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주거실태] ① 인권과 안전의 사각지대

한국인이 기피하는 일터에서 땀 흘리는 이주노동자 중 상당수가 농촌 들판의 비닐하우스, 시끄러운 공장과 가두리 양식장의 컨테이너 등 ‘집 아닌 거처’에 살고 있다. 의지할 사람 없는 이국땅, 일과 쉼이 24시간 뒤섞인 숙소는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안전을 위협한다. 허술한 제도를 악용하는 사업주, 관리감독 의무를 외면하는 정부는 가장 낮은 곳에서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을 향한 원망을 안고 돌아가게 만든다. <단비뉴스> 특별취재팀이 제조업과 농어업 현장에서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실태를 취재하고 인권 활동가와 노동 전문가 인터뷰, 해외 사례 조사 등을 바탕으로 대안을 모색했다. 이 시리즈는 뉴스통신진흥회 주최 제2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편집자)

② 곰팡이·소음 심각한 숙소도 ‘문제없음’

③ ‘기준 이하 숙소’면 캐나다선 고용 불허


들판 한가운데 채소 대신 사람이

“캄보디아에서 왔어도 한여름엔 더워서 힘들어요.”

지난 1월 23일 저녁 5시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채소 농업 단지. 축구장 1870개가 들어설 수 있는 1500헥타르(ha) 규모 들판에 상추, 시금치, 대파 등을 기르는 비닐하우스 수백 동이 들어서 있다. 투명한 비닐하우스 10개 중 하나 꼴로 검정 차광막을 씌운 비닐하우스가 있는데, 그곳에는 채소가 아닌 ‘사람’이 산다. 캄보디아에서 온 40대 여성 노동자 쏙(가명) 씨도 그곳에 사는 사람이다. 쏙 씨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비전문취업(E-9) 비자를 발급받아 A상추 농장에서 8년째 일하고 있다. 쏙 씨가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1년 8개월가량 남았다. 그는 한 달에 이틀만 쉬어가며 일하고 있다.

스무 살부터 마흔여덟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 8명이 비닐하우스 한 곳에서 열심히 상추를 수확했다. 손바닥만 한 푸른색 상추를 가로 50센티미터(cm) 세로 30cm 정도의 종이박스에 차곡차곡 눌러 담았다. 오후 6시가 가까워지자 이들 중 회색 운동복 바지에 검은색 패딩 점퍼를 입은 남자가 농기구를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해가 떨어지자 나머지 일행도 일을 마무리하고 작업장을 나섰다. 그들이 귀가한 ‘집’은 10미터(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검은색 비닐하우스였다.

▲ 쏙 씨가 사는 비닐하우스의 정면 입구. 검정 차광막을 씌워 채소를 기르는 시설과 구분했다. ⓒ 김지연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서자 양쪽으로 상추 포장용 박스가 수백 개 쌓여있고, 오른쪽에는 농기계용 휘발유가 담긴 기름통 대여섯 개와 1.5리터(L)짜리 빈 생수병 수십 개가 어지럽게 놓여있다. 조금 안쪽에 하얀색 조립식 패널로 만든 직육면체의 ‘집’이 비닐하우스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곳이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 기숙사다. 남자 3명이 방 하나를 같이 쓰고 여자 5명은 방 둘을 2명, 3명씩 나누어 쓴다. 

방 하나의 크기는 6.61제곱미터(㎡), 약 2평으로 3명이 나란히 누우면 바닥이 꽉 찰 정도로 좁다. 모든 방에 난방시설은 없고 냉랭한 공기가 돌았다. 그들은 바닥 절반 크기의 전기장판과 두세 장 이불로 한겨울을 나고 있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인근 동두천 지역의 지난 2월 최저기온이 영하 14.9도(℃)였다. 

천장 쪽을 보니 녹슬고 부서진 에어컨에 먼지가 새까맣게 낀 필터가 눈에 띄었다. 작동은 한다는데 여름에 제 기능을 할지 의심스러웠다. 쏙 씨가 지내는 방에는 그나마 에어컨도 없다. 그는 “캄보디아가 더운 나라라 (한국) 여름도 지낼만하지만, 한 달 정도는 더위 때문에 힘들다”고 말했다. 창문은 있지만, 바깥 비닐하우스에 씌운 차광막 때문에 햇빛은 전혀 들지 않았다.

