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봄’

▲ 강도림 기자

오늘도 집을 나서며 똑같은 패딩을 걸친다. 짙은 카키색 누비옷에 엷은 황갈색 라쿤털이 모자를 둘러싼 디자인이다. 몇 주 동안 같은 옷만 입어서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칠까 약간 신경이 쓰이긴 한다. 그래도 계속 패딩을 입는 건 4월 들어서도 춥기 때문이다. 기상방송인들은 맨 먼저 나풀거리는 블라우스에 밝은 색 치마를 받쳐입어 봄을 연출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계절이라곤 하지만 경계는 모호하다. 12~2월은 겨울, 3~5월은 봄이라는데, 그 계절에 어울리는 날씨를 느끼는 날은 많지 않다. 계절이 바뀌고 한참 지나서야 ‘아, 철이 바뀌었네’ 하고 깨닫는다. 올봄은 계절의 한가운데 이르렀는데도 봄이 온 줄 모르겠다. 내가 사는 제천에는 4월 6~8일로 잡힌 ‘청풍호 벚꽃 축제’ 기간에 벚꽃이 피지 않아 주최측이 울상이었다고 한다. 자연(自然)은 ‘스스로 그럴듯하게’ 유연하게 움직일 뿐인데 인간이 경계를 그어놓고 기획을 하고 조바심을 낸다.

▲ 봄 같지 않은 쌀쌀한 날씨가 계속돼 제천 세명대 캠퍼스에는 예년 같으면 만개했을 벚꽃이 12일에도 꽃망울을 몇 개밖에 터트리지 못했다. ⓒ 이봉수

2백여년 전 연암 박지원은 중국 가는 길에 통역관에게 묻는다. “자네, 도를 아는가?” 머뭇거리는 통역관에게 박지원은 말한다. “도는 강물과 언덕의 경계에 있다네. <원각경>에서도 진리를 붙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는 경계에서 찾지.” 박지원에게 경계는 창작의 지점이었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열하일기>다. 박지원의 말처럼 경계라고 해서 명확히 나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양쪽을 아우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정치는 양극화했다. 중도로 일컬어지는 당은 힘이 작고,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다. 머리 좋은 엘리트들이 더 명확하게 경계를 그어 대중을 갈라놓는다. 적을 만들어야 지지층을 결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패거리 정치는 그들 나름대로 생존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기술·문화·예술 등 다른 분야에서는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경계를 구분 짓지 않는 기술융합이 각광받고,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을 취하는 ‘그래픽노블’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생겨났다. 콘텐츠를 아예 처음부터 PC, TV, 웹 등 다양한 플랫폼을 고려해서 만드는 시대다. 정치권만 그 흐름에 올라타지 못하고 역행한다. 정치인들은 선거철에만 유권자에게 사회통합을 부르짖는다. 사회는 원래 경계가 없는 것이었는데 찢어놓고 통합을 외치는 건 무슨 경우인가? 인간 사회도 계절의 흐름처럼 다름을 인정하되 편가르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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