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교양특강]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품격 있는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 두 달 동안 미국 남부 도시들을 돌며 공연하던 그는 마지막 연주회를 앞두고 자신을 초청한 호텔의 레스토랑에 들어가려다 입장을 저지당한다. 공연장에서 연주는 할 수 있지만 백인 전용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는 없다는 것. 주인공이 모욕을 당한 이유는 단 하나, 흑인이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그린북>의 상징적 장면이다.

영화의 소재가 된 ‘그린북’은 당시 미국 전역에서 흑인 여행자가 갈 수 있는 숙소와 식당을 정리한 안내서다. 일종의 ‘흑인 생존 가이드북’이었던 셈이다. 홍성수(48)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지난달 31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인문교양특강에서 이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줌(Zoom) 화상회의를 통해 ‘소수자 인권과 차별금지법’을 주제로 강연한 그는 그린북에서 그려진 차별이 현대사회에서는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인권 관련 연구와 자문을 활발히 해 온 그는 혐오표현과 소수자 문제를 다룬 <말이 칼이 될 때> 등의 저서로 대중과 친숙한 법학자다.

‘노키즈존’은 괜찮지 않습니다

줌 화상회의로 강의하고 있는 홍성수 교수. 코로나19에 감염돼 자택에서 격리 생활 중인데도 4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강연과 질의답변에 임했다. ⓒ 손민주
줌 화상회의로 강의하고 있는 홍성수 교수. 코로나19에 감염돼 자택에서 격리 생활 중인데도 4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강연과 질의답변에 임했다. ⓒ 손민주

홍 교수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차별의 예로 ‘노키즈존(No Kids Zone)’을 들었다. 그는 어린이를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이 ‘흑인 출입금지’와 본질적으로 같은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당하는 사람에게 모멸감과 두려움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레스토랑은 공공기관이 아니에요. 개인 영업장이죠. 업주에게 차별이라고 항의하면 보나 마나 ‘내 영업장인데 내 마음대로 못하느냐’고 할 거예요. 국가권력에 의한 차별은 현저하게 줄어든 반면, 사적 영역에서 차별은 더 많이 발생하고 있어요. 차별이 새로운 형태로 진화해서 나타나고 있는 거죠.”

홍 교수는 소란스럽다는 이유 등으로 아이들과 아이를 동반한 어른을 아예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이어서 정신적 고통과 모멸감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식당에서 노란 옷 입은 사람을 못 들어오게 했을 때, 노란 옷 입은 사람이 억울할 수는 하겠지만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끼지는 않는다”며 “손님을 가려 받는 이유가 정체성과 연관돼 있을 때는 정신적 고통을 준다”고 말했다.

‘노키즈존’이라고 표시한 서울의 한 식당. 아이가 뛰어다니는 그림을 내붙였다. 홍성수 교수는 저서 등을 통해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해 출입을 금지할 게 아니라 타인을 방해하는 ‘행동’을 금지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 KBS
‘노키즈존’이라고 표시한 서울의 한 식당. 아이가 뛰어다니는 그림을 내붙였다. 홍성수 교수는 저서 등을 통해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해 출입을 금지할 게 아니라 타인을 방해하는 ‘행동’을 금지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 KBS

출입을 거부당한 개인이나 특정 집단은 ‘다른 식당 어디를 가도 같은 대우를 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는 것이 홍 교수의 설명이다. ‘노키즈존’이 특별히 많은 제주 등에서는 아이를 동반한 부부가 외출하기 전 식당·카페의 출입금지 여부를 확인하는 게 필수 과정이 됐다. 코로나 초기에는 국내에서 ‘중국인 출입 금지’ 등을 내건 식당도 있었는데, 인종이나 국적 등을 이유로 차별을 경험한 사람은 ‘다른 가게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이런 일을 당하면 어쩌지’ ‘직장에서도 비슷한 일을 당하면 어쩌지’ 하는 공포를 느낀다고 홍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자기 정체성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스스로 자책하게 되고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국내에서는 ‘중국인 출입금지’ 등의 차별적 안내문이 나붙었고, 미국 등에서는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혐오범죄가 일어났다. ⓒ KBS
코로나19 사태 초기 국내에서는 ‘중국인 출입금지’ 등의 차별적 안내문이 나붙었고, 미국 등에서는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혐오범죄가 일어났다. ⓒ KBS

“해도 되는 거였어?” 차별의 해악

2012년 미국 콜로라도주에서는 ‘동성애자에게 결혼 축하 케이크를 팔지 않겠다’고 한 제과점주인이 차별 논란의 중심에 섰다. 동성애를 싫어하는 기독교인인 잭 필립스는 차별금지법 위반으로 고소당했다. 1심과 2심은 필립스의 잘못을 인정했지만 연방대법원은 ‘제과점 주인의 종교적 권리도 보호해야 한다’며 하급심을 뒤집었다.

