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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은 한밤중에 ‘몸단장’을 한다
[단비현장] 지하철 터널 청소∙점검 체험기
2019년 11월 18일 (월) 14:06:52 강도림 기자 kangdl0314@naver.com

“이번 열차는 신도림행 마지막 열차입니다. 더 이상 열차가 운행되지 않습니다. 열차가 곧 출발하오니 승객 여러분께서는 서둘러 승차해 주시기 바랍니다.”

16일 밤 11시 53분 서울 마포구 합정역.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행 마지막 열차가 떠나고 잠시 후 승강장 안전문이 일제히 열렸다. 기름 냄새와 뒤섞인 축축한 바닥 냄새가 확 끼쳐 왔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잠자리로 드는 시간에 지하철 터널은 깨어난다. 지하철 노동자들의 일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17일 새벽 서울 합정역 지하갱도에서 호스와 밀대 등으로 물청소를 하고 있다. 연두색으로 보이는 터널 기둥은 물청소 전에는 시커멓게 먼지가 앉아 있었다. © 강도림

서울교통공사의 ‘지하철 환경 REAL 체험 행사’에 참가해 지하철 환경과 안전에 관한 설명을 듣고 난 새벽 1시. 36명 참가자도 안전 조끼를 입고 안전모와 방진마스크를 썼다. 우비도 갖춰 입었다. 묵직한 안전모가 머리를 누르고, 얼굴에 밀착된 마스크가 얼굴을 조여 숨쉬기가 힘들었다. 완전무장을 한 채 승강장 안전문에 걸쳐 놓은 사다리를 타고 내려서자 터널 안 선로 위에는 ‘베테랑’들이 벌써 물청소를 하고 있었다.

새벽 1시부터 물청소, 동틀 무렵 끝나

터널 안은 곳곳에 거무스름한 자국이 나 있고, 먼지가 두텁게 앉아 있었다. 두 길이 넘는 터널 천정과 그걸 떠받치고 있는 기둥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직원들이 어디서 끌어왔는지 모를 정도로 길게 이어진 호스로 천정과 기둥에 물을 쏘아 대자, 땟국물이 기둥을 타고 주르르 내려왔다. 평소 전철을 타고 가다 열차 안에서 가끔 내다 보이던 터널 안 기둥이 연두색인 것을 이제 알았다. 시커멓던 기둥이 물세례를 맞고 엷은 연두색으로 변한 것이다.

“한번 해볼래요?” 청소하던 직원이 호스를 건네주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천천히 쏘면서 내려오면 돼요.” 호스를 받아 들고 기둥 위를 겨냥했는데 물이 기둥 옆 천정으로 날아간다. 수압이 높아 마음먹은 대로 안 된다. 다시 호스를 꽉 틀어쥐고 물을 뿌리는데 3분도 안 돼 팔과 목이 아프다. 구석구석 빠진 데 없이 물청소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살수 작업이 끝나자 물기가 촉촉하게 남아있는 기둥을 긴 밀대로 빡빡 닦았다. 터널 안쪽에는 두꺼운 먼지가 쌓여 있고, 청소해야 할 구간이 끝도 없어 보여 수압이 높은 살수 장비 없이는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을 거 같다. 바닥에 내려앉은 먼지는 빗이 길게 달린 빗자루로 쓸었다. 쓸어내는데 빗자루 끝이 묵직해진다. 그렇게 3~4m쯤 되는 기둥과 기둥 사이 한 구간을 청소하는 데도 5분은 더 걸린 거 같다. 청소한다고 했는데도 연두색 기둥과 천장 및 바닥은 깨끗해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지하철을 만든 지 오래돼 쌓이고 쌓인 먼지는 어쩔 수 없는 건가?

청소직원들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물을 뿌려 먼지를 걷어 낸 뒤 밀대로 찌든 때를 벗겨 내고 바닥을 쓸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숙련된 작업 속도로 하더라도 300m는 넘어 보이는 터널 안 물청소를 다 하려면 동틀 무렵이나 되어야 하나? 내 인내심은 어느덧 한계에 온 듯했다.

   
▲ 합정역과 홍대입구역 사이 터널 안에 있는 표지판에는 어느 쪽이 가까운 탈출로인지 표시돼 있다. © 강도림

쉴 새 없이 물을 뿌리고 훔치고 쓸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직원들을 뒤로하고 새벽 1시 30분쯤 다시 승강장으로 올라왔다. 겨우 30분 남짓 청소하는 흉내만 내고 나왔는데도 손아귀가 아프고 허리가 뻐근했다. 열 명쯤 되는 청소직원들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플랫폼 선로 물청소를 한다. 승강장 구간만 물청소를 해도 청소 구간 길이가 300m는 돼 보여 보통 중노동이 아닐 것 같다.

