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국어 과목은 늘 내 전체 성적을 끌어내렸다. 특히 문학 쪽이 ‘쥐약’이었다.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밖에 없는데 답이 있다니, 납득하기 힘들었다. 내가 느끼기에 주인공의 심정이 ‘슬픔’일지라도 선생님이나 해설서에서 ‘비장함’이라 한다면, 난 틀린 것이다.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에서 ‘보라색은 소녀의 죽음을 암시한다’고 배웠다. 그에 대해 황당하다며 ‘그냥 보라색을 좋아해서 썼다’고 답한 작가의 인터뷰는 내게 위안이 됐다. 이에 견주어 수학은 늘 문제의 정답이 명확히 정해져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바를 억지로
난 몰랐다, 내가 공유되고 있다는 걸. 일을 시작하기까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이전부터 계속 깊이 생각해 왔기에 결정의 순간, 바로 정하게 된 것 같다. 어쨌든 이런 진로를 생각하고 온 특성화고니까, 내 목표는 그저 빨리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니까,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나는 원예를 전공했다. 그런데 왜 음료회사에서 일하게 됐더라. 실은 특성화고 진학은 형을 보고 따라 한 것이다. 특성화고는 형편이 어려운 우리 형제에게 딱이었다. 3년 동안 수업료도, 기숙사비도 다 공짜였다. 그런데 졸업하면 바로 취업까지 시켜준다니 이보다
“어떻게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니. 너가 하기 싫다고 그렇게 얼굴에 표정이 다 드러나면 어떡해.” 평소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나를 보고 엄마는 야단을 치곤 했다. 하지만 싫어하는 사람과 말하게 되면 싫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뾰로통하는 천성은 바꾸기 힘들었다. 이렇게 마음을 다 드러내다 보니 실제로 대인 관계가 어색해지거나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줬다. 때로는 마음을 감추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임을 깨달아 갔다. 엄마에게 반발해 ‘사람은 숨기는 것 없이 솔직해야 한다’며 애써 합리화했는데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비운한글이 최근 우리사회 화두로 떠올랐다. 계기는 경상북도 ‘상주’와 영화 ‘나랏말싸미’다.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 하며 전국을 8도로 나눌 때 상주를 경상도의 중심에 뒀다. 상주목사가 경상감영을 책임지도록 한 거다. 경상남북도를 합친 ‘경상도’가 ‘경주’와 ‘상주’에서 한 글자씩 따온 말이라는 사실에 상주의 위상이 묻어난다. 200여 년 경상도의 중심이던 상주는 임진왜란 중 그 지위를 잃는다. 부산에서 상주를 거쳐 충주와 한양으로 가는 조선의 주요 교통로와 거점이 왜군 손에 파괴된 탓이다. 160
“지금도 (저희 프로는) 변화를 일으키고 있어요. 회사에서도 (이 프로를) 보고 있어서 뭐 때문에 회사가 욕먹는지 알죠. 여기서 전달되는 시청자 의견이 KBS에 간접적이지만 압박이 될 수 있고, 보도에 더 신경 쓰도록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네이버, 다음 등 인터넷 포털과 유튜브 등에 올라간 한국방송(KBS) 뉴스에 시청자들이 댓글을 달면 그걸 방송에서 읽어주는 기자들이 있다. 지난해 8월 유튜브 채널로 시작해 지난 2월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 5시 KBS 1라디오에도 정규 편성된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이다. KBS 보
정확히 어떤 날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특별한 날이었던 것 같다. 화장하고 있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을 느끼고 그를 쳐다봤다. 그제서야 엄마의 눈길이 내 얼굴이 아닌 손 위 아이섀도우에 머물고 있음을 알았다. 머쓱한 느낌에 물었다. “엄마도 할래?” 엄마를 예쁘게 화장시켜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평소 같으면 “너나 해~” 하고 돌아섰을 엄마가 그날은 “어... 한번 해볼까...”라고 말끝을 흐렸다. 웬일인가 싶었지만 민망해할까 봐 엄마에게 눈을 감으라 하고 눈두덩에 섀도우를 발랐다. 처음 느끼는 감촉이었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25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서민주택가에 있는 장형주(가명∙47) 씨 연립주택 1층 집안은 열기로 후끈했다. 작은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지만 금세 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장 씨는 3층 연립주택의 반지하 위층 40평방미터 남짓 되는 방 세칸짜리 집에서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들(20)과 고등학교 1학년생 딸(16)과 함께 살고 있다. 한 부모 세대 가장인 장 씨는 밖에서 일해서 돈을 벌고 싶지만 하루 종일 아들을 돌봐야 하는 터라 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장 씨는 남편
