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인터뷰] 변진경 시사인 기자

지난해 9월 <시사인>에는 언뜻 보기에 빛이 산란한 자국으로 보이는 사진이 하나 실렸다. 그것은 빛이 아닌 죽음의 자국이었다. 2007년부터 2020년까지 어린이가 길을 걷다가 자동차에 치여 다치거나 사망한 장소에 점을 찍어 만든 데이터 시각화 자료였다. 

시사인 제 733호에 실린 데이터 시각화 사진. 13세 이하 어린이가 다치거나 사망한 장소에 흰 점을 찍었다. 윤곽선이 없는데도 한반도 모양이 나타난다. 출처 시사인
시사인 제 733호에 실린 데이터 시각화 사진. 13세 이하 어린이가 다치거나 사망한 장소에 흰 점을 찍었다. 윤곽선이 없는데도 한반도 모양이 나타난다. 출처 시사인

지난 10년 동안 최소 357명의 13살 이하 어린이가 보행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 궤적을 좇은 기자가 있다. 변진경 <시사인> 기자는 2007년부터 2020년까지 발생한 어린이 보행 사고의 데이터를 모아 패턴을 분석했다. 석 달에 걸친 취재의 결과를 <스쿨존 너머>라는 제목의 기사로 지난해 보도했다. 지난해 한국 데이터저널리즘 어워드에서 ‘올해의 데이터저널리즘 혁신상’을, 디지털저널리즘 어워드에서 ‘디지털 스토리텔링상’을 받았다. <단비뉴스>는 지난 24일 변진경 기자를 줌(Zoom)으로 만났다. “학창시절 수학을 제일 싫어했고, 숫자 보는 거 자체를 정말 싫어했다”고 말하는 변 기자에게 데이터를 활용해 기사를 쓰는 이유를 들었다.

지난 24일 줌으로 변진경 기자를 인터뷰했다. 어린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이를 데이터 활용 보도로 옮긴 과정 등을 들었다. 이정민 기자
지난 24일 줌으로 변진경 기자를 인터뷰했다. 어린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이를 데이터 활용 보도로 옮긴 과정 등을 들었다. 이정민 기자

‘우는’ 기사 대신 ‘보여주는’ 기사

2019년 김민식 군은 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후 ‘민식이법’이 발의되고 시행됐다. 그 과정에서 ‘민식이법’이 과한 처사라는 주장과 조롱이 이어졌다. 김민식 군 부모에 대한 공격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면 그것이 기사가 되는 일도 반복됐다. 변 기자는 ‘민식이법’이 뜨거웠던 2020년 내내 교통사고 피해 아동의 이야기를 ‘제대로’ 다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사 아이템을 적는 메모장에다 관련 내용을 계속 적었다. 

하지만 유족을 인터뷰하는 식의 접근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피해자의 유족을 내세워 ‘우는 기사’를 쓰지 않는 것이 그가 품었던 원칙 가운데 하나였다. “피해자 한두 명의 사례를 가지고 감정에 호소하는 기사를 쓰는 순간 실패한다고 생각했어요.”

변 기자가 택한 방법은 데이터를 활용하여 ‘보여주는’ 기사를 쓰는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죽고 다치는지 최대한 건조하게 숫자로만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스쿨존 기사를 쓰기 전 변 기자는 가설을 세우고 증거를 모았다. ‘길 위 아이들 눈에 블랙박스가 있다면, 거기에 비친 진짜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 나온 것)는 아이가 아닌 자동차일 것이다’라는 게 그의 가설이었다. 

변 기자는 데이터를 수집했다. 경찰청과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등록된 교통사고 데이터 가운데 13세 이하 어린이 보행 교통사고 데이터를 추렸다. 각각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 중에서 사고가 많은 지역, 아동 인구수 대비 사고율이 높은 지역, 사망 사고가 발생한 지역 등을 다시 추려 그 현장을 직접 찾아갔다. 전국의 사고 다발 지점 38곳을 방문해 어린이의 안전을 방해하는 위험 요소를 찾았다. 그리고 사고가 일어난 패턴을 분석했다. 사고 시간과 공간, 가해 차종, 도로 특성, 피해자 연령을 연도와 함께 살펴 데이터를 구축했다.

‘스쿨존 너머’ 기사를 쓸 당시 변 기자가 정리한 엑셀 파일. 변진경 기자 제공
‘스쿨존 너머’ 기사를 쓸 당시 변 기자가 정리한 엑셀 파일. 변진경 기자 제공

서울디지털재단은 2020년 서울 은평구 초등학생 24명에게 카메라를 달고 등하교시켜 어린이들의 시야를 영상에 담았다. 영상에는 계속해서 어린이들의 시야를 가리는 방해물들이 등장했다. 변 기자는 아이들에게 등하굣길이 얼마나 위험한지 어른의 입이 아닌 아이들의 시선으로 기사를 풀어갔다. 

