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나쁜 저널리즘

나쁜 저널리즘/박기묵 지음/커뮤니케이션북스/12000원

“나 진짜 기자 만들어줘요. 언제 어디서 누구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진짜 기자로 만들어주면 뜨겁고 거창하게 한번 끓어올라볼 테니까요. 곰탕처럼.”

JTBC 드라마 <허쉬>에는 진짜 기자를 향한 갈망이 담겨 있다. 그 갈망은 ‘기레기’가 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매일한국> 정규직 전환형 인턴 기자로 뽑힌 이지수(윤아 분)는 언론에 발을 들인 뒤 회색빛의 현실을 마주한다. 함께 인턴으로 뽑힌 오수현(경수진 분)은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정규직의 문 앞에 가로막혀 투신자살했다. <매일한국>은 진실을 감추려 쉬쉬하고 이지수는 언론의 민낯 앞에서 진짜 기자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나쁜 저널리즘' 책 표지. ⓒ 커뮤니케이션북스
'나쁜 저널리즘' 책 표지. ⓒ 커뮤니케이션북스

진짜 기자와 가짜 기자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하는 걸까. <나쁜 저널리즘>의 저자이자 CBS 노컷뉴스 현직 기자인 박기묵은 ‘나쁜 저널리즘’의 민낯을 마주하는 것이 신뢰받는 기자가 되는 일의 시작이라고 적었다. 얇은 시집 한 권 분량의 이 책에는 드라마 <허쉬>에 등장하는 모든 ‘나쁜’ 저널리즘이 등장한다. 보도자료 저널리즘, 따옴표 저널리즘, 표절 저널리즘, 인턴 저널리즘, 실검 저널리즘 등의 23가지 유형의 나쁜 저널리즘을 차례로 설명했다. 이 나쁜 저널리즘들을 끊어버리는 것이 언론 신뢰 회복의 방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원천을 취재해야 하는 이유

기자가 취재 정보를 얻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직접 얻거나 간접적으로 얻거나. 사건과 사람 혹은 현상을 직접 취재하면 왜곡될 가능성이 적다. 반대로 실체에서 멀어질수록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저자 박기묵이 제시한 23가지 나쁜 저널리즘은 취재 정보를 얻는 잘못된 방법에서 비롯한 경우가 많다.

그 중 기자가 가장 쉽게 정보를 얻는 방법은 ‘보도자료’다. 보도자료에는 정부, 국회, 기업, 시민단체 등의 취재원이 제 이익에 맞춤하여 전달하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 내용에 의문을 품지 않고 그대로 보도하는 것은 나쁜 저널리즘의 대표적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연합뉴스 저널리즘’과 이어진다. 보도자료에서 정보를 얻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연합뉴스>가 보도한 기사를 최소한의 팩트 체크도 없이 자사 뉴스로 내보내는 것이다. 저자는 대표적인 사례로 2018년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방북 보도를 꼽았다. 2018년 11월 29일 <연합뉴스>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방북…'김정은 답방 물밑 논의' 주목’이라는 기사를 송고했고, 여러 언론사가 관련 내용을 그대로 받아 보도했다. 그러나 정 전 장관이 방북했다는 <연합뉴스>의 보도는 완전히 오보였고, 이를 받아 쓴 대다수 한국 언론도 무더기로 오보를 쏟아내게 됐다.

다른 언론의 기사를 받아쓰는 ‘표절 저널리즘’, 정당과 기업 등 출입처에서 얻은 정보를 그대로 옮기는 ‘출입처 저널리즘’, 근거가 불분명한 소문과 억측이 난무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을 옮겨 보도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저널리즘’ 등도 마찬가지다. 정보의 원천에서 기자가 멀어질수록, 기사 내용이 실체적 진실과 멀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한국 언론의 독특한 생태계, 포털 저널리즘

저자는 ‘포털 저널리즘’도 ‘나쁜 저널리즘’의 하나로 봤다. 언론이 거대 포털 사이트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생태계는 한국 언론 환경을 규정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포털을 통해 뉴스를 보는 이용자들이 늘어난 것은 긍정적 측면이라고 할 수 있지만, 뉴스의 유통·소비 창구가 포털에 집중되면서 개별 언론의 역할과 가치는 급락했다. 언론 사이트를 직접 찾는 뉴스 사용자가 줄어들수록 각 언론이 포털을 통한 노출에 더 의존하는 악순환의 고리도 형성됐다. 포털에서 트래픽을 높이려고, 질 낮은 뉴스를 양산하는 관행도 나타났다.

포털은 국내법상 언론사가 아니다. 하지만 대중은 포털을 언론이라 인식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조사한 ‘2020언론수용자 조사’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65.1%가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언론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2020언론수용자 조사 갈무리. ⓒ 한국언론진흥재단
2020언론수용자 조사 갈무리. ⓒ 한국언론진흥재단

빠른 시간에 많은 기사를 양산하도록 부추기는 포털 저널리즘의 생태계는 저자가 제시한 다른 나쁜 저널리즘들을 더욱 확대하는 역할을 한다. 나쁜 저널리즘의 목록을 살펴보면, 과연 한국 언론의 생태계가 앞으로 개선될 수 있을지 깊은 비관에 빠지게 된다. 그 대안이 무엇일지 궁금해지는 책의 말미에 저자는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을 인용했다. 아마 그것이 대안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기자가 늘어날수록, 나쁜 저널리즘을 하나씩 지워가는 ‘진짜 기자’의 시대가 곰탕처럼 끓어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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