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주거실태] ② 사업주 횡포 방치하는 근로감독

“기숙사는 소음이나 진동이 심한 장소, 산사태나 눈사태 등 자연재해가 우려되는 곳, 다습하거나 침수 위험이 있는 곳을 피해야 한다. 여성과 남성, 근무시간이 다른 근무 조 간에는 침실을 분리해야 한다. 방의 크기는 1인당 2.5제곱미터(㎡) 이상이어야 하고, 한 방에는 15명을 초과해 거주할 수 없다. 화장실과 세면‧목욕시설, 냉난방 시설, 채광과 환기를 위한 시설, 화재예방 시설은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침실, 화장실, 욕실에는 잠금장치가 필수다.”

외국인고용법 시행령에 따라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한 ‘외국인 기숙사 시설표’의 내용이다. 이 시설표의 조건만 지키면 ‘살 만한’ 주거시설이 될 수 있을까?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법정 조건 맞췄지만 실제론 ‘너무 열악한 거처’ 

▲ 이주노동자의 주거조건 점검을 위해 지난해 7월부터 개정 시행되고 있는 외국인기숙사 시설표. ⓒ 외국인 고용관리시스템(EPS) 홈페이지

지난 1월 24일 <단비뉴스> 취재진이 찾아간 경기도 이천의 한 플라스틱 제조공장 기숙사를 살펴보자. 이주노동자 니마(가명) 씨의 안내로 구석구석 살펴본 컨테이너의 조건을 시설표와 견주어 보면 ②주거시설 유형 중 컨테이너에 속하고 ④침실은 18제곱미터(㎡)로 기준(1인당 2.5㎡)의 7배 정도다. 컨테이너에는 잠금장치도 있고 화장실이 숙소 외부에 있긴 하지만 수세식이며, 목욕실도 별도로 있어 ⑤화장실 ⑥세면 및 목욕시설 기준도 충족한다. 난방시설로는 보일러가 있고 냉방장치로 선풍기가 있어 ⑦난방시설, ⑧냉방시설의 조건도 갖췄다. 3면에 4개의 창문이 있어 ⑨채광 및 환기시설 기준은 물론 출입문 옆 소화기로 소방시설 기준도 맞추고 있다.

기숙사 시설표의 ‘조건’으로만 보면 별문제가 없는 집 같지만, 니마 씨는 이주노조에 도움을 요청했다. 시설표에는 나타나지 않는 숙소의 ‘질’ 때문이다. 컨테이너의 얇은 철판은 열기와 냉기의 단열이 거의 안 되고, 얇아서 소음에 취약하다. 그래서 내외부 온도 차이로 결로가 생기고 곰팡이가 잘 생긴다. 니마 씨는 곰팡이가 핀 숙소 내부를 스티커 벽지로 군데군데 가렸지만 다 감추진 못했다.  

▲ 니마 씨의 컨테이너 숙소 창문 아래쪽 벽(좌)과 배전반(우) 등 내부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있다. ⓒ 김지연
▲ 컨테이너 내부에 핀 곰팡이를 가리기 위해 니마씨 방 안 곳곳에 해바라기 그림의 스티커 벽지를 붙여 놓았다. ⓒ 김지연

밤낮으로 괴롭히는 자동차소리, 엔진소리  

니마 씨가 쓰는 화장실과 샤워실은 숙소 옆 공장에 붙어있는 또 다른 기숙사 안에 있다. 기숙사 시설표는 화장실 유무, 종류, 위치와 잠금장치 여부를 확인하지만, 시설의 상태와 개수는 챙기지 않는다. 니마 씨 등 15명이 사용하는데 화장실과 샤워실은 항상 부족하다. 사람이 몰리는 아침에는 볼일을 보기 위해, 씻기 위해 화장실과 샤워실 앞에서 기다려야 한다. 샤워실 온수가 떨어져 아침에 씻지 못하는 사람이 생길 때도 있다. 

▲ 니마 씨의 컨테이너 밖에 있는 공용 화장실에는 좌변기 2개, 소변기 2개가 있다. 니마 씨를 포함한 15명이 사용하기에는 불편하다. ⓒ 김지연

“여기는 너무 추워요. 벽도 얇아서 바깥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요.”

