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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로 파헤친 ‘빈곤 비즈니스’ 실상
[저널리즘특강] 이혜미 한국일보 커넥트팀 기자
2021년 11월 29일 (월) 00:38:03 최은솔 기자 scottchoi19@gmail.com

<한국일보>의 2019년 기획시리즈 ‘지옥고 아래 쪽방’은 도시 극빈층의 열악한 주거지에서 고수익을 올리는 건물주들의 ‘빈곤 비즈니스’를 고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어진 ‘대학가 신쪽방촌’ 시리즈는 법정 최저 주거면적 미만으로 원룸을 쪼개 임대료 수익을 극대화하는 건물주들의 횡포를 고발했다. 이 기사를 쓴 이혜미(33) 기자는 이듬해 최은희여기자상, 한국데이터저널리즘어워드 ‘올해의 데이터기반 탐사보도상’,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등 여러 언론상을 휩쓸었다. 이 취재기를 바탕으로 지난해 <착취도시, 서울>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 기자가 지난 19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학술관에서 ‘착취도시 서울의 현장 기자가 고민하는 저널리즘’을 주제로 특강에 나섰다.

‘지옥고 아래 쪽방’ ‘대학가 신쪽방촌’으로 언론상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저널리즘특강에 초청된 한국일보 이혜미 기자가 ‘지옥고 아래 쪽방’을 취재한 과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강훈

그는 자신을 ‘괴짜’이자 ‘아웃사이더’라고 소개했다. 그의 7년 기자 생활은 남달랐다. 남몰래 자신이 쓰고 싶은 기사를 준비하느라 개인 생활을 반납하는 그를 동료들은 ‘뉴스룸의 괴짜’로 불렀다. 쪽방촌 기사를 준비하던 당시에는 밤 10시까지 혼자 뉴스룸에 남아 등기부 등본을 인쇄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밥 먹을 때를 뺀 모든 여유 시간을 이 작업에 투입한 그는 기사 쓸 준비를 80% 정도로 마치고서야 회사에 보고했다고 한다. 그는 “(가치 있는 기사라면) 24시간 일해도 재미있고 보람차다”고 말했다. 

‘지옥고 아래 쪽방’ 취재는 2018년 서울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가 계기가 됐다. 당시 고시원에 살던 무연고자의 사망이 사회적 관심사가 됐는데, 타사 보도에서 ‘고시원 건물주의 반대로 스프링클러를 달지 못해 화재가 커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기자는 인근 쪽방촌 사정은 어떤지 취재를 시작했다. 그러다 쪽방촌에 살던 한 중년의 취재원에게서 ‘집주인이 골목 쪽방 전부를 가지고 있고, 쪽방 월세로 근처에 빌딩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기자는 이 ‘빈곤 비즈니스’가 사실인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그는 서울시가 파악하고 있는 318개 쪽방 건물 중 등기가 돼 있는 243채의 등본을 떼서 실소유주 270명의 증여, 매매, 상속, 경매 경로를 추적했다. 동시에 5개월 동안 쪽방촌을 드나들며 중간관리인과 주민, 마을 통장과 쪽방 봉사자 등을 만나 서류 기록을 검증하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 결과 쪽방 건물 소유주들이 유명 학원강사 등 고소득자들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서울의 대표적 부촌인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살면서 쪽방 건물 관리인을 두고 임대 수입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건물주들은 한겨울에 쪽방 문짝이 떨어져 수리해 달라고 해도 외면하는 등 열악한 시설을 방치하면서, ‘평당으로 따지면 타워팰리스의 몇 배나 되는 임대료’를 꼬박꼬박 받아갔다. 그는 이런 사실을 주민들의 사연과 함께 기사에 생생하게 담았다. 

등기부 등본 ‘수작업’으로 243채 건물 실소유주 확인  

쪽방촌 기사를 단단하게 만든 것은 데이터였다. 서울 시내 쪽방 건물의 실소유주 현황이 데이터로 확인됐기 때문에 반박할 수 없는 사실 보도가 가능했다. 그런데 그 과정은 데이터저널리즘에서 흔히 활용하는 컴퓨터 분석이 아닌 ‘수작업’이었다고 이 기자는 말했다. 등기부 등본에서 실소유주의 이름, 나이, 주소, 등록 연도, 사유 등을 찾아 일일이 엑셀 파일에 입력했다. 등기부에 일본식 네 글자 이름 등 불분명한 기록이 나오면 쪽방 주민들에게 물어서 확인했다. 

이 기자는 데이터저널리즘어워드 수상소감으로 “(제가 한 건) 데이터저널리즘은 아닌 것 같고 노가다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데이터저널리즘을 말할 때 흔히 전문프로그램 같은 ‘기술적 장벽’을 떠올리지만, 핵심은 여전히 사안을 바라보는 강력한 문제의식에 있다”고 강조했다.  

   
▲ 이혜미 기자(왼쪽)가 인턴 기자와 함께 서울 시내 318개 쪽방 건물 중 등기가 돼 있는 243채의 등본을 떼 분석하고 있는 모습. ⓒ 이혜미

이 기자는 디지털 독자를 겨냥해 인터랙티브(반응형) 기사를 만드는 데도 공을 들였다. 독자가 쪽방 안에 누워 체험하는 느낌이 나도록 360도 카메라에 냉장고, TV, 선풍기 등이 촘촘히 들어선 쪽방의 모습을 담았다. ‘대학가 신쪽방촌’ 보도에서는 좁은 건물에 불법 ‘쪼개기’로 만든 원룸의 실태를 보여주기 위해 건물의 우편함과 가스계량기 개수를 일일이 세는 모습 등을 영상에 담았다. 