“급할 때 차도 없고 버스는 안오고… 그럴 때 전화 한 통이면 택시가 와서 실어다 주니 너무 좋지요.”충북 제천시 백운면 덕동리에 사는 이아무개(66·여) 씨는 얼마 전 인천 아들집에 갑자기 갈 일이 생겼다. 반찬을 좀 해달라는 전화가 와서 나가려고 보니 하루 세번 다니는 버스 첫차는 오전 8시10분에 가고 없어 전화로 택시를 불렀다. 다음 버스는 점심 시간 다 돼 오는데 그걸 타고 나가면 인천 가면 날이 저문다. 이 씨가 이날 전화로 부른 택시에 편승해 덕동리 마을로 갔다. 오전 8시 25분에
“제 넥타이 색깔을 유심히 봐주십시오. 도시의 하늘색도 이런 색깔이면 좋으시겠죠?”22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서울시청 본관 다목적홀. 서울시가 주최한 ‘2019 대기질 개선 서울 국제포럼’에서 박원순 시장이 개회사 도중 자신이 맨 파란 넥타이를 들어 보였다. 그는 “미세먼지로 인한 조기사망이 전세계에 7백만명이라는 세계보건기구(WHO) 조사는 굉장히 충격적”이라며 “서울시는 2017년 7월 미세먼지를 하나의 재난으로 규정했다”고 밝혔다.미세먼지 탓 조기사망 전세계 7백만명세션1에서는 아시아 주요 도시 참가자들이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
‘싱가포르에는 모기가 없다.’ 싱가포르의 강력한 부패척결 의지와 높은 국가 청렴도를 강조할 때 자주 인용하는 말이다. 싱가포르 공무원들이 업자들의 집요한 설계∙구조 변경 로비와 뇌물공세를 뿌리치고 하수도 구조를 미세하게 경사지도록 만들어 물이 괴지 않게 해서 모기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정부가 ‘모기와 전쟁’을 벌일 정도로 모기가 많은 곳인데, 이 말이 사실처럼 들릴 정도로 싱가포르의 부패 대응은 단호하다.싱가포르가 1959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을 때부터 청렴국가의 이미지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독립 후 건국과정의 혼란기는 물론
지난 14일 배우 윤지오씨의 ‘13번째 증언’ 북콘서트가 열렸다. 윤씨는 홍선근 머니투데이그룹전략협의회 회장이 자신에게 꽃다발을 보낸 적이 있다면서 주소를 알고 있는 게 스토킹으로 느껴져 두려웠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증언했다. 그에게 <머니투데이> 계열사 기자들이 계속 질문을 던졌다. “집으로 꽃다발이 배달됐다고 하는데 꽃다발도 조씨가 배달한 걸로 오해하는 거 아닌가?” “홍 회장에게 명함 받았던 자리 자체가 법적으로, 도의적으로 문제 될 만한 자리였나?”<머니투데이> 계열사인 <뉴시스> 기자는 윤씨를 비난하는 칼럼을 썼다가 지웠고,
오늘도 집을 나서며 똑같은 패딩을 걸친다. 짙은 카키색 누비옷에 엷은 황갈색 라쿤털이 모자를 둘러싼 디자인이다. 몇 주 동안 같은 옷만 입어서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칠까 약간 신경이 쓰이긴 한다. 그래도 계속 패딩을 입는 건 4월 들어서도 춥기 때문이다. 기상방송인들은 맨 먼저 나풀거리는 블라우스에 밝은 색 치마를 받쳐입어 봄을 연출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계절이라곤 하지만 경계는 모호하다. 12~2월은 겨울, 3~5월은 봄이라는데, 그 계절에 어울리는 날씨를 느끼는 날은 많지 않다. 계절이 바뀌고 한참 지나서야 ‘아, 철이
‘한국전쟁에 파견되는 이들과 함께 가서 헌신할 기회를 갖고 싶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당시 벨기에 20대 여성이 의무병으로 참전하겠다며 정부에 보낸 편지가 얼마 전 69년 만에 발견됐다. 이 여성이 실제로 참전했는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타국 여성이 한국까지 와서 돕겠다니, 감동이 클 수밖에 없다.편지 한 통에 감동받는 것은 전쟁이 주는 크나큰 두려움을 알기 때문이다. 거대한 폭발음과 포연, 여기저기 피투성이가 되어 널브러지는 사람들… 영화를 통해 각인된 전쟁의 참상들이다. 전쟁이 나면, 얼마나 ‘많은’ 인명
안중근 유해봉환, 순국 110주년 성과?<앵커>(임지윤) 최유진 기자! 화면에 등장하는 손가락 절단한 손의 주인공. 누군지 아시지요?(최유진) 네, 물론입니다. 안중근 의사지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아실텐데요.(임지윤) 네, 그렇습니다. 최유진 기자! 안중근 의사 손 사진이 나온 배경을 좀 설명해 주시겠어요?(최유진) 네, 사진을 보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구한말 함경도와 만주, 러시아 일원에서 독립무장 투쟁을 벌이던 안의사가 지금부터 110년 전인 1909년 3월 2일 12명의 동지들과 러시아 땅 노브키에프스크에서 민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