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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수난시대’가 또 연장된다면
[단비발언대] 손지은 기자
2012년 12월 18일 (화) 19:18:34 손지은 기자 jeeeun876@naver.com

   
▲ 손지은 기자
‘강마루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차칸남자다.’ KBS 드라마 ‘착한남자’ 제작진은 이 문장을 최종회에 집어넣어 ‘표준’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에 불만을 표했다. ‘차칸남자’ 제목 논란에 마지막으로 작은 저항을 한 것이다. 강마루 역 송중기는 지난달 16일 종영 기자회견에서 그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하다”고 말했다.

애초 드라마 제목으로 ‘차칸남자’가 공개되자 한글학회와 일부 시민단체는 “한글파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시청자들은 조금 엉뚱한 제목이지만 ‘뜻이 있으려니’ 하며 방영을 기다렸다. 하지만 극이 시작되기도 전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심의에 들어갔고, 작가의 창작의도를 존중하려던 제작진은 결국 굴복했다.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교통사고로 모든 기억을 잃는다. 읽고 쓰는 능력까지 상실한 그녀는 깍두기공책과 연필로 한글을 다시 익혀 사랑하는 남자를 서툰 글씨로 표현한다. ‘차칸남자.’ 둘의 로맨스가 애절해지면서 나는 원제목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감성은 어휘보다 섬세해서 이미 존재하는 낱말로는 그것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래서 창작자들은 표준어에서 종종 이탈한다, 시인 서정주가 국화꽃을 굳이 ‘노오랗다’라고 한 것처럼. 비록 표준어는 아니지만 독자는 그것을 음미하며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어 문학에서는 표현방법 중 하나로 인정한다. 그런데 ‘착한남자’에게는 왜 허락되지 않은 걸까?

이 사건을 뒤돌아보며 나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낀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있어야 인간이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언어가 단순한 표현도구가 아니라 그것이 있어야 비로소 생각이 다듬어지고 견고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언어의 분출은 생각의 분출이며, 반대로 인간에게 언어를 뺏으면 생각은 사멸한다. 철학자 강신주가 “언어를 통제하는 사회가 곧 독재”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언어의 수난시대는 독재의 역사와 함께했다. 삼사십년 전 유신시대에도 언어는 권력에 수탈당했다. 권력은 쓸 수 있는 말과 없는 말을 멋대로 결정했다. ‘막걸리 보안법’으로 시민의 입을 단속해 ‘불온한’ 생각이 번지는 것을 막고자 했다. 유행가도 통제했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라는 가사가 누군가의 머릿속에 ’주체사상‘을 떠오르게 할지도 모른다나.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언어 수난시대도 끝나는 듯했다. 마음껏 말하고자 한 이들이 언어의 해방구를 되찾은 덕분이다. 그리고 26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말은 정말 해방된 것일까? ‘차칸남자’를 허락하지 않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아직 시민의 상상력을 검열하던 ‘그때 그 사람’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에게 의혹을 제기했던 정봉주 전 의원은 아직 감옥에 갇혀있다. 북한 트위터 계정을 팔로우하고 패러디한 사회당 박정근 당원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됐다. 미네르바도 있었다. 사문화했다던 국가보안법이 부활했고, ‘허위사실 유포죄’는 현대판 ‘막걸리 보안법’ 노릇을 하고 있다.

이제 대선의 날이 다가왔다. 그 시절 ‘공주님’이 여당 후보가 됐다. 그는 아버지와 다를까? 그에게 ‘말’하는 게 직업인 기자들이 안철수 후보의 높은 지지율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병 걸리셨어요?” 마땅히 해야 할 질문을 한 기자를 ‘정신병자’로 모는 사람이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다가오는 시대의 ‘말’은 또 얼마나 핍박을 받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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