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기] 베이비박스 둘러싼 두 가지 논란(상)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내리막길. 가파른 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주택 사이로 한 교회가 나온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 교회다. 건물 벽면에 ‘베이비박스’, ‘위기영아긴급보호센터’, ‘베이비룸’ 같이 기관의 성격을 알 수 있는 간판이 빼곡하게 달렸다.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주사랑공동체 교회. 김수아 기자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주사랑공동체 교회. 김수아 기자

건물 왼편의 계단을 오르니 ‘베이비박스’가 나왔다. 이름 때문에 베이비박스를 상자 형태로 생각하기 쉽지만, 베이비박스는 벽면에 설치된 작은 철문이다. 문과 건물 내부를 연결하는 통로가 이곳을 찾은 부모들이 아이를 두고 가는 곳이다.

국내에 베이비박스는 한 곳 더 있다. 경기 군포시 새가나안교회 베이비박스다. 주사랑공동체에서 2014년 설치했다. 주사랑공동체는 현재는 이 베이비박스는 새가나안교회에서 직접 운영하고 1년에 한 차례 운영 상황을 알려주는 정도라고 밝혔다.

베이비박스에 아이 두고 가면 영아 유기?

‘베이비박스’ 유기죄 논란에 대한 상반된 입장들. 김수아 기자
‘베이비박스’ 유기죄 논란에 대한 상반된 입장들. 김수아 기자

주사랑공동체는 교회 홈페이지에 베이비박스를 ‘부모의 피치 못할 사정 또는 아기의 장애 등의 사유로 인해 유기 위험에 처해 있는 아기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생명 보호 장치’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여러 인권단체는 베이비박스가 부모의 영아 유기를 조장하는 시설이라고 보고 있다. 베이비박스가 2009년에 설치된 후 이곳을 찾는 부모들이 꾸준히 늘었기 때문이다. 2013년까지 한 해 200명 넘는 아이들이 베이비박스에 들어왔다. 2018년부터는 100명대로 점차 줄고 있지만, 논란은 진행 중이다.

지난 9월 교회를 방문했을 때도 방 한쪽에서 어린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상담사는 “아기는 어느 때든 있다”고 했다.

민법과 형법, 아동복지법, 베이비박스를 찾은 부모가 재판받은 사건 판결을 참고해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가는 행위를 법적으로 어떻게 보아야 할지 따져봤다.

국내법은 부모가 미성년 자녀를 '유기'했을 때 형법 제272조와 아동복지법에 따라 처벌한다. 이 때문에 베이비박스를 찾은 피고인의 행위가 처벌 행위인 '유기'에 부합하는지 따지는 것이 핵심적인 판단 사항이다.

아동·영아유기와 관련한 법률 조항들. 김수아 기자
아동·영아유기와 관련한 법률 조항들. 김수아 기자

실제 사건에서 재판부는 어떻게 판단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사건 대부분 부모의 행위가 '유기'로 인정돼 유죄가 선고됐다. 사건 13건 중 피고인에게 아동복지법위반(영아유기·방임)이나 영아유기 혐의가 적용된 사건은 12건, 베이비박스에 넣고 간 아기가 숨져 아동·영아유기치사 혐의가 적용된 것이 1건이다.

가장 처음 유기 혐의가 인정된 사건의 경우, 검찰은 "피고인이 자녀인 피해자가 뇌병변장애를 앓고 있어 양육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베이비박스 안에 피해자를 내버려 둔 채 그 장소를 떠남으로써 영아를 유기했다"고 기소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장애를 앓는 아이를 양육하지 못하고 베이비박스에 두고 간 것"이라며 혐의를 그대로 인정했다.

미성년 부모가 기소됐던 두 번째 사건에서 수원지법 성남지원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미성년인 피고인들은 동거하던 중 피해자를 낳았고, 나이가 어리고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녀를 베이비박스에 두기로 마음먹었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출산 이틀 후 피고인들은 경기 군포시에 있는 교회 베이비박스에 피해자를 내버려 둔 채 장소를 떠남으로써 피해자를 유기했다"고 기소했고 그대로 유죄 판결이 났다.

2016년 처음 부모에게 유죄가 인정된 이후 지난해까지 전체 13건의 사건 중에서 검찰이 제기한 유기 혐의에 대해 재판부가 다른 판단을 내린 적은 없다.

올해 "유기" 아니라는 첫 무죄 판례... 이유는?

그런데 지난 7월 서울중앙지법에서 베이비박스를 찾았던 부모에게 처음으로 무죄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김창모 판사가 지난 7월 내린 판결문의 일부. 영아유기로 기소된 부모에게 처음으로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년 7월 13일 선고된 2021고단4008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김창모 판사가 지난 7월 내린 판결문의 일부. 영아유기로 기소된 부모에게 처음으로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년 7월 13일 선고된 2021고단4008 판결이다.