▲ 이주노동자들이 사는 방의 녹슬고 부서진 에어컨. 필터에 먼지가 새까맣게 쌓여 있다. ⓒ 김지연

한겨울에는 농작물 보호를 위해 비닐하우스 내부에 적정온도를 유지해야 하므로 숙소에서 쓸 온수를 끌어간다. 그래서 밤 9시까지는 숙소에 물이 나오지 않는다. 장시간 노동을 하고 돌아왔지만, 샤워는커녕 변기 물도 내릴 수 없었다. 더러워진 옷을 세탁기에 돌릴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급한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지 못한 채 변기 뚜껑을 덮어두기도 한다. 쏙 씨가 쓰는 방에는 그나마 화장실이 없고 샤워시설만 있다. 옆 방 화장실을 여성 5명이 함께 쓴다. 쏙 씨는 “새벽에는 옆방에 들어가기 곤란해서 (내 방에 있는) 샤워장에서 소변을 본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이 정도 불편은 이미 ‘일상’이었다.

일터와 쉼터의 경계가 희미하고, 사람이 사는 ‘집’이라기엔 턱없이 부족한 곳이지만 이 방의 ‘월세’는 무려 75만 원이다. 1명당 25만 원을 낸다. 2명이 쓰는 방은 50만 원이다. 포천시 신읍동에서 냉난방 시설과 화장실, 욕실, TV까지 갖춘 8평 원룸이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28만 원인 것과 대조하면 터무니없는 가격이다.

▲ 포천의 한 이주노동자가 사는 조립식 판넬 건물 옆에 복도처럼 쓰이는 공간이 있다. 검정 차광막으로 햇빛이 차단된 모습이다. ⓒ 이정헌

기계 소리 요란한 공장에 컨테이너 숙소

“일할 때도 스트레스, 기숙사 와서도 스트레스, 더 힘들까 봐 신고했어요.”

설 연휴였던 지난 1월 24일,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의 B플라스틱 제조 공장 기숙사에서 네팔출신 30대 남성 니마(가명)씨를 만났다. 비전문취업(E-9) 비자를 지닌 니마 씨는 이곳에서 4년 6개월째 일하고 있다. 최대 근무기간인 4년 10개월째가 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성실 근로자 제도’를 이용하면 4년 10개월 더 일할 수 있다. 소규모 제조업, 농축산·어업에서 사업장 변경 없이 근무한 외국인노동자는 사업주 요청에 따라 재입국해 근무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 제도를 활용하려면 ‘사업주 요청’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더 일하고 싶은 니마 씨는 이 때문에 꾹 참았지만, 결국 언론 제보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의 숙소는 공장 바로 옆에 있는 컨테이너다. 금속 재질의 회색빛 컨테이너는 곳곳에 붉은 갈색으로 녹이 슬어 있었다. 수평을 맞추기 위해 바닥 아래 각목과 벽돌을 괬는데, 방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이 심하게 흔들렸다. 발을 뗄 때마다 수납장의 포도주병, 비타민음료병 등이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벽지와 장판 곳곳에는 거뭇거뭇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장판 일부는 보일러의 높은 온도 때문에 까맣게 탔다. 에어컨은 없고, 환풍기엔 회색 먼지가 가득했다.

컨테이너가 도로 옆에 바짝 붙어 있어 차 지나는 소리가 쌩하게 들렸다. 니마 씨는 “사장님이 에어컨을 안 사주는데 (말도 못 하고) 그냥 내 돈으로 선풍기를 샀다”며 “(신고한 걸) 사장님이 알면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걱정됐지만 너무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니마 씨는 숙소비로 월 13만9600원을 냈다. 그는 “여기 컨테이너는 겨울에 너무 춥고 여름에는 너무 덥고 밖에 차 소리도 너무 나서 잠도 못 자는데 내 월급에서 (기숙사비를) 빼간다”고 말했다.