니마 씨 컨테이너 숙소에는 4개의 창문이 있지만 채광과 통풍을 위해 열어두는 경우는 없다. 창문을 닫고 살아도 소음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출입문 바로 앞으로 사람 한 명이 지날 정도의 공간을 두고 공장 작업장이 붙어있다. 창호를 만드는 공장이라 플라스틱 자재를 자르는 소리가 시끄럽다. 컨테이너를 지나 몇 발자국 들어가면 공기를 압축하는 장비인 공업용 컴프레셔도 있다. 엔진을 켜면 부르릉 하는 진동 소리가 깔리고, 압축된 공기가 좁은 관으로 빠져나오는 소음이 귀를 괴롭힌다. 때로는 총이라도 쏘는 것처럼 탕탕거리는 소리가, 때로는 증기기관차 떠나는 것처럼 칙칙 대는 소리가 난다. 

저녁 9시에 공장이 멈춰도 니마 씨의 밤은 조용하지 않다. 컨테이너가 차도와 붙어있어 밤새 자동차 달리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하던 낮 시간에도 컨테이너의 얇은 벽을 뚫고 부우웅 지나가는 차들의 소음이 들렸다. 밤에는 잠을 못 잘 정도라고 니마씨는 토로했다.

‘곰팡이 핀’ 침실이 있고, ‘15명이 함께 써야 하는’ 화장실·샤워실에 ‘공장과 자동차 소음이 심해’ 열지 못하는 창문이 달린 집. 기숙사 시설표는 이 집이 ‘살 만한 곳인지’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사업주는 이 컨테이너 숙소의 월세로 니마 씨 월급에서 매달 13만9600원을 공제한다.

기숙사 종합평가는 ‘근로감독관 마음대로’ 

<단비뉴스>가 전국 48개 고용노동지청에 2019년 외국인고용 사업장 지도점검 실적을 정보공개 청구한 결과 주거환경 실태조사 대상 이주노동자 숙소 2494개 중 단독, 연립, 아파트 등 일반 주택은 933개로 38%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사업장 건물 583개 △샌드위치 패널(스티로폼을 넣고 양쪽에 철판을 붙여 만든 판재) 등 기타 566개 △컨테이너 개조 348개 등이었고 오피스텔, 여관 등 숙박시설, 비닐하우스가 뒤를 이었다.

▲ <단비뉴스>가 정보공개 청구로 확보한 전국 48개 고용노동지청의 2019년 외국인근로자 주거환경 실태조사 ‘숙소유형’ 항목 결과. ⓒ 최유진

고용노동부가 이주노동자 숙소를 점검하는 일은 열악한 주거환경을 방치하지 않기 위해 중요하다. 노동자는 철저히 ‘을’의 처지라 사업주에게 숙소 문제를 제기하기가 어렵다. 노동부는 해마다 상·하반기 2회 이상 외국인근로자 고용사업장을 지도·점검하면서 주거환경 실태도 조사하게 돼 있다.  

<단비뉴스>가 전국 48개 고용노동지청에 2019년 외국인근로자 고용사업 ‘지도‧점검 등 기록부’ 전문을 정보공개 청구했다. 노동부는 사업장 총 3063곳을 지도·점검해서 근로기준법, 외국인고용법 등 위반 사례를 6895건 적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외고법(외국인고용법) 위반’ ‘근기법(근로기준법) 위반’ 식으로 개요만 적은 이 자료만으로는 이주노동자 숙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충주고용노동지청 관계자는 “사업장에 가면 주거환경 실태조사도 하고, 표준근로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지도 보고 여러 가지를 하는데, 기록부에 다 담을 수가 없다”며 “고용보험 전자데이터교환(EDI) 시스템에 입력해서 종합하는 체계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단비뉴스>가 정보공개청구로 받은 2019년 외국인근로자 고용사업장 ‘지도‧점검 등 기록부’의 일부 내용. 근로기준법 위반 등 지도점검 내용의 개요만 기재돼있다. ⓒ 최유진

