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교양특강]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애플리케이션 등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일손이 거래되는 플랫폼 노동시장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더욱 팽창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1월 발간한 ‘2021년 플랫폼 종사자 규모와 근무실태’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는 취업자(15~69세)의 8.5%인 약 220만 명으로 추정됐다.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 배달 수요 등이 늘면서 전년에 비해 23%나 증가한 것이다. 반면 노동자로서 이들의 권리와 복지는 사각지대에 있다. 

김종진(48)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지난달 19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인문사회교양특강에서 ‘플랫폼 경제 시대의 노동 불평등’이라는 주제의 강의로 급증하는 불안정 노동의 실태와 과제를 짚었다. 고용노동부 등 여러 기관에서 자문을 해온 그는 현재 청년노동자를 위해 상담·교육·연구 활동을 하는 (사)유니온센터 이사장도 맡고 있다. 또 <노동자의 시간은 저절로 흐르지 않는다> 등 저서와 신문칼럼 등을 통해 노동 현안에 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평점·리뷰에 소득 좌우되는 제도 밖 노동자들 

“우리 사회에선 언제부터 해고가 일상적이었을까요? 대한민국은 언제부터 구조조정을 통한 해고가 법적으로 가능하게 됐을까요? 1997년 IMF 구제금융 요청 이후에 대한민국 근로기준법 23, 24조에 따라 ‘긴박한 경영상의 사유’에 의해 30일 전에만 통보하면 가능하게 됐습니다. 노동조합이 있으면 50일 전에 통보해야 합니다. 그만큼 일터에서 자기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주체 집단이 있으면 보호의 수준이 높은 겁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충북 제천시 세명대 학술관에서 ‘플랫폼 경제 시대의 노동 불평등’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조성우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충북 제천시 세명대 학술관에서 ‘플랫폼 경제 시대의 노동 불평등’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조성우

김 위원은 외환위기 이후 해고가 일상화했을 뿐 아니라 파견 노동자 합법화 등을 통해 비정규직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분석한 데 따르면 2021년 8월 기준 임금노동자 2100만 명 가운데 비정규직은 904만 명으로 전체의 43%를 차지한다. 그는 최근에 급증하고 있는 플랫폼 노동자는 비정규직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제도 밖 노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 전체 임금노동자의 4분이 1가량이 월 230만 원 이하를 받는 저임금 노동자라고 덧붙였다.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자 등 불안정 노동자는 일하다 다치거나 숨지는 등 산업재해에 희생되는 일이 많다. 또 고객의 비위를 맞추기 어떤 상황에서도 밝고 친절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 등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이들도 많다. 김 위원은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의 경우 고객의 평가가 소득과 고용에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더 많은 감정노동을 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배달 플랫폼에서 일하는 라이더들은 배달이 늦어 고객이 평점을 낮게 주면 배차가 줄어든다. 라이더들은 좋은 평점을 위해 더 빨리 달릴 수밖에 없다. 김 위원은 “전 세계적으로도 평점과 리뷰 시스템이 노동자들의 고용 조건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220만 명 중 노조가입자는 1000여 명 불과 

노동자가 직장 내 괴롭힘과 산업재해 등에 대응하려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 하지만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 220만여 명 가운데 노조가입자는 1000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김 위원은 설명했다. 노조에 가입한 사람들은 대형 배달 플랫폼 노동자들 중 극히 일부다. 우리나라 비정규직노동자의 조직률도 2021년 기준 3% 남짓에 불과한데, 플랫폼 노동자는 더 소외되어 있는 셈이다. 김 위원은 “이제 노동 문제의 패러다임은 비정규직에서 프리랜서와 플랫폼 노동자로 옮겨갔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우리나라 정규직 노동자도 노조 가입률, 단체협약 적용률 등에서 유럽 국가들의 노동자들에 비해 보호 수준이 매우 낮다고 덧붙였다. 노조와 사용자가 단체교섭을 거쳐 체결한 협약을 적용받는 노동자 비중(단체협약 확장 적용률)은 우리나라가 14%대인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32%대다. 특히 독일은 50%대, 프랑스는 90%대에 이른다. 독일, 프랑스 등의 경우 산업별 노조가 작동하고 있어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 범위가 넓고 기업 규모별 임금 격차도 크지 않다. 

유럽연합(EU) 자료를 보여주며 각국의 노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 등을 설명하는 김종진 위원. ⓒ 조성우
유럽연합(EU) 자료를 보여주며 각국의 노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 등을 설명하는 김종진 위원. ⓒ 조성우

김 위원은 디지털 뱅킹, 병원 수술키트 자동화 등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력 수요가 줄면서 노동자의 처지는 전반적으로 더욱 취약해지고 불평등도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위원은 “플랫폼이 확대되더라도 저숙련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질 나쁜 일자리를 유지할 것이고, 전문직 노동자들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보험·남녀고용평등·직업훈련 최소한의 보장 필요 

김 위원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플랫폼 종사자 등 사각지대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일하는 사람을 위한 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플랫폼 종사자든 프리랜서든 모든 노동자들에게 3가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는 국민연금, 고용보험, 건강보험,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을 계약과 고용, 신분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남녀 고용평등을 보장하는 것, 세 번째는 직업훈련의 기회를 고루 제공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권리를 모두 보장하면 기업과 자본이 책임을 회피하고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새로운 고용 형태를 만들더라도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이 마련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은 또 플랫폼 노동의 최소 가치를 보장하기 위해 표준 약관과 표준 계약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표준 약관과 업종·직종별 표준 계약서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위원은 특히 사회보험과 관련, ‘전국민 고용보험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국민 고용보험제는 일정 소득 이상의 일자리는 모두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2020년 고용노동부가 정책 로드맵을 발표했다. 

김종진 위원의 강의를 경청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생들. ⓒ 조성우
김종진 위원의 강의를 경청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생들. ⓒ 조성우

강의에 이어진 질의답변 시간에 이현이(24·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씨는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할 만한 해외의 플랫폼 노동자 보호법은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김 위원은 “프랑스는 3년 전 노동법에 플랫폼 노동자도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 3권을 가질 수 있도록 (조항을) 삽입했다”며 “이 조항으로 배달 라이더나 우버 기사들도 노동조합을 만들어 동일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할 만한 가장 좋은 모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독일은 플랫폼 노동자 보호에 관한 별도의 법률을 제정했다”고 소개했다. 2020년에 입법된 독일의 플랫폼 노동자 보호법은 특히 플랫폼 노동자가 회사 소속 노동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회사는 이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고 김 위원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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