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송승환/박영사/11000원

기자 준비생, 그리고 초년 기자는 언젠가 탐사보도를 세상에 내놓는 꿈을 꾼다. 그런데 취재 윤리와 노하우는 교과서를 숙지하는 것만으로 온전히 습득할 수 없다.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거나, 다른 사람의 취재 경험을 찬찬히 뜯어보면서 ‘감각’을 길러야 한다.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은 기자라면 고민해야 하는 질문을 제시한다. 좋은 기자로 성장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취재보도의 현실과 고민

책은 ‘찾다’ ‘만나다’ ‘듣다’ ‘쓰다’ ‘생각하다’ 등 5개 범주로 구성돼 있다. 앞의 네 범주는 취재 단초를 찾는 단계부터 정보를 얻고 취재원을 확보하는 단계, 그리고 기사 쓰는 단계까지 기자에게 필요한 태도와 요령을 설명한다.

▲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 표지. ⓒ 박영사

책의 서두는 일종의 반성문이다. 저자는 자신이 경찰서를 돌던 때 어떤 살인 사건을 가벼이 여겼다고 말한다. 선배가 사건을 더 파보라고 지시했지만 취재에 진척이 없어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하고 선배에게 핀잔을 몇 마디 들었다. 그 사건은 바로 ‘강남역 살인 사건’이었다.

사건 하나를 가벼이 여겨 변화의 물결을 놓쳤던 경험이 뼈아팠다고 저자는 적었다. 그 뒤로 무엇 하나 허투루 보지 않는 방법을 익혀, 독자에게 전한다. 예를 들어, 국회 회의록에서 의사 결정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예상치 못했던 중요 기사를 발굴할 수 있다. 문제가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나서 실제로 개선에 이르렀는지 사후 점검하는 기사도 쓰라고 조언한다.

사소한 사건을 놓치지 않는 또 다른 방법으로 저자는 비슷한 사례를 여러 개 모아 공통점을 찾아낼 것을 제시한다. 식품에서 벌레 같은 이물질이 나왔다는 제보 한 건만으로는 기사가 될 수 없지만, 사소한 제보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식품업체의 일관된 대응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눈에 잘 띄지 않았던 패턴을 찾아 보도하는 것이다.

좋은 기사를 보도하는 또 다른 포인트는 집요한 취재다. 서울시가 도입한 공공 결제 플랫폼 ‘제로페이’ 이용 실태를 파악하려 했지만, 시청이 통계를 제공하지 않았다. 저자는 직접 조사하기로 결심했다. 서울시 전체를 조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저자는 표본 선정 과정에서 머리를 썼다. 시청사 바로 앞에 있는 지하상가를 전부 조사했다. 시청 공무원이 가장 많이 들를 상점을 표본으로 고른 것이다.

6년차 현직 기자가 생각하는 언론의 역할

‘생각하다’라는 이름이 붙은 다섯 번째 범주에서 저자는 6년차 기자로서 유튜브 보고 받아쓰는 시대의 언론을 고민한다. ‘기레기’가 됐던 저자의 경험을 고백하며 기사 같지 않은 기사가 보도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어떤 정치인의 아들이 출마할지도 모른다는 기사를 쓰라는 지시를 받았다. 당사자에게 전화해 출마 가능성이 아예 없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선배에게 등 떠밀리고 발제에서 채택돼 기사를 쓰게 됐다. 결국 해당 인물은 출마하지 않아 오보를 낸 셈이 됐다.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3일 서울시 통의동 인수위원회 사무실 앞에 설치한 기자실을 찾아 기자들과 깜짝 간담회를 열었다. 그러나 윤 당선인 측 대변인실이 기자들에게 “현안 질문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고, 기자들은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당선인의 요구와 상관없이 기자라면 현안질문을 던져야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다음날 윤 당선인이 방문했을 때는 기자와 당선인 사이에서 현안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 연합뉴스

이에 대해 저자는 “아이템 발제와 채택, 누락은 절대 개인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아이템을 내고 채택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언론사의 보도 방향을 체득한다는 것이다. 이어 언론 관행과 제도에 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날카롭게 비판해야 ‘제도화된 기레기’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언론 내부의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동시에 언론의 의미 자체를 부정하거나 기자 개인을 향한 인신공격으로 언론을 혐오하는 시도를 경계하자는 의미도 내포한다.

기자가 현장에서 떠올려야 하는 질문

▲ 저자 송승환 <중앙일보> 기자. ⓒ 한국언론진흥재단

저자 송승환은 2016년 중앙일보·JTBC에 입사한 6년차 기자다. 현장을 누비며 기사를 쓰는 동안 책을 완성했고, 지금도 좋은 기삿거리를 찾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깊이 있는 통찰보다는 초년 기자와 예비 언론인에게 필요한 실제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초년 기자가 맞닥뜨릴 취재 현장, 또는 기자가 되기 위한 실무 평가 과정에서 이 책에 등장한 질문을 마주할 것이다.

100자 평
6년차 기자가 현장에서 무슨 고민을 하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밀도 높은 에세이나 뛰어난 통찰을 기대한다면 이 책을 권하지 않는다. 그런데 저자만큼 저널리즘을 애정하고 고민하는 기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다.

편집: 현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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