<단비뉴스>는 별도로 2019년 ‘외국인근로자 주거환경 실태조사’ 세부항목별 결과를 정보공개 청구했다. 숙소 유형과 소방시설, 화장실, 냉난방 시설 등 11개 항목별 실태다. 결과는 예상대로 기본적인 공간이나 안전시설 등이 ‘있는지’만 확인하는 수준이었다. 보일러나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등은 알 수 없다.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숙소 환경’ 항목은 매우 양호, 양호, 보통, 불량, 매우 불량 등 5단계인데 불량과 매우불량을 받은 사업장 숙소가 전체 1380개 중 18개뿐이었다. 고용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실 관계자는 “숙소 환경 항목 평가에 특별한 기준은 없고 근로감독관이 알아서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쉼터 ‘지구인의정류장’ 김이찬 대표는 “불량과 매우 불량인 숙소가 전체 1.3%라는 게 제대로 현장 조사를 한 결과인지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많은 양호 응답의 숙소들도 실내 화장실이 갖춰진 곳일지 의문이 든다”며 “양호하다는 숙소들을 단 몇 곳이라도 활동가들과 함께 가보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단비뉴스>가 정보공개 청구한 전국 48개 고용노동지청 중 29곳에서 확보한 2019년 외국인근로자 주거환경 실태조사 ‘숙소 환경’ 항목 결과. ‘불량’이 17건, ‘매우 불량’이 1건이다. ⓒ 이정헌

숙소 시설 부실해도 고용허가에 영향 없어 

노동부는 2013년부터 ‘점수제’ 방식으로 고용허가제 외국인 인력을 배정하고 있다. 고용허가 요건을 만족하는 사업장에 대해 항목별 점수를 주고, 높은 점수를 받은 사업장부터 고용허가서를 발급하는 방식이다. 전년도 지도・점검 결과 법 위반으로 지적된 사항이 있는 경우, 건당 0.1~0.3점이 깎인다. 가점 항목 중에는 ‘우수 기숙사 설치·운영’이 있다. 지도・점검에서 우수기숙사로 인정된 경우 최대 2년간 5점이 가산된다. 컨테이너를 개조한 시설이나 비닐하우스 등은 우수 기숙사에서 제외된다. 단독주택 등 사업주 소유거나 잔여 임대 기간이 20개월 이상, 소방시설이 있고 1실 당 평균 거주 인원이 4명 미만이어야 한다. 사업주가 주거비를 전적으로 부담하는 경우 등도 가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점을 받기 위해 숙소 여건을 개선하는 사업자는 별로 없다. 

2020년 1분기 고용허가를 받은 사업장들의 평균 점수는 86.57점이다. 고용허가 ‘점수제’ 하에서는 열악한 주거 문제로 감점을 받아도 다른 항목 점수가 높으면 고용허가 사업장이 될 수 있다. 점수제 기본항목에서 ①외국인고용 허용 인원 대비 실제 고용하고 있는 외국인이 적을수록(22.4~30점) ②외국인 고용인원 대비 재고용 만료자가 많을수록(22.4~30점) ③신규 고용 신청 인원이 적을수록(15~20점) ④내국인 구인노력 기간 중 내국인을 많이 고용할수록(18~20점) 높은 점수를 받는다. ①, ④는 외국인보다 내국인에게 일자리를 더 많이 우선적으로 주려는 보호 장치다. 반면 ②, ③은 이주노동자가 열악한 근로 및 생활환경을 벗어나기 어려운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주노동자가 근로계약 만기 전 사업장을 변경하면 사업주는 기본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 고용노동부는 매년 고용허가제에 따른 이주노동자 쿼터를 발표한다. 2020년에는 총 5만6000여 명이 비전문취업(E-9) 비자로 한국에 일하러 올 수 있다. ⓒ 외국인고용관리시스템 홈페이지

노동부는 2020년 1분기 신규 외국인력 배정 점수제 기준 중 주거 관련 항목을 강화했다. 주거 감점 항목의 개수도 늘어나고, 감점 배점도 커졌다. 그러나 점수제 기본항목만 모두 중간점수를 받아도 2020년 1분기 고용허가 사업장들의 평균 점수인 86.57점을 넘는다. 사업주는 비용을 투자하면서까지 우수 기숙사를 만들어 가점을 받을 필요가 없는 셈이다.

