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코로나 이후 ② 연결

마스크를 쓰며 연결은 깨졌다

세계가 82.5㎡로 줄었다. 그 세계의 주민은 나와 엄마, 고양이 두 마리다. 겨울방학이 무한정 길어지면서 보고 싶었던 영화도, 드라마도, 소설도 다 해치웠다. 가족여행을 다녀오며 동기들 선물로 사왔던 초콜릿은 하나둘씩 까먹고 달랑 두 박스만 남았다. 원래부터 ‘집순이’라 핸드폰 하나로 하루 종일 누운 채 노는 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게 매일이 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 놀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든지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일상에서나 가능한 사치였다. 동네 도서관을 나갈 수 있고, 서울에서 친구를 만날 수 있고, 해외여행이 자유로웠던,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그랬다. 사람 사이 연결은 깨졌다. 왜?

▲ 코로나19 여파로 텅 빈 버스. 바이러스는 사람과 사람 사이 연결을 끊었다. ⓒ SBS 뉴스 홈페이지

연결은 기쁨이자, 관계였다. 3월 중순, 코로나 사태가 조금 진정돼 갈 때 동기들과 밥 약속을 잡았다. 버스를 타고 어딜 나가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었다. 이틀 만에 머리를 감았고, 트레이닝복 대신 청바지와 폴라티를 집어들었다. 거울 앞에서 립스틱도 발랐다가 지우고 립밤도 발라보면서 고민하다 살짝 입술 색이 비치는 연분홍색 립밤으로 정했다, 너무 급하게 변하면 적응이 안 될까봐. 현관을 나서려다 아직 남겨뒀던 초콜릿이 생각나 급하게 가방에 챙겨 넣었다. 맨날 슬리퍼만 신다가 운동화를 신었다. 발목 뒤로 까슬까슬하게 걸리는 느낌이 오랜만이다. 집밖으로 나오니 햇빛에 눈이 부셨다. 편의점 가려고 나왔던 어제보다 더 많이, 햇살이 반짝였다.

정류장에 혼자 서서 버스를 기다렸다. 초록 시내버스가 지나가고 노란 마을버스도 지나갔다. 조금 더 기다리자 내가 기다리던 빨간색 버스가 왔다. 버스는 멈춰 섰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 너머를 보니 버스기사님이 눈썹을 치켜뜨고 손으로 자기 마스크를 가리킨다. 아차, 마스크를 깜박하고 나왔구나. 발을 동동 구르며 간절하게 문을 두드리니 문이 열렸다. 마스크도 안 쓰면 어떻게 하냐고, 저 구석에 가서 앉으라고 기사님께 혼났다. 생각해 보니 마스크는 공공장소에서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했다. 집에만 있으면 마스크가 없어도 된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려도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야 하고, 그 만남에 마스크는 필수품이다. 마스크는 병과 사람 사이, 나와 너를 격리하기 위한 절연체이면서, 동시에 나와 너의 연결을 허락해 주는 매개체가 되었다.

마스크가 드러낸 연결과 단절의 양면성

▲ 2015년 12월 서울의 하늘. 중국발 미세먼지로 하늘이 회색으로 칠해야 할 정도로 뿌옇다. ⓒ KBS 뉴스 홈페이지

마스크가 양면성을 드러낸 건 코로나19가 처음이 아니다. 2015년, 미세먼지가 극심해지면서 KF라는 단어가 부상했다. 도화지에 하늘을 회색으로 칠해야 할 정도로 하늘이 뿌옇다. 눈과 목이 따가웠고 크흠 하는 기침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미세먼지를 뿜어내는 중국을 욕하면서도, 미세먼지의 상당 부분이 우리의 과도한 소비행태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라는 사실은 애써 외면했다. 지구온난화로 한반도 주변 바람이 약해져 건조한 겨울철 공기가 대기에 정체되는 날이 많아졌기 때문에 미세먼지가 더 심해졌다는 사실은 알지도 못했다. 마스크와 공기청정기 기업이 ‘미세먼지 테마주’로 불리며 호황을 맞았다. 마스크를 포함해 미세먼지를 막기 위한 산업활동은 미세먼지를 더 생산했다. 중국이 한반도 왼쪽에 있어서 피해가 더 심하다고 원망하며 미세먼지를 막기 위해 마스크를 썼지만, 미세먼지가 중국과 한반도의 경제·산업 네트워크와 우리의 대량생산·대량소비 사슬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않았다.