▲ 이주노동자 니마 씨가 사는 컨테이너 숙소. 왼편에 공장이 바로 붙어 있다. 외벽은 붉게 녹이 슬었고, 바닥엔 수평을 잡기 위해 각목과 벽돌을 받쳐 두었다. ⓒ 이정헌
▲ 니마 씨가 사는 컨테이너 내부의 곰팡이 핀 벽지. ⓒ 김지연

니마 씨 동료들은 공장 입구에 있는 또 다른 기숙사에 산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따라 8개의 ‘쪽방’이 들어서 있다. 각 방에는 창문이나 환기구가 전혀 없다. 추운 겨울에 문까지 닫으면 바람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복도에는 스탠드형 에어컨이 한 대 설치돼 있다. 방과 방 사이는 얇은 나무판자로 구분돼 있어 옆방 통화 소리가 다 들린다. 노동자 15명이 소변기 2개, 좌변기 2개가 설치된 화장실 하나를 같이 쓴다. 공장 안쪽 구석에 길이 1.5m짜리 바벨 2개와 5킬로그램(kg)짜리 덤벨 하나로 간이 체력단련실을 꾸렸는데, 바로 옆에 ‘위험 특별고압 22,900V'라는 경고 문구가 선명하다. 네팔에서 온 20대 남성 락파(가명)씨는 “네팔에서 공부할 때 한국 집이 편해서 일하기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와보니 여름에 에어컨도 1~2시간만 켤 수 있고 바람도 안 통한다”고 말했다.

이곳 노동자들은 숙소비로 1인당 14만 원을 내고 있었다. 3명이 사는 2평 남짓한 방의 월세가 42만 원이다. 이천시 창전동 시내에는 주방, 화장실, 베란다가 있고 세탁기, 침대, 냉난방 시설을 갖춘 8평 원룸이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쯤 한다. 락파 씨는 쪽방 바닥에 이불을 깔고 지내며 주방, 화장실, 세탁기 등은 공용으로 쓰고 있었다.

▲ 창문이나 환기구가 전혀 없는 컨테이너 쪽방에서 쉬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냉장고, 세탁기, 주방 등 공용시설은 쪽방 복도 앞에 자리 잡고 있다. ⓒ 이정헌

조립식 패널 등 ‘비주택’에서 화재 등 사고도 빈발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지난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가 22개 이주인권단체 및 노동조합과 함께 이주노동자 1215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했다. 네팔,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설문에 답했다. 이들 중 회사에서 제공하는 숙소에 거주하는 비율은 85.5%였다. 그중 55.4%는 작업장 부속 공간 또는 조립식 패널, 컨테이너 같은 임시 주거 공간에 살고 있었다. 숙소에 에어컨이 없다는 응답이 42.6%, 실내화장실이 없다는 응답이 39%였다. 공용 화장실이 부족하거나 욕실이 없어 불편하다는 응답도 각각 30% 이상이었다.

▲ 국가인권위원회가 2018년 22개 이주인권단체 및 노동조합과 함께 이주노동자 12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의 85.5%인 1033명이 회사 제공 숙소(기숙사)에 살고 있었다. ⓒ 이주와인권연구소

지난 2015년 설립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의 우다야 라이(52) 위원장을 지난 1월 30일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네팔 출신인 라이 위원장은 “화장실이나 난방시설이 없다는 등 열악한 주거환경을 이유로 노동자들이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2017년 충남 논산에서는 농수로 위에 컨테이너가 놓여 있고 그 아래로는 물이 흐르는 모습까지 봤다고 한다. 그는 “당시 일하던 노동자는 결국 사업장을 변경했다”고 말했다.