단전 막기 위해 새벽마다 전차선 점검

승강장에서 10분쯤 쉬다 다시 사다리를 타고 선로로 내려갔다. 지하철 운행 시간에는 출입금지 지역인 터널 안 선로를 따라 홍대입구역까지 걸었다. 지하터널이라 캄캄할 거라 생각했는데 터널을 따라 희미하게 전등이 켜져 있어 아주 어둡지는 않았다. 선로 바닥에 깔린 자갈을 밟으며 5분 정도 걸어가자 안전모와 노랑색 안전띠를 착용한 사람들이 대형 트레일러 같은 것을 앞세우고 다가왔다. 열차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차선을 점검하는 직원들이다.

전차선이 끊어지거나 연결이 불완전해 전기공급이 안 되면 열차가 움직이지 못한다. 누전이나 합선이라도 되면 화재나 안전사고로 이어지고 출퇴근 시간에 단전이 되면 난리가 난다. 그래서 전기 담당 직원들은 매일 전차선을 점검한다. 전차선의 볼트와 너트가 풀렸는지, 전선이 끊어지거나 불량은 없는지, 매일 점검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 서울교통공사 전기부 직원들이 모터카에 올라탄 채 전차선을 점검하고 있다. © 강도림

“막차 운행이 끝나는 밤 12시 반부터 단전이 되면 다시 전기가 공급되는 오전 4시까지 전차선 점검을 합니다. 5시반부터 첫차가 다니니까 그 전에 점검을 마쳐야 하니까요. 매일 새벽 밤잠 못 자가며 점검하는데도 가끔 장애가 생깁니다. 그럴 때는 마치 죄인이라도 된 심정이죠."

전기 점검을 하고 있던 ‘전기소장’은 “시민들이 보다 안전하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 지하철 선로 점검팀이 ‘선형검측기’를 밀고 가면서 궤도의 틀림 현상이나 간격 변화 등 이상 유무를 점검하고 있다. © 강도림

밤새는 그들 있어 ‘오늘도 무사한’ 서울지하철 

홍대 입구 방향으로 걸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야광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뗏목처럼 생긴 것을 타고 다가왔다. 지하철 선로를 점검하는 팀이다. 선로점검은 지하철 안전 운영과 직결된다. 점검팀은 서초역과 홍대입구역 사이를 4구간으로 나눠 ‘레일 선형검측기’를 앞으로 밀고 가며 레일 상태를 살핀다. 검측기로 레일 상태를 스캔한 뒤 검측 결과를 디지털 데이터로 저장하고 미세한 궤도 틀림 현상까지 잡아낸다. 폴란드에서 만들어진 7150만 원짜리 고가 제품이다.

   
▲ 서울교통공사가 주관한 ‘지하철 환경 REAL 체험 행사’ 참가자들이 합정동역에서 홍대입구역으로 가는 지하철 터널 안을 걸어 가고 있다. © 강도림
   
▲ 고압살수차가 지하철 터널 내부에 물을 뿌리면서 청소를 하고 있다. © 강도림

홍대입구역에 도착할 무렵 전동차 같은 거대한 장비가 눈에 들어왔다. 고압살수차였다. 서울교통공사는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3종 7대의 고압살수장비를 운영한다. 1호선에서 8호선까지 전체 터널 구간 250km를 이 장비를 이용해 물청소한다. 작업속도는 시속 5km로 매일 열차가 운행하지 않는 새벽에 5~10km 정도씩 터널을 청소한다. 하루에 쓰는 물의 양만 2만5천 리터다. 지하철 구내에 들어와 있는 것이 수도뿐이어서 수돗물값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고압살수차는 순수 국내 제작 장비다.

합정역에서 터널 1km 남짓 되는 구간을 걸어서 홍대입구역에 도착하자 새벽 3시쯤 됐다. 벌써 지하철 미화원들이 나와 승강장을 밀대로 닦고 있다. 일부 참가자는 2시간 가까이 쓰고 있던 방진 마스크를 벗으며 목이 아프고 답답하다고 했다. 방진 마스크도 터널 안 미세먼지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서울 지하철 터널의 미세먼지 측정치는 192.2㎍/㎥로 승강장(85.3㎍/㎥), 대합실(80.8㎍/㎥), 전동차 안(36.7㎍/㎥)보다 두세 배 이상 높다. 수시로 물청소를 해도 열차 바퀴와 레일 간 마찰 등으로 미세먼지가 계속 발생한다. 승강장에 올라와 신발을 내려다보니 흰색 신발코와 옆부분이 온통 검은 때와 먼지로 범벅이 돼 있다.

   
▲ ‘지하철 환경 REAL 체험 행사’ 참가자들이 홍대입구역에 도착하고 있는 모습. © 강도림

우리가 잠들거나 잠든 시간에, 지하철 터널은 깨어난다. 밤새워 청소하고 점검하고 손 봐주는 사람들이 있어 서울 지하철은 시민들을 태우고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달린다.


편집 : 박서정 기자

[강도림 기자]
단비뉴스 환경부 강도림입니다.
강자에겐 강하게, 약자에겐 부드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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