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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는 없다
[단비발언대] 손지은 기자
2012년 12월 15일 (토) 20:04:59 손지은 기자 jeeeun876@naver.com

   
▲ 손지은 기자
만리장성 위에 서자 숨이 턱 막혔다. 능선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성벽을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원됐을지 도무지 상상이 안 된다. 2천여 년에 걸쳐 쌓은 성벽이건만 진시황의 업적으로 기억될 뿐, 실제 돌을 깎고 벽돌을 만들어 날랐던 그 숱한 ‘무명씨’의 노고는 기록조차 남지 않았다. ‘거대한 건축물은 억압의 상징’이라던 어느 철학자의 말이 실감났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제껏 우리가 배운 역사는 왕의 역사다. ‘태정태세문단세’만 외워댄 역사 교육에서 우리는 민중을 만날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곳곳에 널린 것은 모두 민중의 노동으로 탄생했지만, 역사는 왕만을 기록했다. 권력은 민중의 노동을 자신의 치적으로 둔갑시킨다. 1970년대 여공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조국근대화’를 박정희의 업적으로 가르치는 것처럼.

1848년, 마르크스는 ‘지금까지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선언했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신’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 벌이는 사투에서 나온다는 뜻이었다. 지배계급이 복잡한 관념체계를 만들어 ‘계급투쟁의 역사’를 깎아내리는 것에 대한 반격이기도 했다. 마르크스는 이 선언을 통해 민중이 역사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길 바랐고, 그의 바람은 1871년 파리, 1917년 러시아 등에서 실현됐다.

혁명의 열기는 곧 산화한다. 민중이 제힘을 느낄 겨를도 없이 개인으로 돌아가 뿔뿔이 흩어지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에리히 프롬은 고립된 개인은 열등감과 무력감, 그리고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감정을 빈번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무기력한 개인은 결핍된 자아를 회복하기 위해 타인이나 사물에 자신을 동일시한다. 여기서 ‘메시아’가 탄생한다. 프롬은 이것을 ‘자유로부터 도피’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메시아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고, 메시아를 고대하는 민중심리를 이용한 사람들로 역사책이 복잡할 뿐이다.

신자유주의 바람은 개인을 더욱 고립시켰다. 밥벌이를 위한 경쟁은 서로를 갈라놨고 고독하게 만들었다. 고독감과 피로감이 쌓이자 대중은 메시아가 나타나 현실을 바꿔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안철수가 유례없이 높은 지지율로 정치판에 등장한 것도 그런 대중심리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이 메시아에 열광할수록 개개인은 더욱 무력한 존재로 추락한다. 기적과 같이 당선된 노무현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물러난 것처럼, 한 사람에게 모든 역할을 위임하고 흩어진다면 결국 제자리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했던 고승 임제의 가르침처럼 메시아가 등장하면 그를 부정해야 한다. 그것이 메시아의 미망에서 깨어나는 길일 테니까.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자 그의 지지자 중 상당수가 부동층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안철수가 아니면 의미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들 말대로 안철수가 사라졌다고 정말 끝난 것인가? 그런 도식이라면 설령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변화는 우리가 주인의식을 가질 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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