허술한 가건물이 안전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을 때,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지난 2017년 12월 부산광역시 사상구 학장동 한 공장 컨테이너 숙소에 불이 나 32세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잠자던 중 숨졌다. 전열기 과열로 인한 화재였다. 나흘 만에 부산 강서구 송정동 한 자동차 부품 공장에 또 불이 났다. 샌드위치 패널(다른 재료를 샌드위치 모양으로 접착한 특수 합판) 숙소에서 잠자던 23세 러시아 이주노동자는 화재 직후 대피했다. 그는 부엌 쪽에서 연기가 났다고 진술했다. 2019년 3월에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가구단지 내 공장에 불이 나 필리핀 이주노동자 21명의 샌드위치 패널 숙소가 전소됐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이들은 한순간 갈 곳 없는 이재민이 됐다. 마석가구단지 공장 화재는 언론에 보도된 것만 해도 2015~2017년 3년 동안 7건이나 된다. 가수를 꿈꾸던 필리핀 이주노동자 제이 월은 이곳 공장 화재로 얼굴과 손에 3도 화상을 입었다. 

너울 치는 바다 위, 가두리양식장에서 홀로

“바람 불면 멀미 나와, 많이 힘들어.”

바다에 있는 가두리양식장 가건물에도 이주노동자가 산다. 배가 없이는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는 곳이다. 양식장 관리선으로 쓰이는 1톤(t) 미만 선박에 사업주가 태워 주어야 쉬는 날 육지로 나올 수 있다. 취재팀은 과거 가두리양식장에서 일해 본 스리랑카 노동자 7명을 지난 2월 8일 전남 여수시 연등동에 있는 사단법인 여수이주민센터에서 만났다. 

30대 남성 안바디(가명) 씨는 2년 전 ‘가두리 집’에서 지낸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에는 그물 안에서 어류를 기르는 가두리양식장이 많다. 요즘 이곳에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주노동자다. 양식업은 24시간 인력이 필요하다. 우럭, 돌돔 등 어류는 특히 먹이를 주면서 성장 상태를 살피고, 수시로 변하는 해상을 감시해야 한다. 안바디 씨는 “센 바람에 컨테이너가 흔들리면 멀미가 나서 처음에 많이 힘들었다”며 “잠에서 깬 적도 여러 번”이라고 말했다. 여수이주민센터 김덕영 실장은 “너울이 치면 그냥 흔들리는 게 아니라 위아래 진동이 올 정도”라며 “차라리 배가 움직이면 나은데 가두리 집은 고정된 상태에서 계속 롤링만 하므로 멀미가 더 심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여수에는 고기잡이배를 타는 어선원 역시 태국, 스리랑카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가 많다.

▲ 전남 여수시 남면에 있는 한 섬의 풍경. 이주노동자 숙소와 창고로 쓰는 컨테이너가 바지선 위에 밀집해있다. ⓒ 최유진
▲ 전남 여수시 남면에 있는 한 섬에서 가두리 양식장에 배를 댄 채 물고기 먹이를 주고 있는 이주노동자. 오른쪽에 창문이 두 개 있는 컨테이너 숙소가 보인다. ⓒ 최유진

“(천장 높이) 여기 작아, (머리 위 여유 공간이) 많이 없어요. 키가 머리 위에 닿았어.”

가두리 집은 천장 높이 2m가 넘는 주택용이 많은데, 이보다 천장이 낮은 사료 보관용 컨테이너도 숙소로 쓰인다. 바지선이 파도에 요동칠 때, 안바디 씨는 머리가 컨테이너 천장에 닿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컨테이너 내부는 TV, 세탁기, 냉장고 등을 설치해 집처럼 꾸며놓았다. 해저 케이블 덕에 인터넷도 쓸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 쉬어, 그럼 그때 (육지로) 나와.”

3년 전 같은 양식장에서 일한 20대 남성 만다르(가명) 씨는 ‘한 달에 한 번’ 땅을 밟았다. 쉬는 날엔 배를 타고 여수 시내로 나갈 수 있었다.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아침 7시에 일을 시작해 오후 5시쯤 끝냈다. 월급은 180만 원 정도였다. 사업주가 수시로 가두리 집을 드나들며 음식 재료를 가져다줬다. 만다르 씨는 미리 준비해둔 커리 향신료에 사업주가 사다 준 재료를 받아 ‘코투’ 등 스리랑카 음식을 해 먹었다. 

