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교양특강]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

‘인류의 역사는 비포 코로나(B.C)와 애프터 코로나(A.C)로 구분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코로나19는 개인과 사회에 깊은 내상을 남겼다. 이제 코로나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은 서서히 물러가는 듯 보이지만, ‘또 다른 팬데믹이 올 것’이라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 사회는, 그리고 인류는 또 다른 팬데믹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지난달 28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인문사회교양특강에 나선 홍윤철(62)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일자리, 문화인프라 등과 함께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갖춘 ‘자족형 스마트건강도시’를 전국에 만드는 것이 대안이라고 말했다. 거대도시 서울에 사람들이 몰려 살고, 지역은 의료 소외를 겪는 현실이야말로 팬데믹 피해를 심화하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충북 제천시 세명대 학술관 강당에서 ‘팬데믹의 기원과 보건의료정책의 과제’를 주제로 강연한 홍 교수는 예방의학 전공으로 서울대 환경의학연구소장, 세계보건기구(WHO) 정책자문위원 등을 맡았으며 <팬데믹> <코로나 이후 생존도시> 등의 저서를 냈다.

농경시대 동물과 정착 생활하면서 전염병 시작

홍윤철 교수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인문교양특강에서 ‘팬데믹의 기원과 보건의료정책의 과제’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목은수
홍윤철 교수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인문교양특강에서 ‘팬데믹의 기원과 보건의료정책의 과제’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목은수

홍 교수는 인류가 수렵채집 시대를 지나 농경을 기반으로 문명을 이루면서 전염병의 역사도 시작됐다고 말했다. 사람이 모여 살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동물을 가축으로 활용하면서 동물에 있던 균이 사람에게 옮겨와 전염병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등장한 사스, 메르스, 코로나19는 모두 숙주가 박쥐인데, 홍 교수는 “더 이상 인간과 떨어진 생태계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전염병의 진원지가 인간과 가깝게 생활하던 소, 돼지, 쥐, 염소에서 벗어나 (멀리 떨어졌던) 박쥐까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또 인류 역사에서 (활동반경이 큰) 제국일수록 전염병 피해가 심각했다고 말했다. 인구와 물자가 이동할 수 있게 닦아놓은 도로와, 모여서 훈련해야 하는 군대가 전염병 확산의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도로와 바퀴를 표준화하는 데 힘썼던 로마제국은 서기 165~180년경 천연두 확산의 진지가 됐다. 당시 천연두는 로마 전체에 퍼지면서 로마제국 군인의 1/3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한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1/3이 희생된 흑사병도 지금의 중국 북경에 해당하는 아시아 지역에서 시작된 뒤 ‘실크로드’를 따라 이탈리아로 이동, 당시 완성된 도로망을 타고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

14세기 무렵 유럽 전역을 연결했던 도로망은 유럽 인구 중 3분의 1가량을 희생시킨 흑사병 확산의 통로가 됐다. ⓒ 홍윤철
14세기 무렵 유럽 전역을 연결했던 도로망은 유럽 인구 중 3분의 1가량을 희생시킨 흑사병 확산의 통로가 됐다. ⓒ 홍윤철

역병을 계기로 도시 정비와 사회시스템 개혁

홍 교수는 전염병이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는 촉매제 역할도 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14세기 흑사병이 유럽 전역을 강타한 후 르네상스로 불리는 문예부흥운동이 시작됐다. ‘아무리 기도해도 신이 전염병을 해결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신이 아닌 인간, 즉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는 각성을 했고, 이것이 인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르네상스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중세에 확산된 전염병은 인본주의를 강조하는 르네상스에 영향을 끼쳤다. 홍윤철 교수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도시구조 스케치를 설명하고 있다. ⓒ 목은수
중세에 확산된 전염병은 인본주의를 강조하는 르네상스에 영향을 끼쳤다. 홍윤철 교수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도시구조 스케치를 설명하고 있다. ⓒ 목은수

19세기 영국 런던에 창궐한 콜레라는 도시를 새롭게 기획하는 계기가 됐다고 홍 교수는 설명했다. 당시 산업혁명과 함께 농민들이 대거 농촌을 떠나 도시의 하층민이 됐는데,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이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몰리자 도시환경의 질은 매우 나빠졌다. 이런 환경에서 우물물을 통해 콜레라가 삽시간에 퍼졌고,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그때 공리주의 사상가 제러미 벤덤의 제자이자 사회개혁가인 에드윈 채드윅이 공중보건과 위생도시를 주장하기 시작했고, ‘공중위생법’과 ‘주택 및 도시계획 등에 관한 법’이 만들어졌다. 상하수도를 만들어서 물을 정비하고, 쓰레기 처리 방법을 고안하는 등 도시계획이 시작된 것이다. 실제 여과 시설을 만들어서 물을 관리하기 시작하자 런던의 사망률은 크게 떨어졌다.

