교와 일기장까지 모두 노출됐죠. 아빠는 언론이 자기들을 매장시켰다는 분노에 아직도 술을 안마시면 잠을 못 잔대요.”

포털사이트 네이버(naver)에서 '나주 성폭행사건'을 검색하면 관련 뉴스 2800여건이 뜬다. 이 중에는 피해자가 지난해 8월 성폭행 당하고 구조된 직후 온몸에 상처 입은 모습이 적나라하게 찍힌 사진도 있고, ‘원래 범행목표는 동생이 아니라 언니였다’는 추측성 기사도 있다. 또 아이가 사고를 당할 당시 아빠는 술을 마신 후 집에서 자고 있었고 엄마는 피씨(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는 보도도 있다. 사건 후 1년 동안 언론이 덧씌운 편견의 굴레에 시달렸던 가족들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와 함께 언론사들을 상태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피해자 A양 가족을 지원하고 있는 언론인권센터 미디어이용자권익센터 최성주 소장을 <단비뉴스>가 지난 29일과 지난 5월 26일 두 차례 인터뷰했다.

나주 성폭행 사건 피해가족들 아물지 않은 상처

▲ 언론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최성주 소장. ⓒ 이정임

“A양은 요즘도 잠을 안 자려고 한대요. 잠을 자던 중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으니 불안감이 아직 해소되지 못한 거죠. 이틀이고 삼일이고 잠을 안자고 버티다 학교에서 갑자기 푹 쓰러져 잠들기도 하고, 길에서도 갑자기 쓰러진대요. 치료를 제대로 받았어야 했는데..."

특히 A양의 엄마는 ‘한 밤중에 PC방에서 게임을 한 무책임한 부모’라는 손가락질에 아직도 괴로워한다. 사건 당시 몇몇 매체는 범인 고종석과 A양의 엄마가 온라인 게임 등을 통해 알고 지내던 사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씨는 A양의 엄마가 분식집을 할 당시 한두 번 밥을 사 먹었을 뿐 서로 모르던 사이라는 게 재판에서 확인됐다. 또 그날 그녀가 PC방에 간 것은 집에 컴퓨터가 없기 때문에 초등학생인 자녀들의 숙제를 해주기 위해 컴퓨터를 쓰러 갔던 것이라고 한다.

언론 보도의 영향은 강력했다. ‘술을 마시고 있었던 아빠', 'PC방에서 게임에 열중하던 엄마'로 낙인찍히는 바람에 성폭행 피해가정을 지원해주는 단체까지 '도움'과 '지원' 대신 '감시'와 '관리'를 하려고 했다. 당시 피해아동을 돕기 위한 시민 성금이 1억원 넘게 모였는데 통장을 개설해 관리하던 굿네이버스 측은 ’부모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돈을 한꺼번에 맡기면 날려버릴지도 모른다‘며 조건을 달았다. 이사 간 집의 전세금 3000천여만원을 지급한 후 나머지 성금은 차후 부모들이 열심히 일해서 통장에 3000만원을 모으면 주겠다고 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아이 넷을 키우며 일용노동직으로 통장에 삼천만원을 모으는 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아닌가요. 돈을 그만큼 모아야 나머지 성금을 주겠다고 하는 건 너무하죠. 요즘도 일을 열심히 하고 있냐고 그쪽에서 전화가 온대요."

언론인권센터와 A양 가족의 인연은 아동성폭력 추방을 위한 시민모임인 '발자국'을 통해 시작됐다. 발자국 엄마들의 모임에서 민주통합당 진선미 의원실 박영선 보좌관이 우연히 "나주 그 집은 엄마가 좀 이상하대요"라는 말을 듣고 A양 어머니를 만났다. 그러나 박 보좌관의 눈에 띈 것은 ‘이상한 부모’가 아니라 사건 후 제대로 관리 받지 못한 가정과 깊이 상처 입은 가족이었다. A양의 엄마는 아이들을 방치한 게임중독자가 아니었고, 자녀의 끼니를 꼬박꼬박 챙겨주는 평범한 엄마였다. 박 보좌관은 언론인권센터측에 A양 가족을 소개해 주었고 가족들은 센터의 도움을 받아 지난 7월 2일 법원에 소장을 접수시켰다. 소송 대상은 대다수 언론사지만 아이의 상처부위를 공개한 에스비에스(SBS)에는 1억원을, 아이의 일기장을 보도한 경향신문에는 7천5백만원을, 엄마와 범인의 관계를 왜곡 보도한 조선일보에는 1억3천5백만원을 청구했다. 또 피해 아동의 상처를 최초로 찍은 채널A에는 8천5백만원을, 연합뉴스에는 9천5백만원을 청구했다.