가두리 집은 겨울에 춥고 너울이 칠 때 구토 등 멀미 증상을 일으키는데, 바다에 고립돼 있어 증상이 심각해도 대처가 어렵다. 바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몸이 아파도 육지로 나오지 못한다. 

허술한 가건물 내주고 월세 받아가는 사업주

이주민을 위한 인권단체인 이주와인권연구소가 2019년 펴낸 <최저보다 낮은-2018 이주노동자 노동조건과 주거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비닐하우스 등 가건물의 숙소가 많은 농축산어업에서 평균 숙소비는 20만3200원이었다. 또 작업장 부속공간의 비율이 높은 제조업은 평균 13만4000원이었다.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쉼터인 광주전남캄보디아공동체에서 만난 20대 여성 보파(가명) 씨는 농촌에서 일했다. 그는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3명이 사니까 너무 좁았다”며 “(그런 곳에서 1인당) 20만원씩 내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에게 주거 문제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면 ‘고쳐주겠다’며 차일피일 미루거나 ‘원래부터 이렇게 해왔다’며 무시했다고 입을 모았다.

▲ 수백 동 비닐하우스 단지 한 편에 이주노동자의 집이 있다. 검은 차광막 안에 숨어있는 1.5평 샌드위치 패널 쪽방이 월세 75만원이다. ⓒ 이정헌

이주노동자의 집에는 적정 가격이 없다. 광주전남캄보디아공동체에서 만난 20대 남성 썸낭(가명) 씨는 “10평 정도 집에서 7명이 살았는데, 한 사람당 15만원씩 돈을 냈다”고 말했다. 그는 돼지농장의 사무실 위에 딸린 방에 살면서 화장실도 아래층 것을 썼는데, 월세는 무려 105만원이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깔끔한 욕실과 냉난방 시설, 침대, 냉장고, 소파 등을 다 갖춘 10평 원룸에 무보증 월세로 살 수 있는 가격이다.

사업주들이 이주노동자에게 이렇게 숙박료 ‘바가지’를 씌울 수 있는 것은 고용노동부의 ‘숙식 정보 제공 및 비용 징수 지침’이 엉성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2017년 2월부터 시행된 공제 지침은 주거의 ‘질적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채, 숙식을 제공하고 서면 동의를 받은 사업주가 이주노동자의 임금에서 일정 비율의 금액을 징수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공제 비율은 주거시설 형태와 식사제공 여부에 따라 통상 임금의 8%에서 최대 20%에 이른다. 비영리 민간단체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동행 이현서 변호사(현 화우공익재단)는 이 지침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숙식비는 숙소의 면적, 상태 등을 기준으로 정해져야 상식이죠. 누구나 그렇게 집을 알아보고 다니면서 월세를 비교하잖아요. 그런데 이 지침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의) 숙소는 비닐하우스도 상관없고, 화장실이 없어도 상관없다는 거예요.”

지침에 따르면 사업주는 어떤 집을 제공하든 월세를 받을 수 있다. 아무리 열악한 주거 시설이라도 집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일부 사업주는 형편없는 시설에 이주노동자를 모여 살게 하고 개별 숙식비를 걷는 방식으로 인건비를 깎는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쉼터이자 상담센터인 지구인의정류장 김이찬 대표는 “집이 아닌 곳에 사람을 살게 하면 안 된다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숙식비 공제 지침은 (외국인노동자를) 집 아닌 곳에 살도록 하면서 (사업주가) 임금을 뜯어갈 수 있게 해주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이주와인권연구소 이한숙 소장은 “집은 질에 따라서 적당한 가격이 매겨져야 하는데, 질적 기준 없이 부적절한 가격 산정이 일어나는 이유는 임금 삭감이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현서 변호사는 “사업주 입장에서 안전한 숙소를 만들어야겠다는 경각심이 사라졌다”며 “(노동부 지침은) 숙소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만 남긴 지침”이라고 꼬집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발간한 ‘제2차 이주 인권가이드라인’을 통해 노동부에 주거환경 실태조사와 숙식비 공제의 합리적 기준을 마련하고, 숙식비용 징수에 관한 지침을 폐지하도록 권고했으나 변화가 없다.

