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 ‘팩트체커’ 팀의 ‘트럼프 주장 데이터베이스’
“합법적인 투표만 집계하면 내가 쉽게 이긴다. 불법 투표를 집계하면, 그들은 우리에게서 선거를 훔칠 수 있다(If you count the legal votes, I easily win. If you count the illegal votes, they can try to steal the election from us).”
2020년 11월 5일,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가 여전히 진행 중이던 시기에 당시 재선을 노리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은 지지자들 사이에 부정선거론 확산의 기폭제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2021년 1월 6일 미국 역사상 전대미문의 의사당 공격이라는 폭력시위를 낳았다. 이 발언은 국내 일부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자들과 부정선거론자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Stop the Steal” 구호의 배경이기도 하다. 취임식에 참여한 군중의 수를 “취임식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파”라고 기자들에게 과장하여 브리핑하고 이를 대안적 진실(alternative facts)이라고 주장했던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임기 말미에 이르러 대통령 자신이 폭력을 선동하는 음모론을 주장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 것이다.
3만 573건, 트럼프 대통령이 첫 번째 재임 기간인 2017년 1월 20일 취임일부터 2021년 1월 20일 퇴임일까지 만들어낸 허위 또는 오해 소지가 있는 주장의 숫자다. 이 숫자는 그의 기자회견이나 연설은 물론 트위터(현재 X) 게시물 등 SNS에 남긴 발언까지 매일 점검한 <워싱턴포스트>의 팩트체크 팀 ‘팩트체커'(The Fact Checker)가 집계한 것이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거짓 주장을 모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었으며, 이 기록은 미국 현대 정치사에서 전례 없는 시도로 평가받는다.
데이터로 허위 주장의 반복되는 패턴을 밝히다
‘팩트체커’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당일부터 공식 발언, 인터뷰, 트윗 등을 대상으로 팩트체킹을 시작했다. 시작 단계부터 데이터베이스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취임식 이전부터 당선인 신분인 그의 트윗을 매주 검증하는 ‘이번 주 트럼프가 트위터에서 잘못 말한 것들’(What Trump got wrong on Twitter this week)이라는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 1기의 첫 100일 동안 그가 발언한 주장들을 분석해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는 작업으로 확장되었다. 첫 데이터베이스가 공개된 후, 독자들의 요청으로 데이터 축적은 1년으로 연장됐고, 결국 4년의 임기 동안 계속되었다.
당시 ‘팩트체커’ 소속 기자로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 것을 제안했던 미셸 예희 리 현 워싱턴포스트 도쿄 지국장은 최근 <단비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가운데 확인해야 할 주장들이 너무 많았고, 이미 반박되었거나 검증된 주장을 반복하는 경우도 많았다”며 “장문의 분석 내용이 필요하지 않은 주장들은 데이터베이스 내에서 몇 문장으로도 사실 확인이 가능하도록 구성했고, 이를 통해 우리는 보다 복잡한 검증 작업이 필요한 팩트체크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2021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종료 시점까지 총 3만 573건의 허위 또는 시민들을 오도할 수 있는 발언이 집계됐다. 이는 재임 4년간 하루 평균 21건에 달하며, 특히 대선 국면이었던 마지막 해에는 하루 평균 39건으로 거짓 주장 빈도가 크게 증가했다. 글렌 케슬러 ‘팩트체커’ 에디터는 2021년 1월 23일 데이터베이스 분석과 함께 낸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거짓 발언은 1년 차에 하루 6건, 2년 차에는 16건, 3년 차에 22건, 마지막 해에는 39건까지 폭증했다”며 대선을 앞두고 그의 허위 주장이 급증한 현실을 수치로 설명했다.
행정부 초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일일이 검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리 기자는 회상했다. 그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정한 패턴과 반복되는 주장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미 팩트체크를 마친 ‘대표적인 주장들’이 되풀이되면 데이터베이스에 쉽게 포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리 기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단어 하나의 변화도 큰 차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반복된 주장을 다룰 때도 어떤 변화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도록 꼼꼼히 검토했다”고 강조했다.
