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기] 베이비박스 둘러싼 두 가지 논란(하)

아빠의품 김지환 대표는 딸 ‘사랑이’의 출생신고를 하는 데 1년 5개월이 걸렸다. 당시 현행법으로는 친모만 출생신고가 가능해 비혼부인 그가 아이의 출생을 신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김 대표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수 없었다. 출생신고를 못 한 사랑이에게 주민등록번호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종일 아이를 돌보느라 경제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출생신고가 되지 않으면 신생아 건강보험을 들 수 없고, 신생아 예방접종도 원칙적으로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아빠의 품 김지환 대표. 출처 아빠의 품.
아빠의 품 김지환 대표. 출처 아빠의 품.

출생부터 시작해 전 생애에 걸쳐 모든 국민은 복지 등 행정서비스를 받는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등록번호 발급을 통해 행정 관리 시스템에 편입되어야 한다. 주민등록번호 발급을 위해서 필요한 절차가 출생신고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은 아이의 출생 1개월 내에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도록 하고 있다. 대부분의 아동은 출생이 신고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국제아동인권센터 등이 속한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가 지난해 전국 251개 아동복지시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출생 미등록 아동은 146명이었다.

출생이 신고되지 않은 원인을 조사한 결과,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된 경우’가 110건으로 75.3%를 차지했다. 베이비박스는 미혼모 등 양육이 어렵다고 판단한 부모가 주로 찾는 곳으로 국내에 두 곳 있다.

주사랑공동체 교회가 운영하는 베이비박스 옆에 놓인 메모지. 김수아 기자.
주사랑공동체 교회가 운영하는 베이비박스 옆에 놓인 메모지. 김수아 기자.

김 대표는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동의 출생이 신고되기까지 대략 다섯 달 넘게 걸린다고 설명했다. 아동복지법 제15조에 따르면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발견한 사람은 해당 지자체에 실종아동 신고를 해야 한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교회도 베이비박스에 아이가 들어오면 관할지 경찰서에 신고한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주사랑공동체 교회의 경우 관악경찰서에 알리는 식이다.

경찰에 신고된 아동은 관할구청을 거쳐 아동복지센터로 인계된다. 센터에서 아동을 일시적으로 보호하며, 관할지의 ‘사례결정위원회’ 결정을 반영해 입양, 가정위탁, 보육원 입소 등 아동의 보호 방법을 정한다. 원가정에 복귀하거나 입양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의 아동이 보육원에 맡겨진다. 아동이 보육원에 맡겨지면 해당 시설 원장을 후견인으로 아동의 출생을 신고할 수 있다.

‘베이비박스 아동’ 출생신고는 어떻게?

아동의 출생 미등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대표적으로 발의된 법안이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다. 출생 등록의 공백을 막기 위해 현행법을 보완하자는 취지는 같지만, 법안의 직접적인 목적과 세부 내용은 다르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에 출생신고 의무를 부과하는 법안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신생아가 태어날 경우 의료기관이 지자체에 출생 사실을 알려야 한다. 신생아 대부분이 병원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의료기관에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면 출생신고 공백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신생아 출생 장소의 99.8%가 병원이다.

정부는 2019년 5월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면서 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국가기관에 알리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공언했다. 21대 국회에서도 출생통보제 도입에 관한 법안이 9건 발의됐다.

출생통보제 법안의 주요 내용. 김수아 기자.
출생통보제 법안의 주요 내용. 김수아 기자.

출생통보제 도입에 반대하는 입장도 있다. 의료기관에 출생 신고 의무를 부과하면 산모가 신원을 감추고자 병원에서의 출산을 회피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도 병원에 과도한 의무를 부과하고 개인정보보호법의 취지에도 어긋날 소지가 있다며 반대한다.

아동 출생신고에 대한 관련 단체 입장. 김수아 기자
아동 출생신고에 대한 관련 단체 입장. 김수아 기자

지난 2020년 12월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보호출산법)’을 발의했다. 산모의 신원을 숨기고 아이의 출생을 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보호출산법 제1조는 법안의 목적을 “친생부모가 사생활의 비밀을 보장받은 권리와 자녀의 친생부모를 알 권리가 조화롭게 실현되도록 함”이라고 설명한다.

