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과학 저널리즘의 이해

과학 저널리즘의 이해/진달용/한울 아카데미/33,000원

책 과학 저널리즘의 이해 표지. ⓒ 한울아카데미
책 과학 저널리즘의 이해 표지. ⓒ 한울아카데미

지난 2년 6개월 동안, 언론에는 적지 않은 방역 전문가들이 등장했다. 이들 덕분에 언론은 코로나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특정한 의도에 걸맞은 취재원을 선택하여 공포를 부추기는 보도를 내놓았다. 전문가의 언어를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정돈하지 못한 채 혼란만 남기는 보도도 적지 않았다. 그 틈을 비집고, 과학적 사실에 대한 정치적 해석과 비난이 기승을 부렸다. 

과학적 사실이 정치적 공세의 대상이 되어버린 배경에는 과학 전문 기자가 드문 한국 언론의 현실이 있다. 전문성이 강한 과학 분야를 이해하고 전달하는 데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오래전부터 과학 전문 기자를 육성해 온 <뉴욕타임스>는 이번 팬데믹 기간 최고의 과학 보도로 독자의 신뢰를 얻었다. 1978년 미국 언론 최초로 과학 전문 섹션 ‘사이언스타임스’를 만든 <뉴욕타임스>는 현재 과학 기자 30명, 에디터 7명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체의 세포에 침입하는 과정 등을 일러스트와 쉬운 설명글로 대중에게 전달했다.

<과학 저널리즘의 이해>는 이런 격차를 어떻게 따라잡을 것인지 알려준다. 한국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 미국에서 언론학을 공부해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과학 저널리즘’의 기본 개념, 특징, 현실 등을 상세하게 소개한다. 

과학과 대중의 거리

과학 저널리즘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과학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도하는 것이 과학 저널리즘이다. 현대 언론에서 과학 저널리즘의 효시는 1957년 소련이 무인 위성을 발사하면서 시작된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에 관한 보도다. 양국은 기술 발전에 열을 올렸다. 당시의 과학 보도는 과학계에서 벌어지는 일에 집중됐다.

둘째,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도하는 것도 과학 저널리즘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포함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 원자력·태양광과 같은 에너지 이슈, 기후변화 등을 과학적 잣대와 관점으로 취재하여 분석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일상의 다양한 이슈를 과학적으로 접근하려는 기자들의 노력을 촉발한 것은 1980년대 체르노빌 원전 사태였다. 이후 과학 연구에 대한 단순 보도를 넘어 비판적 검증 보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형성됐다. 

오늘날에는 전통적 의미의 과학 저널리즘보다 일상적 이슈에 대한 과학적 보도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복잡한 현대 사회, 특히 디지털 연결 사회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이슈가 과학기술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학기술과 연관된 이슈가 많아질수록 과학과 대중의 거리도 벌어지는 경향이 있다. 백신에 대한 이해가 대표적이다. 과학자들은 ‘A백신이 B백신에 비해 효과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등의 신중한 표현을 사용한다. 과학 자체가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은 백신을 맞을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혼란에 빠졌다. 

이 간격을 좁히는 것이 과학 저널리즘이다. 백신이 어떻게 항체를 형성하는지, 부작용은 어떤 경우에 생길 수 있는지 등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들어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기자 개개인의 전문 역량이 부족하면, 과학과 대중의 거리는 더 멀어지게 된다.

2005년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은 그 공백을 채우지 못해 발생한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당시 언론은 논문 조작 의혹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파헤치지 못했다. 기자들의 전문 지식 부재가 원인이었다. 검증을 위해선 논문을 이해해야 하는 데 그 지점부터 실패했다. 과학계에서 공식적으로 검증된 적이 없음에도 황 박사의 연구 성과를 대단한 것으로 해석해 보도하기 바빴다.

언론은 백신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오히려 백신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안전성을 강조했다. Ⓒ KBS
언론은 백신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오히려 백신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안전성을 강조했다. ⓒ KBS

기자 대신 과학자가 글을 쓰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실제로 과학자들 중에 개인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과학의 언어로 교육·훈련받은 이들이 여러 이슈를 지속적으로 대중의 언어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연구하고 분석하는 과학자의 기본 역할에 집중할 수도 없다. 언론에 노출됐다가 본인의 입장과 반대되는 편으로부터 부당한 공격을 받기도 한다. 결국 과학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려면, 과학적 지식을 제대로 이해한 뒤, 이를 대중의 언어로 정돈해 전달하는 저널리스트가 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과학적 사실을 대중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학 저널리스트

이를 위해 기자들이 갖춰야 할 능력, 그리고 과학 저널리즘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저자는 제안했다.

우선, 과학 저널리스트는 과학적 지식을 단순 전달하는 것을 넘어 감시‧탐사라는 저널리즘 본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자들이 취재원으로 만나는 과학자들과 대화가 가능한 수준의 전문 지식을 갖춰야 한다. 또한, 과학 저널리스트는 과학 용어를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는 것은 물론, 과학 분야의 특수 담론을 일반 담론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급적 스트레이트 형태보다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보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대중이 흥미를 갖고 중요한 과학 뉴스를 읽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과학적 사실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다양한 취재원을 통해 과학적 이슈를 교차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다. 과학자 한 명에 의존한 취재로 인해, 보도의 방향과 내용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를 피하려면, 여러 분야의 다양한 과학자를 취재원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 

출입처 중심의 취재 시스템 등 언론사 구조의 변화도 필요하다. 한국 언론의 코로나19 보도는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들이 주로 담당했다. 과학 전문 기자는 물론 스포츠팀, 문화팀 등을 가리지 않고 코로나19와 관련한 모든 이슈를 함께 보도하면서, 기사의 전문성과 과학성을 높였던 <뉴욕타임스>와 상반된다.

기자의 역할은 가치 있는 정보를 공공에 제공하는 데 있다. 한국 언론이 정당, 법률, 기업 등의 전문 기자를 육성해온 것은 이들 영역의 뉴스가 공익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중대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과 연관한 뉴스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한다면, 정당이나 법조를 담당하는 기자만큼이나 과학 기자가 많아져야 할 것이다. <과학 저널리즘의 이해>는 그런 미래를 꿈꾸는 이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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