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시사맥(脈)] 안락사

최근 프랑스가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프랑스는 그동안 ‘적극적 안락사’를 불법으로 규정해왔는데요, 지난해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윤리위원회가 적극적 안락사를 검토하겠단 입장을 내비치면서 논의가 다시 활발해졌습니다. 지난 3일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관련 법안을 여름 전까지 마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사흘 일정으로 중국을 국빈 방문한 5일 베이징에서 교민들을 향해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사흘 일정으로 중국을 국빈 방문한 5일 베이징에서 교민들을 향해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락사는 회복의 가망이 없는 중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단축해 사망케 하는 의료행위입니다. 방법에 따라 ‘소극적 안락사’, ‘적극적 안락사’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소극적 안락사’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시킴으로써 사망케 하는 것이고 ‘적극적 안락사’는 일부러 독극물 등을 주입해 사망케 하는 것입니다. 적극적 안락사와 비슷하지만 다소 구분되는 것으로 ‘조력 자살’이 있습니다. 의사가 독극물을 주입하는 대신, 환자가 이를 처방받아 스스로 먹거나 주입하는 것이 조력 자살입니다.

유럽 국가 가운데는 이미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한 곳이 많습니다.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국가는 네덜란드입니다. 2002년 안락사를 처음 도입한 네덜란드에선 매년 평균 약 6,000명이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다고 합니다. 그밖에도 유럽의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그리고 북미의 캐나다, 남미의 콜롬비아 등 6개국이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스위스는 적극적 안락사를 불법으로 규정했지만, 조력 자살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외국인의 조력 자살을 허용하는 유일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스위스의 한 비영리 단체가 조사한 바로는 매년 약 200명 이상의 외국인이 조력 자살을 위해 스위스를 찾는다고 합니다. 지난해에는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이 “스위스에서 존엄사 하고 싶다”고 선언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반면 적극적 안락사를 강하게 반대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주로 가톨릭 전통이 뿌리 깊은 나라입니다. 지난해 2월, 이탈리아에선 조력 자살 합법화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무산됐습니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반 알현’을 주례하는 자리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규탄하는 등 반대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결국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전원회의 심리 끝에 이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영국에서도 조력 자살 법안이 네 차례나 의회에 올라갔지만 번번이 부결됐습니다. 종교계 지도자들이 생명윤리에 어긋난다며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도 적극적 안락사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적극적 안락사는 불법입니다. 다만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의료는 중단할 수 있게 됐습니다. 소극적 안락사를 합법으로 인정한 셈이죠.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됐습니다. 지금까지 ‘사전의향서’(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명한 한국인은 164만 명에 달합니다. 사전의향서란 19세 이상인 사람이 장차 자신을 위한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직접 작성한 문서입니다. 사전의향서에 서명을 한 사람은 자신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됐을 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게 됩니다. 평균 수명 연장에 따른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안락사 도입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함께 커지는 추세입니다. 지난해 서울대병원 연구팀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76%가 안락사 입법화에 찬성했다고 합니다.

삶을 끝낼 권리를 둘러싼 논의는 계층·계급 격차의 문제로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은 연명의료에 관한 사항을 권장하는 보건복지부 소관의 공공기관입니다. 이 기관을 대표하는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은 지난해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안락사가 합법화될 경우 사회적 약자의 원치 않는 결정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연명치료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느낀 취약 계층은 ‘치료 받지 말고 죽음을 선택하라’는 사회적 압력을 더 많이 느끼게 될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안락사 도입 여부보다 누구나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적극적 안락사 합법화를 추진하겠다는 프랑스도 앞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 많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이 구성한 시민 자문기구는 환자가 미성년자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입니다. 안락사에 대한 입장이 정당별로 나뉘어 있어서 정부가 마련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지도 아직 미지수입니다. 좌파 진영과 일부 중도파는 안락사에 찬성하고 있지만 우파 진영은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 주의 시사맥, 안락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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