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시사맥(脈)] 중대선거구제

지난 2일 윤석열 대통령이 현행 소선거구제의 대안으로 중대선거구제를 제시했습니다. 소선거구제는 양대 정당을 공고화해 원내 다양한 정당 출현을 막아 선거 때마다 개선해야 될 문제로 거론됩니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선거구제 개편에 관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내년 4월 10일 치러지는 22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 획정 법정시한인 오는 4월 10일까지 선거제도 개편을 이뤄내겠다고 하네요. 여야 정치권 모두 현행 소선거구제를 손질하자는 것에는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다만,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하는 데는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대선거구제도 만만치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죠. 소선거구제가 가진 문제와 함께 중대선거구제가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이 주의 시사맥(脈)에서 알아보겠습니다.

국회 의결안 상정 중인 의원들. KBS
국회 의결안 상정 중인 의원들. KBS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산물 소선거구제, 지금은?

현재 우리나라는 소선거구제를 택하고 있습니다. 소선거구제는 1개 선거구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의원 1명을 선출하는 방식입니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 이후 만들어진 국회의원선거법을 통해 시작됐습니다. 소선거구제 시행 직전인 제4·5공화국 때까지는 1개 선거구에서 2명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시행했습니다. 지금은 소선거구제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지만, 당시엔 반대로 중대선거구제가 집권 여당의 안정적 의석 확보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소선거구제는 당시 민주화 투쟁의 산물로 등장했지만 한계도 명확합니다. 최다 득표를 한 1명만 당선되기 때문에 대량의 사표를 만들어내죠. 다른 후보에게 투표한 모든 표가 사표가 되기 때문이죠. 결국 유권자 표심이 국회 의석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해 대표성 문제가 제기됩니다.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차단해 거대 양당 체제를 강화하고, 지역주의를 심화시킵니다. 실제 2020년 21대 총선에 참여한 2874만여 명의 유권자를 분석했을 때, 10명 중 4명(43.7%·1256만7432표)이 던진 표는 사표가 됐죠. 국민의힘은 영남지역에서 55.9%를 득표하고 의석은 65석의 86.2%인 56석을 차지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에서 68.5%의 득표율로 28석의 96.4%인 27석을 차지했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비례대표제가 있지만, 그 비율이 낮아 전체 의석 구조에 영향을 끼치기에는 힘이 부족합니다. 거대 양당 후보가 아니면 당선을 바라기 어려운 정치 환경을 구축하게 됐습니다. 공천받기 위해서는 각 당에서 공천을 좌우하는 몇몇 실세와 극단적 지지층의 눈치만 살펴야 하는 거죠. 일각에서는 이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소선거구제를 지목하고 있습니다.

소선거구제 대안으로 제시되는 중대선거구제

소선거구제의 폐해를 막는 대안으로 중대선거구제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중대선거구제는 선거구의 범위를 넓히는 대신, 1개 선거구 안에서 2명 이상의 대표를 뽑는 방식입니다. 사표를 줄이고 거대 정당으로 표가 집중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거죠. 무소속이나 군소 정당 후보가 차순위로 당선될 수 있어 원내 다양성과 대표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으로 거론됩니다.

중대선거구제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소선거구제에서는 낙선했을 2, 3등 후보도 당선 가능합니다. 호남에서 국민의힘이, 영남에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나올 수 있죠.

하지만 장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후보자와 군소 정당이 난립하거나 선거구가 커지면서 수반되는 비용 증가로 정치 신인이 진출하기 어려운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특히 한 정당에서 여러 명의 후보를 공천할 경우 지역주의 타파라는 목표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해 6·1 지방선거에서 전체 기초의원 선거구 1030곳 중 30곳에서 3~5인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시범 실시했습니다. 하지만 30곳에서 당선된 109명 가운데 국민의힘과 민주당 소속 당선자가 105명으로 96.3%나 되고, 소수 정당은 4명에 불과해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한 선거구에 복수 공천된 거대 양당 후보들에게 쏟아진 몰표 탓이 크죠. 결국 지역 다양성을 높이고, 민의의 대표성을 확대하려는 목적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를 두고 중대선거구제가 거대 양당 독식 체제를 타파하기는커녕 양당의 동반 부패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걱정 어린 시선이 뒤따릅니다.

중대선거구제, 모범답안 맞을까?

결국 중대선거구제가 선거제도의 진정한 모범답안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민주주의가 안착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다수의 국가에서도 여러 나라에서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1928년 중의원 선거부터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했던 일본도 1996년 소선거구제로 전환했어요. 거대 정당의 복수 공천으로 같은 당 후보자 사이에 경쟁이 과열되며 파벌정치, 계파정치, 정치권 부정부패 등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중대선거구제가 지목됐기 때문이죠.

중대선거구제가 되면 필연적으로 선거구 면적이 넓어지고, 유권자 수도 많아집니다. 벽보, 공보물, 유세차량 등 더 많은 선거 비용이 필요해집니다. 유권자 입장에선 후보자 수가 크게 늘면서 후보들의 면면을 상세히 파악하기 어려워지죠. 인지도가 높은 유명 정치인, 조직을 동원하고 유지할 역량이 있는 중진 또는 거대 양당 후보에게 더 유리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소선거구제의 폐해를 절감하고 있지만 중대선거구제의 문제점은 우리가 잘 모르고 있다"며 부정적인 뜻을 내비쳤습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불을 붙인 중대선거구제 논의에 신중론을 이어가고 있어요. 이재명 대표는 "제3의 선택이 가능한 정치 시스템이 바람직하고 그 방식이 중대선거구제여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다층적 논의 필요한 선거구제 개편

중대선거구제로 바뀔 경우 지금 있는 선거구가 통합되거나 사라지는 곳이 대거 나오게 됩니다. 결국 핵심은 현 제도의 수혜자인 현역 의원들이 선거구제 개편에 동의할지에 있습니다. 현행 선거구제 개편 논의가 위성정당 논란을 빚었던 비례대표 관련 부분을 수정하는 수준에서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죠.

양당 정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 개편 논의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소선거구제냐 중대선거구제냐 찬반 논란만 벌이는 것은 현행 선거구제 문제를 너무 단순화시킬 뿐입니다. 인구가 집중돼 있는 수도권과 인구가 소멸되고 있는 지방 간 대표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도 고민이 필요합니다. 갈수록 깊어지는 세대와 계층 갈등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수렴할지 논의하는 것도 필수죠.

그런 점에서 선거법에 규정된 선거구획정위원회처럼 선거제도 개편 작업을 의원들이 아닌 외부 위원회에 맡기자는 의견도 대안으로 제시됩니다. 의원들이 선거법 개정안을 직접 발의하고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위원회가 제안한 법안에 대해 의원들은 찬반 표결권만 행사하게 하자는 주장입니다. 분명한 건 그 정도로 국회의원들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게 선거제도 개편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주의 시사맥(脈), 중대선거구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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