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21년 한국디지털저널리즘어워드 디지털스토리텔링상 수상작 – 스쿨존 너머

7월 12일부터 보행자를 보호하는 교통규제가 강화된다. 그 핵심 가운데 하나는 어린이보호구역 내 신호기가 없는 횡단보도 주변에서는 보행자가 있건 없건 차량이 반드시 일시 정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량보다 어린이 보행자를 우선 고려하라는 취지다.

제도 강화와 인식 전환을 이끌어내기까지 많은 언론보도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시사주간지 <시사인>의 ‘스쿨존 너머’ 기획이다. 이 기사는 어린이 교통사고가 발생한 현장을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추적하고 분석했다. 사고 발생 지점을 직접 방문하며 어린이의 시점에서 걸어보고, 각 현장의 특성을 데이터에 기초해 분석했으며, 인포그래픽과 가상현실(VR)을 동원해 ‘디지털 스토리텔링’상 수상작에 걸맞은 이야기를 보도했다.

▲ '스쿨존 너머' 기획을 실은 시사인 733호 표지. ⓒ 시사인
▲ '스쿨존 너머' 기획을 실은 시사인 733호 표지. ⓒ 시사인

데이터 수집 후 현장방문

취재진은 전수조사와 샘플링을 통해 어린이 안전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경찰청과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서 2007년부터 2020년 사이 만 13세 이하 사망, 중상, 경상, 부상 교통사고 신고 데이터 7만 6482건을 모아 지도에 표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사고 발생이 잦은 지역, 아동 인구수에 비해 사고가 많이 난 지역, 사망사고가 빈번한 지역 등 전국 38개 지역을 추출하여 직접 찾아갔다.

현장 취재를 마친 기자들은 어린이 교통사고 유형 또는 원인으로 우회전 횡단보도,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불법 유턴과 음주운전, 인도 없는 길, 인도 위 차량운행, 스쿨존 안팎 등 몇 가지로 추렸다. 가령 ‘우회전 횡단보도 위에서 죽다’ 대목은 교차로에서 차량이 우회전하다 발생한 어린이 사망사고 사례를 모아 분석했다. 사고 지점의 도로 환경, 보행자 이동 시설, 주변에 어린이가 많을 법한 시설 등을 드러내고, 이에 대한 주민과 상인의 증언을 보도했다.

▲ 취재진은 어린이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점 중 38곳을 추출해 우회전 횡단보도, 어린이보호구역, 도로점용허가구역 등 사고 유형별로 나누고, 각 동네마다 사고 발생 지점을 지도에 표시했다. ⓒ 시사인
▲ 취재진은 어린이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점 중 38곳을 추출해 우회전 횡단보도, 어린이보호구역, 도로점용허가구역 등 사고 유형별로 나누고, 각 동네마다 사고 발생 지점을 지도에 표시했다. ⓒ 시사인

사망사고 후 내려진 조치가 다른 어린이를 사고로부터 지켜냈는지도 진단했다. 2007년 이후 어린이 6명이 사고를 당한 지역에서는 신호체계를 바꾸고 노란색 스티커를 붙이는 등 여러 안전조치가 취해졌지만, 4년 뒤 같은 자리에서 또다시 어린이가 차에 치여 중상을 입었다.

경제 수준에 따라서도 격차 발생

일명 ‘민식이법’으로 불리는 도로교통법 및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2019년 국회를 통과했다. 이후 어린이보호구역 내 차량 규제가 강화됐다. 하지만 보호구역 바깥에서는 여전히 차와 보행자 통로가 구분되지 않아 서로 엉켜있었다. 어린이보호구역 밖에서도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난다는 통계를 근거로 취재진은 “길 위의 어린이에게는 위험의 시작 지점과 해제 지점이 따로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아이들이 자주 오가는 동선에 놓인 모든 도로에서 어린이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통계로 찾아낸 또 다른 문제는 경제 격차에 따라 사고 발생 빈도가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부유한 지자체일수록 어린이 교통사고 발생 비율이 낮았다. 서울시 강남 3구의 아동 1인당 연간 평균 교통사고 건수는 다른 지자체에 비해 훨씬 적었지만, 같은 서울에서도 서민들이 사는 중랑구·금천구·강북구 등에선 교통사고 건수가 더 많았다. 경기도 성남시 안에서도 분당구의 어린이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구도심인 수정구에 비해 적었다.

▲ 일러스트를 가미한 인터랙티브로 지역별 어린이 보행환경의 격차를 보여줬다. ⓒ 시사인
▲ 일러스트를 가미한 인터랙티브로 지역별 어린이 보행환경의 격차를 보여줬다. ⓒ 시사인

문제는 주거 환경의 차이에 있었다. 주택 가격이 낮은 지역에는 주거 공간과 도로 사이 간격이 좁은 곳이 많았다. 주택 앞에 바로 도로가 있고, 그 도로에는 보도가 따로 없었다. 차와 사람이 뒤섞여 다녀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어린이의 시선으로 본 블랙박스

이 기획은 어린이 교통사고 문제를 성인이 아닌 어린이의 시선으로 풀어간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에 적합한 다양한 편집으로 기사를 더 선명하고 재미있게 전달했다.

예를 들어,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통학로의 교통 상황을 살핀 연구를 자세히 소개했다. 초등학생 24명에게 안경처럼 생긴 영상 촬영장비 ‘구글 글래스’와 액션캠을 달게 하고 등하굣길을 촬영했다. 어린이의 시야를 절반 이상 가리는 장애물이 모두 175차례 나타났고, 방해물 가운데 45.8%는 도로에 주정차한 차량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방해물을 피하려고 차도 한가운데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런 어린이를 향해 자동차 운전자는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다)라고 지적한다.

또한 취재진은 360도 가상현실(VR) 영상을 동원해 어린이 시선에서 본 교통안전의 실체를 드러냈다. 사고 현장의 보행 환경을 디지털로 거의 통째로 옮겨온 것이다. 이를 통해 일반 성인의 잣대로 어린이의 교통 안전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신체적 조건의 차이에 따라 어른과 어린이가 직면하는 교통 환경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취재진은 어린이의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도로 위 어린이 혐오를 확산하는 행태도 비판했다. 민식이법을 위반해도 대부분 집행유예에 그치고, 실형 선고는 2021년 10월 기준으로 지난 1년간 단 한 건에 그친 ‘솜방망이 처벌’의 현실도 고발했다.

▲ 인천 신흥동의 한 초등학생이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화물차에 치여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곳. ‘스쿨존 너머’ 기획은 360도 가상현실 영상으로 독자들에게 사고지점의 교통 및 보행환경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 시사인
▲ 인천 신흥동의 한 초등학생이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화물차에 치여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곳. ‘스쿨존 너머’ 기획은 360도 가상현실 영상으로 독자들에게 사고지점의 교통 및 보행환경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 시사인

시선의 전환으로 맺은 결실

민식이법 논쟁을 다룬 기사는 많은 언론에서 나왔다. 하지만 ‘스쿨존 너머’는 갈등을 기계적으로 중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기사를 써보자는 문제의식이 취재·보도의 바탕을 이뤘다. <시사인>의 ‘스쿨존 너머 기획은 여기를 눌러 읽을 수 있고,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여기로 들어가면 된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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