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시사맥(脈)] 국가수사본부
국가수사본부장으로 발탁됐던 정순신 변호사가 지난달 25일 낙마했습니다. 정 변호사의 아들이 고등학교 시절 학교폭력을 저지른 사실과 징계로 받은 전학 처분을 취소하기 위해 정 변호사 부부가 교육청에 재심 청구, 행정소송, 집행정지 신청까지 낸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가수사본부는 어떤 기구이길래 이렇게까지 인사 검증이 화제가 된 걸까요?
국가수사본부는 수사제도가 대대적으로 개편되면서 확대된 경찰의 수사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신설된 경찰청 산하 조직입니다. 2020년 12월 경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2021년 1월 1일 출범했습니다. 국가수사본부 산하에는 수사국, 사이버수사국, 형사국 등이 설치됐고, 내년 1월부터는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도 넘겨받을 예정입니다. 사실상 모든 수사를 총괄하는 기구인 셈이죠.
국가수사본부의 수장인 국가수사본부장은 전국 시·도 경찰청장과 경찰서장을 포함해 3만 명이 넘는 수사 경찰을 지휘‧감독하는 막강한 자리입니다. 직급은 치안정감이죠. 치안정감은 경찰청장 직급인 치안총감의 다음 직급입니다. 경찰조직의 2인자인 셈이죠. 하지만 본부장은 수사의 독립성을 위해 개별 사건 수사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경찰청장의 지휘도 받지 않습니다.
국수본은 검찰개혁 과정에서 탄생했습니다. 한국의 검찰은 기소권뿐 아니라 수사권, 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 형 집행권 등 권한이 막강했습니다. 그간 경찰은 사건을 수사할 때 검찰의 지휘를 받았고, 자체적으로 수사를 종결할 수도 없었죠. 비록 법원의 통제를 받기는 하지만 검찰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문재인 정부 당시 검찰개혁에 속도가 붙으면서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려는 움직임이 크게 일었습니다. 수사는 경찰이 하고, 검사는 기소만 담당하자는 겁니다. 두 차례에 걸친 수사권 조정 끝에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는 부패·경제 범죄로 대폭 줄었습니다.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은 폐지됐고, 경찰도 독자적으로 사건을 종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전에는 수사가 끝나면 모든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는데 이제는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사건만 송치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검찰은 수사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경찰에 보완을 ‘요청’할 수 있지만 경찰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만큼 경찰의 수사 권한은 막강해졌습니다.
수사 권한을 경찰로 대폭 이전하는 논의가 진행되면서 역으로 ‘공룡 경찰’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이 때문에 1차 수사권 조정을 할 때인 지난 2018년, 조국 당시 대통령 민정수석은 경찰 업무를 수사와 행정으로 분리하고, 자치경찰제를 도입하는 경찰 개혁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업무를 나누고 권력을 분산해서 경찰의 비대화를 막겠다는 겁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경찰청 내 독립조직인 국수본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경찰개혁은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중앙조직인 경찰청에만 국수본이 생겨났을 뿐 시·도경찰청과 경찰서 소속 경찰들은 지방청장과 서장의 수사 지휘를 받고 있습니다. 자치경찰제도 아직 자리 잡지 못했죠. 특히 경찰 내부에 국수본을 두는 것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국수본을 지휘하는 본부장은 임기 2년에 중임도 할 수 없는 ‘개방직’으로 결정됐습니다. 경찰뿐 아니라 판사‧검사‧변호사 직이나 법률학‧경찰학 분야 조교수 이상 직에 있었던 사람도 지원할 수 있게 한 거죠. 검찰 출신인 정순신 변호사가 임명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초대 국수본부장 공모 때도 전현직 경찰과 변호사 등 5명이 지원했었고, 이번에도 검찰 출신인 정순신 변호사와 경찰 출신 2명이 지원했습니다.
정순신 변호사가 낙마하면서 지난달 26일부터 본부장 직무대행 체제에 들어갔습니다. 국수본 2인자인 김병우 수사기획조정관이 본부장 직무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김병우 조정관의 계급은 치안감으로 치안정감인 주요 지방청장 계급보다 낮습니다. 계급 사회인 경찰 문화를 볼 때 일선 지방청에 대한 수사 지휘가 정상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울 거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국수본은 언제쯤이나 정상화될 수 있을까요? 이 주의 시사맥(脈), 국가수사본부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