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22년 한국기자상 수상작 – YTN '3D프린터와 암(癌)'

과학의 바탕에는 불확실성이 있다. 상관성이 있다고 해도 명백한 원인과 결과를 밝혀내기 쉽지 않다. 지난해 4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코로나 백신 부작용의 원인을 규명하기 힘든 이유를 설명했다. 하나는 백신이 아닌 다른 요인이 부작용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어 백신과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힘들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임상시험 참가자가 적어 충분한 실험값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백신 부작용 사례가 전 세계에서 보고됐지만,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의 배경에 ‘과학적 불확실성’이 있는 것이다.

과학 보도의 어려움은 여기에 있다. 과학의 불확실성을 설명하면서도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사실을 전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학과 대중 사이에 거리가 벌어지고, 과학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정치적 공세와 비난이 들어선다. 지난해 12월, YTN 탐사보도 프로그램 <기록>은 3D프린터와 암 발병 간의 인과 관계를 파고들었다. 과학적 이슈를 과학적 방법으로 취재해 과학적 근거를 들어 2회에 걸쳐 영상으로 보도했다. 이 기사는 제53회 한국기자상 기획보도 방송부문상을 받았다.

3D프린터를 교구로 사용했던 교사 3명이 '육종암(뼈를 제외한 조직에서 발생하는 암)'에 걸렸다는 제보를 받고 시작한 취재였다. 이 가운데 두 명은 같은 학교에 재직하고 있었다. 육종암은 발병률 0.01%의 희귀암이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복수의 사람들이 희귀암을 갖게 됐다. 그들 모두 3D프린터를 사용해왔다. 3D프린터와 암 발병의 인과성을 짚어야겠다고 취재진은 생각했다. 8년 차 김지환 기자의 주도로 모두 12명의 기자들이 4개월 동안 전국을 수소문하며 추가 피해자를 찾았다.

53회 한국기자상을 받은 YTN 탐사보도 프로그램 '기록'의 ‘3D프린터와 암(癌)’ ⓒ YTN
53회 한국기자상을 받은 YTN 탐사보도 프로그램 '기록'의 ‘3D프린터와 암(癌)’ ⓒ YTN

실험까지 하며 과학적 증거 모아

자동화된 출력장치를 통해 3차원 형상을 구현하는 3D프린터는 '교육과 연구' 부문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정부 부처가 합동으로 내놓은 <2021년도 3D 프린팅산업 진흥 시행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3D프린터를 많이 사용하는 분야는 ‘시제품’(디자인, 설계검토 등을 목적으로 실제 제품과 유사하게 만드는 실험 모델) 부문(53%)과 ‘교육·연구' 부문(24.3%)이다. 기업 다음으로 학교에서 3D프린터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 부문 활용도가 높은 이유는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때문이다. 2014년 박근혜 정부는 ‘3D 프린팅 산업 발전 전략’을 통해 신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정부는 '정보 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기본계획(ICT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2014년부터 전국 초·중·고교에 3D프린터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2020년 기준 전국 학교의 43.45%에 달하는 5222개교에 1만8324개의 3D프린터가 보급돼 있다. 역사‧과학 등 다양한 수업에서 3D프린터를 사용한다.

취재팀은 이점을 고려해 취재원의 범위를 좁혔다. 3D프린터와 육종암의 연관성을 밝히기 위해 ‘암에 관한 가족력과 병력이 없고, 3D프린터를 사용하기 전까지 건강했던 사람’을 선정했다. 그렇게 확정된 취재원은 교사 6명과 학생 1명으로 총 7명. 취재 결과 이들 모두 이상 증상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자율신경계 이상 진단을 받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고, 꼬리뼈가 녹는 듯한 통증, 어지럼증 등 육종암과 유사한 증상을 겪고 있는 교사들도 있었다. 여성 교사의 경우 급성 유방암과 급성 자궁경부암에 걸렸다. 급성 백혈병에 걸린 학생도 있었다.

이들이 3D프린터를 작업한 환경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최소 2~3년간 집중적으로 3D프린터를 사용했고, 밀폐된 작업 환경에서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3D프린터를 작동했다는 점이었다. 이후 취재팀은 3D프린터와 암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 과학적 증거를 최대한 많이 모았다. 3D프린터가 배출하는 초미세입자 중 1군 발암물질인 벤젠과 포름알데히드가 있다는 2019년 산업안전보건공단 연구 보고서, 3D프린터 작동 시 많은 양의 유기화합물이 방출된다는 내용의 연구 논문 등을 찾고 분석해 보도에 인용했다.

YTN 기획탐사팀이 실시한 ‘3D프린터 유해성 실험’ 결과, 접착제, 농약, 인쇄용 잉크 등에 쓰이는 ‘오쏘-자일렌’(ortho-xylene)이라는 화학물질이 검출됐다. ⓒ YTN
YTN 기획탐사팀이 실시한 ‘3D프린터 유해성 실험’ 결과, 접착제, 농약, 인쇄용 잉크 등에 쓰이는 ‘오쏘-자일렌’(ortho-xylene)이라는 화학물질이 검출됐다. ⓒ YTN

교사들이 현장에서 실제로 썼던 제품에서 어떤 물질이 나오는지 밝히기 위해 직접 ‘3D프린터 유해성’ 실험도 진행했다. 과학인용색인(SCI, Science Citation Index) 국제 학술지에 표지논문을 게재한 대전대학교 환경공학과 김선태 교수팀과 함께 실험했다. 실험 장소는 피해 교사들이 3D프린터를 사용한 교실과 유사한 환경으로 설정했다. 3D프린터는 육종암으로 투병하다 사망한 교사가 실제로 사용한 것, 또 다른 동료 교사가 썼던 제품과 같은 기종의 것 등 모두 두 대를 사용했다. 출력물을 만드는 3D프린터 재료도 교사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ABS(Acrylon​itrile-Butadiene-Styrene) 필라멘트와 PLA(Poly Lactic Acid) 필라멘트를 썼다. 

