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코로나 이후 ① 학교, 그리고 선생님

지난 가을학기에 연재한 [청년기자들의 시선]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봄학기 [청년기자의 시선2]는 현상들 사이(Between)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갈등과 대립 너머(Beyond)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미래를 한 치도 예측하기 힘든 오늘, 분명한 건 코로나가 이전과 이후 시대를 나누었다는 사실이다. ‘뉴노멀’ ‘언택트’ 시대라는 새로운 용어가 상징하듯, 코로나 시대 이후 세상은 새로운 가치와 행동을 요구한다. 세계 석학들이 이후 세계가 어떻게 바뀔지 전망이 분분한 가운데, 단비 청년기자들이 ‘코로나 이후’에 주목했다. (편집자)

‘디지털 공간’에서 학생이 된 교사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줌 화상회의로 대학원 수업이 개강한 3월 16일. 평소 같으면 학교 마늘 텃밭에서 아이들과 물을 주며 며느리밥풀꽃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을 아버지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다가와 말을 건다.

“이게 뭐고? 실시간으로 수업 듣는 거가?”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다. 아버지는 내 수업 장면을 먼발치에서 한참을 지켜보다가 TV 속 스타 교사의 EBS 강의를 본다. 내가 화상회의 방 개설부터 아이들 초대하기, 자료 화면 공유법까지 알려준 뒤 3일째 밤낮을 가리지 않고 컴퓨터와 씨름 중이다. 노트북과 휴대폰까지 동원해 기기 3개로 동시에 화상회의를 열어 ‘1인 3역’ 온라인 수업을 연습한다. 그동안 전화, 카카오톡, 밴드 등 온갖 방법으로 반 아이들과 소통해온 아버지에게도 언택트(비접촉) 시대 ‘디지털 공간’은 전혀 새로운 교육의 장이었다.

▲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는 개학이 계속 연기되자 3월부터 줌 화상회의로 온라인 수업을 연습했다. 지난 4월 7일 아버지가 반 아이들 23명 중 18명과 미리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임성무

언택트 시대, 교사의 역할

아버지는 35년간 ‘현장체험교육주의자’로 살아왔다. ‘체험’을 교육에서 가장 중시해왔다. 시험 성적을 위해 책상머리에 앉아 칠판만 쳐다보는 교실이 아니라, 친구들과 뛰어놀며 몸으로 익히는 교실 밖 현장체험교육에 열성을 쏟았다. 책에 밑줄 그으며 국가의 역할을 설명하는 대신, 세월호 참사 영상을 함께 보며 토론했다.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진 연도를 외우게 하지 않고 아이들을 대장경이 보관된 해인사로 데려갔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고자 경상남도 창녕 우포늪에 데려가 우두커니 홀로 선 왜가리의 작은 날갯짓을 기억하게 했고, 하늘이 탁 트인 날 밤에는 천체 망원경을 들고 가 보름달 옆 북두칠성을 보여줬다. 

이런 아버지에게 코로나19는 전대미문의 경험이었다. 이겨내야 할 새로운 전쟁이었다. 다가올 4차산업혁명에 대응할 어떤 준비도 없는데, 교육 환경은 순식간에 온라인 공간으로 바뀌어 버렸다. 아버지가 그동안 지켜온 ‘체험교육’은 얼굴을 마주보며 스킨십을 나누는 쌍방향 소통인데, 물리적 거리가 기본인 코로나시대 수업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까? 온라인 디지털 환경이 ‘지식 전달’에 용이하고 바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는 장점도 있지만, 학교가 사회공동체 구성원으로서 협력과 배려, 사회성을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다면…  이제 체험과 실기를 바탕으로 하는 음악, 체육, 미술 등의 창의성 교육은 어떻게 수업해야 하나?

▲ 아버지(왼쪽)가 2012년 4월 20일 ‘과학 싹 잔치’에서 아이들과 천체 망원경으로 태양 흑점을 관측하고 있다. ⓒ 임성무

‘스승의 날’ 텅 빈 교실에 선 아버지

코로나19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3월 9일 → 3월 23일 → 4월 6일 → 4월 16일. 네 차례나 개학이 미뤄진 뒤 아버지는 학교로 돌아갔다. 23명 아이들이 마구 떠들고 있어야 할 교실은 조용하다. 대신 아이들이 바라봐야 할 TV 모니터가 아이들 얼굴로 가득하다. 아버지가 아끼는 기타만 덩그러니 텅 빈 책상들을 바라본다.

▲ 4월 16일 초등학교 4~6학년의 온라인 개학이 이뤄졌지만 대구 강림초등 5학년 1반 교실은 텅 비었다. 통학 개학은 다음 달 8일로 예정되어 있다. ⓒ 임성무

교실에서 웃고 떠드는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체험교육주의자’ 아버지에게 올해 ‘스승의 날’은 어떤 시간일까? 아버지는 “올해 처음으로 제자들이 자발적으로 감사와 존경을 드러내는지 살펴보는 성찰의 시간”이라며 멋쩍은 미소로 말한다. 아이들과 함께할 수 없는 아버지의 괴로움도 함께 느껴진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1년 전인 1991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3년간 해직됐다. 1994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복직된 이후 줄곧 지켜온 소망이 하나 있다. ‘몸이 닿는 데까지 평교사로 남아 교실에서 아이들을 마주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 작은 소망이 코로나 이후에도 지속될까?

아버지와 동료 교사들은 코로나19로 더욱 빠르게 미래 4차산업혁명을 이끌며 인공지능(AI)이 교사를 대체하지 않을까 걱정도 많았다. 이번 코로나19를 계기로 공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 고민하게 됐다. 지식을 암기하고 정답만 고르는 교육이 아니라, 애정을 가지고 학생 개개인을 인격체로 대하며 체험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교육 원칙을 다시 절감한다. 디지털 시대는 더욱더 빈부 격차에 따라 배움의 속도가 달라질 것이다. 치열한 입시경쟁 속 다양성과 주체성을 잃어버리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 속 아이들의 미래는 여전히 교사만이 지켜줄 수 있다는 믿음을, 아버지는 스승의 날 텅 빈 교실 속에서 다시 확인한다.

▲ 부산 동성초등학교 온라인 개학식 이벤트 영상(엘사 교장선생님 Full version) ⓒ 동성초등학교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꿈을 심어주는 교육 

개학이 연기되고 텅 빈 교실을 지키던 교장선생님이 <겨울 왕국>을 패러디해 만든 영상, 교사와 학생들이 영상 릴레이로 노래를 주고받는 영상이 화제다. 영상은 코로나 이후 교육의 방향, 학교와 교사의 관계와 역할을 고민하게 만든다.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비록 ‘디지털 공간’이라도 교사가 희망을 가지고 학생 개개인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성과 공동체라는 꿈을 심어주고, 사람이 아름답다고 가르치면 된다. 

선생님이 현실이나 현장 이상의 새로운 경험을 심어준다면, ‘모든 학생이 소외되지 않고 공교육에서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교육 본연의 모습을 교실 현장에서 구현할 수 있다면, 코로나 시대 이후에도 아이들은 늘 새로운 봄을 맞이할 수 있다. 아버지가 새 교육현장을 꿈꾸는 봄, 아버지 소망에 내 희망도 함께 얹는다.


편집 :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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