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지지 않기 위해 쓴다

지지 않기 위해 쓴다/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부키/1만 8000원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던 전 세계 이민자들은 기회의 땅 미국으로 갔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은 세계 최대의 공업국이 됐다. 쏟아지는 이민자들과 해방된 흑인들이 값싼 노동력을 제공했고, 새로 개발된 기계와 표준화된 작업 공정이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끝없는 경쟁 속에서 자수성가한 백만장자들이 생겨났고, 동시에 가난한 사람들이 끝도 없이 늘어났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빈곤율은 11.7%로 전년보다 1.4%p 증가했다. 특히 흑인, 어린이, 그리고 고졸 이하 학력의 사람들 사이에서 빈곤율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아메리칸드림은 사라지고 심각한 양극화 속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만 남은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지지 않기 위해 쓴다>의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우리가 보는 빈곤과 불평등에 관한 글에서 빈자와 약자들이 종종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건, 그 글을 쓰는 사람들이 소득 분배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비숙련 저임금 노동자의 삶으로 직접 뛰어들어 간다.

▲ <지지 않기 위해 쓴다> 표지. ⓒ 부키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1941년 미국 몬태나주의 작은 광산 마을에서 광부의 딸로 태어났다. 그는 블루칼라 노동자 가족 가운데 처음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화이트칼라 과학자가 됐다. 화학과 물리학, 생물학을 전공한 그는 뉴욕시의 정책 분석가, 도시 빈민의 건강권을 옹호하는 시민단체 활동가, 교수 등으로 일했다. 동시에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특히 에런라이크는 참여관찰형 취재보도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웨이트리스, 호텔 객실 청소부, 가정집 청소부, 요양병원 보조원, 마트 직원 등으로 일하며 최저 임금 수준의 급여로 살 수 있는지를 체험했다. 열심히 일하지만 빈곤해지는 사람들이 있으며, 빈자들 대부분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자신의 체험을 통해 알리고자 했다. 그 경험을 <노동의 배신>이라는 책으로 엮어 내기도 했다. <지지 않기 위해 쓴다>는 빈곤 노동을 비롯해 질병과 젠더 등에 걸친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쓴 칼럼을 모은 책이다. 

직접 경험한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삶’

1998년 저자는 저임금 노동자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는 ‘가난한 여성들이 노동을 통해 빈곤에서 벗어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는 국가의 복지 개혁이 진짜인지 알고 싶었다. 몇몇 가정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한 것 외에는 아무 경력도 없는 전업주부 출신 이혼 여성의 이력서를 갖고 식당에서 웨이트리스 일을 시작했다. 생활비가 부족해 호텔 객실 청소부 일까지 병행하려 했지만 건강만 나빠졌다. 저자는 이때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사정을 경험했다. 

소변볼 때만 앉을 수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에는 손님 시중을 위해 뛰어다니면서 양초처럼 담배에 불을 붙여 놓고 그걸 한 모금씩 빨며 버티는 이들이 산다. 변기에 앉으면 샤워대에 무릎이 닿는 트레일러에 살기 위해 매일 이렇게 돈을 번다는 것을 저자는 직접 경험했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하찮은 노동이라도 희열을 주고 사기를 높인다’는 정부의 구호가 허구라는 것을 드러냈다. 

복지 개혁의 배경에는 아무리 보잘것없는 노동도 도덕적으로 희열을 주고 심리적으로 사기를 높인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그러나 현실의 노동은 모욕과 스트레스로 가득한 경우가 더 많다. 그럼에도 극도의 저임금 노동마저도 다른 결점을 보충할 만한 장점이 한 가지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것은 바로 하는 일이나 그 일을 하고 받는 임금과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똑똑하고 재미있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동지애다. 당연한 말이지만 언젠가 그 사람들이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를 깨닫고 그에 맞는 행동을 취할 것이라는 기대에 희망을 걸어본다. (<지지 않기 위해 쓴다>, 79쪽)

평생 체험하고 글 쓰는 저널리스트

저자는 유방암에 걸려 투병하기도 했다. 이때 ‘암은 축복’이라는 이상할 정도로 긍정적인 태도와 그것을 반영한 유방암 캠페인을 목격하고, 사회 속에 파고든 ‘긍정 산업’의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를 계기로 저자는 자기계발서의 메시지, 초대형 교회의 모순적인 설교, 동기 유발 강사들과 기업들의 유착 등 사회에 만연한 ‘긍정주의’의 실체가 무엇인지 추적했다. 불편한 사회 현실을 외면하게 하고, 긍정을 강권하며,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긍정주의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고발한 것이다.

직접 체험을 통해 구조의 모순을 고발하는 저널리스트의 열정은 나이가 들어서도 식지 않았다. 70세가 넘은 나이에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에 참여한 저자는 길 위의 운동가들에게 합법적으로 소변을 볼 수 있는 화장실을 소개받았다. 눈에 띄지 않게 쭈그리고 앉아 일을 볼 수 있는 골목길로 안내받는 순간, 그는 떠올렸다. ‘길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저자는 가장 평범하고도 생물학적으로 필수적인 행위마저도 미국의 거리에서는 불법이 된다는 것, 소변을 보는 것뿐 아니라 앉고, 눕고, 자는 것 모두가 불법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현장에 가서 직접 봐야 생각할 수 있는 문제다.

▲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에 참여한 저자는 노숙인들이 소변 등 생활에 필수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합법적인 미국 시민이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생존에 가장 기본적인 활동마저 제한당하는 이들의 삶에 주목했다. ⓒ Pixabay

절박하게 가난한 사람들은 합법적인 미국 본토박이 시민이지만, 생존하는 데에 가장 기본적인 활동마저도 금지당한 채 ‘불법 이민자’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소변이나 대변, 혹은 자신의 지친 몸으로 공공장소를 더럽히면 안 된다. 특이한 옷차림이나 체취로 풍경을 망쳐서도 안 된다. 사실 그들은 죽어야 할 사람들이다. 옮기고 처리하고 화장시켜야 할 몸을 남기지 않고 죽어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지지 않기 위해 쓴다>, 422~423쪽)

분노는 유쾌하게 글은 치밀하게

저자는 자신으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이 ‘불의에 대한 분노’와 ‘호기심’이라고 고백한다. 국경에 벽을 쌓고 가난을 범죄시하는 정부, 남성 군인과 똑같이 이라크 수감자를 학대해 빗나간 성평등을 실천한 여성 군인, 백인 노동자 계층의 절망은 무시한 채 그들의 인종차별주의만 경멸하는 진보 지식인 등 차별을 부추기는 모든 것에 그는 분노한다. 

하지만 결코 비분강개하지는 않는다. 불의를 고발하면서도 자신이 몸으로 부딪치며 느낀 경쾌한 유머를 전달한다. 또한 계속 현장을 누비며 치밀하게 글 쓸 수 있는 행운에 감사한다. 저자는 ‘성화 봉송의 정신’을 강조한다. 빈곤 혹은 피부색, 성별, 성적 지향 때문에, 혹은 너무 어리거나 너무 나이가 많아서 글을 발표할 수 없는 저널리스트들을 돕고 싶다고 책에 썼다. 직접 보고 느끼고 체험한 것을 글로 써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하는 것, 그 일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희망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바람이기도 하다.


편집: 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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