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장애인이 요즘 드라마 한가운데 우뚝 섰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다운증후군을 가진 이영희(정은혜 분), 지난달 29일 처음 방영된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박은빈 분)를 통해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드라마 속 주인공과 주요 인물이 되어 존재감을 빛내기 시작했다.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선 장애인 캐릭터

넷플릭스 인기 순위 1위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천재 변호사 영우가 세상이 그은 선을 넘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호사로서 한계를 부수는 드라마다. 변호사는 뛰어난 사회성과 언변으로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이고 이겨내야 하는데, 과연 자폐 장애인이 변호사 일을 잘해낼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드라마를 보기 전 던지는 의문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의문을 확신으로 바꾼다. 장애를 가진 사람도 변호사를 할 수 있다고! 나아가 장애가 장애물이 아니라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영우는 보여준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박은빈)가 변호사로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드라마는 그린다. 도움이 대상이 아닌 도움을 주는 주체적 인물로서 장애인을 표현한다. © ENA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박은빈 분)가 변호사로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드라마는 그린다. 도움이 대상이 아닌 도움을 주는 주체적 인물로서 장애인을 표현한다. ⓒ ENA

“제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역삼역.”

거대 로펌 사무실에 처음 출근한 영우는 남다르게 자기소개를 한다. 반향어(상대방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나 엉뚱한 말도 동료들에게 곧잘 내뱉는다. 그런 영우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편견 섞인 시각으로 대한다. 법무법인 한바다의 시니어 변호사 정명석(강기영 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신임 변호사 영우를 마주하고, 재단한 후 ‘보통’ 사람과 같지 않은 장애인이기에 변호사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로펌 대표 한선영(백지원 분)에게 “자격 미달인지, 제 편견인지 테스트해 보겠다”며 영우의 능력을 시험해보리라 말한다.

따가운 시선 속에서 70대 노부부 살인미수 사건을 첫 사건으로 맡게 된 영우는 틀을 벗어난 시각으로 사건에 접근하며, 사수 명석이 미처 살피지 못한 부분을 짚어낸다. 명석은 영우에게 장애 때문에 변호사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으리라는 선입견을 가졌다고 사과한다. 그는 피해자 할아버지 병문안을 다녀오라며 “직원 붙여줄게, 외부에서 피해자 만나는 거. 그냥 보통 변호사들한테도 어려운 일이야”라고 했다가 뒤늦게 말을 정정한다. “미안해요. ‘그냥 보통 변호사’라는 말은 좀 실례인 것 같아.” 영우는 “괜찮다. 저는 ‘그냥 보통 변호사’가 아니니까”라며 당당하게 방을 나선다.

누구나 경험할 법한 익숙한 사건들은 영우의 눈으로 바라보는 순간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변모한다. 유쾌한 웃음 가운데 논쟁적인 주제를 과감히 다룬다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무해하고 따스한 법정물이 가진 공감의 힘은 거셌다. 비장애인에게 익숙하고 당연한 세상은 장애인 영우에겐 낯설고 어렵다. 빠르게 돌아가는 회전문에 발을 들이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영우는 세상의 선입견과 한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씩씩하게 돌파해 간다.

‘같다’보다 ‘다르다’는 사실 받아들이기

작품의 차별점은 여기서 포착된다. 드라마는 영우가 우리와 ‘같다’는 것보다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길 요구한다. 극이 전개될수록 영우의 이런 면모는 부각된다. 명석이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변호사가 불쌍하게 보이는 게 좋다”고 하자 영우는 당당하게 “이 중에서 저만큼 불쌍하게 보일 사람은 없다” “피고인 사정이 딱하다는 걸 보여주기에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장애인 본인이 나서는 게 가장 좋을 것”이라고 말하며 앞에 선다.

장애를 가진 변호사 영우가 법정에 서서 노년 여성을 변호하고 있다. 약자가 약자를 돕는 장면을 통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가 무엇인지 되묻는다. © ENA
장애를 가진 변호사 영우가 법정에 서서 노년 여성을 변호하고 있다. 약자가 약자를 돕는 장면을 통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가 무엇인지 되묻는다. ⓒ ENA

영우는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거나 낙담하지 않는다. 장애인에 관한 편견, 거기서 비롯된 과도한 관심도 차단한다. 오히려 장애를 자원 삼아 전진하기까지 한다. 영우의 주변 인물들도 그의 장애를 조명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가족, 온전한 친구, 동료로, 또 전의를 불태우는 라이벌로, 있는 그대로 영우를 대한다. 이런 인물 사이에서 주인공 영우는 그저 우리와 조금 다른 사람일 뿐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따뜻한 힐링 드라마를 지향하지만 사회 소수자를 다루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흔하게 드라마에서 다루는 미혼모 설정은 미혼부로 변주했다. 영우의 아버지는 미혼부로서 영우를 혼자 키운다. 드라마의 매회 주제는 가려진 세상의 이면을 그려낸다. 1회에서는 노년 여성을, 2회에서는 성소수자 이야기를 다뤘다. 지난 6일 방영한 3회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동생이 형을 죽인 사건을 다루었다. 다양한 자폐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다양한 위치에 장애를 가진 인물을 배치했다.

