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주제
② 비그포르스,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

“사회주의 차원에서 신자유주의 극복이 가능할까요?”

얼핏 들으면 경제체제의 오류를 묻는 것 같은 이 질문에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은 ‘유토피아’라는 정치공동체적 이상향을 들어 설명한다. ‘유토피아’는 영국의 인문주의자 토머스 모어(Thomas More)가 1516년에 발표한 책 <최선의 국가 형태와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관하여>가 세간에 <유토피아(Utopia)>로 알려지며 유명세를 탄 개념이다. ‘없다’라는 뜻과 ‘좋다’라는 뜻이 함께 들어 있는 ‘u’와 장소를 의미하는 ‘topia’의 합성어로, 이 세상에 ‘없는 곳(no-place)’인 동시에 ‘좋은 곳(good-place)’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띤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곳도 존재하지 않으면 무의미한 법. 그래서 오늘날 유토피아는 비현실적 사회를 상징하는 수사로 통용되곤 한다.

그렇다면 홍 소장은 왜 유토피아를 언급했을까? 1930년대 불어 닥친 대공황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릴 무렵,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고 스웨덴 나라살림의 근간을 다진 두 지도자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현실적 이상향의 모델을 제시한 에른스트 비그포르스(Ernst Johannes Wigforss)와 그와 함께 나라를 이끌었던 총리이자 사민당 당수 페르 알빈 한손(Per Albin Hansson)이다.

전문가 비그포르스와 보통사람 한손의 만남

“스웨덴 전 총리 한손은 대학도 안 나온 노동자였어요. 한손의 참모를 자처한 비그포르스는 1930년대 스웨덴 경제모델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 에른스트 비그포르스(Ernst Wigforss, 1881-1977) ⓒ Encyclopedia
▲ 페르 알빈 한손(Per Albin Hansson, 1885-1946) ⓒ Encyclopedia

1932년 재정부장관이 되기 이전에 이미 경기 역행적 정책을 제시하여 ‘케인스 이전의 케인스주의자’라 불린 비그포르스는 아마추어 경제학자였지만 전문 경제학자들보다 새로운 경제이론에 더 민감했다. 그는 언어학자이면서 케인스보다 6년 먼저 ‘케인스 모델’과 유사한 것을 만들었고 때로는 스톡홀름 학파 젊은 경제학자들의 선구자 역할도 했다.

하지만 정치가로서 그의 길은 순탄치 못했다. 1928년 비그포르스는 부자들에게 높은 누진세율의 상속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는 스웨덴의 기득권층과 중산층을 경악하게 만들었고 반대 진영의 정당들은 그에게 신랄한 비판을 퍼부었다. 온건한 성격의 비그포르스가 그때만큼은 길길이 날뛸 정도로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 해 사민당은 선거에서 패배하고 비그포르스 또한 문책받게 된다.

비그포르스는 실현 가능한 사회민주주의 계획과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내놓았지만 대중의 지지를 얻기는 힘들었다. 그의 잠정적 유토피아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것은 바로 ‘정치적 지도력’을 갖춘 인물이었다.  국민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며 그들의 바람을 알아내고 그것을 참신하고 현실성 있는 계획으로 구현할 수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면 악순환의 고리도 풀릴 거라 예상했다. 아쉽게도 비그포르스는 뛰어난 지도력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 이때 한손이 등장한다.

“비그포르스는 한손이 전문지식이 없는 보통사람이기에 당 지도자가 되는 것이 옳다고 보았어요. 여러 분야에서 소위 전문가로 활동해온 비그포르스의 경험에서 나온 판단이에요. 정치 지도자는 한 가지 분야만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도록 훈련받은 사람이어서는 안 되며, 여러 분야를 두루 살펴 균형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한손은 가난한 노동자 동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상점의 사환 노릇을 하며 성장한 뼛속 깊이 ‘근로대중’이었다. 그는 못 배우고 차별당하는 가난한 서민들의 기쁨과 슬픔과 희망과 절망을 깊이 호흡하고 공감할 줄 알았다. 한손은 비록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토론과 논쟁에서 무엇이 본질인지 빠르게 파악하는 명민한 머리의 소유자였다. 어떤 대립과 갈등의 논쟁에서도 민주적인 토론을 통해 최대한의 합의를 이끌어 내고 집단 전체를 통합해낼 줄 아는 통 큰 정치인이기도 했다.

▲ "국가는 모든 국민들을 위한 좋은 집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한손 총리에게는 여생을 보낼 자기 집 한 채가 없었다. EBS지식채널e '국민의 집 2부' ⓒ EBS 화면갈무리

이론가라기보다 탁월한 대중정치가였던 한손은 ‘국민의 집’ 구호에서 진가를 드러낸다. 나라는 모든 국민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집’이 되어야 한다는 이 은유는 엄청난 대중적 설득력을 발휘한다. 진보적 국가를 건설하도록 사람들의 집단적 상상력을 자극한 것이다. 한손을 중심으로 이론과 실무 모두에서 출중한 정책 전문가였던 비그포르스와 묄레르가 하나로 뭉쳐 스웨덴을 실존하는 유토피아로 만들어 나간다.

