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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있어도 변함없는 그 교정
[맛있는 집 재밌는 곳] 카멜레존 ⑨ 제주 명월국민학교
2019년 12월 30일 (월) 05:22:38 강도림 기자 kangdl0314@naver.com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1945년 해방을 전후한 시기 ‘국민가수’이던 백난아의 ‘찔레꽃’ 첫 소절이다. 백난아가 그리워하던 ‘남쪽나라 내 고향’은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다. 한림(翰林)은 글자 그대로 ‘글의 숲’을 뜻한다. 명월(明月)리는 조선 말기에 유림이나 시인 묵객들이 풍류를 즐겼던 곳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문화적 기운이 깃든 곳에서 ‘국민가수’ 백난아가 태어났다.

‘찔레꽃 붉게 피는’ 국민가수 백난아 고향

백난아는 중학생 때 콜럼비아 레코드사 콩쿠르, 태평레코드사 레코드예술상 회령대회 등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휩쓸었다. 1941년 그가 부른 ‘찔레꽃’은 1945년 해방 후 많은 국민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이 노래는 발표 당시에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점차 인기를 얻으며 ‘차트 역주행’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기를 끌고 레코드 판매가 상위권에 오른 것이다. 국민가수 백난아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직접 ‘파라다이스 쇼단’을 운영하며 전국 순회공연을 다녔다. 백난아의 이런 행보는 여성들의 사회참여에도 물꼬를 트는 기여를 했다.

   
▲ 해방 전후 ‘국민가수’이던 백난아가 태어난 명월리의 명월국민학교. 1993년 폐교된 뒤 방치되다가 갤러리 카페로 변신했다. © 강도림

백난아가 한참 활동하던 1950년 당시 열 살이던 이미자는 백난아의 공연을 보고 가수를 꿈꿨다고 한다. 백난아는 KBS 프로그램 ‘가요무대’에도 자주 출연했는데, ‘찔레꽃’은 KBS 가요무대 사상 가장 많이 불린 국민가요다.

‘찔레꽃’은 작곡가 김교성과 작사가 김영일이 1941년 만주지역 순회공연 중 비밀리에 독립군을 만나고 와서 작사∙작곡해 백난아의 목소리에 실은 노래라고 한다. 이 노래는 당시 가사보다 노래 시작 전 오프닝 멘트가 당시 상황을 더 절절하게 전하고 있다.

“일제가 일으킨 태평양전쟁의 풍운이 휘몰아치던 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슬픈 별 아래 서야 했다.

절망의 황혼…우리는 허수아비…

남의 나라 전쟁터로 끌려가던 젊은이들의 충혈된 눈동자…

처녀들은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갈까 봐 시집을 서둘렀지…

못 견디게 가혹한 그 계절에도 찔레꽃은 피었는데…”

인스타그램 게시물만 5만 개 넘는 학교

   
▲ 1955년 개교한 명월국민학교 정문을 들어서면 요즘 학교에서 보기 힘든 이순신장군 동상과 거북선이 보인다. 동상에 가득 낀 이끼가 오랜 세월을 보여준다. © 강도림

“달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동창생

천리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백난아가 ‘찔레꽃’ 2절의 첫 소절을 부르며 그리워했을 동창생들은 어디에 있을까? 백난아가 태어난 명월리에는 명월국민학교가 있다. 백난아는 1923년 이곳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부모님을 따라 만주로 떠났다. 아홉 살 때 함경북도 청진에 정착해 동덕보통학교를 다녔다. 명월국민학교는 백난아가 떠나고 한참 뒤인 1955년 7월 23일 문을 열었다. 당시 인근 주민들이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터와 건물을 마련해 한림국민학교 명월분교장으로 출발했다. 그는 고향 명월리를 생각하며 달 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동창생을 그리며 천리객창에서 북두성을 바라보았을 터이다. 실제 백난아는 찔레꽃 작곡가∙작사가와 함께1941년 명월국민학교 정문 앞 사거리 근처에 있는 명월대를 찾아와 일제 치하 암울한 시기의 울분을 달래며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이 명월분교장은 13년 동안 101명의 어린이를 졸업시키고 1968년 명월국민학교로 승격했다. 이후 25년간 671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93년 3월 1일 폐교되면서 한림국민학교로 통합됐다. 백난아는 명월국민학교가 폐교되기 1년전인 1992년 1월 세상을 떠났다. 명월리 주민들은 폐교사 한 켠에 백난아기념관을 지어 그를 기리고 있다.

폐교됐던 명월국민학교가 작년 9월 25년만에 다시 ‘개교’했다. 명월분교장을 만들 때처럼 이번에도 명월리 청년회원과 부녀회원 등 주민들이 나서서 갤러리 카페 형태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문을 연 것이다.