당당한 직업인으로 선 장애인 주인공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장애인의 한계를 넘어, 장애인의 직업 스펙트럼을 넓혔다. 드라마는 장애인을 부모와 형제자매에게 돌봄의 대상이 아닌,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는 인물로 그린다. 직업인으로서 성장하는 장애인을 제시한다. 타인과 뒤섞여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녹여내 도움을 줄 수 있는 개인을 발견해낸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장애인을 남들과 융화되지 못하는 모습이 아닌, 능력있는 변호사와 평범한 사회 구성원으로 그린다. 어떤 암투나 모략도 드라마에 없다. 드라마는 변호사 영우와 그가 맡은 사건을 담담히 풀어낼 뿐이다. 자폐 장애는 공감 능력이 없다는 편견과 달리, 영우는 극중 유일하게 의뢰인과 진심으로 소통하려 하는 변호사다. 영우가 보여주는 진심은 보는 이들의 마음에 간질간질한 여운을 남긴다.

드라마 속에서 그려지는 편견 없는 세상은 일종의 판타지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는 편견이 자리하지 않는다. 극에서 장애는 캐릭터가 가진 다른 특징일 뿐이다. 영우의 뛰어난 지적 능력 때문에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는가 하면, 주변인 모두 그가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동료로 대한다. 그들 사이에서 영우는 다른 게 아닌, ‘나와 조금은 다른’ 사람일 뿐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이상향을 그리는 판타지에 가깝지만, 장애를 가진 이를 사회 구성원으로 대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있다. 극이 보여주는 세상은 장애를 핸디캡이나 좌절로 보지 않는다. 이런 지향점을 그저 판타지라고 폄하해선 안 된다. ‘드라마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란 말은 반대로 현실이 드라마를 따라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적 능력은 뛰어나지만 회전문은 통과하기 어려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보여주는 한 장면. 로펌 직원인 이준호(강태오)의 도움을 받아 회전문을 통과한다. 장애인이 아닌 장애를 가진 동료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영우를 받아들이는 준호. © ENA
지적 능력은 뛰어나지만 회전문은 통과하기 어려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보여주는 한 장면. 로펌 직원인 이준호(강태오 분)의 도움을 받아 회전문을 통과한다. 장애인이 아닌 장애를 가진 동료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영우를 받아들이는 준호. ⓒ ENA

장애인이 출연해 장애인 연기를 할 수 있는 사회

그동안 장애인 연기는 비장애인의 몫이었다. 장애 연기를 장애인이 하지 못한 건, 드라마 제작 현장에 알게 모르게 작동해 온, 우리가 장애인을 바라본 편견 때문이었다. 

“왜 사람들이 영희 같은 애를 흔하게 못 보는 줄 알아? 대부분 시설에 보냈으니까. 나도 한때는 같이 살고 싶었어. 같이 살 집을 얻으려고 해도 안 되고, 일도 할 수 없고.”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대사다. 드라마는 주변인이 아닌 중심인물로서 장애인을 출연시켰다. 영희·영옥(한지민 분) 자매를 통해 장애인과 그 가족이 겪는 어려움을 리얼하게 그려내 감동을 주었다. 드라마는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차별과 편견을 들춰내 이렇게 세상에 전한다.

“내가 영희 누나 보고 놀랐어. 그런데 나는 그럴 수 있죠. 다운증후군을 처음 봤어요. 그게 잘못됐다면 미안해요. 그런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교, 집 어디에서도 배운 적 없어요. 그래서 그랬어요. 다시는 그런 일 없어요.”

박정준(김우빈 분)의 말처럼 많은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발달장애인을 만날 일이 거의 없다.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배운 적도 없다. 정준은 애인 영옥의 쌍둥이 언니 영희를 처음 만났을 때 당황해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시청자 역시 실제 다운증후군 장애인인 정은혜가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영희로 등장했을 때 놀랐다. 이 드라마에서는 이소별이 연기한 극중 청각장애인 별이도 청각 장애인이었다. 장애인이 직접 장애인 연기를 맡은 이 드라마는 국내 콘텐츠 제작업계에 의미 있는 화두를 던졌다.

정은혜, 이소별의 캐스팅은 드라마, 특히 프라임 시간대 방영하는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시도였다. 올해 초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개한 ‘2021년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실태조사 및 분석연구’에 따르면, 국내 장애예술인 902명(전체 7000여 명 추산)을 표본 조사한 결과 이들의 주요 활동은 서양음악 27.2%, 미술 26.8%로 두 분야에 몰렸다. 반면에 영화 0.7%, 방송연예(대중음악 제외) 0.5%로 해당 분야에서 활동은 미미했다. 국내의 경우 드라마와 영화에서 장애인 역할을 장애인 배우가 맡는 것은 드물고, 비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연습을 해 연기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이처럼 비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연기를 하는 것을 서구에서는 ‘크리핑 업’(Cripping up)이라고 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성과는 이제 시작일 뿐

<우리들의 블루스>는 국내에서 장애인이 장애인 연기를 한 첫 드라마다. 다운증후군 배우, 청각장애 배우가 등장한 첫 작품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사회에서 직업인으로 기능하는 장애인을 그려, 장애인에게 당당한 직업인으로서의 주체성을 부여한 드라마다. 우리나라 인구의 5%가 장애인이다. 그러나 드라마, 예능 등 방송에서 대개 이들은 없는 존재나 객체로 다뤘다. 장애인 관련 콘텐츠는 언제나 공익적 목적으로만 제작됐다. 장애인이 보통 사람으로서 친구로, 동료로, 연인으로 등장하는 장애인 콘텐츠가 더욱 많이 생산돼야 한다. 다룬 적 없기에 본 적 없는 장애인 콘텐츠가 흥행하는 지금 좋은 바람이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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