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 경상북도 울진군 두천리 한 야산에서 불이 났다. 산은 바짝 메말라 있었다. 이번 봄에 앞선 지난해 말과 올해 초는 1973년 이래 강수량이 가장 적은 겨울이었다. 불은 산을 따라 삽시간에 번졌다. 산불은 경북 북부를 거쳐 강원도 삼척으로 번지며 동해안 일대를 불태웠다. 산림 2만523헥타르(ha)가 불탔다. 2000년 동해안 산불(2만3794ha) 이후 역대 두 번째로 큰 피해 면적이었다. 주택 322동과 농기계 1899대도 불탔다. 산 아래 살던 사람들은 집을 잃어, 이재민 328세대가 발생했다. 정부가 집계한 피해액은 2261억 원이었다.

산불이 꺼진 자리에 사람들이 남았다. 다행스럽게도 정부는 피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역대 최대 규모의 복구계획을 확정했다. 지난 6일 발표된 정부 자료를 보면, 국비 2903억, 지방비 1267억을 합쳐 총 4170억 원이 투입된다. 이재민들이 받는 지원 금액도 늘었다. 집을 잃은 이는 최대 9000만 원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농업인에 대해서는 농업 활동에 복귀할 수 있도록 농기계와 종자 등을 무상 지원한다.

다만, 이번 대책에는 임산물에 대한 피해 보상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산에서 불이 났으므로 산에서 생계를 이어온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겠지만, 관련 제도가 미비해 이들을 지원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이 더 자주, 더 크게 발생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임산물 채취자들에 대한 피해 보상과 지원이 충분치 않은 것이다.

송이를 채취해온 주민들이 대표적이다. 국내 최대 송이 주산지인 경북 울진에서는 이번 불로 송이를 키우던 약 1500헥타르(ha)의 산이 재로 변했다. 이는 울진군 전체 송이 생산량의 약 70%를 감당했던 면적이다. 울진군이 자체 조사한 송이 피해 농가만 485가구다. 울진군에서 임업 활동으로 생계를 잇는 606가구 가운데 절반 이상이 피해를 입은 것이다.

마땅한 지원을 받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다. 송이는 오래된 소나무 밑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는데, 이를 채취하는 활동을 농업인 또는 어업인과 똑같은 기준으로 보상하기 곤란하다. 날씨 등 자연조건에 따라 매년 수확량에 큰 차이가 있어, 정확한 피해 규모를 산정하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산에 깃들어 살았던 그들이 이번 산불의 가장 큰 피해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지난 14일과 22일 경북 울진군 북면 일대를 찾아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4남매를 키워낸 송이 산

검성리 마을 전경. 불에 타지 않은 집들 뒤로 말라죽어 누렇게 변한 나무와 검은 나무들이 보인다. 타지 않아 초록빛을 유지하고 있는 나무들도 밑동이 모두 타 점점 죽어가고 있다. ⓒ 김지윤
검성리 마을 전경. 불에 타지 않은 집들 뒤로 말라죽어 누렇게 변한 나무와 검은 나무들이 보인다. 타지 않아 초록빛을 유지하고 있는 나무들도 밑동이 모두 타 점점 죽어가고 있다. ⓒ 김지윤
박화자(83) 씨가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다. ⓒ 박시몬
박화자(83) 씨가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다. ⓒ 박시몬

울진군 북면 검성리에 사는 박화자(83) 씨는 이번 산불로 집과 밭, 그리고 ‘송이 산’을 잃었다. ‘송이 산’은 송이를 채취할 목적으로 보유하여 관리하는 산이다. 강원도와 경상북도 경계에 있는 검성리 마을에는 ‘송이 산’이 많다. 산불이 처음 났던 두천리 마을과 11킬로미터(km) 떨어져 비교적 가까웠다. 그만큼 피해도 컸다.

처음 불이 났을 때만 해도 박 씨는 이웃 마을의 불이 검성리까지 번질 줄 몰랐다. 산불이 발생한 지난달 4일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위험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몸만 빠져나갔다. 검성리에 살던 81명의 주민은 서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뿔뿔이 흩어졌다.

산불이 진화된 다음 날, 박 씨는 마을로 돌아왔다. 집이 폭삭 주저앉아 있었다. 뒤이어 둘러본 밭도 까맣게 타 있었다. 박 씨가 재배하던 매실나무 80주는 모두 불에 탔고, 두릅나무 10개는 절반 정도 불에 그을려 있었다. 검성리 마을은 산과 산 사이에 위치해 있다. 강한 바람을 타고 산에서 산으로 날아다닌 불꽃은 조용했던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 마을에서 60년을 지탱해온 박 씨의 모든 것이 불에 타 사라진 것이다.