좌든 우든 주장의 정확성만을 따진다
워싱턴포스트의 ‘팩트체커’ 팀은 국제 팩트체킹 연맹(International Fact-Checking Network·이하 IFCN)의 서명기관(Signatory)이다. 이는 IFCN의 준칙(Code of Principles)을 준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준칙의 제1원칙은 정치적 중립성이다. 검증 대상이 누구든, 어떠한 주제이든, 동일한 수준의 엄격한 증거 기준과 판단 기준을 적용하여 팩트체크를 수행해야 하며 정치적으로 특정 진영이나 집단에 치우친 팩트체킹을 하지 않아야 한다. 이 원칙에 비추어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1기 집권 내내 그의 발언을 팩트체크한 것은 정치적 편향은 아니었을까?
워싱턴포스트의 ‘팩트체커‘가 소개 페이지에 밝힌 ‘기본 원칙’(A Few Basic Principles)은 이 질문들에 답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초당파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좌우 양측의 부정확한 발언에 주목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중요한 사안에 대해 팩트체크를 합니다 — 그리고 중요한 것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의 정당이 백악관과 의회의 양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을 때, 팩트체크가 정치적 스펙트럼의 한쪽에 지나치게 집중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검토 중인 사안의 사실에 충실할 것이며 우리를 향한 인신공격에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장을 제기한 사람이나 조직의 정체성이나 정치적 성향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중요한 것은 그들의 주장이 정확한지 부정확한지입니다.” ‘팩트체커’는 정치 권력이 편중되어 있을 때는 인위적으로 양적 균형을 맞추지 않겠다는 검증 원칙을 천명한다. 그러나 동시에 좌든 우든,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정치적 성향은 중요하지 않으며 오직 주장의 사실성 여부에만 초점을 둔다는 원칙도 견지하고 있다. 팩트체크 과정에서는 발언 당사자에게 반론 기회를 제공하고,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면 기존 판단을 수정할 수 있는 절차도 마련돼 있다.
실제로 ‘팩트체커’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트럼프 대통령 재임 때와 같은 기준과 방식으로 검증을 이어갔다. 1기 트럼프 행정부처럼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100일 동안 67건의 허위 또는 오해 소지가 있는 발언을 기록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에 비해 그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기 때문에 별도의 데이터베이스는 만들지 않았다.
트럼프 1기 정치 담론을 실증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원천
케슬러 에디터는 데이터베이스를 설명하는 기사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이라는 확성기를 통해 끊임없이 거짓말을 한 결과, 진짜 사실에 대해 회의적인 미국인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는 역사학자 마이클 베슐로스의 발언을 인용해 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사회적 배경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허위 주장은 그 수가 압도적으로 많을 뿐 아니라 반복된다는 점에서 두드러졌다. 실제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같은 허위 주장을 세 번 이상 반복한 사례는 750건에 달했다. 워싱턴포스트 ‘팩트체커’는 단순한 수치뿐 아니라, 이 주장들이 어떤 맥락에서 반복되었는지도 함께 정리했다.
데이터베이스에는 그의 임기 중 허위 주장이 어떻게 증가하고 다변화했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그래프와 인터랙티브 요소들이 활용됐다. 특히 임기가 진행될수록 러시아, 경제, 코로나19, 이민 정책 등 다양한 주제가 허위정보의 대상으로 등장했으며, 색깔로 구분하여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각 주제마다 트럼프 대통령이 몇 회나 관련된 주장을 했는지도 함께 제공됐다.
주요 주장은 요약된 팩트체크 기사와 함께 강조되어 제공되며, 독자들이 원문 팩트체크 기사로 직접 접근할 수 있도록 ‘팩트체크 전문 읽기’(Read the full fact check) 링크가 포함되어 있다.
‘팩트체커’는 트럼프 대통령이 20회 이상 반복한 허위 주장은 의도적인 허위조작정보(disinformation)로 분류했다. 악의적 의도가 없을 수도 있는 오정보(misinformation)와 달리 허위조작정보는 사실이 아님을 알고도 퍼뜨리는 정보를 의미한다.