잠정적 유토피아, 상상력이 만든 미래

“마르크스주의에서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라는 유토피아가 있었습니다. 들을 때는 좋은데 행동으로 이행되지는 않아요.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유토피아는 현실 비판용으로는 좋으나 현실 변화용으로 실제 행동까지 옮기기는 힘들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20세기 초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 변화를 예상했다. 그들에게는 혁명이 일어나 자본주의가 망할 것이라는 신념이 있었다. 그러나 ‘낙원이란 인류 역사의 시작에도 없었고 마지막에도 없을 것’이라는 비그포르스의 말처럼 시간이 흘러도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기대는 무너지고 사회에서 유토피아에 대한 회의감이 일기 시작했다. 급기야 현실의 문제점을 하나씩 고쳐 나가는 것이 사회주의 운동이라는 변화된 시각이 등장했는데, 비그포르스의 ‘잠정적 유토피아’가 바로 그것이다.

“블루프린트(Blue Print,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등 과거의 유토피아)는 꽉 짜여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비그포르스의) ‘잠정적’이란 말은 대중을 어디로 인도해야 하고 대중이 뚫고 나가야 하는 길잡이 역할을 포함해요. 지속적인 수정이 가능하다는 뜻이죠.”

비그포르스는 자신이 제시한 유토피아를 ‘길잡이’에 비유했다.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은 ‘독재자’가 아니라 ‘멘토’인 것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해진 매뉴얼인 ‘청사진’이 아니라 내가 원래 만들고자 했던 미래가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행동지침’이다. 우리가 집단적으로 세상을 바꾸어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행동지침으로서 ‘길잡이’이다.

비그포르스가 열망한 유토피아는 보이지 않는 ‘미래’에서 날아와 우리 머릿속에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몇 십 년, 몇 백 년 후에나 찾아올 낙원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라던 그의 말처럼 철두철미 ‘현재’에서 생겨나고 또 ‘현재’에 발 딛고 있다. 그는 기존의 유토피아, 곧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실조건과는 무관하게 일정한 정치적 이념과 가치로부터 연역된 것은 허상일 뿐이며 ‘청사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청사진으로 잠깐의 호기심은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정말로 그런 이상이 실현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줄 수는 없다. 따라서 사람들 마음속 상상력과 도덕적 열망을 자극해 구체적∙집단적 행동을 끌어낼 수도 없음을 지적했다.

▲ 홍 소장은 비판에서 멈추지 말고 타인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더 나은 세상을 그려보는 것을 제안한다.
“사람들이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분노하고 좌절하면서 변화는 시작됩니다. 인간은 좌절로 끝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죠.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고 여기에 상상력을 채워 ‘가상의 미래’를 만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바로 비그포르스가 말한 ‘잠정적 유토피아’인 거죠.”

잠정적 유토피아가 일상 정치와 결합하면 갖가지 개혁을 일관성 없이 백화점 식으로 늘어놓는 정치적 한계를 면할 수 있다. 홍 소장은 “모든 정치는 가치와 이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을 설득하고 현실적인 합의를 이끌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쟁점마다 정당 특유의 이념과 가치에 기초한 입장과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을의 정당’, ‘50대의 정당’ 등 개별 사안에 맞춰 정당의 성격을 바꾸는 것을 멈춰야 한다.

일상의 정치는 현실세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쟁점들을 끌어안아야 하는데, 잠정적 유토피아와 결합함으로써 각각의 사안에서 일상활동을 일관된 방향으로 이끌어줄 길잡이를 갖게 된다. 이로써 일상 정치활동은 잠정적 유토피아의 비전을 중장기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는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불만

“이제까지 (유토피아를 위해) 사회적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천재들의 특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좌절이나 불만은 누구나 가지고 있어요. 모두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정적 열망’이죠.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동력은 엘리트의 특권이 아니라 바로 이런 것들이거든요. 대부분 참을 수 있지만 심한 것은 한과 응어리가 되죠. 내집 마련, 등록금 해결, 청년실업 해소 등은 마음속 한이 된 거예요.”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등록금’이나 ‘집’ 문제가 해결된 세상을 상상한다. 부정적 열망에서 비롯된 현실 비판도 누구나 하고 있다. 홍 소장은 비판에서 행동을 멈추지 말고 부정적 열망에 숨은 ‘다른 세상에 대한 열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즉, 타인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더 나은 세상을 그려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큰 병에 걸려 치료비를 걱정하는 사람이 느끼는 좌절에서 ‘연 의료비 지출비용이 100만원을 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개인 보험수가를 4만원씩 올리는 ‘건강보험 하나로’를 고안한다. 이것이 있을 법한 유토피아, 잠정적 유토피아다.