<단비뉴스>는 한국고용정보원에 2019년도 고용허가서 발급대상 및 발급불허 사업장에 대한 점수제 채점 자료를 정보공개 청구했다. 특히, 주거관련 가점항목 1개항과 감점항목 2개항에 해당하는 경우는 별도 표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부분 공개한 채점표를 보면 주거 항목에서 감점을 받아도 사업주가 고용허가를 받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 정보공개 청구에 따라 한국고용정보원이 부분 공개한 2019년 1분기 고용허가 점수제에 따른 채점표. 주거항목에서 최대치인 3점을 감점 당해도 고용허가를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 한국고용정보원
▲ 2019년 외국인력 고용허가 사업장 2만5162곳 중 주거감점(가점9+감점13+감점15 3개 항목 합산 기준) 해당 사업장은 2562곳으로 전체 10.2%에 해당한다. ⓒ 최유진

남녀 노동자 볼펜으로 선 긋고 혼숙도   

“많은 이주노동자가 어떤 걱정을 하냐면, 사장님에게 숙소 문제 말했다가 혼자만 차별당하면 지내기 어렵잖아요. 그거 걱정해서 안 하는 사람 많아요.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좋게 말했는데, 나만 좋지 않게 말해서 나만 어려운 일 시키고, 집에 늦게 가게 하고…….”  

지난 2월 2일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미얀마 담마야나 부디스트센터에서 만난 임요웅(54) 박사의 말이다. 그는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근로계약위반 등 문제가 생겼을 때 통역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그를 찾아오는 미얀마 청년 대부분은 깻잎 농장 등 농촌에서 일하며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에 살았다. 뚜야(가명) 씨는 “가로 10피트, 세로 10피트(약 1평)이고 가벽을 친 작고 시끄러운 방이 월 20만 원이었다”며 “전에 있던 사람이 방 열쇠를 쓰게 해 달라고 말했지만, 사장님이 해주지 않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2년 6개월간 경기도의 한 버섯농장에서 일한 아웅(가명) 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는 “좁은 방에서 3명이 붙어 자는데, 1인당 월 15만원을 냈다”며 “사장님은 ‘원래 이렇게 해왔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이주공동행동)’에 접수된 사례를 보면, 2015년 경기도 한 농장에서 처음 본 캄보디아 남녀 노동자 2명은 3~4평 크기 가건물에서 함께 지내야 했다. 칸막이도 없어 볼펜으로 바닥에 선을 그어 남녀 공간을 분리했다. 숙식비는 1인당 30만원이었다.

이주노조 우다야 라이(50) 위원장은 “단지 숙소 공간이 좁아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남녀혼숙을) 발상하는 농장주의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기설비가 잘못돼 벽에 손만 대도 전기가 통하는 곳 등 안전상 문제가 있는 숙소에 대한 증언도 나왔다. 그러나 ‘숙소 문제를 사업주에게 말해봤냐’고 묻자,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부실 숙소 신고해도 ‘시정명령 6개월’ 견뎌야   
 
“이주노동자가 직접 숙소 개선을 요구할 수는 없어요. 고용노동부 혹은 고용센터가 하는 겁니다.”

이주와인권연구소 이한숙 소장은 “이주노동자 당사자가 문제 제기할 수 없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2019년 2월 고용부가 개정 고시한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변경 사유’에 대한 지적이다. 이 고시에는 ‘숙소시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직업안정기관의 장으로부터 시정할 것을 요구받았음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시정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가 명시됐다. 

사업주는 이주노동자에게 ‘슈퍼 갑’이다. 일자리와 숙소, 체류자격까지 좌우한다. 이주노동자가 숙소를 고쳐달라고 하더라도 사업주는 응할 의무가 없다. 견디다 못한 이주노동자가 노동부에 ‘사업장 변경’을 신청하면 노동부는 이를 허가하기 전에 숙소를 확인하고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사업주가 시정명령을 이행하면 문제가 해결된 것이니 계속 일하라는 식이다. 시정명령 이행 기간은 6개월이다.

“주거 문제를 신고하면 길게는 6개월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 이후에 사업장 변경할 수 있다는 확신도 없잖아요. 기간 안에 시정하면 이 사람은 계속해서 그 사업장에서 일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은 그걸 내가 어떻게 버틸 수 있냐, 사업주 눈치 보면서 일할 수 있느냐고 말해요.”

네팔 출신인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2010년부터 민주노총에서 일하고 있다. 이주노조는 2005년 출범 당시 불법체류자가 포함됐다는 이유로 설립 신고가 반려됐지만 10년 넘는 법정 소송 끝에 합법 노조로 인정받았다. 사업장 변경을 원하는 많은 노동자가 그에게 상담을 요청한다. 그는 “고용허가제 때문에 노동자들이 (주거에 관한)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면서 참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이주공동행동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 자유를 보장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단비뉴스>가 정보공개 청구로 확인한 결과 2019년 외국인고용 사업장 2441곳 중 22%인 530곳(48개 고용노동지청 주거실태조사 기준)이 소방시설을 갖추지 않았다. 특히 광주고용지청 관할사업장은 242곳 중 절반이 넘는 128곳에 소방시설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주공동행동은 스티로폼 집, 컨테이너 등 열악한 주거시설을 방관하고 있는 노동부를 비판했다. 