미세먼지가 심해져도, 지구온난화가 계속돼도 사람들은 연결과 단절의 양면성이 가진 문제의 심각성을 몰랐다. 마스크가 다시 등장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서였다. 이번은 한국과 중국에 멈추지 않았다. 코로나19는 우리가,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절절하게 깨우쳐 주었다. 자동차로, 비행기로, 배로, 걸어서 순식간에 중국에서 세계로 퍼져 나갔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동선이 곧 지구촌의 연결고리였다. 마스크는 바이러스의 연결고리를 끊어 사람 사이의 전염을 막는 핵심 장비였다. 동시에 마스크의 힘으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다시 연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코로나 이후 인류가 이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단절과 연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양면성을 드러냈다.

코로나 대응에 쓰이는 일회용품의 산더미

마스크는 연결과 단절의 양면성을 상징한다. 코로나는 인류에게 지금까지 글로벌네트워크와 사람사이에 작동했던 연결과 단절관계를 재정립하라고 요구한다. 지금의 단절은 일시적인 해결책일 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계 각국은 출입을 통제했고 공장 가동을 멈췄다. 세계기상기구는 코로나19 유행으로 올해 탄소배출량이 6% 감소하겠지만 기후변화를 막기엔 역부족이라 발표했다. 오히려 내년에는 배출량이 더 급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코로나19를 대응하는 무기마저 일회용품이다. 전 세계에서 극찬을 받은 우리나라 4.15 총선은 ‘63빌딩 7개 높이’의 일회용 비닐장갑 쓰레기를 낳았다. 해결책이 다시 문제를 만드는 순환고리를 반복하고 있는 현실이다.

▲ 전 세계에 극찬을 받은 4.15 총선은 ‘63빌딩 7개 높이’의 일회용 비닐장갑 쓰레기를 낳았다. ⓒ SBS 뉴스 홈페이지

우리는,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 그동안 연결만이 미덕이었고, 단절은 부도덕하거나 비인간적이라 치부돼 왔다. 이제 다른 패러다임이 요구되고 있다. 연결을 위해선 단절도 필요하다. 마스크 착용으로 상징되는 단절은 오히려 소중한 관계를 지키기 위한 배려인 시대다. 미세먼지는 공기청정기로, 바이러스는 백신과 의료서비스로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미세먼지가 마스크와 공기청정기 공장의 굴뚝에 불을 지피듯, ‘코로나19식’ 소비는 다음 바이러스 출현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된다. 지금까지 삶의 방식과 단절해야 한다. 돈의 사슬을 끊자. 자연을 착취해 돈을 버는 자본주의의 가치사슬이 사람과 자연, 인류와 지구의 연결을 끊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 아크릴로 된 투명 가리개를 사이에 두고 동기들과 학식을 먹으면서 연결과 단절을 생각한다. ⓒ 김지연

오늘도 마스크를 쓰고 학교에 간다.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고 대면강의를 시작했지만 언제 또 신규 지역감염이 나올지, 언제 기숙사가 폐쇄될지 모른다. 아크릴로 된 투명 가리개를 사이에 두고 동기들과 학식을 먹으면서 연결과 단절을 생각한다. 마스크를 진짜 벗을 수 있는 때는 언제일까? 코로나19가 잠잠해질 때도, 친구를 만날 수 있게 될 때도 아니다. 세계 각국의 상품을 주문하기 전에 기상이변이 몰아치고 산불과 홍수가 덮치는, 지구의 신음을 마주하자. 나와 너, 나와 세계, 나와 지구의 연결을 생산과 소비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때, 우리는 진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코로나 이후, 연결과 단절은 둘이며 하나가 되어야 한다.


지난 가을학기에 연재한 [청년기자들의 시선]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봄학기 [청년기자의 시선2]는 현상들 사이(Between)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갈등과 대립 너머(Beyond)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미래를 한 치도 예측하기 힘든 오늘, 분명한 건 코로나가 이전과 이후 시대를 나누었다는 사실이다. ‘뉴노멀’ ‘언택트’ 시대라는 새로운 용어가 상징하듯, 코로나 시대 이후 세상은 새로운 가치와 행동을 요구한다. 세계 석학들이 이후 세계가 어떻게 바뀔지 전망이 분분한 가운데, 단비 청년기자들이 ‘코로나 이후’에 주목했다. (편집자)

편집 :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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