하지만 홍 교수는 “명백한 차별이라고 생각한다”며 “사회 곳곳에서 저마다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이 일어나면 그 해악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차별은 잠재적 가해자에게 차별에 동참하라는 신호를 줘 주변으로 빠르게 전파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어린이는 가게에 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장이 많았어도 감히 행동에 옮기진 못했다면 ‘노키즈존’이 등장하자 ‘이래도 되는 거였구나’하며 너도나도 가세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홍교수는 또 “동성애자에게 케이크를 팔지 않아도 정당하다는 논리가 확립되면 동성애자는 직장에서 고용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학교에서 쫓아내도 된다는 논리로 확대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차별이 쉽게 확대될 수 있는 것은 ‘구조적 차별’, 즉 문화적 차별이 사회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가 이런 사회 구조적 차별을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편견은 누구나 가질 수 있고, 사회적으로도 만연해 쉽게 해소할 수 없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이 있다면 편견이 혐오표현으로 발전하거나 차별 행위로 이어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홍 교수는 강조했다. 차별과 혐오표현, 혐오범죄 모두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홍성수 교수가 제시한 혐오와 차별의 피라미드. 편견을 말로 옮기면 혐오표현이 되고, 편견을 실행에 옮겨 불이익을 주면 차별이 된다. 차별이 폭력으로 변해 혐오범죄와 집단학살로 이어질 수도 있다. ⓒ 홍성수
홍성수 교수가 제시한 혐오와 차별의 피라미드. 편견을 말로 옮기면 혐오표현이 되고, 편견을 실행에 옮겨 불이익을 주면 차별이 된다. 차별이 폭력으로 변해 혐오범죄와 집단학살로 이어질 수도 있다. ⓒ 홍성수

우리나라 차별금지법은 2007년 이후 표류 중

우리나라에서 차별금지법은 2007년에 처음 발의됐다. 이후 2010년, 2012년에도 입법이 시도됐지만 불발됐고, 지난해 6월에는 입법 청원 기준인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에서 심사가 시작됐지만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홍 교수는 국내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에 세 가지 요건이 있다고 설명했다. 첫째 성별이나 성적지향, 신체 조건, 정치적 신념, 출신 지역, 학력이나 고용 형태 등 일단 한번 형성되면 쉽게 바꾸기 어려운 정체성을 ‘차별’의 대상으로 한다. 둘째 업무상 필요 등 합리적인 이유가 없을 때만 ‘부당한 차별’로 본다. 셋째 채용이나 승진 등 고용영역, 재화나 서비스의 공급영역, 교육영역, 행정서비스영역 등 4가지 영역에서 일어난 차별만 제재의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호원을 뽑을 때 신체장애인을 제외하는 것은 차별금지법의 제재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는 정도로 교사 임용을 거부하는 것은 부당한 차별로 볼 수 있다. 카페 전체가 노키즈존이라면 차별로 볼 수 있지만, 어린이가 다니기에 위험한 옥상 공간만 출입을 제한한다면 차별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성별에 따른 탈의실 구분과 스포츠 경기 분리는 필요하지만, 성별 구분이 불가피한 게 아니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충북 제천의 제천여성도서관은 남성 출입을 금지했다가 지난해 7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로 번복 조처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도서관의 존재 목적상 남성 출입 금지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1994년 개관한 제천여성도서관. 홍성수 교수는 “여성과 관련된 장서로 특화했어도 여성도서관 취지는 충분히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박성동
1994년 개관한 제천여성도서관. 홍성수 교수는 “여성과 관련된 장서로 특화했어도 여성도서관 취지는 충분히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박성동

홍 교수는 차별금지법이 있어도 모든 차별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차별은 규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신입사원 면접관들에게 임원이 ‘우리 회사에 여직원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지나가듯 얘기한다면 면접관들이 영향을 받겠지만 차별 행위로 입증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무엇이 차별인지 가려내기 어려운 만큼 처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이 잘 갖춰져 있으면 차별행위도, 혐오표현도 미리 막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상급자가 ‘여성이 관리자 직위에 오르기는 부적절하다’며 여성혐오 표현을 한다면 차별금지법 위반이 되기 때문에 ‘아무 데서나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할당제는 구조적 차별 철폐의 돌파구

“구조적 차별은 행위자의 의도는 없지만 구조적 요인 때문에 일어나는 차별입니다. 집단 안에서 발전되고 이행되어온 체계, 구조, 문화의 산물입니다. 결국 편견을 해소하는 게 제일 좋겠지만 ‘적극적 평등조치’(affirmative action)를 통해서 임시적인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습니다.”