20회 이상 반복된 주제는 따로 정리되었으며, 그 결과 수백 회 이상 등장한 키워드는 미국 경제(493회), 감세 정책(296회), 국경 장벽(258회), 관세(248회) 등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감세를 단행했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로널드 레이건이나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기보다도 적은 수준이었다는 점이 팩트체크를 통해 확인됐다.
워싱턴포스트 ‘팩트체커’의 ‘트럼프 주장 데이터베이스’(Trump claims database)는 언론계와 학계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21년에는 온라인저널리즘협회(Online News Association)로부터 '탁월한 저널리즘상'(Journalism Excellence Award)을 받았다. 심사위원단은 “팩트체크 보도 차원을 넘어 데이터로 구조화한 점에서 뉴스 기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했다. 2019년에는 시러큐스대학교 뉴하우스스쿨(S.I. Newhouse School)에서 수여하는 '토너 우수 정치보도상'(Toner Prize for Excellence in Political Reporting)에서 '우수 언급'(Honorable Mention)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단은 이 프로젝트가 “명확하고 절제된 보도로 과장 없이 사실을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해당 데이터베이스는 오픈소스로 공개돼 있으며, 학계에서도 정치적 허위정보의 유통 경로와 반복된 허위 주장 효과 등을 분석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조지워싱턴대학교(GWU)의 미디어학자 제니퍼 홀트는 이 자료를 “트럼프 시기의 정치 담론을 실증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귀중한 원천”이라고 평가했다. 2020년에는 뉴욕대학교(NYU) 언론연구소가 선정한 ‘지난 10년간 최고의 저널리즘 10선’ 후보로도 이름을 올렸다. 당시 심사평에는 “철저한 취재와 지속적인 업데이트로 권력을 견제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보여줬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프로젝트는 이후 책으로도 출간되었으며, 일반 대중이 다운로드할 수 있는 형태로 공개돼 있다. 현재도 독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 주제, 발언의 출처, 날짜 등을 기반으로 해당 발언에 대한 팩트체크 기사에 접근할 수 있다.
리 기자는 해당 데이터베이스에 대해 “‘팩트체커’ 팀의 목표는 정치인이나 주요 인사, 기타 정보 출처로부터 나오는 주장에 접할 때, 시민들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다”며 “우리는 이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 1기 시절의 주장을 깊이 있게 검토하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포괄적이고 철저하며 쉽게 접근 가능한 사실 기반 자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밝혔다.
“우리의 목적은 투표를 바꾸는 것이 아니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했지만, 2024년 대선에서는 공화당 후보로 다시 출마했고 결국 당선됐다. 이를 두고 “팩트체크는 무의미한 것 아니냐”는 회의론도 제기된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 ‘팩트체커’의 기자들은 팩트체크의 목적은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잘못된 주장을 고치기 위해서 데이터베이스를 추진한 것이 아니라 어떤 주장이 반복되는지 역사적으로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팩트체커’ 에디터인 케슬러는 2018년 더 뉴요커(The New Yorker)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우린 어떤 의미에선 역사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케슬러 에디터는 팩트체크의 목적이 유권자나 정치인의 행동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2024년 11월 6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확실시되자 그는 칼럼에 “나는 유권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팩트체크를 작성한다. 그 정보를 유권자나 정치인이 어떻게 활용할지는 그들의 몫”이라고 썼다. ‘팩트체커’ 출범 15주년을 기념하는 기사에서도 그는 “우리의 목적은 사람들이 더욱 식견을 갖게 하는 것이지 투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팩트체커’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리 기자도 팩트체킹의 목적은 어떤 정치적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언론이 자기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팩트체킹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거나, 특정한 정치적 목적이나 선거 결과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목적은 권력자들과 선출직 공직자들이 대중에게 하는 발언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팩트체킹은 시민과 유권자가 정치적 견해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갖출 수 있도록 돕습니다. 허위정보와 조작정보가 증가하는 시대에, 팩트체크와 같은 책임 저널리즘(accountability journalism)의 역할과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기사 원문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