스티로폼 숙소에서 1인당 월 60만원 숙식비 공제도 

▲ 2018년 이주노동자 투쟁투어버스 결의대회에서 지구인의정류장 김이찬 대표가 숙식비 명목으로 부당하게 임금을 착취한 여주 버섯농장을 규탄하고 있다. ⓒ 이주노조

이주공동행동은 지난 2018년 경기도 여주의 한 버섯농장을 성남고용노동지청에 고발했다. 당시 이 농장에는 태국, 캄보디아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 20명이 있었다. 스티로폼 패널로 지어 화재에도 취약한 임시 주거인데, 1인당 월 60만원을 숙식비로 공제했다. 화장실과 샤워실을 8명이 함께 쓰고, 천장에는 빗물이 새는 걸 막기 위해 상자를 붙인 곳이었다. 해당 농장주는 양평에도 버섯농장을 운영하면서 2013년과 2014년에도 부당노동행위로 문제가 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농장주는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다. 

▲ 2018년 성남노동지청 앞에서 경기지역 농업 이주노동자들이 숙식비 강제 징수 지침을 비판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이주노조

노동부는 2019년 7월 시행 고시에 제5조의2(기숙사의 제공 등) 내용을 추가해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기숙사 혹은 실제와 다른 기숙사 정보를 준 사업장에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게 했다. 노동부는 현장을 점검해 기숙사 기준 위반 등을 적발하고 신속히 사업장을 변경하도록 적극적으로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숙사 기준 위반을 신고해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을 얻어내려면 ‘시정명령 이행 기간’을 견뎌야 한다는 조건에는 변함이 없다. 

“노동부가 시정명령을 내려도 문제가 있어요. 사업장이 정당한 이유 없이 개선하지 않으면 사업장 변경이 된다고 하는데, ‘정당한 이유’가 애매하거든요.”

이한숙 소장은 노동부 개정 고시에 대해 “정당한 이유는 만들면 되기 때문에 빠져나갈 구멍이 많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사업주는 전제 군주, 감독관청은 감감무소식”

“2년 전 포천에서 네팔 노동자가 살던 기숙사는 여름에 비가 새고, 겨울에는 난방이 허술했어요. 그 친구들은 농장주에게 기숙사를 수리해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죠. 농장주는 수리해주겠다고 말만 하고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어요. 나중에는 ‘우리를 다른 농장으로 갈 수 있도록 서명해 달라’고 했지만 서명도 안 해주고 수리도 해주지 않으면서 그 기숙사에 계속해서 살도록 강요할 때, 그들은 참으로 힘겨워했어요.”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김달성(66·평안교회) 목사의 말이다. 그는 “근로계약을 맺을 때 숙소에 대해서 충분한 정보를 받는 걸 본 적이 없다”며 “이주노동자에게 고용주는 절대군주와 같아서 주거환경이 나쁘니 고쳐달라고 감히 말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김 목사는 신학대학을 마치고 노동운동을 위해 공장에 들어갔다가 건강 악화로 일을 그만둔 뒤 노동자를 위한 교회를 세우고 포천 지역에 사는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해 왔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의 숙소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는 등 산업안전, 주거환경, 노동인권 문제를 고발해 왔지만,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사업주도 인식이 바뀌지 않고, 지자체나 노동부에서 실태 점검을 하고도 기숙사 시설이 1년 이상 바뀌지 않고 있다”며 “다른 데 갈 수 있도록 서명도 안 해줘서 이주노동자들이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태업에 돌입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 동행의 이현서 변호사(현 화우공익재단)는 이주노동자 고용허가 요건으로 기숙사 기준을 넣을 것을 제안했다. 그는 “현재 외국인고용법상 고용허가 요건이 너무 단순해 몇 가지만 지키면 누구나 외국인력을 고용할 수 있게 돼 있다”며 “숙소 기준을 허가요건에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외국인 차별 없이 최저 주거기준 적용해야 

