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 라솜(мир разом), 다함께 평화] ④ 우크라이나 장교 데느스의 전쟁

지난 3월 26일 <단비뉴스>는 우크라이나 제95공수여단 중위 데느스 안티포우(Denys Antipov) 씨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의 부대는 3월 9일 러시아 무인 항공기의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여러 명의 동료가 목숨을 잃었다. 데느스 씨는 허리에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다. 군 병원에 입원중인 그는 <단비뉴스>와 다시 인터뷰했다. 4월 1일부터 2주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줌(ZOOM) 화상회의와 온라인 메시지 등을 통해 전쟁의 실상을 <단비뉴스>에 이야기했다.

팔다리를 잃고 병원 복도에 누운 군인들

데느스 씨는 빠른 부대 복귀를 위해 재활치료와 운동을 병행하며 허리 회복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난번 기사가 나간 이후 그는 병동 부족 문제로 또 다른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군 장비를 착용하면 아직 허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지만, 조만간 퇴원할 계획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가 위치한 도시 드니프로(Dnipro)에는 전투에서 부상 당한 군인을 치료하는 병원이 여럿 있다.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극심한 피부 화상을 입은 군인들이 병원에 밀려들고 있다.

의료 장비가 잘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서도 의사들은 매일 야간 근무를 하고 있다. 의과대학 학생들까지 자원봉사에 나섰다. 뇌진탕 환자,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은 환자, 몸 곳곳에 총알구멍이 난 환자, 그리고 팔다리를 잃은 환자들을 목격했다고 데느스 씨는 말했다. 병동이 부족해 일부 군인들은 복도에 설치한 간이침대나 의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드니프로의 군 병원에 입원해 있는 데느스 씨. 군 병원 보안 문제로 인해 해당 병원을 특정 지을 수 없도록 무늬가 없는 벽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었다. 우크라이나 군 병원들은 실내외 사진을 외부로 내보내지 않고 있다. ⓒ 데느스 안티포우
드니프로의 군 병원에 입원해 있는 데느스 씨. 군 병원 보안 문제로 인해 해당 병원을 특정 지을 수 없도록 무늬가 없는 벽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었다. 우크라이나 군 병원들은 실내외 사진을 외부로 내보내지 않고 있다. ⓒ 데느스 안티포우

“이곳 병원이 바로 전쟁의 현실이에요.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정도는 이미 관심 밖의 일이 됐어요. 이곳은 군 병원이 있는 곳이라 안전하지 않아요. 하루에도 세 번 이상 공습경보가 울리고 있습니다. 다행히 아직 큰 피해는 없지만, 언제든 폭격이 날아들 수 있는 곳이에요.”

전쟁이 얼마 못 갈 것이라고 예측했던 외교 전문가들의 견해와는 달리 우크라이나가 잘 버티고 있다고 데느스 씨는 말했다. 여성과 청소년의 자원 입대가 늘어나 우크라이군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심지어 군 병원에서도 머리와 팔에 붕대를 감은 19살 소년과 마주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여성과 청소년 군인 가운데 중상자가 많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여성과 청소년이 후방에 배치되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군에 입대하지 않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여러 단체를 만들어 각종 구호 물품을 우크라이나 군에 제공하고 있다고 데느스 씨는 말했다. 전투 현장에서도 우크라이나 군은 매일 ‘MRE’(Meal Ready to Eat)라고 불리는 구호 식품을 제공받고 있다는 것이다. 초록색 비닐 꾸러미 안에는 세 끼 분량의 음식이 들어있다. 국, 죽, 밥, 간식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가끔 초콜릿과 건포도가 섞여 나온다. “전쟁터에서는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뭐든 충분하다”고 데느스 씨는 말했다.

데느스 씨는 병원 앞에 아무렇게나 쌓인 벽돌이나 마대 자루에 기대어 휴대전화로 줌에 접속해 인터뷰에 응했다. 해가 져 어두워진 뒤에도 그는 야외에서 인터뷰를 이어갔다. 병원 내부 모습이 언론에 공개돼선 안 되기 때문이다. 전쟁 발발 당시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던 때와 다르게 봄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고 그는 말했다. 영상 13도에 포근한 날, 그가 있는 드니프로에는 꽃봉오리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 도중 하늘에서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려 잠시 인터뷰가 중단되기도 했다.

지난 1일 오후 8시경(현지 시각), 데느스 씨가 병원 앞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유제니
지난 1일 오후 8시경(현지 시각), 데느스 씨가 병원 앞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유제니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무인 항공기

데느스 씨는 ‘드론’으로도 불리는 무인 항공기 조종가다. 그는 고해상도 이미지와 영상을 활용하는 비행 시뮬레이터를 통해 적의 위치 정보를 수집하고 전투 계획을 파악하는 법을 익혔다. 어릴 적부터 기계에 능했던 그는 서너 달 만에 자격증을 취득했다. 무인항공기 전문가가 절실한 우크라이나군에 필요한 인재가 되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다. 자격증을 얻은 직후인 2015년 돈바스 전쟁 때는 항공 정찰 부대에서 활약했다.

