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정보'에 대항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선생님, 5월 2일 임시공휴일이라던데, 시험 미뤄지나요?”
5월 2일로 예정된 중간고사를 2주 앞둔 시점, 임시공휴일에 관한 질문이 양양고등학교 최길성(36) 교사에게 쏟아졌다. 최 교사가 정보의 출처를 묻자, 학생들은 “유튜브”라고 답했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에서 ‘5월 2일, 임시공휴일’이라는 키워드가 떠돌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의 발표는 없었고, 국무회의에 안건으로 상정된 일도 없었다.
댓글의 ‘좋아요’ 숫자에 흔들리는 청소년들
청소년들 사이에서 허위정보 유통 방식은 단순하다. 예컨대 모두가 관심을 가질만한 ‘5월 2일 임시공휴일 되나’와 같은 언론 보도는 다양한 커뮤니티로 유통된다. 그 과정에서 일부 정보의 맥락이 뒤틀리거나 사실이 조작되고, 청소년들은 원래의 기사와는 다른 오염된 정보를 접한다. 최 교사는 “학생들이 오염된 정보를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정보 수용에 댓글이 미치는 영향도 크다. 유튜브 동영상의 내용보다 밑에 달린 댓글의 ‘좋아요’와 추천 수에 더욱 흔들린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댓글의 ‘좋아요’ 수는 해당 정보가 사실이라는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최 교사는 또래 집단 내에서 정보가 어떻게 확산되는지도 주목했다. “아이들은 새로운 정보를 빨리 받아들이는 소위 ‘인싸’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단톡방에 무작정 퍼나르는 출처가 불명확한 정보들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빨리 퍼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팩트체크 뉴스 만들기’ 수업을 개발하다
고등학교 1학년 사회 과목을 지도하는 최 교사의 오랜 관심은 허위정보 공유를 줄이는 데 있다. 시작은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 교사는 “코로나와 관련된 많은 허위정보가 시민들 사이에서 퍼지고 그로 인해 의사결정에 왜곡이 발생하는 문제가 안타까웠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때마침 최 교사에게 석사 논문 주제를 선택할 시기가 다가왔고, 허위정보 확산에 대한 안타까움을 연구 주제로 발전시켰다. 최 교사는 “탈진실의 시대에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허위 정보에 쉽게 유혹되지 않으면서 책임 있는 민주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 끝에 '팩트체크 뉴스 만들기' 수업을 고안했다.
수업에서 최 교사는 먼저 학생들에게 다양한 언론사의 팩트체크 뉴스를 보여줬다. 이후 학생들은 모둠으로 나뉘어 최 교사가 선별한 가짜뉴스를 접하고 활동지에 댓글과 ‘좋아요’를 남긴 뒤 서로 뉴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최 교사는 가짜뉴스인지 밝히지 않은 채 뉴스를 전달했다. 학생들이 가짜뉴스가 어떻게 사람들을 속이는지를 체험을 통해 학습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음에는 팩트체크 뉴스의 의미와 제작 과정에 대해 학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모둠별로 허위정보로 의심되는 부분에 대해 자료를 검색하고, 수집한 근거자료를 토대로 처음 접했던 가짜뉴스에 대한 팩트체크를 한 뒤 그 내용을 바탕으로 팩트체크 기사를 작성하고 공유하도록 했다.
팩트체크 과정을 거쳐본 학생들은 “SNS에서 정보를 접할 때 정보의 출처는 어딘지, 혹시 허위정보는 아닐지 질문하고, 앞으로 정보를 카톡에 공유할 때 한번 더 고민해 보겠다”라고 느낀 점을 발표했다.
최 교사는 팩트체크 뉴스 만들기 수업을 계속 이어가지 못했다. 사회문화 과목의 대중매체 단원을 활용해 팩트체크 수행평가를 실시한 적이 있지만, 그 역시 한 번으로 그쳤다. 최 교사는 학교 수업에서 팩트체크를 다루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입시’를 꼽았다. “대입을 앞둔 고등학교 현장에서 입시와 관련 없다고 여겨지는 팩트체크를 활용한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을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경인교대 국어교육과 정현선(54) 교수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가치는 입시가 아닌 비판적인 시각과 함께 ‘내가 틀릴 수 있다’라는 열린 마음을 기반으로 일상에서 이를 실천하는 것에 있다”며 모든 교육이 입시로 연결되는 현실의 맹점을 지적했다.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는 ‘수능에 미디어 리터러시 과목을 넣어 시험을 보게 하면 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그러면 학생들이 미디어 리터러시를 싫어하게 된다”고 말했다.