“사업주 다수는 ‘이렇게 지내는 거 뭐 어떠냐, 우리도 이런 데 살고 있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그분들도 개선해야 하고, 이주노동자도 개선해줘야 하는 거죠.”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사업주들이 ‘돈이 없거나 건물 허가를 받기 어렵다’ 등의 이유 대신 ‘나도 컨테이너에 산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을 꼬집었다. 실제로 농사짓는 동안 오가는 불편을 줄이려 집을 놔두고 비닐하우스에서 머무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이 이주노동자의 형편없는 주거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한국인 중에도 열악한 거처에서 사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도시연구소에 맡겨 2018년 작성한 ‘비주택 주거실태 파악 및 제도개선 방안’에 따르면 국내 가구 중 판잣집·비닐하우스·움막에 거주하는 가구가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1만1409가구였다. 2010년의 1만6475가구에 비해서는 47.3% 감소한 수치다. 반면 숙박업소의 객실, 기숙사 및 특수사회시설, 기타 등 ‘주택 이외 거처 거주 일반 가구’ 수는 2015년 기준 39만3792가구로 2010년의 12만9058가구에 비해 590.1% 급증했다.

여기서 ‘기타’로 구분되는 시설은 고시원‧고시텔, 일터의 일부 공간과 다중이용 업소 등인데,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2019년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비주택 거주 가구가 급증한 원인은 고시원 증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인 가구가 급격히 증가한 상황에서 저렴한 주거공간이 재개발‧재건축으로 사라지면서 고시원이 가난한 사람들의 집이 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 ‘비주택 주거실태 파악 및 제도개선 방안’ 보고서에 실린 주택 이외의 거처 거주 가구의 변화표(2005~2015년). ⓒ 국가인권위원회

이 때문에 유엔(UN)이 2017년과 2019년 한국 정부에 ‘주거 최소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비적정 거주민이 증가하는 상황을 개선하라’고 권고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비적정 주거 거주민 인권증진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를 냈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최소 주거면적 등 양적 측면뿐 아니라 안전과 위생 등 질적 측면을 고려한 최저주거기준 마련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기준이 마련돼도 이주노동자는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행 주거기준법의 대상이 ‘국민’으로 한정돼 있어 외국인(이주노동자)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업주가 숙소를 제공하지 않는 곳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나가서 자기 숙소를 구하는데, 임금은 적죠, 보증금은 없죠, 어디 가서 구하겠어요. 한국 사람들이 떠난 공단 주변에, 주거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주거들이 모여 있는 지역에 가보면 이주노동자들이 살고 있어요. 보증금 없이 집을 구할 수 있는 곳이요. 그러니까 도시 빈민의 주거 문제도 이주노동자의 주거 문제와 같이 가야 한단 말이에요.”

이주와인권연구소 이한숙 소장은 한국의 열악한 주거 문제에서 이주노동자를 떼놓지 않고 전체를 엮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근로기준법의 주거 관련 조항 등에서도 외국인이 제외된 경우가 많다며 외국인 차별조항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노동자 주택 권고’에도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에게 동일한 처우를 보장하라’는 내용이 있다.   

이주노동자 쉼터를 운영하는 여수이주민센터 김희진 이사는 “(이주노동자들은) 월세 내기도 빠듯하지만 일단 보증금을 감당할 목돈이 없다”며 “간혹 이주노동자 친구들이 ‘하우스’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 하우스가 원룸 같은 집이 아니라 비닐하우스 집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의 취약계층이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를 선택할 수밖에 없듯, 취약한 이주노동자는 ‘비닐하우스’를 강요당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인이 기피하는 일터에서 땀 흘리는 이주노동자 중 상당수가 농촌 들판의 비닐하우스, 시끄러운 공장과 가두리 양식장의 컨테이너 등 ‘집 아닌 거처’에 살고 있다. 의지할 사람 없는 이국땅, 일과 쉼이 24시간 뒤섞인 숙소는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안전을 위협한다. 허술한 제도를 악용하는 사업주, 관리감독 의무를 외면하는 정부는 가장 낮은 곳에서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을 향한 원망을 안고 돌아가게 만든다. <단비뉴스> 특별취재팀이 제조업과 농어업 현장에서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실태를 취재하고 인권 활동가와 노동 전문가 인터뷰, 해외 사례 조사 등을 바탕으로 대안을 모색했다. 이 시리즈는 뉴스통신진흥회 주최 제2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편집자)

①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속 한숨과 원망

③ ‘기준 이하 숙소’면 캐나다선 고용 불허

편집 : 조한주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