▲ 니마 씨의 2015년 표준근로계약서. 2017년 노동부에서 숙식비 공제 지침이 나온 뒤 숙식비를 공제하기 시작한 사업주는 구두로 ‘법이 바뀌었다’고 설명했을 뿐 서면동의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한다. ⓒ 김지연

365일 24시간, 일터와 쉼터 구분이 없다

“기숙사가 작업장하고 너무 가까워서 야간작업을 하면 잠을 못 잡니다.”(미얀마 건설업 남성)

“숙소가 공장 안에 있어 너무 시끄럽고 화학물질 냄새가 많이 나요.”(몽골 제조업 남성)

지난 2018년 전국 22개 이주인권단체 및 노동조합이 이주노동자 1215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회사 제공 기숙사의 67.9%가 회사나 공장 안에 있었다. 야간작업을 하거나 유해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에서는 기숙사에 사는 이주노동자들이 유해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응답자의 37.9%가 소음, 분진, 냄새 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 2018년 전국 22개 이주인권단체 및 노동조합이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회사 제공 숙소 실태 조사 결과. ⓒ 이주와인권연구소

이주와인권연구소가 지난해 충남지역 이주노동자 4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유해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응답이 36.3%가 나왔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목사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비닐하우스 농작물에 농약을 엄청 뿌리는데 바로 옆에 사는 이주노동자들이 지하수를 사용한다”라며 “농약이 스며든 지하수를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자 주택 권고(Workers' Housing Recommendation)’에서 사업주가 이주노동자에게 직접 숙소를 제공하는 방식이 ‘일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주노동자가 지역사회와 차단되고, 사업장에 종속되거나 통제받는 처지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밖에 직접 숙소를 구하도록 권장한다. 사업장의 ‘일’이 사적 공간인 숙소와 구분되지 않으면 노동자가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인천의 한 깻잎농장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출신의 20대 여성 노동자 깐냐(가명)씨와 미토나(가명)씨는 일이 서툴다는 이유로 사업주로부터 ‘캄보디아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다. 그들이 귀국을 거부하자 사업주는 기숙사의 전기를 끊고 식사도 제공하지 않았다. 기숙사까지 찾아와 “밥 해 먹지 말고 밥솥도 쓰지 마” 등의 폭언도 했다. 그들은 결국 캄보디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김이찬 대표는 “(사업장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은 노동 현장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도서지역의 이주노동자는 섬 또는 바다 위에서 지낸다. 의사소통도 쉽지 않고, 혼자다 보니 이주노동자 커뮤니티와도 차단된다. 이들은 극심한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끼고, 사업장에 매인 신분으로 인해 무력감과 두려움도 경험한다. 이한숙 소장은 “여성이고 남성이고 무섭고 외롭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이주노동자가 한두 명뿐인 곳에선 (문제가 생겨도) 사업주에게 반항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2일 전남광주캄보디아쉼터에서 만난 아뜯(가명)씨는 제주도 돼지농장에서 월 104만 원을 받으며 1년 6개월간 휴가도 없이 홀로 일했다고 말했다. 그는 마스크도 없이 축사에 소독약을 뿌린 탓에 지금도 코피가 계속 나고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한 달 내내 쉬지도 못하고 일하면서 지치고 힘들었는데 혼자라서 더 외로웠다”며 눈물을 쏟기도 했다.