그 결과, 취재팀은 3D프린터를 가동하기 전에 비해 미세먼지 농도는 최고 10배, 휘발성 유기화합물은 2배 정도 증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검출된 물질 가운데는 접착제, 농약, 인쇄용 잉크 등에 쓰이는 ‘오쏘-자일렌’(ortho-xylene)이라는 화학물질이 있었다. 오쏘-자일렌은 상당 시간 동안 반복적으로 흡입하면 신경계통·근육계통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누적되면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취재했다. 특히 한두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전문가를 만났다. 직접 실시한 실험 결과를 토대로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과 인터뷰를 진행해 3D프린터의 유해 물질과 자율신경계 이상의 연관 관계를 분석했다. 

안전보다 산업육성 우선한 정부

3D프린터는 생산 비용이 저렴하고 제작 기간이 빨라 다양한 산업에서 사용된다. 3D프린터의 유해성은 이런 장점에 가려졌다. 취재진은 정부의 조급하고 허술한 정책이 이 문제의 배경에 있다는 점도 추적해 보도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3D 프린팅 산업 진흥법’은 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췄다. 3D프린터와 필라멘트 품질 인증은 의무가 아닌 권고 사항으로 남겨뒀다. 관련 규제가 신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한 결정이었다. 법의 빈틈은 교사와 학생의 안전을 위협했다. 품질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낮은 품질과 저렴한 가격의 중국산 필라멘트가 교육 현장에서 사용됐다. 

2018년 제작한 3D프린터 안전 매뉴얼과 2020년 배포된 매뉴얼의 차이. ⓒ YTN
2018년 제작한 3D프린터 안전 매뉴얼과 2020년 배포된 매뉴얼의 차이. ⓒ YTN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제작한 3D프린터 안전 매뉴얼을 2년 뒤인 2020년에서야 급하게 배포했다. 육종암으로 투병하던 교사 한 명이 사망한 뒤였다. 그러나 2020년 배포된 매뉴얼은 2018년 제작된 매뉴얼보다 후퇴해 있었다. 2018년 매뉴얼에는 필라멘트 종류별로 어떤 유해 물질이 나오는지, 해당 유해 물질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9쪽 분량으로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에 비해 2020년 매뉴얼에는 해당 내용이 모두 사라졌다. 교사의 죽음 이후 3D프린터의 안전성이 논란을 빚자, 그나마 있던 안전 관련 내용을 오히려 삭제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안전대책은 여전히 미비하다. 2022년 정부 예산 가운데 3D프린터 안전관리와 관련한 돈은 없다. 작년 1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3D프린터 소재 검증과 유해 물질 저감 등을 위한 안전관리 예산으로 73억 원을 요청했지만, 기획재정부 심의에서 전액 삭감됐다. 3D프린터와 필라멘트의 품질 인증 기준도 보도 당시까지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취재에 응한 교사들은 인터뷰에서 필라멘트 재료에 따라 유해 물질이 달라지고 환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작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3D 프린팅 실습 과정으로 인해 학생들이 위험에 노출됐다는 점이 가장 힘들다고 교사들은 말했다. 

3D프린터 업무를 담당했던 최민성(가명) 중학교 교사는 자율신경계 이상 진단을 받았다. 본인의 몸이 힘든 와중에도 3D프린터 교육이 학생들한테 위험했다는 사실이 가장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 YTN
3D프린터 업무를 담당했던 최민성(가명) 중학교 교사는 자율신경계 이상 진단을 받았다. 본인의 몸이 힘든 와중에도 3D프린터 교육이 학생들한테 위험했다는 사실이 가장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 YTN

과학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향한 보도

한국기자상을 받은 YTN 기자들. ⓒ 한국기자협회
한국기자상을 받은 YTN 기자들. ⓒ 한국기자협회

‘3D프린터와 암’ 기사 보도 이후, 5개 부처는 ‘3D 프린팅 안전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학교에서의 3D프린터 소재 조달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필라멘트를 전수 조사해 안전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삼차원프린팅 산업진흥법'에 안전한 3D 프린팅 작업환경 조성을 위한 지침과 사업자 등의 책임을 강화한 내용도 반영하기로 했다. 인사혁신처는 교육부가 진행한 역학조사를 바탕으로 육종암이 ’공무원 재해보상법‘에 따른 공무상 질병에 해당하는지 검토해 올해 말에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 문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비슷한 면이 있다. 중증폐렴 등에 걸려 사망한 사람만 239명인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최초 발병자가 확인된 이후 10여 년 동안 살균제와 폐 질환의 인과성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아 사건 해결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비해 3D프린터의 유해성은 비교적 빠른 시간에 공론화됐다. YTN 취재팀이 3D프린터와 암의 인과성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과학적인 방법과 태도를 취한 덕분이다.

과학적 방법으로 과학적 이슈를 취재한 결과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쉽게 전달한 점도 이 보도의 강점이다. 과학 보도의 기풍이 희박한 한국 언론에서 과학 저널리즘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제대로 구현한 보도라고 평가할 만하다. YTN 기획탐사팀은 이후 방송기자연합회 취재 후기에서 “정부가 할 일을 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결실을 보는지 끝까지 지켜보며” 보도를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기사 원문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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