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현대차 철탑농성 지지 서울역 집회에 수천 명 촛불

“그들은 지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기 때문에 15만 볼트 전기가 흐르는 송전탑에 올라 몸을 묶었습니다. 땅에 있는 노동자들은 스스로 곡기를 끊었습니다.”

27일 오후 5시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촛불행진’에서 김영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은 비장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울산 현대자동차 앞에서 고공농성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 천의봉(31)·최병승(38)씨와 서울 대한문 앞에서 단식 중인 쌍용차 노조원들을 가리킨 것이다.

 

▲ 참가자들이 집회 시작 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 손지은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을 위해 고공농성을 벌이다 땅에 내려온 지 일 년도 안 돼 두 노동자가 다시 송전탑에 올랐다. 이들은 25미터(m) 상공에서 나무 합판에 의지해 비바람을 견디며 “법대로 하자”를 외치고 있다. ‘울산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2년 전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라는 것이다.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에 따르는 대신 하청업체를 폐업하고 비정규직과의 계약을 해지해 최 씨 등을 해고했다.

이날 집회는 두 노동자의 외로운 싸움을 지지하는 연대의 일환으로, 전국에서 2000명 넘는(주최측 추산) 노동자와 학생, 시민들이 모여 촛불을 들었다. 행사를 주최한 ‘비정규직 없는 일터와 사회 만들기 공동행동’은 이에 앞서 26일에도 울산 송전탑 밑에서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참가한 대학생들. ⓒ 손지은

대학생 김정훈씨는 연단에 올라 자신의 아버지도 철도청 민영화에 반대해 현재 천막농성 중이라고 밝힌 뒤 자신이 체험한 ‘비정규직의 설움’을 호소했다.

“지방에서 상경해 자취 중인데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 저에게 주어진 일자리는 모두 시간당 4580원 짜리입니다. 한 달을 꼬박 일해야 백만 원 남짓을 손에 쥘 수 있습니다. 청년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하지만 낮출 것도 없이 이미 최저임금을 주는 일자리뿐입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청년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연단 아래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이어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무대에 올랐다. 서울시 다산콜센터에서 근무하는 김선남씨는 “전화량이 너무 많아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기 때문에 방광염에 시달린다”며 “법에 명시된 휴식시간과 점심시간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대리운전 노조의 박영진 씨는 “작년에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며 “대리운전 노동자들에게도 노동3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회 중간에 송전탑 위에 있는 최병승씨와 전화가 연결됐다. 따로 있던 두 노동자가 ‘합방’ 하기 위해 나무 합판을 옮기던 중 전화를 받았다는 그는 의외로 씩씩한 목소리였다.

“반갑습니다. 투쟁!”

최 씨의 인사에 참가자들은 박수와 환호로 답했다. 그는 “우리의 투쟁이 부족하더라도 함께 하면 승리할 수 있다”며, 같은 이유로 싸우고 있는 재능교육·쌍용차 등 모든 노동자들의 연대를 촉구했다.
 
참가자들의 발언 사이에 비정규직노동자들의 공연도 펼쳐졌다. 중년 여성들인 덕성여대 미화노동자 9명은 ‘임을 위한 행진곡’에 맞춰 말춤을 춰 분위기를 북돋았다. 이들은 “파업 출정식 때 선보이려고 연습했는데, 파업 직전 협상이 타결됐다”며 “대신 여러분께 보여 드리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 덕성여대 미화노동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에 맞춰 말춤을 추고 있다. ⓒ 손지은

야권 정치인들도 이날 집회에 나왔다. 통합진보당에서는 이정희 대선후보가, 진보정의당에서는 심상정 대선 후보와 노회찬 공동대표, 박원석 의원, 천호선 최고위원이 참석했다. 시민사회 원로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부축을 받으며 연단에 올랐다.

“가난은 우리 입에 돌멩이를 먹으라고 물려주는 것인데, 가난의 동의어가 바로 비정규직입니다. 비정규직을 해결하겠다는 세력으로 정권교체를 해야 합니다.”

 

▲ 무대연설 중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 손지은

아침부터 간헐적으로 내리던 비가 집회 열기가 달아오를 무렵 거세게 쏟아졌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손으로 촛불을 감싸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고려대 미화노동자인 이민자(59)씨는 “2009년 하청업체의 부당대우에 맞서 투쟁한 경험이 있다”며 “누구보다 (비정규직의 투쟁이) 고된 일임을 잘 알기 때문에 힘을 보태려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진로탐색의 시간을 갖고 있다는 임지민(24)씨는 “대학 시절 학교 미화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행동한 일이 있다”며 “노조에서도 비정규직 문제는 소외돼 마음이 아팠는데 오늘은 정규직 노동자 뿐 아니라 시민들도 함께해 기쁘다”고 말했다.

 

▲ 빗속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 집회 참가자들. ⓒ 손지은
▲ 내리는 빗물에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손으로 감싸고 있는 참가자들. ⓒ 손지은

참가자들은 2시간 여에 걸친 집회 마지막 순서로 비정규직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낭독한 뒤 덕수궁까지 행진하려 했으나 경찰이 막아서면서 무산됐다. 참가자들은 각자 대한문까지 이동해 마무리 집회를 가진 뒤 저녁 8시쯤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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