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시사맥(脈)] 퐁니‧퐁넛마을 학살 사건

지난 7일, 베트남인 응우옌 티탄(63) 씨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승소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에게 3000만 100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라고 판결했습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에 한국군의 불법행위가 있었고, 응우옌 씨에게는 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한 겁니다. 당시 베트남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지난해 8월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 씨(오른쪽)와 목격자인 응우옌 득 쩌이 씨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KBS
지난해 8월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 씨(오른쪽)와 목격자인 응우옌 득 쩌이 씨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KBS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중부 꽝남성에 있는 퐁니마을에는 오전부터 총소리가 들렸습니다. 당시 8살이던 응우옌 티탄 씨는 가족들과 함께 집 안 방공호로 숨었습니다. 그러나 “쌍꺼풀 없는 눈에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이들은 숨어있던 사람들을 발견했고, 나오지 않으면 수류탄을 던지겠다는 시늉을 했습니다. 응우옌 씨의 가족들은 한 명씩 밖으로 나왔습니다. 한국군은 순서대로 총을 쏴 살해했습니다. 이후 마을에는 불을 질렀습니다. 옆구리에 총을 맞은 응우옌 씨는 간신히 구조돼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날 응우옌 씨의 엄마와 남동생, 언니, 이모, 조카 등 가족 5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날 퐁니‧퐁넛 마을에서는 주민 70여 명이 숨졌습니다. 한국 해병대 제2여단(청룡부대)의 소행이었습니다. 당시 청룡부대는 작전을 수행하던 중 저격을 당하자 근처에 있던 퐁니마을로 진입해 비무장 상태이던 주민들을 학살하고 마을에 불을 지른 겁니다. 당시 참상은 학살 직후 현장에 도착한 미군이 촬영한 사진으로 기록됐습니다.

지난 2020년 4월 응우옌 티탄 씨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한국군이 가족들을 학살하고 자신은 중상을 입었다며 손해 배상을 청구했습니다. 그의 삼촌이자 전쟁 당시 남베트남 민병대 소속이던 응우옌 득 쩌이 씨도 법정에 출석해 증언했습니다. 망원경을 통해 학살 현장을 직접 봤고, 대화와 생김새를 통해 한국군이라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당시 베트남에 파병됐던 참전 군인도 법정에 출석해 “중대원들이 민간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자 중대장이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해 살해했다고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1964년 남북 베트남 사이의 내전에 개입하면서 전면전으로 확대됐습니다. 1973년 미군이 철수하자 불과 2년 만에 남베트남 정부가 무너졌죠. 한국은 1964년 8월부터 1973년 3월까지 8년 6개월 동안 총 32만 명을 파병했습니다. 5천여 명이 죽었고 1만여 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13만여 명이 고엽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당시 가해자가 정말 한국군이 맞는지였고, 응우옌 씨 개인이 소송을 낼 권리가 있는지, 마지막으로 소멸시효가 지난 것이 아닌지였습니다. 한국 정부는 북베트남의 지원을 받던 베트콩이 한국군으로 위장했을 가능성이 있고, 한국군이 민간인을 살해했더라도 게릴라전으로 전개된 베트남전의 특성상 정당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1965년 한국과 남베트남 정부 사이에 체결된 “한월군사실무 약정”을 근거로 한국군에 월남 측이 피해를 입었을 경우 양국 간 별도 협상을 거쳐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응우옌 씨가 한국 법원에 소송을 낼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건이 일어난 것이 이미 50여 년이 더 지나 소멸시효가 만료됐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응우옌 티탄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응우옌 씨의 가족이 피해를 본 사실이 인정되고, 피해자와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가해자는 해병 제2여단 1중대 소속 군인들로 한국군이 맞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실무 약정은 베트남 국민인 원고의 청구권을 배제하는 법적 효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교단절 등 응우옌 씨가 소송을 제기할 수 없는 사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소멸시효의 예외를 인정했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겁니다.

한베평화재단은 지난 2020년 8월, 베트남에서 총 130여 건의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 있었고, 희생자는 1만여 명에 이른다고 밝혔습니다. 국가 차원의 조사 결과는 아직 없습니다. 응우옌 씨가 피해 배상을 받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55년이었습니다. 이 주의 시사맥(脈), 퐁니‧퐁넛마을 학살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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