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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는 왜 꽃 이름에 많이 등장할까
[정임의 한방이야기] 들꽃과 약초의 이름에 투영된 조상들의 심리학
2013년 06월 29일 (토) 18:19:39 이정임 기자 lji915@hanmail.net

봄날이 가는 걸 아쉬워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6월도 마지막. 봄의 꽃들이 화려했다면 6월의 꽃들은 청초하고 단아하다. 현충일과 6.25가 들어있는 6월에는 꽃들도 가신 님의 넋을 기리려는 걸까? 대개가 조화 같은 흰 꽃으로 피어난다. 무명용사들 숨진 이름없는 골짜기마다 찔레꽃이 피고 지더니 아카시아꽃에 이어 밤꽃이 온 산을 뒤덮었다.

스스로 존재하는 게 ‘자연(自然)’이라지만 인간과 역사가 있어 더욱 그럴듯해 보이는 게 또한 자연이다. 꽃에 대해 한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읊었다. 지천으로 피어나는 잡초들도 그 존재와 이름의 의미는 오묘하지 않은 게 없다. 우리 조상들은 작은 들꽃과 약초에 우리네 삶과 마음을 그대로 투영하는 이름 붙이기를 즐겼다.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며느리밥풀꽃……

   

▲ 왼쪽부터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며느리밥풀꽃. ⓒ 네이버 블로그 미소의 향연

며느리밑씻개는 아들의 사랑을 빼앗아간 며느리를 미워하는 시어머니의 심정을 드러낸다. 연분홍 꽃이 마치 새색시의 볼 홍조를 띤 듯 예쁘지만 줄기와 잎에는 갈고리 모양의 날카로운 가시가 있다. 밭일하다 볼일 보는 며느리가 가시가 있는 풀로 밑을 닦으면 시어머니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릴 수 있었겠다.

며느리배꼽은 며느리의 생김새부터 하는 일까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은 시어머니들이 명명한 게 분명하다. 크고 둥근 턱잎 위에 피는 연둣빛 꽃 모양새가 ‘꼭 우리 며느리배꼽 같이 못 생겼다’ 하여 며느리배꼽이라 불렀다고 한다.

며느리밥풀꽃의 슬픈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시아버지 제삿밥을 짓던 며느리가 밥에 뜸이 잘 들었나 밥알을 씹어보던 중 불시에 시어머니가 나타나 어른이 먹기 전에 밥을 먹었다며 며느리를 몽둥이로 마구 때렸다. 모진 매질로 죽은 며느리의 억울한 넋이 결백이라도 주장하듯 자줏빛 꽃잎 위에 하얀 밥 두 알을 물고 있는 듯한 꽃이 며느리의 무덤가에 피어났다고 한다.

사위질빵에 담긴 장모의 사랑

   
▲ 생김새가 비슷한 할미밀망(왼쪽)과 사위질빵. ⓒ 네이버 블로그 미소의 향연
그런가 하면 사위는 들꽃의 이름에서도 백년손님 대접을 톡톡히 받는다. 흰 꽃이 피는 사위질빵과 할미밀망은 그 생김새가 비슷하여 구별하기 어려운데 할미밀망의 줄기는 질겨 잘 끊어지지 않고 사위질빵의 줄기는 약해서 잘 끊어진다. 그런데 할미밀망 줄기로 장모의 질빵(짐 따위를 질 수 있도록 물건 따위에 연결한 줄)을 만들고, 사위질빵 줄기로 사위의 질빵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추수할 때 와서 고생하는 사위의 질빵은 잘 끊어지는 것으로 만들어 짐을 덜 지게 하는 대신 장모 자신의 질빵은 질긴 줄기로 만들어 짐을 많이 졌다는 것이다. 들꽃의 이름으로 유추해보면 장모의 사위사랑은 어쩌면 시집간 딸이 남편에게 미움받을까 봐 걱정하는 장모의 고육지책일 수도 있겠다. 

장모와 사위,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역학관계 또는 갑을관계는 이렇듯 들꽃 이름에도 잘 드러난다. 조상들의 재치는 들꽃에 국한되지 않는다. 식물 한약재에도 재미있는 이름이 붙어있는 게 많다.

깽깽이걸음 뛰듯 피는 깽깽이풀- 황련

   

▲ 깽깽이풀꽃(왼쪽)과 고삼꽃. ⓒ 네이버 블로그 미소의 향연

깽깽이풀은 특이한 번식방법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깽깽이풀의 열매는 끝이 부리처럼 뾰족하고, 익으면 한 쪽이 벌어지면서 씨를 드러낸다. 씨의 밑 부분에는 당분 덩어리인 얼라이오솜이 붙어있는데, 개미들이 씨를 물고 가서 당분만 먹고 버리면 그 자리에서 싹이 튼다. 그래서 깽깽이풀은 개미의 활동 범위만큼 띄엄띄엄 자란다. 그렇게 띄엄띄엄 자라는 모습이 깽깽이걸음으로 뛰어간 것처럼 보인다 하여 깽깽이풀이 되었다고 한다.