팩트체크와 미디어 리터러시의 조화
정현선 교수의 설명처럼 입시만능주의가 개선되지 않으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학교 공교육에 제대로 안착할 수 없다. 여기서 미디어 리터러시란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이용하며, 창의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미디어 활용 교육이나 디지털 기술의 기능적 활용 교육과는 구분된다.
해외 국가들은 일찌감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나섰다. 핀란드는 2016년부터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교육을 실시 중이다. 한국의 국어 과목에 해당하는 핀란드어 시간에는 어떤 단어가 혼동을 일으키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급기야는 속임수를 낳는 데 사용되는지를 살펴보며 언어 소양을 기른다. 미술 시간에는 어떻게 이미지가 조작될 수 있는지를 배우고, 수학 시간에는 통계가 어떻게 조작되는지를 학습한다. 핀란드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교과 간 융합적 요소로 다루는 교육의 목표는 학생들을 책임감 있는 시민과 유권자로 성장시키는 데 있다. 정보의 출처를 확인하고 평가하는 팩트체크는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기르는데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의 2022 개정 교육과정은 학교 교육 과정에 '매체 문해력'을 도입했다. 매체 문해력은 특정 과목이 아니라 모든 과목에 적용되는 것이다. 정현선 교수는 “학교 교육과정에 매체 문해력이 등장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라며 “그러나 미디어 리터러시의 본질적 목표에 맞게 반영되기 위해서는 체계적으로 정리된 지침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핀란드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일부는 팩트체크 기관인 ‘팍타바리'(Faktabaari)에 의해 제공되기도 한다. 국제팩트체킹연맹(International Fact Checking Network·이하 IFCN)의 창립멤버인 팍타바리는 핀란드 정부와 협력해 교육 현장에 팩트체크 커리큘럼을 제공해 오고 있다.
한국에서도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게임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강화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다. 시청자미디어재단에서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 게임 ‘팩트수사대’가 그 사례다. 팩트수사대는 허위정보를 퍼뜨려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는 악당들을 추적하는 팩트체크 게임이다.
팩트수사대는 ‘인턴 편’과 ‘수사대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턴 편에서는 허위정보와 팩트체크에 관한 OX 퀴즈와 단답형 퀴즈를 맞혀가면서 팩트체크에 대한 기초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10개의 퀴즈를 모두 맞추면 팩트수사대의 가이드 ‘체카’가 등장해 합격을 축하해준다. 수사대 편부터 본격적인 악당 V를 잡기 위한 튜토리얼이 시작된다. 임무를 수행하면서 이미지, 통계, 논문, 법령 정보 등을 활용한 사실 검증을 수행해야만 하고, 그러한 팩트체크의 결과물이 모여서 악당 V의 아지트로 게임 참여자를 안내한다.
팩트수사대는 청소년 팩트체크 대회나 뉴스 리터러시 수업 전 단계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게임을 개발한 한국미디어강사협회 유경혜(55) 대표는 “게임을 통해 팩트체크를 즐기고, 팩트체크 역량을 일상에서도 자연스럽게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게임의 목표”라고 말했다.
