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제408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 수상작 – 한국일보 ‘추적: 지옥이 된 바다’

매년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바다로 버려진다. 한국에서만 10만 톤(t) 넘는 해양쓰레기가 발생한다. 해양수산부는 2019년 우리 바다에 새로 버려지는 쓰레기의 양을 14만 5000t으로 추정했다. 이 가운데 3.8만t은 버려진 폐어구다. 폐어구는 몇 년 동안 바다를 떠다니며 해양 생물을 잡아들이는 ‘죽음의 덫’이 돼 생태계를 무너뜨린다.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위협하기도 한다. 선박 스크루에 엉킨 그물을 풀어내려 바다에 뛰어든 선원이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는 해류를 통해 국경을 넘나든다. 태평양에는 8만t이 넘는 쓰레기가 모여 있는 ‘쓰레기 섬’이 있다. 어업으로 먹고사는 이들이 많은 동중국해 인근 국가들은 이런 쓰레기 문제의 주범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쓰레기는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 바다에서 잘게 부서진 플라스틱은 플랑크톤·해양 생물의 입을 거쳐,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간다.

해양쓰레기 문제가 이토록 심각하지만, ‘내 일’로 여기는 사람은 없다. 이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특별취재팀을 꾸렸다. 엑설런스랩과 국제부, 기획영상부, 멀티미디어부가 한데 뭉쳤다. 취재팀은 3개월 동안 한국의 동해, 서해, 남해부터 미국 하와이, 필리핀, 중국, 일본까지 국내외 바다를 누볐다. 어부, 해녀, 전문가 등 다양한 취재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바다를 지옥으로 만든 쓰레기를 추적했다.

취재한 내용은 ‘추적: 지옥이 된 바다’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8월 9일부터 9월 9일까지 총 6회에 걸쳐 번외편을 포함해 19편의 기사로 보도됐다. 생생한 취재 현장을 담아낸 영상 5편도 ‘TRASEA’라는 제목으로 한국일보 유튜브에 게시됐다.

‘추적: 지옥이 된 바다’ 1부 1회 ‘뱃사람도 포기한 바다’가 실린 2024년 8월 12일 한국일보 지면. 한국일보 지면 PDF 갈무리
‘추적: 지옥이 된 바다’ 1부 1회 ‘뱃사람도 포기한 바다’가 실린 2024년 8월 12일 한국일보 지면. 한국일보 지면 PDF 갈무리

현장에 가봐야 알 수 있다

‘추적: 지옥이 된 바다’ 시리즈의 1회, ‘뱃사람도 포기하는 바다’는 새우 분류 작업을 하는 선원과의 대화로부터 시작된다. 한국일보 특별취재팀의 유대근 기자도 이 배에 타고 있었다. 취재팀은 제주도 서귀포에서 만난 어민으로부터 “직접 배를 타보면 해양쓰레기 실태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두 달 동안 선주들에게 어선 탑승을 부탁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러다 새우잡이 어선 ‘607 영진호’의 곽운영 선장으로부터 탑승을 허락받았다. 유 기자는 166시간 동안 선원들과 조업을 함께 하며 물고기와 온갖 쓰레기가 뒤섞여 올라오는 모습을 관찰해 기사에 담았다.

유대근 기자는 ‘607 영진호’에 직접 탑승해 딱새우와 붕장어를 함께 잡으며 선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일보 유튜브 갈무리
유대근 기자는 ‘607 영진호’에 직접 탑승해 딱새우와 붕장어를 함께 잡으며 선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일보 유튜브 갈무리

함께 취재한 원다라 기자는 인천에서 꽃게를 잡는 어선에 올라타 속이 빈 꽃게만 잡히는 현장을 취재했다. 어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폐어구로 인해 망가진 바다 생태계 실태를 들여다봤다. 이를 통해 바다에 버려진 그물이나 통발에 물고기가 갇혀 굶어 죽는 ‘유령 어업’ 현상도 포착했다.

취재팀은 이 밖에도 부산, 전남 목포·여수, 충남 서산·사천·부여, 미국 하와이, 일본 쓰시마까지 해양쓰레기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다. 다양한 곳에서 어부, 학자 등 많은 취재원을 만났다. 주변 인물의 이야기까지 들으며 사실을 검증했다.

이렇게 취재한 현장은 ‘서사’가 됐다. 취재팀은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을 독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작법을 활용했다. 향유고래, 뭉크 물범 등 하와이 해양 생물을 죽게 만든 ‘검은 고깔’ 모양의 폐어구 일부가 한국에서 만들어지고 버려졌다는 사실을 해양생물학자 칼 버그의 시점으로 풀어냈다. 한국 김 양식업자들이 불법으로 사용한 공업용 염산 용기가 일본 쓰시마 해안을 오염시켰다는 점은 쓰시마 주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적했다.