이번 산불로 피해를 입은 울진 북면 소곡리의 한 집.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집이 무너져 있다. ⓒ 박시몬
이번 산불로 피해를 입은 울진 북면 소곡리의 한 집.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집이 무너져 있다. ⓒ 박시몬

박 씨는 원래 강원도 영덕에 살았다. 중매로 만난 남편과 22살에 결혼하면서 울진으로 넘어왔다. 남편 집안은 꽤 풍족했다. 밭과 논이 지금보다 더 많았다. 15살 때부터 부모 농사일을 돕던 박 씨는 남편과 함께 논을 매고 밭을 일궜다. 부지런히 일해서 돈 많이 버는 농업인이라고, 젊었을 땐 지역 농협에서 표창도 받았다. 상품으로 괘종시계도 받았다. 부부가 주로 재배한 건 두릅나무, 매실나무, 고사리 등이었다. 그 열매와 줄기가 무겁지 않아 일하기에 편했고, 산골에서 맑게 자란 것들이라고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었다.

봄기운이 완연한 4월과 6월이 되면, 참두릅과 고사리를 수확했다. 작은 손이 달린 얇은 고사리 줄기를 박 씨는 열심히 꺾었다. 가시가 많은 참두릅은 조심스럽게 땄다. 5월 말에서 6월 중순까지는 청매실을 수확했다. 단단한 나무를 흔들고 장대로 때려 열매를 걷었다.

비 오듯 흘린 땀을 닦고 숨을 돌리면 가을이 왔다. 가을은 송이의 계절이었다. 남편네 집은 4헥타르(ha) 정도의 산을 갖고 있었다. 박 씨가 시집온 해부터 그 산에서 송이가 났다. 많이 나지는 않았지만, 박 씨와 남편, 그리고 4남매의 생계에 도움을 줬다. 9월이면 산에 올라 송이를 땄다. 500만원 정도를 벌었다. 박 씨는 송이 덕에 아들을 대학 보내고 딸 셋을 결혼시킬 수 있었다.

남편이 9년 전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는 집 근처 논 2개와 밭 1개만 남기고 모두 처분했다. 남은 논 2개도 밭으로 바꿔 두릅나무와 매실나무를 길렀다. 혼자 힘들게 쌀농사를 짓지 않아도, 송이가 있으니 한 몸 건사하며 자식과 손주들 보살피기에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나이에 비해 건강한 박 씨는 작년까지도 걸어서 30분 걸리는 ‘송이 산’에 직접 갔다. 다가올 가을에는 그 산에 가도 송이가 없다. 어쩌면 평생 송이를 따지 못할 것이다.

검성리 마을 주변 송이 산의 모습. 서있는 채로 숯이 됐다. ⓒ 김지윤
검성리 마을 주변 송이 산의 모습. 서있는 채로 숯이 됐다. ⓒ 김지윤

보상 못 받는 송이와 두릅

이제 박 씨에게 남은 건 225㎡짜리 고사리 밭과 두릅나무 몇 개다. 4월부터 6월 초까지 자라는 고사리를 지금부터 갖다 팔아도 200만~300만원밖에 벌지 못한다. 고사리와 함께 수확하고 있어야 할 두릅나무는 불에 타 검게 그을렸다. 박 씨는 타지 않고 살아남은 두릅을 팔았더니 2만 1000원이 나왔다며 껄껄 웃었다. 원래라면 30만 원을 벌어야 했다. 매실나무 80주는 곧 꽃이 필 시기지만 가지만 남아있다. 농협손해보험에 화재 피해를 신고했지만,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박 씨의 매실나무를 심어놓은 곳이다. 밭 앞뒤가 모두 산불에 휩싸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5월에 곧 꽃을 펴야 하지만 불에 타 앙상하게 가지만 남아있다. ⓒ 김지윤
박 씨의 매실나무를 심어놓은 곳이다. 밭 앞뒤가 모두 산불에 휩싸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5월에 곧 꽃을 펴야 하지만 불에 타 앙상하게 가지만 남아있다. ⓒ 김지윤
박 씨의 두릅나무. 나무 밑동이 검게 그을려 있다. 다행히 두릅나무 몇 개는 살아남았다. ⓒ 김지윤
박 씨의 두릅나무. 나무 밑동이 검게 그을려 있다. 다행히 두릅나무 몇 개는 살아남았다. ⓒ 김지윤

송이 피해도 보상받을 수 없다. 그동안 송이를 딸 때마다 산림조합에 팔지 않고 개인에게 직접 팔았다. 거래내역이나 증빙자료가 없으므로 손해를 입증하지 못한다. 혼자 사는 산골 노인 박 씨에게 ‘이런 일을 대비해 정식으로 판매해 근거 서류를 남겼어야 한다’고 타박해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통닭 배달도 오지 않는 산골 마을에 살고 있는 박 씨에게 산림조합까지 가는 길은 너무 멀다. 송이를 따고 산에서 내려오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 송이를 지고 조합장에 가느니, 알음알음 주변 사람들에게 파는 게 편리했다. 다른 주민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울진군이 자체 조사한 송이 피해 농가는 485가구이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농가가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입주할 날을 기다리며