공소사실을 보면 피고인은 2018년과 2021년 베이비박스에 자녀를 두고 떠났다. 검찰은 "피고인이 자녀인 피해자를 경제 사정 등으로 양육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베이비박스 안에 편지와 함께 피해자를 놓아둔 채 그 장소를 떠남으로써 영아를 유기했다"고 기소했다.

변호인은 피고인이 주사랑공동체 직원과 상담을 받았다는 점을 들어 ‘유기’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주사랑공동체는 베이비박스를 찾은 부모들에게 ‘24시간 상담’을 제공한다. 베이비박스 문을 열면 곧바로 건물 내부에 알람이 울려 상담사가 부모와 만나는 방식이다. 변호인은 “쓰레기통에 아기를 넣어둔 것과 베이비박스에 찾아간 것은 다르다. 게다가 상담까지 받았다면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형법 제271조에 규정된 ‘유기’는 특정인을 돌볼 의무가 있는 자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호 없는 상태에 둠으로써 '생명이나 신체에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를 말한다.

검찰은 이에 따라 부모가 상담을 했더라도 베이비박스에 아이가 잠시 놓인 상황에서 아이가 다치거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점에서 ‘추상적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부모가 상담을 마치고 언제 나올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아기를 혼자 두는 행위는 보호자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피고인의 행위는 ‘유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변호인은 “보호 의무 있는 자가 보호할 의사가 있는 제3자에게 아이를 맡기는 행위는 유기로 볼 수 없다는 게 판단의 주된 이유”라며 “상담이 있었다면 유기라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주사랑공동체는 2015년 7월부터 아기침대, 소파 등이 마련된 실내공간인 ‘베이비룸’을 운영했다. 부모가 실내에서 대기하며 아이를 돌보고 상담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이전에도 교회에 상담 인력과 별도의 공간, 육아용품 등 영유아를 돌볼 환경이 마련돼 있었지만 이를 고려한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사랑공동체가 운영하는 ‘베이비룸’이다. 주사랑공동체 블로그
주사랑공동체가 운영하는 ‘베이비룸’이다. 주사랑공동체 블로그

하지만 부모가 베이비박스에 두고 간 아이가 숨진 경우도 있다.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이 지난 2019년에 내린 판결문을 보면 출산 직후 적절한 보호조치 없이 담요로 감싼 채 베이비박스에 두었던 신생아가 숨졌다. 새가나안교회 베이비박스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 피고인인 산모와 산모의 어머니는 모두 유죄가 인정돼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주사랑공동체와 새가나안교회는 해당 사건에 대해 "이미 사망한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둔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맡기는 대신 부모가 ‘베이비룸’을 찾더라도 문제가 남는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교회들이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더라도 법적으로 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사랑공동체는 2014년 관악구청에 영아일시보호소 허가 신청을 냈지만 ‘불법시설’이란 이유로 승인받지 못했다. 아동복지법에 따라 보호자가 없거나 양육할 수 없는 아동은 정식으로 승인을 받은 아동·영아일시보호소에서 맡는다.

아이를 보호할 법적 권한이 없으므로 단체는 아이를 맡게 되면 경찰에 실종아동 신고를 해야 한다. 주사랑공동체도 이에 따라 경찰에 신고 조치를 하고, 그 후 경찰이 해당 아동을 ‘서울시 아동복지센터’로 인도한다.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베이비박스 둘러싼 두 가지 논란(하)’에서 다룬다.

‘베이비박스’를 두고서 여러 단체의 입장이 갈린다. 찬반 논란이 있을 때 기사의 역할은 특정 단체의 입장을 받아쓰기하거나 논란을 그대로 전달하는 게 아니다. 논란과 특정한 관점에서 벗어나 쟁점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논란 해결에 도움이 될 대안이 있다면 이를 전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제 사건들에 대한 판결문을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한 이유다.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은 모두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넣는’ 행위에 대한 것들이다.

기사가 나간 뒤 주사랑공동체는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이 2019년 판결한 사건에 대해 “실제 사건 중에서 베이비박스에 두고 간 아이가 보호조치가 미흡하여 사망한 사건은 한 건도 없다”고 주장했다. 또 주사랑공동체와 새가나안교회는 해당 사건이 “사망한 아기를 두고 간 사건”이라고 주장해 이에 대한 반론을 기사에 추가로 반영했다. 하지만 새가나안교회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사망한 아기를 두고 간 사건’이 2019년 판결문에 담긴 그 사건인지는 확인해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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