▲ 광주전남캄보디아공동체의 쉼터는 캄보디아 국적의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모임의 장이자 사업장에서 나온 노동자가 이직할 때까지 머물 수 있는 곳이다. ⓒ 홍석희

사업장에 매인 여성노동자 성범죄 노출 위험도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대표는 여성 이주노동자의 성추행·성희롱 피해를 담은 영상을 취재진에게 보여주었다. 피해 여성이 몰래 촬영한 것이었다. 경기도 여주시의 한 사업장에서 한국인 남성 관리자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숙소를 쉽게 드나들었다. 이에 여성 노동자가 불쾌감을 드러내자 “오빠한테 뭐야 이게, 한국에서 어떻게 하는 줄 아냐”며 여성 노동자를 강제로 쓰러뜨린 뒤 엉덩이를 때렸다. 이후 발생한 임금체불에 대해서 이주노동자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그는 “짐 다 싸, 너희들 월급 주고 캄보디아 보낼 거야”라며 협박하기도 했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체류자격 유지가 사업주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취약한 입장에 놓인다. 김 대표는 “(사업장)을 나가면 미등록(불법체류)이 될 수밖에 없다”며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영상 속 피해 노동자는 2017년 비자 만료로 귀국했고, 가해 남성 관리자는 처벌받지 않았다.

지난 2016년 말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김삼화 당시 국민의당(현 미래통합당) 의원 등 주최로 열린 ‘이주여성 농업노동자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 보고회’에서는 농업 여성이주노동자 202명 가운데 12.4%가 강간, 강제추행, 성희롱 등의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36.2%는 ‘다른 사람의 피해를 들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같은 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조업 여성이주노동자 38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조업 분야 여성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도 응답자의 11.7%가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사업장 내 여성이주노동자의 성폭행 피해 문제가 불거지자 노동부는 2019년 1월 ‘사업장 변경 사유 고시’를 개정했다. 개정된 고시는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내 성폭행 피해로 근로를 계속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이한숙 소장은 “그런 ‘위험’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사업장 변경을 할 수가 없다”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증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이주여성 노동자는 성폭력 피해에 대응하기 어렵다. 일터가 읍내나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않아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 쉽지 않다. ⓒ 이정헌

이주노동자의 집은 지역사회에서 떨어져 있고, 사업주와 관리자에게선 가깝다. 사업주는 시설을 살피고 노동자를 관리한다는 이유로 이주노동자 숙소에 거리낌 없이 드나들 수 있다. 언제든지 누군가 들이닥칠 수 있는 상황은 일터의 긴장을 쉼터로 이어가게 만들고, 성범죄 등에 대한 불안을 낳는다. 광주전남캄보디아공동체에서 만난 20대 여성노동자 레악카나(가명)씨는 “전라북도 익산 상추농장 컨테이너 숙소에 살 때, 샤워를 하는데 (남자) 사장님이 문을 열고 들어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처우는 한국 평판 좌우하는 바로미터

국내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 문제는 다른 나라에서 한국의 평판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지난 1월 24일 <단비뉴스>가 취재한 경기도 이천의 제조업 공장에는 이주노동문제를 취재하러 온 네팔 일간지 <칸티푸르 데일리>의 옴 카르키 선임 편집인이 동행했다. 그는 “이런 열악한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며 “(겨울에) 너무 춥고 (방 안에) 바람도 통하지 않아 노동자들의 건강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네팔 사람들은) 한국을 좋은 나라, 발전한 나라로 알고 있는데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한국의 손해고, 한국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경기도 이천 현장 제보자인 니마(가명)씨는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네팔 친구들을 말리고 싶다고 했다.

“할 수 있으면 (최대한) 네팔에서 일하세요. 네팔에서 고생하고 받는 혜택을 한국에선 임금, 기숙사 같은 문제 때문에 받지 못합니다. (한국에) 가고 싶다면, 여행으로 가세요. 하지만 일하기 위해서는 안 가도 됩니다. (한국에서 고생한 만큼) 네팔에서 고생하면 그만큼 돈 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주와인권연구소 이한숙 소장은 “인권이란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라며 국내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서 변호사도 국내외 노동자 모두에게 최소한의 주거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거라는 하나의 필수적 바탕이 갖춰지면 그 뒤의 모든 것들에 좋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함께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외국인이라고 덜 주고 안 해줘도 괜찮은 게 아니라, 누구나 다 안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보장해야 합니다. 이곳에 원래 살고 있던 사람은 물론 이주해온 사람에게도. 그래야 다 같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편집 : 방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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