   
▲ 쪽방촌의 실상을 디지털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360도 사진을 활용한 인터랙티브 콘텐츠와 영상도 제작했다. ⓒ 한국일보

토론회 증언 등 애프터서비스(AS)도 열심히  

이 기자는 보도 후 쪽방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활동에도 기꺼이 나섰다. 쪽방촌 관련 토론회에 참석해 실태를 증언하고, 쪽방 주민들과 소통도 이어갔다. 사회적 관심이 쏠리자 정책적인 변화도 생겼다. 국토교통부는 쪽방촌을 대상으로 한 공공 재개발을 빠르게 진행했다. 보통 재개발을 하면 임차인 등 원주민이 쫓겨나는 일이 많은데 이번에는 원주민이 임시로 거주할 공간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재개발이 추진된다. 

반(反)빈곤단체 연대체인 ‘홈리스 주거팀’은 쪽방촌 기사를 종이신문 400부로 인쇄해 쪽방촌 집집마다 배달했다. 기사를 읽은 주민들은 이 기자를 쪽방촌 복지시설로 초청해 취재 후기를 듣고 해결방안에 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기자는 “제가 쓴 기사에 대해서 AS를 하는 것까지 월급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그게) 제 일의 연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4개 반빈곤단체 연대체인 홈리스 주거팀은 2019년 5월 당시 ‘지옥고 아래 쪽방’ 기획 기사를 모은 종이신문 400부를 찍어 쪽방 주민들에게 배달했다. 쪽방촌 주민들이 배달된 신문을 읽고 있다. ⓒ 이혜미

이 기자는 기획취재의 핵심 요소로 압도적인 팩트(사실), 관객이 몰입하는 서사, 미래지향적인 대안 등 3가지를 들었다. 예를 들어 쪽방촌 생태계에 존재하는 불법 증축의 문제를 발견하는 것은 압도적인 팩트, 쪽방촌 주민과 나눈 대화는 기사의 스토리, 쪽방촌 문제 해결을 위한 좌담회 등은 대안에 해당한다. 그는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압도적인 팩트라고 말했다. 여전히 새로운 팩트는 현장에 있는데, 현장은 실마리를 제공하고 독보적인 데이터가 이를 증명해야만 풍부한 이야기가 가능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1인 미디어와 유튜버까지 모인 과열된 취재 현장에서 같은 자료만 보고 쓴 속보성 기사는 특색이 없다”며 “똑같은 현장에서도 뭐를 더 길어낼 것인가를 판단하는 부분에서 개별 기자의 내공 같은 게 보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독자와 뉴스룸의 가교역할을 맡은 커넥트팀 

이 기자는 2015년 부산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와 SNS(사회관계망서비스)팀에서 일했고, 2017년 한국일보로 이직해 사회부, 기획취재부, 정치부를 거쳐 현재 커넥트팀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커넥트팀이 ‘좋은 기사와 좋은 독자의 거리를 좁혀주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기서 젠더(성평등) 전문 뉴스레터 ‘허스토리’를 발행하고, 한국일보의 콘텐츠 전략 등을 설명하는 칼럼도 쓰고 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생들이 이혜미 기자의 강연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날 특강에는 현장 청중 외에 줌 화상회의를 통해 외부 청강생도 참여했다. ⓒ 강훈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생 현경아(28) 씨는 한국일보의 뉴스레터 콘텐츠가 독자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와 뉴스레터 성과를 어떤 지표로 판단하는지에 관해 질문했다. 이 기자는 “뉴스레터는 뉴스를 포털에서 독립하기 위한 시도”라며 “뉴스레터의 평가 지표는 아직 양적 데이터인 구독자 수, 오픈율 같은 부분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뉴스레터로 기사를 소개하고는 있지만, 그것으로 유입률이 늘 것이라는 기대는 안 한다”라며 “플랫폼의 필요성과 기자 개별브랜딩의 차원으로 뉴스레터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학원생 김계범(30) 씨는 쪽방촌 취재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물었다. 이 기자는 “기사에 필요한 영상이나 별도의 웹페이지를 만들 때, 기자들이 웹디자이너나 영상 PD들과 협업하는 과정에서 소통이 쉽지 않았지만 여러 시행착오 끝에 지금은 협업 과정이 정례화됐다”고 말했다. 또 “쪽방 취재원과 신뢰관계(라포)를 쌓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최대한 자주 찾아가고 같이 밥을 먹으면서 시간을 쌓는 과정을 거쳐 취재원으로부터 허심탄회하게 동네의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은 신문, 방송, 뉴미디어 등에서 탁월한 활동을 보이는 현직 언론인을 초청해 ‘저널리즘 특강’을 열고 있다. 초청 강사들은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과 함께 급변하는 미디어 지형과 언론의 대응, 언론인의 고민 등에 관해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수강생들의 질문에 답한다. <단비뉴스>는 강연과 문답 내용을 기사와 영상으로 독자들에게 배달한다. (편집자 주)

편집: 최은솔 기자

[최은솔 기자]
단비뉴스 지역사회부, 소셜전략팀 최은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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