   
▲ 명월국민학교의 등교시간과 하교시간을 알려주는 안내판. 카페 영업시간을 학교 등∙하교 시간으로 재미있게 표시했다. © 강도림

1996년 국민학교 명칭이 초등학교로 바뀐 지가 언제 적인데 웬 ‘국민학교’인가 싶지만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로 검색하면 게시물만 5만 개가 넘는다. 하늘색 철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여느 시골 초등학교처럼 넓은 운동장과 단층 학교 건물이 길게 서있다. 학교이긴 한데 학생과 선생님은 없고 관광객과 제주도민들로 북적인다. 어느덧 제주의 명소로 자리잡은 카페 ‘명월국민학교’다. 명월리는 제주 서쪽 중산간인 해발 100~300m의 고지대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에서 서쪽으로 내려다보면 멀리 한림읍이 보이고 그 앞으로 바다가 펼쳐진다. 바닷가에 있는 협재해수욕장까지는 걸어도 30분이면 닿는다.

   
▲ 학교 복도에 놓여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내다보는 창밖 풍경. 나무 사이로 멀리 한림읍 시가지와 바다가 보인다. © 강도림

버려진 폐교가 ‘뉴트로 제주’로

명월리 마을 주민들은 폐교를 다시 마을을 위한 공간으로 활성화해 보자며 지난 2017년 제주교육청으로부터 무상으로 폐교를 빌렸다. 주민들이 돈을 모아 갤러리 카페로 리모델링 해서 작년 9월 문을 연 것이다. 리모델링이라지만 학교 건물과 운동장은 그대로 두고 내부 인테리어만 카페 겸 갤러리에 맞게 새로 한 정도다. 운동장의 농구대는 골대의 망사가 없어지고 구석구석 녹슬어 있고 식수대는 물이 나오지 않은 지 오래돼 보인다. 학교 건물 안 복도에 놓인 테이블과 의자들도 학교 책걸상처럼 목재로 만든 것들이다. 제주관광공사는 지난 2월 옛 감성을 유지한 이 곳을 ‘뉴트로 제주’ 중 한 곳으로 선정했다. 뉴트로는 ‘새로운 복고(New+Retro)’를 뜻하는 신조어로 복고(Retro)를 새롭게(New) 즐기는 취향을 뜻한다.

   
▲ 명월국민학교 출입문 옆에는 학교종이 달려있다. 시계가 흔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종소리로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렸다. © 강도림

몇 학년 몇 반? 커피반, 소품반…

운동장을 지나 학교 건물 가운데로 가면 현관이 나온다. ‘명월국민학교’라는 문패가 큼직하게 걸려 있고, 그 위에 학교종이 덩그러니 달려 있다. 학교종은 60대 전후 세대나 기억하는 추억의 소품이다. 차임벨 같은 것이 없던 시절에는 종을 쳐서 시간을 알렸다. ‘땡땡땡 땡땡’하고 치면 ‘선생님 모여’라는 종소리고 ‘땡땡땡’ 치면 수업시작, ‘땡땡’ 두 번 치면 수업 종료 신호였다. 불이 나거나 비상시에는 연속으로 종을 쳐서 비상상황임을 알리는 등 학교마다 사정에 맞게 종소리를 정해 신호로 삼았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일곱 개 정도 교실이 이어져 있다. 교실은 몇 학년 교실이 아니라 ‘커피반’ ‘소품반’ 등으로 이름이 붙어있다. ‘커피반’은 커피를 사서 마실 수 있는 카페 공간이다. ‘커피반’에서는 카운터와 의자 테이블이 놓여있어 커피나 디저트를 즐길 수 있고 추억의 문방구에서 과자도 사 먹을 수 있다. 100원, 200원을 주고 사 먹던 ‘아폴로’와 ‘쫀드기’가 이 곳에서는 2개 1000원에 판다. 복도에도 의자가 놓여있는데 창밖을 내다보면 멀리 한림읍 시가지와 바다가 시야에 들어온다.

   
 
   
▲ 커피반 카운터 뒤편 칠판에 분필로 그린 한라산이 보인다. 명월리를 상징하듯 큰 달이 한라산 자락에 걸려있다(위). 복도를 따라 길게 놓여진 테이블과 의자들.(아래) © 강도림

‘커피반’ 옆 ‘소품반’에서는 엽서, 나무 볼펜, 액세서리 등 다양한 관광상품과 특산물을 판매한다. 여기 있는 기념품만으로 성에 차지 않으면 프리마켓이 열리는 월요일에 ‘등교’하면 다양한 소품과 물건들을 만날 수 있다. 작가들이 만든 각종 중고물품과 수제품도 살 수 있다.