이번 전쟁에서도 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데느스 씨가 배치받은 부대에는 무인 항공기가 없었다. 오히려 러시아 무인 항공기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병원에서 치료받는 동안 그에게 좋은 뉴스가 들려왔다. 데느스 씨가 소속된 제95공수여단에 무인 항공기 두 대가 배치됐다는 소식이었다. 그 가운데 한 대는 중국 업체에서 들여온 기종이다.

러시아에 우호적인 중국의 무인 항공기가 러시아와 싸우는 우크라이나 군에 들어온 과정은 이렇다. 우크라이나의 비영리 시민단체인 ‘컴백 얼라이브’(Come Back Alive)는 전쟁 발발 이후 국제적인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 돈으로 우크라이나 군에 필요한 여러 물품을 제공하고 있는데, 최근 ‘민간 경로’를 통해 중국산 무인 항공기를 구입했고, 이를 러시아 무인 항공기에 공격당한 데느스 씨 부대에 제공한 것이다. 또다른 민간 단체가 800만 원 정도를 지불해 구입한 무인 항공기도 데느스 씨의 부대에 배치됐다.

익명의 민간 단체가 데느스 씨 부대에 기부한 무인 항공기다. 이 드론에는 열화상카메라가 탑재돼 있다. ⓒ 데느스 안티포우
익명의 민간 단체가 데느스 씨 부대에 기부한 무인 항공기다. 이 드론에는 열화상카메라가 탑재돼 있다. ⓒ 데느스 안티포우

얼핏 보면 장난감처럼 보이는 무인 항공기가 현대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적의 위치를 파악해 아군 부대에 알리거나, 현장에서 직접 폭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데느스 씨의 부대에 배치된 무인기들이 그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민간에서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사용하는 드론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기종이기 때문이다. 최대 비행시간이 40분에 불과하고, 무기를 운반할 수 없고, 송수신 신호를 보안 처리할 수 없어 적에게 노출될 위험이 크다.

“이런 종류의 무인 항공기를 조종하게 되면, 이륙해서 착륙할 때까지 드론 조종사가 위험에 노출된다”고 데느스 씨는 설명했다. 송수신 신호를 파악한 러시아 군이 무인 항공기를 조종하는 데느스 씨를 발견해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인 항공기를 조종할 수 있게 돼 데느스 씨는 기뻐했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목숨이 더욱 위험해졌다는 것 또한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다른 선택지는 없어요.”

데느스 씨가 말했다.

“무인 항공기가 한 대도 없다는 것은 저의 부대에 큰 불안을 야기했어요. 실제로 러시아군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것도 그 이유였죠. 이제 새로 생긴 무인기를 활용해 적의 위치나 계획을 미리 파악해, 보다 적극적 태세를 갖출 수 있게 됐어요. 그러나 우리 부대가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입니다. 민간용 드론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의 무인기를 아무리 많이 보유해도 전쟁의 승패를 바꾸기는 힘들어요. 전쟁의 양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더 강력한 무기가 필요하죠.”

방어 아닌 공격에 나설 때

현재 우크라이나 공군은 터키제 정찰 및 공격용 무인 항공기 ‘바이락타르 TB2’를 수십 대 보유하고 있다. 전체 길이 6.5미터(m) 크기로 미사일 운반과 표적 정밀 타격이 가능한 전문 군사용 무인 항공기다. 데느스 씨 부대 폭격에 사용된 러시아 군의 무인 항공기 ‘Orlan-10’에 버금가는 사양이다. 비행시간이 12시간 이상이며 폭탄을 운반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양적으로 턱없이 부족해 제공권 획득에는 무리가 있다고 데느스 씨는 설명했다.

“바이락타르 TB2와 같은 사양을 갖춘 드론이 더 많이 필요해요. 미사일 장착, 정밀한 위치 신호 전송, 그리고 보완 시스템이 철저히 갖춰진 전투용 무인 항공기 말이죠. 그래야만 제공권을 장악할 수 있어요. 우리가 가진 드론의 대부분은 아마추어들이 사용하는 수준입니다. 현장 사진, 그리고 적의 대략적 위치 전송만 가능해요. 전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엔 무리가 있죠.”

무인 항공기만 늘린다고 될 일은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탱크, 트럭, 포탄, 탄약 등 전쟁 물자 전반이 부족한데, 이 때문에 지상전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드론은 정보 등을 입수해 효율적인 전투 전략을 세우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궁극적으로 전쟁의 양상을 바꾸지는 못해요. 드론은 방어의 수단이지 공격의 수단은 아니기 때문이죠.”