깽깽이풀은 한창 바쁜 농사철인 4-5월에 아름다운 꽃을 피워 깽깽이(꽹과리)나 치며 놀자고 농부들을 유혹하는 것 같아 가뜩이나 농사일에 짜증난 사람들이 천박한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보랏빛 꽃이 아름다워 봄이면 사람 손을 잘 타는 깽깽이풀의 뿌리는 한약재로 사용되는 황련이다. 황련은 열을 내리거나 염증 치료에 사용하는 약재인데 특히 심장의 열을 잘 꺼주어 가슴이 답답하고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을 때 사용하면 효과가 좋다. 

고삼(苦蔘)은 너무 쓴 맛 때문에 ‘1박2일’ 복불복 코너에서 출연자에게 고통을 주고 시청자에게 웃음을 준다. 뿌리가 크고 지팡이처럼 울퉁불퉁해서 도둑놈지팡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고삼이 자라는 곳에는 대개 뱀이 있어 뱀정자나무로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소화불량, 간염, 치질 등에 사용하며 과거에는 살충제 대용으로 썼을 정도로 염증을 치료하는 효과가 탁월하다. 특히 가려움증이 심한 아토피 환자가 고삼을 달인 물로 목욕하면 좋다. 비록 맛이 매우 쓰지만 인삼에 비견할만한 귀한 효능을 가졌기에 뱀이 똬리를 틀어 뿌리를 보호하는 것일까? 하지만 인삼만큼 비싸지 않아 입욕제로 사용해도 부담이 크지 않다.

쇠붙이에 다친 상처를 낫게 하는 쇠비름

   
▲ 쇠무릎(왼쪽)과 쇠비름. ⓒ 네이버 블로그 미소의 향연
쇠무릎혹파리가 쇠무릎의 마디에 구멍을 내면 그 부분이 부어올라 소 무릎을 닮은 생김새를 지니게 된다. 이 덕분인지 쇠무릎은 인간의 무릎에도 좋다. 쇠무릎의 뿌리인 우슬은 관절이 저리고 아플 때 사용하는 약재다. 동의보감에서는 인체 12경맥의 피를 잘 돌게 하며 모든 약의 기운을 하초로 내려가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했다. 옛사람들은 우리 몸 구조와 비슷한 것이 실제로 그 부분에 효과가 있다는 동종요법의 원리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쇠붙이에 다친 상처도 낫게 한다는 쇠비름은 이름이 많다. 생김새가 말의 이빨을 닮아 마치현(馬齒莧)이라 불리기도 하고, 청적황백흑의 다섯 색깔을 모두 갖고 있다 해서 오행초(五行草)라고도 한다. 붉은 줄기는 불(火), 까만 열매는 물(水), 초록색 잎은 나무(木), 하얀 뿌리는 쇠(金), 노란 꽃은 흙(土)을 가리킨다. 이렇듯 오행을 골고루 품은 잡초가 바로 쇠비름이다. 장수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의 또 다른 별명인 장명채(長命菜)에 걸맞게 치매와 동맥경화 예방, 당뇨 치료효과와 항암 효과까지 있다고 하니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셈이다.

꽃에 이름 붙이면서 느꼈을 창작의 즐거움

   
▲ 왼쪽부터 소경불알, 노루오줌, 개불알의 꽃. ⓒ 네이버 블로그 미소의 향연
이 밖에도 꽃과 잎이 더덕과 비슷하게 생겨 구분이 안되지만 뿌리는 제 아무리 소경이라도 만져보면 둥글둥글한 불알을 닮은것을 알수있어  붙여진 소경불알, 연보라 빛 소복한 꽃에서 오줌냄새가 난다 하여 붙여진 노루오줌, 열매가 개 불알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개불알꽃 같은 익살스런 이름들이 꽤 많다.

그런 이름들을 발견할 때마다 조상들의 노골적인 명명에 얼굴을 붉히거나 그들의 재치에 감탄한다. 예쁜 꽃과 좋은 약초에도 쌍스런 이름을 붙여야 속이 시원했던 옛사람의 정서는 퇴폐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민초들이 꽃에 이름을 붙이면서 느꼈을 창작의 즐거움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 <단비뉴스>에 ‘한방 이야기’를 조곤조곤 풀어놓고 있는 이정임은 한의사이며 현재 세명대 부속 충주한방병원에서 전문의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재학생이기도 한 그는 한국 최초로 한의학에 뿌리를 둔 의료∙건강 전문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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