보호출산법은 산모가 상담 기관을 통해 보호 출산 의사를 밝히면, 산모가 지정된 의료기관에서 출산하고 자신의 신원을 숨길 수 있도록 했다.

보호 출산에 관한 특별법 주요 내용. 김수아 기자.
보호 출산에 관한 특별법 주요 내용. 김수아 기자.

주사랑공동체 교회 이종락 목사는 보호출산법이 2020년 발의됐을 때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이를 직접 양육할 수 없는 처지의 생모에게 본인과 아이 모두 안전한, 차선의 선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여 여성의 자기 결정권 역시 보장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지지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관련 단체들 가운데는 보호출산법 도입을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미혼모협회 김미진 대표는 보호출산제에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깔려 있다고 말한다. 그는 "미혼모가 가장 원하는 것은 편견에 구애받지 않고 아이와 함께 사는 것"이라며 법안의 취지가 미혼모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아동인권 단체에서는 보호출산법이 아동이 가정에서 자라나야 할 권리를 침해한다고 지적한다. 아동복지법 제4조 3항은 국가가 아동이 원가정에서 자라나도록 해야 하고, 가정에서 아동을 분리하여 보호할 경우 신속히 가정으로 복귀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김미애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보호 출산으로 태어난 아동이 성년이 되면 출생증명서 열람을 청구할 수 있지만, 부모의 동의를 받은 경우에 가능하다.

현행법은 강제성 없어, 속도 붙는 출생통보제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에 규정된 출생신고 관련 내용.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에 규정된 출생신고 관련 내용.

현행 가족관계등록법도 출생신고의 공백을 막을 수 있는 조항을 두고 있다. 가족관계등록법 제46조 4항은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을 때는 검사나 지자체의 장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이 규정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아빠의품 김지환 대표는 해당 조항을 두고 “지자체에서 제대로 지켰더라면 일단 (딸에게) 출생 신고를 먼저 해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아동인권센터 김희진 사무국장은 조항이 지켜지지 않는 원인으로 신고의무자의 인식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출생 미신고 아동 사망 사건 등으로 상대적으로 출생신고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지만, 여전히 검사나 지자체 공무원이 규정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현장에서 확인되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는 지자체 담당 공무원에게 지속해서 직권 출생등록 제도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면서도 아직은 부족하다고 얘기했다. 지자체의 아동보호전담부서와 출생신고 업무를 맡는 민원처리 부서 간 ‘칸막이 행정’도 원인으로 지적했다.

가족관계법 제46조 4항은 법률 적용에 강제성이 없는 ‘임의규정’이다. 김 사무국장은 “(현행법은)의무 규정이 아닐뿐더러 실종 아동이 발견됐을 때만 출생신고를 해줄 수 있는 것”이라며 “태어난 아동 모두를 발굴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출생통보제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3월 정부는 국회에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은 출생 등록의 공백을 막기 위해 의료기관이 14일 내에 지자체에 신생아의 출생 사실, 산모의 신원 등을 의무적으로 알리게 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지자체는 의료기관에서 받은 출생 사실을 통해 해당 아동의 출생신고가 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1개월 내에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에는 지자체장이 직권으로 해당 아동의 출생을 신고해야 한다.

출생신고에 어려움을 겪었던 김 대표는 어떤 개정안이 시행되더라도 실질적으로 출생 공백을 막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출생통보제나 보호출산제가 시행되더라도 혼외 자녀, 불법체류자와 한국인 남성 사이의 아이 등과 관련해서도 출생신고 공백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출생통보제 도입과 함께 개정안의 한계를 보완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제아동인권센터 김희진 사무국장은 출생통보제가 완벽한 법안은 아니라면서 지금 논의되고 있는 출생통보제에서는 기존의 행정 시스템 내에서 파악 가능한 정보만 전달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2년 국내에 출생 장소나 부모의 상황 등 어떠한 출생여건과 상관없이 한 국가 내 모든 아동의 출생을 등록하는 ‘보편적 출생 등록 제도’를 도입하도록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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