   
 
   
▲ 명월국민학교 ‘소품반’. 미술작품과 볼펜, 액세서리 등 각종 공예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위). ‘소품반’ 창 밖으로 널찍한 운동장이 보인다(아래). © 강도림

이어진 ‘갤러리반’에는 명월국민학교를 그린 일러스트 작품, 제주도가 담긴 사진과 그림들이 전시돼 있다. 작품을 살 수도 있는데, 수익금은 청년작가들을 위해 쓰인다. ‘갤러리’반 복도 쪽 창문에는 커다란 걸개그림이 있다. ‘명월국민학교’라는 글자 아래 학교 그림이 있는 포토존이다. 그 아래 국민학교에서 사용하던 작은 책걸상이 놓여 있어 거기 앉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 명월국민학교 ‘갤러리반’. 대형 포토존 앞에는 작은 나무 의자와 책상이 있다. 국민학교 시절 사용하던 것들이다. © 강도림

교실과 복도에서 음미하는 커피와 바다

명월국민학교가 많이 알려졌다고 해서 사람들이 몰려 들어 앉을 자리가 있을까 하는 것은 기우다. 커피계산대 앞에 많은 테이블과 의자들이 있고 복도에도 바 스타일의 테이블과 의자가 줄줄이 놓여 있다. 실내가 갑갑하다고 생각되면 푸른 협재해수욕장 앞바다가 보이는 야외 테이블로 나가면 된다. 많은 이들이 야외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즐긴다.

협재 쪽을 바라보면 바다 위로 작은 섬이 하나 눈에 들어오는데 비양도(飛揚島)다. 이 섬은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에 딸린 섬이자 오름이다. 1002년에 화산이 분출해 형성된 제주에서 가장 어린 섬이다. ‘날아온 섬’이라는 뜻의 비양도 이름에는 유래가 들어있다. 옛날 협재 근처에 사는 한 여인이 커다란 산봉우리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산이 날아온다, 거기 멈춰라”고 소리치자 산이 한림 앞바다에 떨어져 비양도가 됐다는 전설이 있다. 비양도 역시 제주 명소로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건너 간다.

   
▲ 명월국민학교 야외 벤치에 앉아서 바라보는 비양도. 바다 위에 오름 형태로 떠있다. 비양도까지는 4km가 채 안 돼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인다. © 강도림

노 노펫존 · 노 노키즈존.

요즘 많은 카페들이 어린이 출입을 금지하는 ‘노키즈존’을 내세우지만 명월국민학교는 ‘키즈존’이다. 이 학교에는 매일 많은 어린이들이 ‘등교’해 뛰어 논다. 카페가 넓은 운동장과 여러 칸 교실로 이루어져 아이들에게 얌전히 있으라고 눈치 줄 이유가 없다. 아이들은 맘껏 뛰놀며 어쩌면 아빠, 엄마도 느끼지 못했을 학교생활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큼지막한 렌터카를 타고 오더라도 운동장 한 켠에 마련된 넓은 주차장이 있어 걱정이 없다. 반려견과 운동장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반려견의 건물 내부 출입은 안 된다. 목줄을 매는 기본 에티켓은 지켜야 노펫존이 유지될 듯하다.

가끔 제주도에서 장사 잘되는 카페들을 보면 많은 이들이 ‘내가 카페 차릴 걸’하고 배 아파하곤 한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명월국민학교는 개인이 아닌 명월리 마을에서 운영하는 카페여서 수익금 일부는 마을발전기금으로 쓰인다. 명월국민학교가 카페로 문 열기 전까지는 명월리는 관광명소도, 특산품도 없다 보니 젊은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마을 주민도 789명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명월국민학교를 찾는 사람들로 동네가 북적이고 마을에 활력이 돈다. 왜구를 막기 위해 지어진 성터인 명월성지, 수령 500년 이상 된 팽나무군락 등 마을의 다른 명소에도 사람들이 몰려든다.

   
▲ 명월국민학교 복도 유리창에는 ‘변화는 있어도 변함이 없기를’이란 글귀가 붙어 있다.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곱씹어볼 만한 말이다. © 강도림

명월국민학교 복도 창문 한 곳에는 눈길이 가는 글귀가 붙어있다. ‘변화는 있어도 변함이 없기를.’ 시간이 흐르며 어쩔 수 없이 변해가는 것이 세상이지만 그래도 본질적으로 변함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을 것이다. 명월국민학교에서 차 한잔 하면서 변함 없었으면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카멜레존(Chameleon+Zone)은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현대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춰 공간의 용도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이제 밖에 나가서 여가시간을 보내거나 쇼핑을 할 때도 서비스나 물건 구매뿐 아니라 만들기 체험이나 티타임 등을 즐기려 한다. 카멜레존은 협업, 체험, 재생, 개방, 공유 등을 통해 본래의 공간 기능을 확장하고 전환한다. [맛있는 집 재밌는 곳]에 카멜레존을 신설한다. (편집자)

편집 : 이나경 기자

[강도림 기자]
단비뉴스 환경부 강도림입니다.
강자에겐 강하게, 약자에겐 부드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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