사람 몰린 대도시가 코로나 등 팬데믹에 취약

“전염병 팬데믹은 또 옵니다. 미래 전염병이 3년 뒤에 온다고 얘기하면 거의 맞아요.”

홍 교수는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이 반드시 또 발생할 것이며, 사람이 몰려있는 대도시는 그 자체로 위험이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등은 세계를 연결하는 거점이면서 가장 많은 코로나 사망자를 낸 도시들이기도 하다. 홍 교수는 또 코로나19가 70대 이상 고령층에서 높은 사망률을 보였는데,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 속도가 빠른 우리나라는 그 부분에서도 취약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팬데믹과 노인증가라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새로운 돌봄의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신의 기능이 떨어지는 노인들을 요양원에서 살게 했던 수용전략에서 벗어나, 노인 세대가 지역 내에서 자기 역할을 하면서 탄탄한 1차 병원에서 기초적 질병 치료도 해결할 수 있는 지역사회 중심 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과 줌 화상회의로 참여한 시민들이 홍윤철 교수의 강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 목은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과 줌 화상회의로 참여한 시민들이 홍윤철 교수의 강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 목은수

홍 교수는 주거와 연결한 미래형 의료시스템의 필요성도 지적했다.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집안에서 개인 건강을 모니터링할 수 있어야 한다고 홍 교수는 말했다. 가령 화장실에서 대소변을 통해 건강을 자동 확인하거나, 거울을 통해 몸의 온도와 근육의 움직임 등을 측정할 수 있고, 침대에 의료 기기를 설치해 수면 상황을 모니터링할 수도 있다. 홍 교수는 이런 자가진단시스템은 이미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집집마다 설치된 센서로 모인 데이터를 통해 지역사회 주치의가 건강 상태를 확인하게 되면 질병 예방의 길이 획기적으로 열릴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홍 교수는 결론적으로 전국의 모든 도시를 자족형 스마트건강도시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심도시에 묶인 위성도시가 아니라, 각각의 도시 내에서 에너지, 교통, 의료, 녹지, 먹거리, 폐기물 등을 완결성 있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하부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구 13만 명 정도인 제천시가 지금의 서울만큼 의료 체계를 갖추고, 이런 도시가 50개 정도 있었다면, 코로나19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팬데믹의 대안은 백신만이 아니며, 도시를 바꾸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그는 역설했다.

사망자 수 기준으로 ‘K-방역’은 가장 잘 대처한 편

홍윤철 교수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제정임 대학원장이 질의답변 순서를 진행하고 있다. ⓒ 목은수
홍윤철 교수와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이 질의답변 순서를 진행하고 있다. ⓒ 목은수

이어진 질의답변 시간에 윤준호(26·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씨는 한국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다. 홍 교수는 “한쪽에서 ‘K방역은 성공’이라고 강조하고 다른 쪽에서는 비판하는데, 중요한 건 ‘얼마나 걸렸냐’보다 ‘얼마나 사망했느냐’다”며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는 1등 그룹에 속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의 전략은 임시방편의 전략이며 앞으로 새로운 형태의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사회에서 완결된 의료 체계로 관리하고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역에 의사 등 의료인력을 확충하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하냐는 손민주(26·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씨의 질문에 홍 교수는 “의사 수보다 분포가 문제”라고 답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의료인력의 절대 수도 부족하지만, 특히 서울에는 의사가 남아돌고 지역에는 많이 모자라 불균형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지역 의사를 늘리려면 공공의대를 만들어야 하지만, 그 방법은 10년 이후에나 효과를 볼 수 있다”며 “당장은 국립대병원이 의사를 뽑아 일정기간 지방의료원에서 파견 근무하게 하는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이미 관련 제도(공공임상교수제)가 마련됐으며 올해 하반기부터 시행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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