‘폭력적 아이들’로 TV에 계속 나오는 두 자녀

▲ 책‘언론에 당해 봤어'에는 언론인권센터가 언론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와 함께 공익 소송을 진행해 승소한 판례 16건이 담겨 있다. ⓒ 언론인권센터 홈페이지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로 큰 피해를 입고도 속수무책이었던 소시민들이 이 센터의 도움으로 피해구제를 받게 된 사례는 많지만 최 소장은 문화방송(MBC)의 ‘폭력 아이들’ 사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소개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 2008년 9월 세계적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에 대해 보도하면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증상의 자료화면으로 이모(40•여•인천)씨의 두 자녀들 모습을 방송했다. 이씨는 지난 2006년 MBC 한 시사프로그램이 자녀들이 치료받고 있던 병원을 통해 “ADHD증상도 치료하면 낫는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촬영에 협조하면 자녀들을 치료하는데 도움을 주겠다”고 하자 응했는데 약속과 달리 아이들의 욕설과 폭력적 행동이 집중 방송되자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한 일이 있다. 그 결과 250만원의 손해배상금과 자료 폐기에 합의했는데, MBC가 당시 자료를 2008년 뉴스에서 또 틀어 두 아이가 학교 등에서 '부모를 폭행하는 미친 아이들'이라는 등의 손가락질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이씨는 언론인권센터의 도움을 받아 소송을 냈고, 최종적으로 1천만원의 배상금과 자료 영구 폐기 결정을 받아냈다. 이씨는 ‘가난하고 힘이 없어 방송국이 함부로 대한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언론인권센터와 함께 방송국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거대 방송사가 자신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것을 보고 심적으로 치유를 받았다고 한다.

"언론인들, 소외된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 언론인권센터는 지난 2012년 9월 5일 긴급토론회‘언론도 가해했다,나주현장' 열고 언론이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사건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보도하여 2차 피해를 주는 행태를 비판하고 그 대안을 모색했다. ⓒ 언론인권센터 홈페이지
언론인권센터는 '언론 보도로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시민언론단체'로 지난 2002년 설립됐다. 남성우 이사장(전 KBS 편성본부장)과 김준현 상임이사(변호사•우리로법률사무소), 김현옥 이사(미디어교육 강사), 공지영 명예이사(소설가) 등 언론인과 법조인 시민운동가 소설가 교수 시사평론가 등으로 구성돼 있다. 공적기관인 언론중재위원회가 언론보도 피해자구제와 조정 등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빠르고 효율적인 중재’에 많은 비중을 둔다면 센터는 철저히 피해자의 입장에서 도움을 준다는 차이가 있다고 최 소장은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언론 피해보상 액수가 굉장히 적은 나라 중 하나예요. 그래서 우리 센터에서는 언론 피해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불법행위의 손실금액을 몇배 가중 배상하도록 하는 것)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요. 언론사들은 ‘언론 재갈물리기’로 악용될 가능성이 많다고 반대 하는데 아주 악질적인 언론피해가 발생했을 때만 적용하자는 거죠. 언론사와 정치권을 모두 설득해야 하니 아직 실현되기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만요.“

20여년전부터 시민운동에 몸담아 온 최 소장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언론을 감시하는 ‘미디어와치’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다 2006년부터 언론인권센터에 이사로 참여했다. 최 소장은 언론인이 되기를 희망하는 젊은이들이 특히 ‘잘나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어줄 것’을 당부했다.

"언론사에 있다고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저절로 들리는 건 아니에요.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죠. 언론인의 역할은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이 가진 의미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따뜻한 마음 없이는 잘 안 보이는 것들이죠. 프레스는 어디든 갈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란 걸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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