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잡·쓰리잡 대학생 ② 멀어지는 공부

서울의 한 사립대학에서 예술학을 전공하는 김지현(22․여․가명)씨는 지난 9월과 10월 두 달간 ‘쓰리잡(three job)’을 뛰었고, 지금은 ‘투잡(two job)족’으로 살고 있다. 지현씨는 2011년 입학 후 매학기 성적장학금(180만원)과 국가장학금(50만원)을 받아 450만원이 넘는 등록금부담을 절반으로 줄였고, 나머지 학비와 월 40만원 가량의 용돈은 부모님께 받아썼다. 그러나 최근 집안 형편이 기울면서 용돈 받기가 부담스러워져, 이번 학기엔 장학금을 위한 성적경쟁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최대한 많은 돈을 벌기로 작정했다.

▲ 교내 도서관, 컴퓨터실 등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면서 외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대학생들이 많다. ⓒ 박기석

전시장·약국·컴퓨터실에서 종종 걸음 

개강 후 두 달 동안 지현씨는 어지간한 직장인 보다 바빴다.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종로구 의 한 건축디자인전시장에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작품이 손상되지 않도록 살피고 하루 3차례 30분씩 관람객을 상대로 작품을 설명했다. 일당은 5만원. 구두를 신고 종일 서 있는데다 목소리를 높여 작품 설명에 열중하고 나면 퇴근 후 종아리가 아프고 목이 잠기기 일쑤였다. 이 일은 지난 10월 말에 끝났다.

일요일에 지현씨는 서울 상암동에 있는 약국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처방전을 접수하고 약값을 계산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작은 약국이지만 병원 근처라 무척 일이 많다. 하루 평균 200장 넘는 처방전을 처리하고, ‘파스’나 ‘박카스’ 등을 판매하다 보면 점심을 거르게 되는 날도 있다. 가끔 ‘왜 빨리 안 주느냐’며 화를 내는 손님까지 만나면 진이 다 빠진다. 약국의 시급은 7000원으로 다른 판매직보다는 후한 편. 약국 일과 전시장 일을 함께 했을 때 지현씨가 번 돈은 월 65만원 남짓이었다.

▲ 카페, 음식점, 약국 등에서 시급을 받으며 서비스직으로 일하는 것은 매우 흔한 대학생 아르바이트의 유형이다. ⓒ 박기석

학교 수업이 있는 월, 수, 금요일에는 강의 사이 빈 시간에 학과 컴퓨터실에서 교내 근로장학생으로 일한다. 개인용컴퓨터(PC)와 프린터 등을 관리하고 청소도 한다. 이곳에서는 실 근무시간을 계산해서 한 학기 임금만큼 등록금에서 면제해 주는데, 지현씨는 다음 학기에 60만원 정도의 등록금 면제를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컴퓨터실은 일이 없을 때 책을 읽거나 과제를 할 여유도 좀 있어서 지현씨의 학교생활에 도움이 된다.

“그래도 아르바이트를 세 가지나 하다 보니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었어요. 원래는 6과목 18학점을 신청했는데, 결국 한 과목을 철회했죠. 빠듯한 아르바이트 일정 때문에 도저히 과제 제출하고 시험을 치를 자신이 없더라고요. 제대로 공부를 못하고 중간고사를 봐서 부실한 답안을 쓰고 속상했던 과목도 있고요.”

누적된 피로에 몸살, 시험 망치기도 
 
누적된 피로는 학교생활에 지장을 준다. ‘쓰리잡’ 생활 두 달이 다 돼 가던 시점에 지현씨는 중간고사를 앞두고 몸살이 났다. 시험공부 할 시간이 부족했는데 몸까지 아팠으니 결과는 보나 마나. 지현씨는 기말시험에서 최대한 만회하리라 다짐하고 있지만 여전히 두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형편에 과연 얼마나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 아르바이트 전문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일자리를 검색하는 대학생의 모습. ⓒ 박기석

지현씨는 전공인 예술학 이론만 공부하는 게 아쉬워 지난 학기까지 회화 과목을 복수전공으로 수강했다. 하지만 이것도 이번 학기에 포기했다. 전공과목도 미뤄놓고 시간표 짜기 쉬운 교양과목 위주로 수강하는 자신에게 복수전공은 사치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지난 학기까지 열심히 참여했던 전시기획 동아리 활동도 아르바이트에 쫓기면서 그만 뒀다. 또래들이 진작부터 열을 올리고 있는 취업준비도 지현씨는 ‘내년에 생각하자’며 미뤄놓았다. 

지현씨는 지금처럼 열심히 일하고 아끼면서 겨울방학까지 매진하면 부모님의 등록금 부담을 꽤 줄여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아르바이트에 매달리다  졸업하면 영원히 개인 시간을 못 갖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든다고 털어놓았다.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보내는 친구들과 점점 거리가 생기는 것도 안타깝다. 그래서 다음 학기엔 아예 휴학을 하고 돈을 벌면서 토익(영어공인시험)도 준비하고 여행도 좀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계속)


치솟는 주거비와 생활물가는 비싼 등록금과 함께 가난한 대학생들을 괴롭힌다. 그래서 하고 싶은 공부도, 취업준비도, 대학생활의 낭만도 접어둔 채 한꺼번에 몇 개씩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많다. '투잡족' '쓰리잡족'으로 불리는 이들의 고단하고 힘겨운 일상을 청년기자들이 따라가 봤다. (편집자)

 * 이 기사는 KBS와 단비뉴스의 공동기획 '청년기자가 간다' 시리즈로 <KBS뉴스> 홈페이지와 <단비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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