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20년 제22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수상작 – 나는 티슈노동자입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인권신장에 힘을 보탠 보도에 1997년부터 매년 언론상을 시상해왔다. 제1회 언론상은 ‘나는 살인범이 아니다-사형수들의 절규’를 방송한 MBC <PD수첩>과 살인사건에 휘말려 경찰의 가혹행위로 허위자백을 한 택시 기사 이야기를 연속보도한 <광주매일신문>이 수상했다. 초기에는 권력기관에 의한 인권침해를 고발하는 기사가 수상작에 주로 선정됐다. 이후 여성과 성소수자, 난민과 이주민 등 그간 주목받지 못한 이들의 인권을 다룬 기사들로 수상작의 영역이 넓어졌다.

<서울신문>이 2019년 보도한 제22회 수상작 ‘10대 노동 리포트: 나는 티슈 노동자입니다’는 그래서 의미가 크다. 노동인권을 보도한 기사는 많았지만 10대 노동을 들여다본 기사는 귀하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와 현장실습 등 일터에 나가 다친 10대 노동자는 한 해 1000여 명이다. 매일 2.7명 정도의 10대가 산재를 입는 셈이다. 무엇이 그들을 죽거나 다치게 했을까. 일하는 10대들의 이야기를 <서울신문>의 고혜지·기민도·김지예·박재홍·홍인기 기자가 5차례에 걸쳐 보도했다.

▲  제22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수상작 ‘10대 노동 리포트: 나는 티슈 노동자입니다’ © 국제앰네스티한국지부
▲  제22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수상작 ‘10대 노동 리포트: 나는 티슈 노동자입니다’ © 국제앰네스티한국지부

위험한 일 도맡는 10대 ‘티슈 노동자’

지난 2017년 11월 제주의 한 생수 공장에서 현장실습 중이던 고등학생 이민호(18) 군이 적재 벨트에 끼여 숨졌다. 취재팀은 2년 후 제주 양지공원 제2추모관에서 민호 군의 아버지를 만났다. 기자를 만난 아버지 이상영(56) 씨는 이렇게 말했다. “회사 사장이나 동료, 상사, 교사 중 한 명이라도 ‘이건 학생이 할 일이 아니야’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같은 달 만난 김용만(58) 씨도 현장실습을 나갔던 아들을 잃었다. 김 씨의 아들 동균(18) 군은 2015년 12월부터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일했다. 현장실습 표준협약서 내용이 지켜지지 않는 곳이었다. 체중은 3개월 동안 70kg에서 45kg으로 줄었다. 김 씨는 이듬해 5월 경찰로부터 "경기 광주시에서 아드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일하다가 다치거나 죽는 10대는 이들만이 아니다. 취재팀은 이정미 정의당 의원과 협업해 보도 당시를 기준으로 최근 3년 동안 정부에 접수된 산재 신청 승인 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업무 중 사고를 당해 산재 승인을 받은 19세 미만 노동자는 3025명이었고 그중 68.7%가 비정규직이었다. 산재 신청 제도를 모르는 10대를 포함하면 실제로는 더 많은 청소년이 일터에서 다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10대들의 일터는 열악했다. 취재팀이 입수한 서울시교육청의 ‘노동인권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청소년들이 주로 일하는 업종은 뷔페·웨딩홀 안내(46.4%), 음식점(41.0%), 전단지 돌리기(24.8%) 순이었다. 근로 조건과 임금 수준이 낮은 곳에서 10대들이 일하는 것이다.

이런 곳에 10대들이 고용되는 이유는 또 있다. 홍인기 <서울신문> 기자는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취재 후기에서 “권리를 모르는 존재가 필요해서” 사장들이 10대를 고용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적었다. 10대들을 뽑아 쓰고 버리면 되는 휴지처럼 만만한 존재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10대들의 노동 현장 추적한 기자들

청소년이 일하는 현장을 성인인 기자가 직접 취재하기는 쉽지 않다. <서울신문> 기자들은 10대 5명과 협업했다. 특성화고연합회, 청소년 유니온 등 청소년 단체와 각 지역의 청소년노동인권센터, 교육청의 도움을 받아 만났다. 5명 중 2명이 일하고 3명은 구직 활동을 했다. 이들은 3주간 매일 업무 전후로 전화와 메시지를 정리해 기자들에게 전달했고, 기자들은 이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일지 형식의 관찰기를 적었다.

10대 청소년들은 각자의 일터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일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학생이란 이유로 시급을 적게 받았다. 그런 관행이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점도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다.

▲ 10대들을 위한 ‘노동법 관련 전문가 조언'을 7가지로 정리해 소개했다. © 서울신문
▲ 10대들을 위한 ‘노동법 관련 전문가 조언'을 7가지로 정리해 소개했다. © 서울신문

<서울신문> 기자들은 생생하고 구체적인 개별 사례에 대한 취재와 함께 자료 분석, 설문 조사, 심층 인터뷰 등을 병행했다. 맨 처음 들여다본 건 서울시교육청의 비공개 보고서인 ‘서울 학생 노동인권 실태조사’였다. 이 보고서를 보면, 서울 시내 중·고교생 중 15.9%는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었다. 이중 절반(47.8%)이 임금 체불, 최저임금 미만 임금 지급 등 노동인권 침해를 겪었다. 유형별로 보면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경우가 37.1%로 가장 많았다. 욕설과 폭언을 들은 경우는 17.9%. 최저임금을 못 받았다는 응답도 12.4%였다.

▲ 취재팀은 ‘알바몬’과 함께 10대 노동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해 보도했다. © 서울신문
▲ 취재팀은 ‘알바몬’과 함께 10대 노동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해 보도했다. © 서울신문

또한, 취재팀은 ‘알바몬’과 함께 공동 온라인 설문 조사도 시행했다. 조사 결과, 욕설이나 폭언을 들은 경우가 37.2%, 최저임금 미만 임금을 받은 경우가 15.2%였다.

전국 중·고교생과 학교 밖 청소년 등 57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와 청소년 10명 심층 인터뷰도 진행했다. 이 조사에서 ‘노동인권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90.9%가 ‘그렇다’고 답했다. 홍인기 <서울신문> 기자는 <기자협회보> 인터뷰에서 “청소년들의 사례나 3주 관찰기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객관적으로 입증해줄 수 있는 데이터를 독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다양한 조사를 벌인 이유를 설명했다.

10대들을 위한 노동 교육

취재팀은 중·고등학교 교과서 25종도 분석했다. 학교에서는 노동을 거의 가르치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칠 때까지 노동 교육 수업 시수는 3.3시간이었다. 초·중·고교 전체 수업시수(1만 418시간) 가운데 0.03% 수준이다. 취재팀이 10대 노동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교육 현실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 이유다.

연재 기사의 마지막에서는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좌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송하민 청소년 유니온 위원장은 “청소년들이 일하는 이유가 생계유지를 위해서인 경우도 많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노동시장에 10대가 왜 진출해야 하는지부터 짚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유튜브 채널 ‘서울살롱’에 출연한 김지예 <서울신문> 기자도 10대들의 노동이 단순한 용돈벌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생계를 직접 해결해야만 하는 10대들이 “월세와 밥벌이를 위한 노동”에 나선다는 것이다.

3년 전 서울의 한 특성화고를 졸업한 김성재 씨(23)는 기사를 읽은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학생들이 작업하기에 아직 많은 곳이 열악한 환경 속에 있습니다. 학교뿐 아니라 기업에서도 안전과 부조리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고 규제를 강화해 최소한 실행이라도 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이 기사의 원문은 여기서 볼 수 있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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