검성리 마을입구에 있는 경로당. 18평짜리 경로당에서 주민 6명이 20일 째 살아가고 있다. ⓒ 박시몬
검성리 마을입구에 있는 경로당. 18평짜리 경로당에서 주민 6명이 20일 째 살아가고 있다. ⓒ 박시몬
경로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이재민들. TV 앞에 모금기관에서 보내온 구호물품 박스가 쌓여있다. 칫솔, 치약, 수건, 속옷, 이불, 손톱깎이 등 당장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들어있다. ⓒ 박시몬
경로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이재민들. TV 앞에 모금기관에서 보내온 구호물품 박스가 쌓여있다. 칫솔, 치약, 수건, 속옷, 이불, 손톱깎이 등 당장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들어있다. ⓒ 박시몬

박 씨는 지금 마을 경로당에서 지내고 있다. 집이 불타버렸으므로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비슷한 처지의 마을 주민 6명이 박 씨와 함께 숙식하고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정부 및 지자체에서 임시 조립주택을 제공한다. 박 씨가 살던 집 마당에 놓인 임시 주택은 내부 공사 중이다. 빠르면 5월 초에 입주할 예정이다.

박 씨가 들어갈 임시 주택은 약 8평(27㎡) 크기다. 거실, 주방, 화장실 등 기본 시설을 갖췄다. 40인치 텔레비전, 587리터(L) 냉장고, 9킬로그램(kg) 용량의 세탁기, 압력밥솥, 전자레인지 등 기부 받은 생활 물품도 제공된다. 텔레비전을 임시 주택에 설치하던 날, 박 씨는 일부러 구경을 갔다. 옛 집보다 깔끔하니 좋다고 박 씨는 생각한다.

박 씨가 입주할 임시 주택. 옆에 ’박화자‘라고 이름이 붙어있다. 아직 내부 공사가 완료되지 않아 건축자재들이 주변에 널부러져 있다. ⓒ 김지윤
박 씨가 입주할 임시 주택. 옆에 ’박화자‘라고 이름이 붙어있다. 아직 내부 공사가 완료되지 않아 건축자재들이 주변에 널부러져 있다. ⓒ 김지윤
설치 기사가 TV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옆에서 지켜보는 박 씨의 모습. ⓒ 김지윤
설치 기사가 TV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옆에서 지켜보는 박 씨의 모습. ⓒ 김지윤

박 씨는 앞으로 1년간 임시 주택에 무상으로 거주할 수 있다. 원할 경우 추가로 1년을 연장해 2년간 머무를 수 있다. 이후에도 계속 지내고 싶다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매입이 가능하다. 실은 그 방법밖에는 없다. 박 씨의 집은 이번 산불로 완전히 불탔다. 새로 지으려면 적어도 1억 원이 필요하다. 경상북도와 울진군에 따르면, 불에 탄 집터에 새로 집을 짓는 평균 비용은 평당 600만 원이다. 20평 집을 새로 지으려면 1억 2000만 원이 필요한 셈이다.

박 씨에겐 그럴 돈이 없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정부 지원을 받게 됐지만, 그 돈을 모두 모아도 새로 집을 지을 수가 없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된 곳의 보상은 ‘사회재난 구호 및 복구 비용 부담기준 등에 관한 규정’ 등을 따른다. 주택 규모 등과 상관없이, ‘전부 파손’된 경우에 최대 1600만원을 지원받는다. 이번 산불 피해 지역에 대해선 그 액수를 두 배 이상 높였다. 덕분에 박 씨는 3800만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여기에 더해 국민성금으로 마련된 예산으로 5200만원을 추가로 받는다. 그렇게 9000만 원을 박 씨는 받게 됐다.

적은 돈은 아니겠지만, 새 집을 지을 만큼 충분한 돈도 아니다. 그 돈을 잘 간수하여 2년 뒤 임시 주택을 정식으로 구매하고 남은 생을 보내는 것이 박 씨의 계획이다. 송이 산이 불타버렸고, 밭과 나무도 잿더미가 됐으므로 이제는 일하러 나갈 곳도 없다. 이번 산불로 인해 생계유지가 곤란한 경우엔 1인 가구 기준 48만 8800원의 생계비를 지급받을 수 있긴 한데, 이런 지원은 그저 한시적이다.

산에 불이 나도 별 상관없이 살아가는 도시 사람들은 박 씨처럼 산골에서 늙어가는 인생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정도 보상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잿더미 사이에 혼자 남겨진 박 씨는 조립 주택과 9000만 원으로 살아갈 것이다. 박 씨는 그저 또 산불이 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박 씨 뒤로 검게 재로 덮인 고사리밭이 보인다. ⓒ 박시몬
박 씨 뒤로 검게 재로 덮인 고사리밭이 보인다. ⓒ 박시몬
한창 수확철인 고사리가 검은 땅을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 박시몬
한창 수확철인 고사리가 검은 땅을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 박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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