노예제가 폐지됐고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기회의 평등과 절차적 평등을 해치는 형식적 차별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깊은 편견에 기반한 사회 구조적 차별은 여전하다. 홍 교수는 여성, 장애인, 이주민 등이 겪는 구조적 차별의 해소를 위해 적극적 평등조치도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의원 등 비례대표 선임, 기업의 이사 위촉 등에서 여성할당제 같은 적극적 평등조치를 도입하는 것은 구조적 차별이 빨리 해소될 수 있도록 돌파구를 여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홍 교수는 차별과 혐오를 막는 사회적 규제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안티 페미니즘’을 선동한 데 이어 최근 장애인단체의 이동권 시위를 공격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발언을 지목했다. 홍 교수는 “이준석 대표의 말은 법적 의미에서 혐오표현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그의 발언이 있고부터 인터넷에서 장애인 혐오표현이 급격히 늘었다”며 “정치인이 빗장을 풀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작 혐오의 판을 벌인 사람이 면죄부를 받기 쉬운데, 이런 발언에 대해서는 정치적 비판 같은 사회적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미국 <ABC> 방송의 몰래카메라 프로그램 ‘왓우쥬두’(What would you do)를 보면 성소수자가 길거리에서 공격당할 때 자기 일이 아닌데도 주변에서 개입하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다”며 “2017년 우버가 사내 성희롱 사건을 덮으려 하자 소비자들이 나서서 불매운동을 벌인 일도 사회적 기제가 잘 작동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인들은 국가의 법적 규제보다 사회적 규제가 더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홍성수 교수의 강의에는 세명대저널리즘스쿨 학생과 일반시민 등 40여 명이 온라인으로 참석했다. 차별을 바로잡는 수단과 평등의식을 높이는 방법 등에 관한 질문이 많이 나왔다. ⓒ 손민주
홍성수 교수의 강의에는 세명대저널리즘스쿨 학생과 일반시민 등 40여 명이 온라인으로 참석했다. 차별을 바로잡는 수단과 평등의식을 높이는 방법 등에 관한 질문이 많이 나왔다. ⓒ 손민주

이어진 질의답변 시간에 이정민(28·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생) 씨는 “이주민에 대한 차별에는 사회적 경각심이 낮은데 차별을 해소할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홍 교수는 “차별의 밑바닥에는 편견이 있기 때문에, 편견을 해소해야 한다”며 “사회적 접촉을 늘리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발했다. 그는 “한국인과 고용 관계에 있는 이주노동자는 평등한 관계로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며 “친구로서, 동료 시민으로 만나는 경험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제니(28·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생) 씨는 "여성전용 주차장은 또 하나의 ‘구분 짓기’가 아닌지 의문스러운데, 이런 할당제가 낳는 부작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고 질문했다. 홍 교수는 “소수자를 위한 할당제를 쓰더라도 궁극적인 목표는 집단 구분 없는 평등이 돼야 한다”며 “사회적 우대조치가 고착화하면 소수자는 계속 혜택을 받아야 하는 약자 위치에 갇히게 되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차장 전체의 안전을 높여 불안을 줄이면 성별 차이 없이 모든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다”며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 장애인뿐 아니라 모든 교통약자가 편리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설명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은 매 학기 외부 전문가들을 초청, 우리 사회의 핵심 현안에 관해 이야기를 듣고 토론하는 특강을 연다. 2022학년도 1학기에는 ‘인문사회교양특강’을 통해 페미니즘, 인권, 한류, 팬데믹, 플랫폼노동, 농업·농촌, 포퓰리즘 등에 관해 공부한다. 이 수업은 세명대 학술관 현장을 줌 화상회의로 중계해 외부의 졸업생과 일반시민에게도 개방한다. <단비뉴스>는 강연과 문답 내용을 기사와 영상으로 독자들에게 배달한다. (편집자 주)

편집: 박성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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