시민이 참여하는 해외 팩트체크
지난달 31일에 IFCN이 발간한 ‘2024년 팩트체커 현황 보고서'(State of the Fact-Checkers Report)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67개국 141개 팩트체크 기관 중 59.6%가 비영리기관이다. 이는 2023년의 53.3%에서 증가한 수치다. 이윤을 추구하는 언론사가 36.9%로 뒤를 이었고, 학술 기관은 3.5%로 가장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조사에서 비영리기관이 64%를 차지했던 것에 견주어 본다면 다소 감소한 수치이긴 하나 여전히 언론사 주도가 아닌 팩트체크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대만에는 인터넷상의 거짓 정보 확산을 막는 시민주도형 팩트체크 플랫폼 '코팩트'(Cofacts)가 있다. 가짜뉴스와 허위정보의 확산을 막기 위해 2016년 대만의 시민 정보·기술 커뮤니티인 거브제로(g0v)에서 시작했다. 시민들은 메신저 플랫폼 ‘라인’을 통해 소셜미디어 내에 돌아다니는 루머, 커뮤니티 내 혐오 표현과 같은 생활밀착형 이슈 가운데 허위정보로 의심되는 메시지를 챗봇에 전송한다. 이미 검증된 정보가 있을 경우 챗봇이 바로 이를 끌어다가 답을 제공하고,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허위정보는 시민 편집자들이 직접 사실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모든 검증 이력은 오픈소스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된다.
또 다른 시민주도형 팩트체크 기관으로 인도네시아의 '마핀도'(Mafindo)가 있다. 전 국민의 70%가 소셜미디어를 정보 창구로 이용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9년 전 허위정보로 인한 사회적 참사를 겪기도 했다. 탄중발라이 시내의 불교 사원 11곳이 종교갈등을 부추기는 허위정보로 인해 불에 탔다. 허위정보로 인한 혼란과 갈등을 억지하고 건강한 소셜미디어 사용을 실현하고자 2016년 마핀도가 설립됐다. 마핀도는 2025년 4월 기준 IFCN 157개 서명기관(signatory) 중 하나다. 시민 협업형 플랫폼 턴백혹스(TurnBackHoax)와 언론사 협업형 플랫폼 첵팍타(CekFakta)를 통해 시민에게 허위정보로 의심되는 정보를 제공받고, 직업적인 기자가 수행한 팩트체크 콘텐츠를 제공한다. 현재 마핀도는 전국 20개의 지역을 거점으로 1000명이 넘는 시민활동가들과 함께하고 있으며, 핀란드의 팍타바리처럼 팩트체크 역량을 증진하기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그 대상은 학생부터 노인층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아우른다.
풀뿌리 팩트체크를 시도하다
한국에서 시민 중심의 팩트체크는 해외에 비해 활발하지 않다. 그렇다고 시민 팩트체크 활성화를 위한 시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협동조합 빠띠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광범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그중 일부로 팩트체크 활동을 진행 중이다. 빠띠는 시민팩트체커 커뮤니티 K.F.C(Korean Factcheckers’ Community)를 운영하면서 영상, 카드뉴스, 강의 등 온·온프라인을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현재 K.F.C 홈페이지에는 2024년 8월을 마지막으로 팩트체크 결과물이 올라오지 않고 있다. K.F.C를 운영하는 빠띠의 임동준(30) 활동가는 “K.F.C는 이전과 동일하게 유지 중이지만, 중복 업로드의 비효율성을 줄이기 위해 디지털 시민 광장 빠띠 플랫폼에만 콘텐츠를 업로드 중”이라고 말했다. 빠띠 플랫폼에는 팩트체크 결과물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지만 소수 활동가에 의존하고 있고, 활동이 익명으로 이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빠띠는 팩트체크와 미디어 리터러시를 모두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IFCN의 글로벌 팩트체크 펀드(Global Fact Check Fund)의 프로그램 중 빌드(BUILD) 단계에 선정되어 재정지원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시민 팩트체커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임동준 활동가는 “앞으로 시민 팩트체커를 늘려나갈 예정”이라며, 소셜미디어에 확산된 허위정보를 한두 문장으로 간단하게 검증하는 양식을 활용하는 인도네시아의 팩트체크 기관 마핀도처럼 “시민들이 조금 더 쉽게 팩트체크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했다.
“수많은 플랫폼을 통해서 정보가 오가는 현대 사회에서 허위정보의 확산을 막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허위정보의 확산은 빠르고, 검증은 느립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결국 허위정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시민들이 정보를 받아들이기 전에 의심하고,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고, 이런 습관이 하나의 문화가 되어야 합니다.”
임동준 활동가가 말하는 모든 시민이 팩트체커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