변 기자는 카메라를 아이들 키높이로 들고 촬영했다. 해당 촬영물을 ‘스쿨존 너머’ 특별 웹페이지에서 360도 가상현실(VR)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상반기 한국언론진흥재단 기획취재 지원사업 공모에 새로 생긴 AR/VR 분야에 지원해 취재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했다. ‘아이들 눈에 블랙박스가 있었다면’이라는 상상을 기술적 측면에서 현실화한 것이다. 360도 VR 영상을 통해 독자는 키가 작은 아동의 눈으로 상하좌우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눈높이를 낮춰서 바라본 세상에서는 화물차는 물론이고 세단 같은 승용차도 큰 위협으로 느껴진다.

음소거한 취재원에게 마이크 건네기

“‘이런 문제도 있는데 아직 안 다뤄졌네, 내가 유별난 건가?’ 이런 생각이 드는 걸 틈틈이 메모해뒀는데 그게 ‘아동 문제’로 수렴된 거 같아요” 

변 기자는 2008년 1월 시사인 공채 1기로 입사했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아동전문기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다만, ‘이것은 문제’라고 변 기자가 생각했던 사안과 ‘한국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아이템’의 교집합이 ‘아동’이었다. 

그가 처음 어린이 관련 기획기사를 쓴 것은 기자가 된 지 딱 10년째였던 2018년 1월이었다. 아동학대와 관련한 기사를 냈다. 단순히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걸로 끝나는 자극적인 아동학대 기사를 지양했다. 사건의 배경을 파악하면서 ‘무엇이 달랐다면 그 아이가 살 수 있었을까’를 추적했다.

이후로도 변 기자는 아동의 ‘밥상격차’, ‘키즈유튜버’의 인권 문제, 코로나19로 학교가 폐쇄됐을 때의 학습격차 등 다양한 범주의 아동 관련 기사를 써왔다. 지난 5월에는 아동 문제를 다뤘던 기획기사 5편과 각각의 취재 후기를 엮어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면>이라는 제목의 단행본도 냈다. 그는 책머리에서 ‘말해봤자 들어주는 이가 없다는 생각에 아이들은 스스로 제 목소리를 음소거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며 취재에서 만난 아이들을 회상했다. 어른들의 뉴스에 가려져 마이크조차 쥐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질문이라도 건네는 것이 좋은 기자이기 이전의 ‘좋은 어른’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데이터는 기사를 위한 중요한 재료

변 기자는 숫자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완전 문과’ 유형의 사람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그럼에도 그는 데이터저널리즘의 영역에 뛰어들었다. 그가 활용한 것은 엑셀 프로그램이었다. 엑셀은 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도구다. 그는 취재하려는 주제 및 대상과 관련한 숫자를 엑셀에 꼬박꼬박 기록해뒀다. 

그 다음 단계에서는 전문가와 협업했다. 예를 들어, 데이터를 시각화하고 싶을 때, 변 기자는 데이터 시각화 기술을 직접 익히는 대신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그들과 소통했다.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전문가에게 정확하게 설명하고, 그것이 기술적으로 어떻게 구현 가능한지 토론했다. 

데이터저널리즘을 위해 기자에게 필요한 능력은 그런 협업의 노하우라고 그는 말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물이 나왔는지 살펴보는 ‘데이터 기사 사례 공부’가 필요해요. 그런 면에서 경험이 제일 중요하죠. 사람들 간의 네트워크를 알고 소통해보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을 거쳐야 배울 수 있는 거 같아요.”

데이터는 쓰고 싶은 주제를 뒷받침하는 데 활용하기 좋은 재료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게 없으면 설득이 어려운 순간이 있다. 그럴 때 데이터는 새롭고 명백한 증거를 독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다만 그 데이터가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하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변 기자는 말했다. 그것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뽑아낼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기자에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데이터 기사를 쓸 때 기자에게 필요한 건 ‘동시대의 중요한 변수들을 포착해내는 능력’이죠.” 합당한 변수들을 찾아내는 능력이 데이터를 가공하는 능력이고, 그것이 기자들에게 진실이나 사실을 찾아내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데이터 가운데 ‘무엇을 볼 것이냐’는 기자가 판단할 몫이고, 그 판단이 없으면 데이터는 그냥 숫자 덩어리에 불과하다고 그는 말했다.

최근 화물차 기사 노동과 도로안전 관련한 취재를 진행 중인 변 기자. 이 프로젝트 또한 데이터 기반 취재다. 변진경 기자 제공
최근 화물차 기사 노동과 도로안전 관련한 취재를 진행 중인 변 기자. 이 프로젝트 또한 데이터 기반 취재다. 변진경 기자 제공

그는 현재 스쿨존 기사의 후속 버전으로 화물차와 관련한 취재를 하고 있다. 아이들의 교통사고 가해 차량 중 화물차는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그런데 화물차 운전기사는 장시간 운전을 해 과로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을 고려해 화물차 기사의 건강과 노동환경이 시민들의 안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데이터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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