“태양의 나라’나 ‘아틀란티스’ 등은 철학자의 상상에서 나온 유토피아입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초라한 유토피아지만, 이 세상은 현실의 부정적 열망에서 나온 세상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열정과 행동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즉 대중운동을 만들어 내는 거죠.”

하지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불만과 좌절은 무수하다. 그래서 보다 가치 있는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사회민주적 가치와 현실적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한 예로 주택문제는 모든 사람이 집을 소유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투기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소유자가 될 필요 없이 세입자의 권리를 증대시키는 것이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정책 방향이었다. 또한 현대사회의 산업 구조상 비정규직을 없앨 수 없다면 ‘비정규직 철폐’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렇듯 부정적 열망을 선택해 잠정적 유토피아로 향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냉철한 사회연구를 통해 실현 불가능한 부분을 솔직하게 사람들에게 말해야 한다. 몇 가지 부정적 열망을 수학에서 연립방정식 풀듯 서로 모순되지 않게 풀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방정식 몇 개를 동시에 만족하는 ‘답’을 찾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하나의 정책만 찾는다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기 때문이다.

▲ '비그포르스,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라는 주제로 강연 중인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 임경호

“정책을 만들 때 가장 힘든 부분은 개별 정책들 간 모순과 충돌입니다. 예를 들어 이자율을 올려 저축을 장려하면 중소기업은 자금회전에 뜻하지 않은 피해를 보게 되거든요. 그래서 이자율을 일정 수준 이상 올릴 수 없게 되는 거죠. 개별 정책으로 이상적인 방향을 찾기 힘든 이유가 여기 있어요.”

두 번째는 이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인 사회연구이다. 심화 연구를 진행하다 처음에 만든 잠정적 유토피아의 현실성에 모순을 발견하면 바로 다시 시작한다. 필요할 때마다 지우고 새로 쓰고 수정을 반복한다. 공사판의 설계도처럼 완벽하게 짜인 계획대로 수정 없이 가는 것은 잠정적 유토피아가 아니다. 진행하다 보면 틀릴 수 있고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현재 상태에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스웨덴 사회가 소득세 80%까지 감내하는 이유

“1919년 비그포르스가 작성한 ‘예테보리 강령’에 스웨덴 복지국가의 모든 요소가 담겨 있죠. 이를테면 한 달짜리 유급휴가, 출산수당, 평등한 교육기회, 압도적으로 누진적인 상속세와 소득세 등… 1919년 당시 사람 중 이것이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 강령이 스웨덴 사람들의 집단 상상력을 사로잡았어요. 그리고 잠정적 유토피아 형태로 한 발씩 나갔고 50년 후 현실에서 실현됐어요.”

모든 역사∙정치학자들은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는 사회민주당의 뛰어난 지도력 덕분에 실현됐다는 것에 동의한다. 수십 년에 걸쳐 빈부를 가리지 않고 모든 국민의 합의를 이끌었다. 저항 없이 부자들의 소득세를 80%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사회적 경제와 잠정적 유토피아에 있다. 홍 소장은 “우리도 모든 국민이 함께 할 수 있는 소박하고 간절한 유토피아를 꿈꿔야 한다”고 말했다.

“생산의 목적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돈이 없어서 생산을 계속할 형편이 못 되며,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도록 해줄 형편이 못 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에 속지 마십시오. 경제 메커니즘은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 경제 메커니즘 앞에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리라는 소리에 맞서서, 우리 사회민주당을 밀어주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요구하십시오. 인간이 자신들 생산 도구의 주인이 되어야 하며,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1938년 비그포르스 연설)

▲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촛불 행진'의 빗속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 집회 참가자들. 경제 성장 집중에서 벗어나 잠정적 유토피아를 향해가는 한국사회를 볼 수 있다. ⓒ 손지은

1930년대 스웨덴이 했던 고민을 2013년의 한국이 안고 있다. 경제성장 이면에는 제대로 된 살림살이 경제를 통한 좋은 삶에 대한 욕구가 있다. 경쟁을 최우선 기치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긴 결과 경쟁력 있는 개인은 좋은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현재’와 ‘미래’는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 나간다.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금 여기에 어떠한 희망을 품고 ‘가상의 미래’를 만들어가는가,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따라 실제 미래는 만들어진다. 부정적 열망을 토대로 잠정적 유토피아를 상상하는 개인, 그리고 개인의 목소리를 토대로 한, 장기적 비전을 가진 정당의 투명성. 이를 통해 대한민국은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이루는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될 것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사회교양특강>은 김현대, 박상훈, 전중환, 유시민, 김동춘, 이종현, 홍기빈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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