2015년, 돈바스 전쟁 참전 당시 데느스 씨가 무인 항공기 조종 시뮬레이션을 운행하고 있다. ⓒ 데느스 안티포우
2015년, 돈바스 전쟁 참전 당시 데느스 씨가 무인 항공기 조종 시뮬레이션을 운행하고 있다. ⓒ 데느스 안티포우

불길 속에서 타죽고 있는데

지난 3일, 데느스 씨는 <단비뉴스>에 한 장의 사진을 보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북서쪽에 위치한 도시 부차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장면이 담긴 외신 보도 사진이었다. 그는 러시아군이 민간인 대량 학살을 통해 우크라이나 민족을 전멸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중대한 전쟁 범죄이며, 러시아는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러시아군은 아이들과 여성을 강간하고 280명의 민간인을 죽였어요. 뼈와 살을 태우는 백린탄과 화학무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시신을 훼손하는 등의 행위를 일삼고 있어요. 잔인하고 야만적인 전략을 택해 우크라이나를 피바다로 만들고 있죠. 러시아는 사회주의 국가들을 지배하에 두던 제국주의 국가 실현을 위해 과거 소련을 재건할 계략을 짜고 있어요.”

4월 3일 외신을 통해 공개된 부차 민간인 학살.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인스타그램 갈무리
4월 3일 외신을 통해 공개된 부차 민간인 학살.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인스타그램 갈무리

부상에서 회복 중인 데느스 씨가 웹 사이트를 제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시 전선에 투입될 날까지 그냥 앉아 있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입수한 러시아 군의 통화 및 문자 내용 등을 여러 언어로 번역해 자신의 웹에 게재하겠다고 그는 말했다. 민간인 사살과 강간, 폭력 등과 관련한 전화 내용 등을 전부 번역해 세계에 폭로할 계획이다. 데느스 씨는 자신의 행동이 국제 사회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오후 10시, 데느스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단비뉴스>와 진행한 인터뷰에 대한 생각을 적었다.

“어제 한국의 기자들이 나에게 물었다. ‘우리나라가 당신에게 무기가 아닌 인도주의적 물자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시 나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 후 한참 생각했다. 만약 당신이 소방서에 화재 신고를 했는데, 소방관은 오지 않고, 화재 진압에 필요한 물품만 보내주겠다고 하면 어떨까. 뜨거운 불길 속에서 죽어가는데, 옷과 마스크만 창문으로 던져준다면 어떨까. 물론 도움은 될 것이다. 그렇지만 불길에 맞서 싸워 살아 남기에 충분한 도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1일 한국 국회에서 진행된 화상 연설을 통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한국 정부에 무기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거절 의사를 표했다. 휴전 상태라는 한국의 외교안보적 상황 등을 고려하면, 살상용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다만, 국방부는 방탄 헬멧, 천막, 담요 등 비살상 군수 물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외세에 침략당해 전쟁을 치렀던 한국으로서는 주변국의 복잡한 관계를 충분히 고려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다만, ‘불길 속에서 살아 남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데느스 씨의 이야기가 귓가에 오래 맴돌았다.

2022년 2월 24일(이하 한국 시각),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각 나라 언론인들은 전쟁 현장에 달려갔다. 실체를 직접 목격해야 진실을 제대로 보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대다수 국내 언론은 외신 번역에 매달리고 있다. 몇몇 언론이 한국 외교부의 허가를 받아 2~3일 정도 현지를 살펴 보도했지만, 전쟁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단비뉴스>도 그 현장에 가진 못했다. 다만, 다양한 방식으로 우크라이나인들을 직접 접촉하여 그들과 그 가족·친구·동료가 목격한 전쟁을 기록하고 보도한다.

기부 캠페인도 시작한다. 자신의 ‘이름’과 ‘휴대전화 뒷번호 8자리’를 송금 메모에 적어, 신한은행 100-034-615484(사단법인 단비)에 기부금을 보내면, 인도적 지원을 위한 특별 모금 활동을 진행 중인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 전달한다. 기부자의 면면과 전달 과정도 보도할 예정이다.

<단비뉴스>는 일련의 보도와 연대 행동을 ‘메르 라솜 – 다함께 평화’라고 부르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말로 '메르'(мир, myr)는 '평화', '라솜'(разом, razom)은 '함께'를 뜻한다.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찾아오는 날까지 보도와 행동을 이어가겠다. 연재 기사 및 기부 캠페인과 관련한 제보, 제안, 문의 등은 전자우편 jennsis@naver.com에서 받고 있다. (편집자)

[메르 라솜(мир разом), 다함께 평화] 연재 보기

① 포탄에 숨진 할머니, 입대하는 아버지

② 폭격에서 살아남은 우크라이나 중위

③ 정든 고향을 빼앗긴 우크라이나 역사 선생님

⑤ 목숨 걸고 우크라이나 탈출한 고려인 알미라

⑥ 우크라이나 현장을 취재한 한국인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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