책임자 없는 해양쓰레기 문제

1부에서는 미비한 해양쓰레기 수거 정책과 예산으로 인해 쓰레기 관리 사각지대가 발생한 현실도 다뤘다. 정부는 해양쓰레기 수거 보상 제도를 운용하고, 민간에 쓰레기 수거 용역을 주는 방식으로 먼바다의 쓰레기를 수거해왔다. 이에 대한 예산은 해양수산부와 환경부, 지방자치단체가 투입하는데, 이들이 각각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는 쓰레기 수거에 드는 돈이 얼마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해양쓰레기 문제를 총괄할 책임자가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간 해양쓰레기 관련 예산 집행에 관한 관리 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취재팀은 실태의 심각성을 보여주기 위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사기 사건의 판결문을 직접 분석했다. 그 결과, 육지에서 나온 쓰레기를 바닷물에 적셔 ‘가짜 해양쓰레기’를 만들거나, 수거한 쓰레기 무게를 속이는 등의 수법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업체가 많다는 점을 알아냈다. 업체의 서류 조작을 적발해 낼 수 없는 허술한 시스템이 문제라는 점도 짚었다.

한국일보는 해양쓰레기 수거 예산이 제대로 쓰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취재했다. 한국일보 지면 PDF 갈무리
한국일보는 해양쓰레기 수거 예산이 제대로 쓰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취재했다. 한국일보 지면 PDF 갈무리

100명의 당사자에게 직접 듣는 대안

1부 4회 기사에서는 해양쓰레기가 제대로 수거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할 대안도 짚었다. 취재하며 만난 어부와 해녀 등 63명, 그리고 전문가 37명 등 모두 100명에게 일일이 대책에 관해 물었다. 쓰레기 차단막을 설치해 하천에서부터 떠내려오는 쓰레기를 막고, 바다에서 주워 온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는 집하장을 추가로 마련하는 등 구체적인 대안이 제시됐다. 이를 통해 수거량을 늘리는 데만 치중하는 정부 정책도 꼬집었다.

우리 정부나 해양경찰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해양쓰레기 문제에 대응하는 하와이의 사례도 제시했다. 하와이에서는 바다 위에서 쓴 물건을 바다에 투기하지 않도록, 미끼 상자·생활 쓰레기 등을 전부 육지로 다시 가져오게 한다. 이를 어기면 벌금 또는 징역에 처한다. 대신 폐그물 등 쓰레기를 가져올 땐 확실한 보상을 제공한다. 유대근 기자는 한국기자협회 누리집에 게재된 공적설명서에서 “촘촘하지 못한 국내 해양쓰레기 정책을 개선해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으로 봤다”고 언급했다.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한국

2부에서는 범위를 더 넓혀, 해양쓰레기 문제에 얽힌 동북아 국가들의 상황을 조명했다. 중국은 해양쓰레기를 가장 많이 버리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중국 어민들은 한국 바다에 몰래 쓰레기를 버린다. 이 쓰레기가 해류와 겨울 북서풍을 타고 한국 바다 연안에 쌓인다. 중국 본토에서 버려지는 생활 폐기물도 양쯔강을 통해 한국으로 떠내려온다.

한국은 피해자인 동시에 해양쓰레기 문제의 주범국이다. 취재팀은 네덜란드 해양학자인 로랑 르브르통을 인터뷰한 내용을 기사에 실었다. 그는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거대 쓰레기 섬인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GPGP)를 가장 잘 아는 해양학자로 꼽힌다. 르브르통은 수산업 규모가 큰 동북아 3국, 한국·중국·일본에서 가장 많은 쓰레기가 버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션클린업에 따르면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에서 발견되는 플라스틱은 한·중·일 3개 국가에서 가장 많이 오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일보 누리집 갈무리
오션클린업에 따르면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에서 발견되는 플라스틱은 한·중·일 3개 국가에서 가장 많이 오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일보 누리집 갈무리

해양쓰레기로 인해 심한 진통을 겪고 있는 필리핀의 이야기도 담았다. 필리핀 마닐라의 파시그강에서만 매년 6만 3000t의 쓰레기가 바다로 유출된다. 쓰레기 수거·재활용 인프라가 부족해 하천으로 쓰레기가 버려지는 일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사는 지금 대응하지 않으면 필리핀이 지금 겪는 문제가 한국의 미래가 될 수 있음을 언급했다.

한국일보 특별취재팀은 지난해 9월 이 기사로 제408회 신문·통신 부문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한국기자협회는 “국내외에 걸쳐 수십 명 취재원과 광범위한 현장을 통해 심각한 해양 쓰레기 문제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대안도 충실히 제시한 점이 높게 평가받았다”는 심사평을 남겼다.

원다라 기자는 한국기자협회에 게재된 기자상 취재 후기에 “취재팀이 8일간 조업선을 타고 나간 제주 먼바다도, 잠수복을 입고 들어간 필리핀 바닷속도 실제 절망적이었다”며 “긴 추적의 끝에 만난 건 우리였다”고 적었다.

이 기사는 지난 2월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KBCSD)가 주최하는 KBCSD 언론상의 신문보도 부문 우수상으로도 선정됐다. KBCSD 언론상은 지속가능발전에 관한 국민 인식을 확산하는 데 기여한 언론에 수여된다.

*기사 원문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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